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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과 사랑하며 꾸리는 삶
― 미우라 아야코, 《부부 이야기,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 책이름 : 부부 이야기,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 글 : 미우라 아야코
- 옮긴이 : 조순복
- 펴낸곳 : 부림출판사 (1984.9.20.)



 “결혼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정신적으로도 독립하는 것이라구요(160쪽).” 하고 말하는 미우라 아야코 님은 “사람의 일생의 중요함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 자신은 내 스스로가 어떤 노인에 대해서도 적어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고 머리를 숙일 정도의 겸허함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165쪽)?” 하고도 말합니다. 어떤 ‘늙은 사람’한테도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그렇다면 전두환 같은 사람한테마저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인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이 아닌가 하고 되뇌어 보지만, 틀린 말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껴 이 말마디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섣불리 도리질하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다만, “전두환 할아버지, 이제부터라도 좋으니 착하며 아름답게 할아버지 삶을 마무리해 보셔요. 그동안 했던 일을 돌이킬 수야 없으나, 오늘부터라도 착한 넋으로 착한 일을 하나둘 쌓아 보셔요.” 하고 말하면서 불쌍하고 슬픈 이녁 삶을 토닥일 때에 비로소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 땅 이 나라 이 겨레에서는 힘들는지 모르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이녁을 하나도 모르는 멧골마을이나 시골마을에서 홀로 길을 헤매며 굶주렸다고 떠올린다면, 멧골마을 사람들이나 시골마을 사람들은 아주 스스럼없이 밥을 차려 주고 옷을 입혀 주며 잠을 재워 주리라 봅니다. 우리 집에서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딸아이는 전두환 같은 사람을 보면서도 “아야버지(할아버지)!” 하고 외치며 달려들 듯합니다.


.. 분명히 병은 고통스럽다. 그 기분도 우리들은 이해할 수 있다. 또 대학시험에 실패하여 자살하는 사건은 매해 봄이면, 흔히 신문지상에서 보는 바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생에 그러한 고통이나 슬픔은 정말 전혀 없는 편이 좋을까? 특히 결혼한 이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미우라(남편)만이 가난과 병고를 경험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의 나날의 생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게 아니겠는가? ..  (32쪽)


 아픈 몸으로 아프게 살아온 미우라 아야코 님이 쓴 《부부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집 부부살이를 곱씹습니다. 틀림없이 괴롭고 힘들게 몸앓이와 마음앓이를 하는 옆지기와 살아가는데, 나와 내 옆지기가 서로 바뀐 삶이었으면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몸과 마음이 몽땅 아파서 아무것도 못할 뿐더러 그냥 퍼질러 있는다든지 꼼짝을 못한다면, 설거지이고 빨래이고 하지 못하는 몸이라면, 이러면서 병돌봄까지 받아야 한다면, 이때에 내 옆지기는 어떠한 삶 어떠한 넋일까 궁금하고, 모든 돌봄을 받기만 해야 할 내 삶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으레 ‘주는 사랑’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주는 사랑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받는 사랑’만 할 수 없습니다. 받는 가슴이 있기에 주는 가슴이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삶이 있기에 나누는 삶이 있어요.

 남녘땅 사람들은 북녘에 퍼주기를 한다고들 투덜대는데, 남녘땅 사람들은 북녘에 돈을 보낼 수 있는 대목을 고마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거나 굶주리는 북녘을 불쌍히 여겨 돈이나 곡식을 보내지 않습니다. 북녘에서 받아들여 주니 비로소 나눔을 즐길 수 있습니다. 몸져누운 어버이한테 사랑을 퍼주지 않을 딸아들이 있으려나요. 길 잃고 헤매는 딸아들을 내팽개칠 어버이가 있으려나요. 바보스레 나뒹구는 벗님을 모른 척하거나 등돌릴 수 있나요.

