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4.

숨은책 606


《그 빛속의 작은 生命》

 김활란 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65.2.25.첫/1983.9.15.5벌



  이름이 나며 힘을 거머쥔 자리에 서면 대뜸 훌륭하다고 치켜세우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죽 보았습니다. 그이가 걸어온 길을 짚으면 추레한 짓으로 얼룩이 졌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 많았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김활란’도 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1970년에 죽기까지 이이 스스로 뉘우친 적도 없고, 이이를 떠받드는 이나 이화여대 모두 제대로 고개숙인 일도 못 봤어요. 늘 핑계로 덮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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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총작 직을 갖기 직전, 내가 그 자리에 남아 이화를 위해 일을 하려면 일본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내가 일어를 알고 사용도 할 줄 알아야만 그들이 모든 것을 용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때서야 뒤늦게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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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나는 교장으로서의 중요한 연설을 강요당했다. 나는 많은 일본인 간부교직원의 보고 대상이 되어가면서 일본말로 준비된 연설문을 낭독하고는 했다. 나의 일거일동은 샅샅이 상부에 보고되었고 나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사람은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이었다. 연설문의 내용은 주로 학생들에게 태평양전쟁을 일본 측에 유리하도록 그 목적을 이해시키려는 것과 일본 정부에 협조하라는 요지였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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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의 깊은 마음을 잘 알아요. 오늘 하신 연설도 결코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겪으면서 이 학교를 지켜 나가야만 하시는 선생님의 처지를 저희는 마음속으로 도웁고 있는 거예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진심은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거니까요.” 나는 그 따뜻한 마음에 접하고 마음이 맑아졌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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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본어에 능통한 친구에게 나의 이름에 관한 것을 상의했다.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아주 무난한 이름을 발견해 냈다고 반가워하면서 내게 전했다. 그것은 ‘아마기(天城)’라는 이름으로 훌륭한 일본작가의 이름인데 그 ‘아마기’라는 것은 ‘하늘나라’를 뜻하는 깊은 뜻을 지닌 말이라 했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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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4.

숨은책 607


《선택》

 새로운인간 기획실 엮음

 한마당

 1987.11.15.



  다스리는 이가 훌륭해야 나라·마을·집이 아늑하다지만, 다스리는 이는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다스릴 노릇입니다. 집은 누가 다스려야 할까요? 사람들이 누구나 흙살림을 가꾸면서 옷·밥·집을 손수 짓던 무렵에는 순이돌이를 안 가리며 함께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렸어요. 이러다가 ‘나라’란 틀을 세워 돌이가 임금·벼슬아치·싸울아비로 나서면서 집을 다스리는 몫을 오롯이 순이한테 떠넘깁니다. 우리나라 닷즈믄해(오천년)를 돌아보면 나랏일(정치)이 아름답던 때는 하루조차 없다고 느껴요. 이 굴레가 이어서 1987년에 이르고, 총칼을 내세운 우두머리를 들풀물결이 끌어내리고서 새 나라지기를 가리려 했습니다. 《선택》은 ‘김대중·김영삼’ 둘 가운데 한쪽을 골라야 한다고 여기면서 나랏길(국가 정책)을 어떻게 다스리려는가를 묻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나라지기가 엉터리라면 나라가 엉터리가 되기 쉽습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엉터리이기에 나라지기를 아무나 뽑기 쉬울 뿐 아니라, 참다운 목소리를 내거나 참다이 집·마을에서 살림을 함께 짓지 않는다고 느껴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안 대수롭습니다. 어떤 살림을 어떻게 지으려느냐는 생각이 제대로 서야 할 노릇이고, 누구라도 일꾼으로 나서면 됩니다.


ㅅㄴㄹ


누가 나라지기(대통령)여야 할까 

하고 따지기 앞서

어떤 길을 세우는

'나'인가부터 보아야 하고

아무 길도 없이 

벼슬을 거머쥐려는 이는

다 물리치면

엉터리가 나라지기로 설 일이 없다.


헌법도 인권도 짓밟는 백신패스를

누가 내세워서 밀어붙이는가?

백신패스와 백신을 외친 이들조차

그들 스스로

백신을 안 맞았는데,

이런 엉터리 속임짓을

고분고분 따르는 눈이라면


이 나라는 앞으로도

엉터리가 판치는 길일 테지.


