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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25


《大百科事典 總索引》

 편집부 엮음

 학원사

 1965.10.5.



  어릴 적에 살림숲(백과사전)을 즐겨읽었어요. 어린이가 읽는 살림숲으로 영 모자라다 싶으면 ‘어른 살림숲’을 폈는데, 어른이 읽는 책은 아주 깨알글에 한자가 까맣지만 막상 더 깊거나 넓게 다루지는 못했다고 느꼈어요. 책에 담은 갈래는 많고 두툼하지만 정작 하나하나를 놓고는 스치고 지나가듯 다루었지 싶어요. 온누리 모든 살림살이를 빼곡하게 담을 뿐 아니라 꼼꼼하게 들려주기는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모든 살림을 다 안 담’더라도 ‘애써 담은 살림은 다룰 수 있을 만큼 깊고 넓게’ 다루면 좋을 텐데 싶어 늘 아쉬웠어요. 《大百科事典 總索引》은 ‘학원사 대백과사전’이 나오고서 덧책으로 나온 판입니다. 이름 그대로 ‘찾아보기’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런 살림숲이 있는 줄 몰랐고, 2001년부터 어린이 낱말책을 엮는 일을 할 적에 일터지기님이 “얘야, 헌책집에 가면 학원 백과사전을 꼭 사오너라.” 하고 얘기했기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학원사 김익달 님은 1952년에 《學園》이란 잡지를 냈고 이듬해부터 ‘학원 장학회’를 꾸렸는데, 일터지기님이 바로 이 ‘학원 장학금’을 받으셨어요. 학원사에서 1958년에 낸 ‘살림숲(백과사전)’은 우리 손으로 이룬 첫 살림숲이라 할 만합니다. 요새 들추어도 빛날 만큼 알차고요.


ㅅㄴㄹ


'학원사'와 '백과사전' 이야기를

월간조선에서 다룬 적 있네요.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0091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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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20


《베르사이유의 장미 2》

 마리 스테판 드바이트 글

 노희지 옮김

 소년문화사

 1979.12.15,



  ‘만화방’을 처음 찾아간 어린 날 무척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우글우글한데, 만화책 하나를 몇으로 가르고 까만 끈으로 꿰어서 까만 고무줄에 척 얹더군요. 낱책 하나를 그냥 두면 한 아이가 오래 본다면서 부러 너덧으로 쪼개어 30원을 받습니다. 이러면 아이들이 더 많이 보고, 그만큼 돈을 더 번다지요. 서서 읽도록 실꼬리를 달아 줄에 묶고요. 멀쩡한 책을 쪼개는 손짓이 끔찍해서 만화방에는 다시 안 갔습니다. 동무들이 가자고 잡아끌면 “난 싫다. 차라리 돈을 모아 낱책을 사서 읽을래.” 했어요. 동무들은 《수학의 정석》이나 두꺼운 배움책을 으레 갈라서 들고 다니지만, 저는 아무리 두꺼운 배움책도 통째로 건사했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은 종이꾸러미로 그칠 수 없어요. 일본 만화책을 참 많이 몰래 베낀 우리나라인데,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놓고 몰래책이 갖가지로 나왔어요. 어느 몰래책도 ‘이케다 리에코’라는 이름을 안 밝히더군요. ‘글·옮긴이’는 밝혀도 ‘그린이’는 안 밝히는 눈가림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준 셈일까요. 배고프니 훔친다지만, 배고프면 손수 짓거나 손을 벌리는 동냥을 하면 됩니다. 그나저나 안 찢기고 살아남은 1979년치 만화책이 드문드문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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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21