 하루하루 지쳐 쓰러지듯 자리에 눕고, 새벽에 가까스로 깨어나 일손을 잡으며, 아침 일찍부터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는 나날로 눈코 뜰 사이 없을 뿐더러, 다 마른 빨래를 갤 겨를을 제대로 내지도 못하는 삶을 하루하루 꾸리면서 《부부 이야기》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아파 보지 않고서는 읽기 어려운 책인데, 아파 보았거나 아프면서도 이 책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아프지 않으면서 읽어내는 사람 드물게 있는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미우라 아야코 님 《부부 이야기》를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봅니다. 슬프지만, 아프지 않으니까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 신나게 놀아나는 데에 눈길을 쏟는 오늘날 도시사람들이 아니랴 싶어요. (4343.1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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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사랑할 어른들 삶을 생각해
― 이오덕,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 책이름 :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지식산업사 (1986.2.25.)


 얼마 앞서 흙으로 돌아간 리영희 님을 비롯해, 앞서 흙으로 돌아간 권정생 님, 전우익 님, 이오덕 님, 성래운 님 같은 어르신들은 입으로 떠들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같이 몸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분들이 우리한테 선물처럼 남기고 간 책이란 이분들이 몸부림치며 살아온 발자국이 담긴 땀방울입니다. 머리로 떠올리거나 헤아리며 엮은 앎조각이 아닙니다.


.. 이른 봄 시장에 가면 냉이와 씀바귀를 살 수 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들에 나가 그것들을 캐면서, 또 죽을 끓여 먹으면서 봄날의 산과 들에 피어나는 풀이름 몇 가지라도 알리도록 하자. 이것이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아갈 아이를 둔 부모의 할 일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봄날에 한 번쯤은 (관광놀이 가는 것이 아니라) 진달래가 만발한 산을 찾아가, 이것이 조국의 강산이란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자. 절대로 꽃을 꺾어다 꽃병에 꽂는 따위 철없는 짓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  (115∼116쪽)


 사람들이 책을 잘 읽어 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합니다만, 책을 잘 읽자면 삶을 먼저 잘 읽어야 합니다. 삶을 먼저 잘 읽는 사람이라면 당신 삶을 알뜰히 꾸리기 마련입니다. 곧, 내 삶을 알뜰히 꾸리는 사람이라면 으레 내 삶을 잘 읽기 마련이요, 내 삶을 잘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잘 헤아려 주기 마련입니다.

 주머니에 돈이 많아 ‘참 좋다고 하는 책’을 잔뜩 사들인달지라도, 스스로 삶을 알뜰히 꾸리지 못한다면, 애써 사들인 ‘참 좋다고 하는 책’마다 무엇을 말하거나 밝히며 보이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더러 알아챈다고는 하나 머리속에 가두는 앎조각으로 그칠 뿐, 막상 이 이야기들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거나 삭이지 못합니다.

 삶으로 삭일 때에 책이고 앎입니다. 삶으로 녹일 때에 책이며 앎입니다. 삶으로 태어나는 책이자 삶입니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생각하여 내놓은 책 하나는 이 땅에 살아갈 어른들 헤아리며 내놓은 책입니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하고 이 땅에 살아갈 어른들은 살가운 벗이 되어야 하고, 서로를 아끼는 고운 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4343.12.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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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성을 둘 다 쓴다고 평등이 아니지만
― 오숙희,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책이름 :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 글 : 오숙희
- 펴낸곳 : 그린비 (1991.4.30.)



 오숙희 님은 이제 오한숙희 님입니다. 아직 오숙희 님이던 1991년에 내놓은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는 당신이 대학교에서 한창 여성학을 강의하던 서른 안팎 나이 이야기를 소록소록 담습니다. 스물을 갓 넘은 풋풋한 젊은이하고 마주한 첫 자리에서 오숙희 님은 큰 벽이 부딪혔다고 말합니다. “강의 처음부터 나는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여성이 차별당하고 있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었다(12쪽).”