까면 깔수록 허물이 나오는

사람은 이쪽도 저쪽도

걷어치워야 

우리부터 스스로 바뀌면서

나라지기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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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4


《春園硏究》

 김동인 글

 춘조사

 1956.5.25.첫/1959.11.30.2벌



  이광수나 김동인은 일본바라기(친일부역)였습니다. 김동인이 쓴 《春園硏究》는 ‘끼리끼리 논다’고 여기면서 집어던질 수 있습니다. 타고난 글바치가 어떤 까닭에 막춤질로 엇나가는 길로 들어섰나를 헤아리자면 이들이 쓴 책을, 더구나 ‘이 일본바라기가 저 일본바라기를 감싼 글’을 읽을 노릇일 테지요. 그런데 《춘원연구》를 읽자니, 첫머리 몇 대목에서만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곰곰이 짚었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이 몇 대목으로 우리 슬픈 발자취를 톺아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 남은 “各種書籍 東亞書店. 濟州市 一徒二洞”이란 책집 자국이 애틋하고 ‘1961.11.1. 김창선’이란 글씨가 깃들어, 제주 마을책집 발자취 한켠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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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상이 자심했으며 그런 때마다 전 국가의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을 회상하는 길을 막는 수단으로서 전대의 유산을 모두 없애 버렸으매, 예술 유산이라야 풍부하지는 못하다. (10쪽)


《용비어천가》는 이씨 조선을 찬송하기를 강제하는 한낱 정략적 시가에 지나지 못하다 하나, 정략적으로 미루어 그 뒤에 숨은 예술적 가치는 거부할 수 없는 바다. 그러나 암담ㅎ기 짝이 없는 이씨 조선이었다. 이조의 문헌이며 제작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오백년간에 겨우 이것이었던가? (12쪽)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문학 예술의 도취경을 맛본 이 민족은 이러한 빈약한 문학만으로는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정본이며 그 저작까지도 알 수 없는, 많고 많은 평민문학이 애독되고 애청된 크나큰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1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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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3


《死線을 넘어서》

 賀川豊彦 글

 김소영 옮김

 신교출판사

 1956.3.20.첫/1956.7.20.두벌



  꿈꾸며 기다리던 책을 드디어 만나면 손끝부터 머리끝을 거쳐 발끝까지 짜르르합니다. 벼락을 맞은 듯해요.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면 새책집이건 헌책집이건 손쉽게 만납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고서 사라진 책이라면, 사라진 지 한참 된 책이라면, 돈이 있더라도 장만하기 어려워요. 몇 안 남은 어느 책을 선뜻 내놓는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님(독서가)’이 있기에 비로소 책 한 자락을 반가이 마주합니다. 《死線을 넘어서》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분이 쓴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이는 1909년부터 열네 해를 가난마을(빈민굴)에서 가난님(빈민)하고 벗하면서 살았다지요.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1920년에 글로 담은 《사선을 넘어서》입니다. 이녁은 가난님도 가멸님(부자)도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헤아린 끝에 ‘살림두레(생활협동조합)’를 처음으로 열어요. 나라(정부)에 기대지 않고 총칼(군대)을 없애는 길이 ‘살림두레’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1956년에 나온 책을 제주 헌책집 〈책밭서점〉에서 만났어요. 속에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요. 소매·도매 濟州書林. 濟州市 二徒一洞”이란 글씨가 꾹 박혔습니다. 1956년에 어느 제주사람이 〈제주서림〉에서 만난 책이 오늘까지 이어왔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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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1


《씨앗의 희망》

 헨리 데이빗 소로우 글

 애비게일 로러 그림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2004.5.18.



  전라남도 두멧시골에서 살며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를 탑니다. 걸으며 면소재지·읍내를 지나가든, 시골버스를 타든, 이때에 스치는 숱한 시골 어린이·푸름이 입에서 끔찍하다 싶은 막말·거친말이 끝없이 쏟아집니다. 시골버스 일꾼(버스기사)은 이따금 “이 xx들아, 좀 조용히 못 해!” 하고 윽박지르더군요. 시골아이나 시골어른이나 똑같아요. 상냥말이 없습니다. 《씨앗의 희망》은 소로우 님이 쓴 “씨앗이 퍼지다(the Dispersion of Seeds)”를 옮긴 책입니다. 씨앗은 참말로 퍼집니다. 바람을 타고, 풀벌레나 숲짐승이나 새가 옮겨서, 또 사람이 손바닥에 얹어 새터에 심으면서 퍼져요. ‘말씨·글씨’라는 우리말처럼, 우리나라 옛사람은 말이든 글이든 늘 ‘씨(씨앗)’로 여겼습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둔다” 같은 옛말처럼, 아무 말이나 안 하도록, 언제나 사랑으로 말하도록, 어른부터 스스로 가다듬고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려고 했어요. 이런 삶길을 우리는 언제부터 잊다가 잃었을까요? 흔히 소로우 님 《월든》을 많이 읽지만, 저는 《씨앗의 희망》이야말로 곁책으로 삼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이 풀꽃나무요, 풀꽃나무가 숲이요, 숲이 사람이며, 사람이 사랑이에요.


#theDispersionofSeeds #HenryDavidThoreau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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