《샘이깊은물》 94호

 설호정 엮음

 뿌리깊은나무

 1992.8.1.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적입니다.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을 잇던 붓잡이 설호정 님을 만나기 앞서 《샘이깊은물》을 되읽었습니다. 1992년 8월치 〈이 인물의 대답〉을 보면 설호정·김종철 두 분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녹색평론》의 이념을 선생님은 삶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세요?” “대부분 못하죠. 그러니까 《녹색평론》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실천하시는지.” “가급적이면 외식 안 하려고 하고.” “보신주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보신주의 나쁠 거 없어요. 나한테 좋은 게 지구한테도 좋은 거예요. 또 고기 안 먹고. 제 생활은 간단하게 단순하게 살고. 여행을 잘 안 하고. 거의 안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집하고 여기하고 학교하고밖에 왔다갔다 안 하고. 또 식구한테 빨래 자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빨리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아파트로부터 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선생님 가족들이 공감하세요?” “내년이면 애들이 다 우리를 벗어납니다.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간단 말이죠?” 《녹색평론》 김종철 님은 대구를 안 버리겠다고 했지만, 설호정 님이 따진 말처럼 2009년에 서울로 갔지요. 글은 스스로 하는 삶만 쓸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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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19


《풀종다리의 노래》

 손석희 글

 역사비평사

 1993.11.20.



  1993년을 견뎠습니다. 새벽 다섯 시 삼십오 분에 첫 버스로 배움터에 갔고, 밤 열한 시 십오 분 막차를 놓치면 집까지 두 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막차를 놓쳤대서 투덜대지 않았어요. 거리불빛에 기대어 책을 읽었어요. 배움책으로 가득한 등짐이지만 여느 책을 늘 대여섯 가지씩 챙겼어요. 어린배움터 길잡이로 일하는 아버지는 집에서 쉴 때면 보임틀(텔레비전)을 매우 크게 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난 앞으로 보임틀을 집에 안 두겠어!” 하고 다짐합니다. 열린배움터로 갔으나 스스로 배운다거나 책을 곁에 두는 동무나 윗내기를 못 만납니다. 다들 보임틀에 눈을 박습니다. 동아리 사람들이 크게 튼 보임틀이 못마땅해서 혼자 조용히 헌책집을 떠돕니다. 보임틀에 참목소리는 얼마나 있을까요? 책에는 참목소리가 얼마나 흐를까요? 우리 삶터는 허울을 쓰고 속내를 감춘다고 느꼈습니다. 헌책집에서 만난 책벗이 《풀종다리의 노래》가 좋다고 하기에 들췄으나 시큰둥했어요. 그 뒤 손석희 님이 큰집을 덜컥 장만하든, 중앙일보 종편으로 가든, 박진성 시인한테 안 뉘우치든, 조주빈하고 엮이든 그러려니 싶어요. 풀종다리 노래를 하자면 스스로 들풀이 될 노릇입니다. 두 다리로 골목을 걷고 맨발로 풀밭을 디뎌야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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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8.

숨은책 518


《國文版 논어》

 이선근·최남선 머리말

 신현중 옮김

 청익출판사

 1954.?.



  1985년치 새뜸종이로 겉을 싼 《國文版 논어》는 어떻게 스며든 책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헌책집에서 《國文版 논어》를 찾았기에 그해에 가장 정갈한 새뜸으로 겉을 가볍게 쌌을까요? 집안에 오래도록 건사하다가 너무 닳았기에 그해에 갓 나온 새뜸으로 겉을 단단히 여미었을까요? 《國文版 논어》는 ‘國文版’처럼 한자를 먼저 적고서 ‘논어’는 한글로 적어요. “한글 논어”처럼 적을 생각을 1954년에는 못했구나 싶고, 아직 우리는 우리말을 슬기로우면서 수수하게 가다듬는 길에 넉넉히 나서지는 못하네 싶어요. 언제나 첫걸음이 새걸음이지 싶습니다. 첫발을 떼려고 마음에 생각을 품기에, 이 생각이 즐겁게 씨앗이 되어 차근차근 나아가는 밑힘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첫걸음에서 멈추어야 하더라도 즐겁게 품은 씨앗이 늘 마음에 감돌 테니 앞으로 한결 씩씩하면서 홀가분히 피어나는 꽃으로 거듭날 테고요. 1985년치 새뜸종이를 슬쩍 들추며 생각합니다. 그무렵 아버지 심부름으로 새벽마다 새뜸을 사왔는데, 어른들이 날마다 읽는 새뜸에 무슨 소리가 적혔는지 영 알 길이 없었어요. “왜 어른들은 아이가 못 알아볼 낱말로 이런 글을 쓰지?” 하고 투덜거렸어요. 오늘날 ‘한글로 적은 글’은 얼마나 쉬우면서 고울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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