 어느덧 2011년을 바라보는 2010년 12월 한겨울 복판에서 생각합니다. 다음해면 이 책이 나온 지 스무 해인데, 2011년에 새롭게 대학교에 들어가는 젊은 넋들은 ‘2011년을 잣대로 놓고 볼 때에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안 받는다’고 여길는지 ‘2011년을 잣대로 놓든 2021년을 잣대로 놓든 이 나라 여성은 푸대접을 받는다’고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오숙희 님이 오한숙희 님으로 바뀐 일은 아주 조그마한 몸부림입니다. 찻잔 안쪽에서 비바람이 치는 셈입니다만, 이나마라도 보여주며 살고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씨는 숙희 님을 낳은 아버님이요, ‘한’씨는 숙희 님을 낳은 어머님인데, 한씨 어머님이란 당신 아버님, 곧 숙희 님 할아버님입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하나같이 아버님들한테서 물려받은 씨입니다. 그나마 당신 코앞에 있는 어머님을 헤아리며 이렇게나마 몸부림을 칠밖에 없는 오늘날입니다. 우리 나라는 혼인을 해도 ‘여자 성이 안 바뀐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 여자는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제 성을 못 받으며, 그러니까 제 성이 없는 채’ 살아갑니다.


.. 우리가 배운 여성학은 실천학문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실천의 기회를 드리겠어요. 여성들이 느끼는 최대의 공포가 뭐라고 했죠? ..  (337쪽)


 어느 책을 읽다가 김홍도 님이 그린 그림 가운데 ‘자상한 남편’이 ‘아내는 소에 태워 앉아서 가도록’ 하고 큰 아이를 등에 업고 짐도 등에 짊어진 채 걷는 모습이 있다는 풀이말을 보고는 흠칫 놀랐습니다. ‘자상한 남편이라고? 그러면 자상한 아내란 무엇이지?’

 여자 집식구가 남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자상하다’거나 ‘고맙다’거나 ‘따스하다’고 말하는 일은 거의 못 봅니다. 남자 집식구가 여자 집식구한테 물을 갖다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에 ‘저 남자 미쳤군’ 하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아내한테 꽉 잡혀 사는군’ 하는 소리를 덩달아 듣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하나둘 바뀔 수 있겠지요. 여자들은 여성학을 하니까요. 아직 남자들이 남성학을 안 하니 걱정입니다만, 무엇보다 남자들이 ‘참 남자다움이란 무엇이고, 남자로서 사람다이 사는 길이란 어떠한가’를 깨닫고 살피며 받아들여야 온누리가 달라지겠지만. (4343.12.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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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보는 눈과 사진을 담는 손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  
Erika Stone(사진)+Merle Good(글),  《Nicole visits an Amish farm》(Walker & com,1982)


 고추밭에서 고추를 딸 때에는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한여름이라고 반바지나 끌신 차림으로 고추를 딸 수 없습니다. 담배밭에서 담배잎을 딸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 놓은 책은 없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자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사진과 그림으로 옳게 담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이름난 그림쟁이 한 분이 곡괭이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 씁쓸하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틀림없이 삽질과 곡괭이질을 알지만 ‘곡괭이자루를 쥐고 내리찍는 모습’을 엉터리로 그렸습니다. 곡괭이질을 하는 느낌, 영어로 말하자면 ‘이미지 보여주기’에만 마음을 쏟았을 뿐, 곡괭이질을 할 때에 두 손으로 자루 어디를 잡고 어떻게 내리찍는가를 옳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자전거 타는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꽤 늘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그림이 옳은지 그른지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사진쟁이는 대단히 드뭅니다. 아주 쉬운 보기로, 자전거 체인이 어느 쪽에 달려 있는가라든지 페달이 붙는 자리라든지 손잡이와 앞바퀴가 어떻게 이어져 있으며 안장과 뒷바퀴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올바로 그릴 줄 아는 그림쟁이란 드물고, 올바르지 않은 그림을 깨닫는 지식인은 몇 안 됩니다.

 콩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콩을 먹는 사람 가운데 콩을 심어 김을 매거나 콩꽃 어여쁜 하얀 꽃잎을 쓰다듬어 본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감자를 즐겨먹든 안 먹든, 감자를 먹는 사람 가운데 감자꽃이 무슨 빛이요 꽃잎이 몇 장인지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배를 먹으면서 배꽃이 하얀지 노란지 헤아리거나, 능금을 즐기면서 능금꽃이 붉은지 불그스름한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귤나무에 귤꽃이 피는지 생각하거나 대추나무에 대추꽃이 피는지 돌아보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식은 넘치고 대학교 다닌 사람은 넘실거리지만, 정작 우리 삶자락 밑바탕을 둘러싼 지식을 보듬으며 껴안는 사람은 나날이 줄어듭니다.

