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9.14.

숨은책 553


《알기 쉬운 한글 강좌》

 한글학회·유열 글

 일성당서점

 1948.8.20.첫/1950.4.30.넉



  네덜란드말을 배워 우리나라하고 말·삶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자고 생각하며 1994년에 한국외대에 들어가지만, 낱말책(사전)이 아직 없어 아찔했고, 몇몇 길잡이(교수)는 엉성했습니다. 그해는 하루도 안 빠지고 이야기(강의)를 듣다가 1995년 3월에 이르고 보니 도무지 앞길이 없네 싶어 그만두기로 다짐하고, 배움터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새벽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아침부터 낮까지 구내서점에서, 저녁에는 학교도서관에서 일했습니다. 낮밥 즈음하고 밤에는 짐자전거로 서울 곳곳 헌책집을 돌며 혼자 책을 읽었습니다. 외대 앞에는 〈최교수네 헌책방〉이 작게 있었습니다. 서라벌예대 길잡이로 일했다는 할배는 이녁이 읽은 책을 놓으셨지요. 이곳에서 《알기 쉬운 한글 강좌》를 고르니 “자네는 공부하려는 사람인가 보네? 반갑네.” 하시더니 “공부하는 학생한테는 선물을 주고 싶은데.” 하면서 책집지기 할배가 곁에 두고 읽었다는 《톨스토이 인생독본》을 덤으로 주셔요. 《알기 쉬운 한글 강좌》 첫판은 무척 비싸서 엄두를 못 낼 테지만 넉벌판이라 조금은 눅게 샀는데, 뒤쪽에 ‘1950.6.16.’ 하고 적은 글씨가 있어, 밑에 ‘4328.4.18.’ 하고 보탰습니다. 마흔다섯 해 뒤에 누가 또 배우려는 마음으로 읽어 주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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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12.

숨은책 552


《志操論》

 조지훈 글

 삼중당

 1962.10.15.



  경북 영양군을 사랑하는 이웃님을 만나러 영양에 마실을 하고서야 글님 조지훈·이문열 두 사람이 그 고장에서 나고자란 줄 처음 알았습니다. 두 사람이 걸은 길은 다르되, 글자락이 사람들 마음자락에서 빛나기를 바라는 뜻은 매한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1920년에 나서 1968년에 숨을 거둔 조지훈 님은 1962년에 남긴 《志操論》이란 책에서 엿보듯이 나무줄기처럼 곧고 바른 길을 이야기하면서 몸소 살아갔다고 할 만합니다. 가만 보면 ‘芝薰’이란 이름은 ‘풀내음’을 뜻해요. ‘지훈·지조’란 ‘풀내음·나무줄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풀꽃다우면서 나무다운 숨결을 건사하며 돌보는 마음일 적에 저마다 푸르게 빛난다고 하겠어요.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무렵에는 ‘청록파 시인’이라는 이름을 외워야 했다면, 스무 살로 접어들 즈음부터는 《지조론》이란 책을 만나고 싶어 여러 헌책집을 한참 돌았습니다. 일찍 저승길로 간 분이기에 이분이 책을 선보인 그무렵에 나온 판으로 읽으며 ‘이승만·박정희’로 잇닿는 나라를 어떻게 느끼면서 젊은이한테 길잡이가 되려는 눈빛이었나를 돌아보려 했어요. 풀꽃나무는 해바람비를 머금으면서 온누리에 새숨을 베풉니다. 풀꽃나무가 자라기에 우리 터전은 푸른별이란 이름으로 빛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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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12.