 우리들은 밥을 잘 할 줄 모르거나 밥을 아예 할 줄 모르면서도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습니다. 돈을 치러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물레를 잣고 길쌈을 한 다음 베틀을 밟고 나서 바느질을 거쳐 옷 한 벌 지을 줄 모를 뿐 아니라, 이렇게 하는 흐름을 하나조차 모르면서 옷 한 벌 예쁘장하게 사서 입을 줄은 압니다. 어쩌면, 이제는 옷 한 벌 사서 입는 값이 훨씬 싸며 품이 거의 안 들기 때문에 옷이란 돈 주고 사서 입으면 그만인 삶자락이라 할 만합니다.

 보도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초상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만듦사진이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갈래가 다를 뿐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람이 찍어서 이루는 문화요, 사진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즐기는 예술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삶이 사진입니다.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조선을 생각한다》 같은 책을 쓸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조선 삶’을 ‘당신 삶’으로 맞아들이며 어깨동무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잘나거나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뜻이 거룩하거나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사람 허먼 멜빌 님이 《모비딕》 같은 책을 쓸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고래잡이 삶’을 ‘당신 삶’으로 받아들이며 껴안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용케 살아남았거나 굳센 고기잡이라서가 아닙니다. 당신 눈이 남다르거나 그윽해서가 아닙니다.

 이오덕 님이 《일하는 아이들》 같은 책을 엮을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 삶’을 ‘당신 삶’으로 안아들이며 웃고 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뛰어나거나 교육자 얼이 단단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마음이 더 따뜻하거나 훨씬 너그러워서가 아닙니다.

 사진책 《Nicole visits an Amish farm》을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까망둥이 니콜(Nicole)이라는 계집아이가 하양둥이 채리티(Charity)라는 계집아이를 만나서 보낸 보름에 걸친 나날을 담은 이 작은 사진책에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살아가는 니콜이라는 ‘까망둥이 아이’가 1970∼80년대에 오로지 하양둥이만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 마을’에 들어가서 부대낀 삶을 보여주는데, 이토록 따뜻하고 살가운 이야기로 엮을 수 있나 싶어 놀랍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을 들여다볼 사람들 가운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나 《아미쉬》 같은 책이나마 읽었을 사람은 거의 없을 테며, 《Nicole visits an Amish farm》 같은 사진책을 알아볼 한국사람부터 거의 없습니다. ‘아미쉬’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사람조차 드물고, 이 사진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왜 거의 언제나 맨발인 모습일는지를 알아챌 사람이란 없을 테며,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낮은학년일 아이들이 밥하기이며 빨래이며 농사일이며 숱한 집일을 함께하는 삶에 어떤 뜻이 깃들어 있는가를 읽을 사람이란 없으리라 봅니다. 더욱이, 아미쉬 사람들은 무늬없는 투박한 긴소매와 긴치마를 입으나 니콜이라는 계집아이는 목덜미 드러나는 온갖 빛깔 밝은 민소매 웃도리에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는데, 아미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볼 줄 모르면 찍을 줄 모른다지만, 살 줄 모르니 볼 줄 모릅니다. 살 줄을 모르니 무엇을 어떻게 왜 언제 누구하고 찍어야 하는 줄 모릅니다. 보도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초상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만듦사진이든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볼 줄 알자면 살 줄 알아야 하고, 살 줄 알자면 스스로 뿌리내리어 녹아든 매무새이자 마음밭이어야 합니다. (4343.6.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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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84 ― 하루에 2분만 들이면 세상을 바꾼다
 : 마조리 램, 《2분 간의 녹색운동》


- 책이름 : 2분 간의 녹색운동
- 글 : 마조리 램
- 옮긴이 : 김경자, 박희경, 이추경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 (1991.6.10.)



 (1) 아기를 생각하는 삶


 며칠 앞서입니다. 어느 소설쓰는 분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소설쓰는 분을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부딪혔는데, 제 앞에 앉으신 분은 아이를 둘 키우는 아주머니였고, 두 아이를 모두 천기저귀를 손빨래 하며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한테 돈이 더 많았다면 그렇게 천기저귀를 쓰지 못했으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천기저귀 손빨래를 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기저귀 빨래만 해도 된다면, 천기저귀 빨래가 수월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할 만할 수 있지만, 아버지 된 이는 아이 키우는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가운데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가르치고 하자면 어머니 된 이는 몸이 죽어납니다. 그러니 저절로 ‘한 가지라도 손이 덜 가는 일’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종이기저귀를 사다 쓰는 일도 고달픕니다. 부지런히 저잣거리 나들이를 해야 하며,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다 보면 군물건에 눈길을 빼앗길 뿐더러,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아기를 업고 안고 무거운 종이기저귀를 들고 오기도 벅차, 자동차를 끌게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서 길에 기름값을 버리게 되고, 또 자동차에 들어가는 보험삯이며 다른 돈이며 ……. 돈이 있어도 할 만하지 못한 일이 ‘종이기저귀 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나오는 이 쓰레기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터를 더럽히고 맙니다.


.. 나는 베이비붐 세대였으나 생활습관은 공황시대에 성장한 나의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분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은 다음과 같다. 새옷을 사는 것을 보류하고 낡은 것을 기워서 입는다. 애채는 직접 재배해서 저장한다. 작은 나무조각이나 종이조각, 쇳조각도 쓰이는 곳이 있다. 적게 사들이고 수리를 많이 한다. “직접 만들어라, 낡을 때까지 입어라, 끝까지 사용해라.” 어릴 적의 인상적이었던 검약의 필요성이 환경 시대에서는 미덕이 되었다 … 정치가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인가 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단정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자신의 집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  (14∼15쪽)


 아기를 안고 업고 나들이를 다니는 우리 식구를 보는 이웃 분들은 ‘그러지 말고 작은 차라도 한 대 장만하지?’ 하고 말을 합니다. 예전에 저 혼자서 책방 나들이를 하며 가방이 미어터져라 책을 장만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나르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우리는 자동차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 수 있을 만큼 책을 장만하여 들 뿐이고, 아기와 함께 다닐 때 챙겨야 하는 기저귀 짐보따리는 마땅히 어버이로서 짊어질 보따리이거든요. 그만한 보따리 하나 몸뚱이로 짊어질 수 없다면, 어버이 되기를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이 미어터지든 가방으로 모자라 두 손으로 더 챙겨 들어야 하든, 스스로 짊어지거나 들고 나를 만큼만 책을 사들이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종이기저귀 생산자나 소비자들은 그 편리성을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편리할까? 종이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장에 갈 때마다 기저귀를 사야 한다. 기저귀를 다 쓰면, 그것을 사러 일부러 시장까지 가기 일쑤다. 천기저귀를 쓰면, 세탁기에 집어넣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데, 이렇게만 하면 2년 반 동안 아이는 계속 기저귀를 차게 되는 셈이다 … 종이기저귀를 쓰기 위해 얼마만한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36∼37쪽)


 인천에서 일산까지 나들이를 다니는 길은, 자동차를 얻어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 전철로 돌고 돌아 버스 타고 들어가면 세 시간이 넘습니다. 자그마치 두 시간 넘게 벌어지는 길이라, 옆지기 부모님을 만나뵙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충북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만나뵙기도 꽤나 벅찹니다. 대중교통으로는.

 그렇지만 이 거리를 자가용으로 움직인다고 치면 몹시 가깝습니다. 고속도로나 고속국도가 아주 잘 뚫려서 금세 씽 하고 찾아갈 수 있어요. 다만, 이 가까이 잘 뚫린 길로 다니는 대중교통은 없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옆마을에 살아도 서로 느긋하게 오갈 차편이 없어요. 차를 타면 3∼5분 거리인데, 걸어가면 한 시간이 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자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음성에 가며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 끝내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삯이 만칠천 원이 넘게 나와, 인천에서 음성까지 기차나 버스 타고 가는 삯보다 훨씬 더 나왔어요.