숨은책 551


《學生と生活》

 河合榮治郞 엮음

 日本評論社

 1937.7.17.첫/1940.12.5.33벌



  모든 책에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그저 지나치지 못합니다. 후줄그레한 책도, 반짝이는 책도, 저마다 다르게 걸어온 삶을 켜켜이 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이 책이 없습니다. 갓 찍어 새책으로 파는 책조차 다 다른 손님이 사들이기 마련이라, 첫 손길을 받는 날부터 다 다른 삶길로 나아갑니다. 《學生と生活》은 일본사람이 읽을 일본책인데. 곧 가게를 접으려고 하는 헌책집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샀어요. 그동안 애쓰셨다고 몇 마디를 건네고, 헌책집지기하고 술 몇 모금을 나누었어요. 이 책 끝자락에는 쪽종이가 붙습니다. “古本專門 金港堂書店 京城 寬勳町”이란 글씨가 박혀요. 1937년에 처음 나왔고 1940년에 33벌을 찍은 일본책을 건사해서 팔던 서울 관훈동 헌책집 ‘금항당’은 이겸노 님이 스물다섯 살인 1934년에 〈金文堂〉을 넘겨받아 〈金港堂〉으로 이름을 바꾸고, 1945년 8월 뒤로〈通文館〉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금항당서점’ 쪽종이는 이겸노 님이 붙였겠지요. 그곳은 일본사람도 조선사람도 홀가분히 드나들며 책빛을 나누고 책수다를 펴는 자리였겠지요. 새로 알기에 기꺼이 배웁니다. 배우는 마음이기에 둘레를 더 넓게 보면서 고루 헤아립니다. 배움길이란 스스로 눈빛을 틔우는 살림길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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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49


《世界名士 處世哲言》

 조상원 엮음

 현암사

 1953.8.15./1955.4.30.4벌



  ‘처세와 경영을 다루는 자기계발서’는 눈에 뜨이면 확 팔리고, 눈에 안 뜨이면 종이를 날린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열매를 언제 볼는 지 까마득한 낱말책(사전) 붙잡기인 터라 둘레에서 으레 “이보쇼. 그대는 그대가 좋아서 사전을 쓴다지만, 식구는 어떻게 먹여살리오? 그대가 좀 싫어도 자기계발서 한두 권쯤 써서 목돈을 만져야 그 일도 잘 되지 않겠소?” 하고 핀잔 같은 말을 붙입니다. “말씀도 뜻도 고맙습니다만, 저는 ‘처세·경영·자기계발’이 아닌 ‘아이하고 살림하는 즐거운 숲살이’를 쓰고 싶어요.” “이 사람, 더 굶을 생각인가? 미쳤네.” 《世界名士 處世哲言》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책을 하나하나 내놓아 밑돈을 그러모았기에 현암사는 1959년에 우리나라 첫 《法典》을 선보일 힘을 쌓았겠지요. 보금자리를 돌보고, 아이를 사랑하고, 숲을 품고, 곁님하고 살림하고, 오늘 하루를 노래로 그리는 이야기를 담은 ‘살림책’을 읽는 이웃님이 곧 늘겠지요.


眞理와 藝術의 大衆化를 期하고자 獨逸의 “레크람” 文庫에서 그 뽄을 가져다 不朽의 生命을 가진 世界的典籍과 아울러 우리들의 現實이 切實히 要求하는 修養書를 諸賢에게 보내드린다! (책끝 알림글-玄岩文庫案內)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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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50


《藝能民俗圖誌》

 本山桂川 글

 崇文堂

 1950.3.20.



  책에서 책으로 발길을 이으면서 손길을 추슬렀습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걸음이니 우리 이야기를 다룬 책을 샅샅이 읽으려 하면서도, 이웃 이야기가 흐르는 책도 찬찬히 읽으려 했습니다. 오늘을 이루는 숱한 살림은 우리 손으로 지었다기보다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때에 퍼져서 자리잡았습니다. 이 뿌리를 캐려고 일본책을 자꾸자꾸 들춥니다. 《藝能民俗圖誌》는 일본에서 수수하게 흐르던 시골살림을 들려줍니다. 우리 시골살림도 아닌 일본 시골살림이지만, 뭔가 귀띔할 이야기가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묵은 책에는 쪽종이가 앞뒤로 하나씩 붙어요. 뒤쪽에는 “學生書房, 學生參考書·山岳書 賣買. 新潟市 西堀通六”이 붙습니다. “니이가타시 주오구”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學生書房〉에서 팔았다는 뜻입니다. 앞쪽에는 “ISSEIDO, 東京 神田”라는 쪽종이가 붙어요. 한자 ‘一誠堂’으로 적는 ‘잇세이도’는 1903년부터 연 헌책집입니다. 이 ‘잇세이도’에서 일하고 나서 책집을 차린 이가 제법 있고, 글꾼으로 일하는 이도 퍽 있습니다. 책집 한 곳이 새롭게 책집으로 잇는 징검돌이 될 뿐 아니라, 새책을 짓는 일꾼으로 가는 다리 노릇을 합니다. 우리나라 마을책집도 100해 200해를 거뜬히 잇기를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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