 나라에서는, 또한 지역자치정부에서는, 우리들이 대중교통으로는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셈입니다. 오로지 자동차를 장만해서 굴리라고 하는 셈입니다. 자동차 굴릴 돈을 벌고, 자동차에 넣을 기름값을 벌며, 자동차 유지관리비와 보험삯 모두 벌라는 셈입니다.


.. 새로운 유행이 나오면, 신분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하게 된다. 옷감 가게는 여러 가지 테두리나 장식품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자동차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마다 한 대씩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고, 해마다 다른 모델을 생산하는 생산조직을 재정비한다. 당신이 새 차를 운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차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수단보다 자가용으로 더 쉽게 시내에 진입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52주 중 1주 반 동안만 이것을 실행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우체국까지 항상 자동차로 간다면 그곳을 자전거 타고 가는 지점으로 정하라. ‘직장까지 자전거로’ 가는 주일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안전하게 자전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직장에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주차장이 있는 직장이라면 자전거를 세워 놓을 장소 제공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60∼63쪽)


 일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리고 일산 나들이를 하려고 집에서 떠날 때, 요즈음은 여행가방에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그득그득 채우고 끕니다. 여행가방 바퀴는 플라스틱이라 오돌토돌한 길을 끌 때면 극극극 끌리는 소리가 참 큽니다. 왜 여행가방 바퀴에 고무를 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이 ‘겉으로 보기에는 예뻐 보일’ 뿐, 정작 우리가 다니기에 안 좋다는 뜻입니다. 여행가방을 끌 때 극극극 큰소리가 나는 길에서는, 우리가 아기수레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수레에 탄 아기는 덜덜덜 떨리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턱이나 계단이 오죽 많습니까. 1층 건물에도 턱이나 계단을 만들어서 ‘멋스럽게 꾸민’다고 합니다. 용산역이나 서울역 같은 데에는 자동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동계단으로는 아기수레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승강기라도 찾아보아야겠는데, 어디에 붙었는지 찾기가 퍽 어렵습니다.

 이웃에서 ‘아기수레 드릴 테니 쓰셔요.’ 하고 말씀하는 분이 여럿 되지만, 이러저러한 길 형편을 헤아릴 때, 우리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길이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안 쓰려고 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가방 짊어지고 아기 안고 다니자면 팔 빠지고 등허리 쑤실 노릇이지만, 어버이 몸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갓난아기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도록 내버려두거나 팔짱을 끼거나 모르쇠로 지냈던 우리 스스로를 탓하면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고달픔입니다.


.. 점심시간 후에 학교 쓰레기통을 본 일이 있는가? 넘쳐나지 않는가? 환경에 친숙한 학교 도시락에는 한 가지 간단한 법칙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은 도시락에 넣지 말라. 몇 가지 물건으로도 아이들은 몇 년 동안 쓸 수 있다. 플라스틱 봉투, 종이봉투, 개인용 음료수통, 그리고 플라스틱 랩을 사용하는 대식 플라스틱 점심그릇이나 헝겊 도시락가방이나 단열 혹은 진공병을 쓰도록 하라 … 아이들을 학교 시절에 일찍 바로잡아 놓으면 학창 시절을 거친 누구라도 녹색기준을 고수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 … 아직 멀쩡한 옷, 차, 그리고 살림집기들을 해마다 모조리 버리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가? 일찌감치 학창 시절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일까? … 내 생각에 아버지는 가장 값있고 영원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셨는데, 새 설계를 위해, 쓰던 물건을 간직하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 새 것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 북아메리카에서 우리는 자원이 무한히 많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쓰레기 치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놓여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보는데 모두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117∼124쪽)


 늘 느끼는데, 더도 덜도 말고 내 아이를 생각해 보면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내 아이만 생각해도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는 내 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으로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나 아이가 없으면 동무와 이웃을 생각하면 됩니다. 나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세상이라 한다면 우리 세상은 어찌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쓰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놀이를 즐겨야겠습니까. 내 어버이와 아이와 이웃과 동무를 떠나, 내 몸 하나만 생각한다고 하여도, 우리들은 1회용품이란 어느 한 번이라도 쓸 수 없습니다.
 





 (2) 책을 생각하는 삶


 《2분 간의 녹색운동》이라는 그리 두툼하지 않는 푸른빛 책을 처음 알게 되어 읽은 때는 2000년 가을입니다. 책을 펴낸 곳은 ‘성바오로출판사’이고, 이곳은 천주교 책을 부지런히 내는 데이지만, ‘분도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종교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사회와 삶과 사람을 돌아보는’ 책을 꾸준히 냈습니다. 요즈음은 꽤 뜸하게 되었지만.

 1991년에 나온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이런 흐름,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읽어야 하지만, 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만한 책’으로 나온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2분 간의 녹색운동》은 ‘바오로딸’ 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책이 있는 ‘바오로딸’에는 있겠지만, 시중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오로지 헌책방에만 남은 책이 되었습니다. 더 아쉽게도 이렇게 좋은 책이 천주교회에서 두루 읽히지 못하는데, 어쩌면 천주교회 스스로 이 책이 판이 끊어지지 않도록 미사 때 알리고 교리 공부 하면서 함께 나누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말이지요.

 그런데, 천주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회나 불교에서는, 또 천도교회에서는, 우리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책을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속깊이 받아들이거나 나누고 있을까요. 지율 스님이 《초록의 공명》과 같은 책을 펴냈을 때, 불교를 믿는 분들은 얼마나 이 책을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받아들여 주었을까요. 아니, 찾아서 한 줄이나마 읽기라도 했을는지요. 알도 레오폴드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책을, 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책을 기독교회 사람들은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가슴으로 새기고 있을는지요.


.. 새로운 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물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물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은, 깨끗한 물의 원료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 물 절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라 : 매일 필요로 하는 물을 전부 내가 집까지 운반해 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머리 위에 항아리를 이고서 … 우리가 집에서 사용한 세제들의 대부분은 배수구로 빠져 하수구로 흘러나가, 우리의 마실 물이 될 호수와 강, 하천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  (18, 28, 38쪽)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2분 간의 녹색운동》이 보이면 일부러 더 장만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읽었지만, 옆지기한테 읽히려고 한 권 더 사고, 옆지기 어머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더 사며, 우리 동네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수녀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다시 삽니다. 그러고도 또 보이면 또다른 이웃한테 선물하고자 집어듭니다.

 다만,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그날 바로 사지는 않습니다. 몇 번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 말고 다른 분들이 이 책을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립니다. 몇 달을 기다리고 나서 그예 안 팔리고 얌전히 꽂힌 모습을 본 다음, ‘어쩔 수 없네. 우리가 사서 선물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 새하얀 것을 선호하는 것이 미덕인가? 이상하게도 심술궂은 인간행동 중의 하나가 누군가 청소를 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면, 청결도의 기준을 높인다는 점이다. 진공청소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먼지가 침대 밑이나 옷장 뒤에 요즘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춘계 대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쌓인 때나 먼지를 닦아냈다. 요즘은 매주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한 번 입어서가 아니라, 옷에 때가 있어야 세탁을 했다 … 어머니는 집의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네 명의 수선스런 아이들의 과제물, 학교 연극, 인형 만들기, 성쌓기 등을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덕분에 누구나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볼 수 있는 시각을 유지하도록 하자. 창문테가 깨끗하지 않다고 친구들이 우리를 덜 좋아할까? ..  (42∼43쪽)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서 선물해 주는 책도 있습니다. 《씨앗의 희망》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회색곰 왑의 삶》 같은 책은 헌책방에 잘 안 들어오기도 하지만(많이 안 팔리니까), 오래도록 꾸준하게 새책방에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틈틈이 선물해 줍니다. 또는, 쪽지에 ‘이러저러한 책이 있는데 참 좋아요. 책방 나들이를 하시면서 한번쯤 둘러보시고 괜찮으면 사서 읽어 보셔요.’ 하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흔히 《오래된 미래》나 《침묵의 봄》이나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나 《육식의 종말》 같은 책만 알고 다른 훌륭한 생태환경책에는 눈길을 못 돌리기 일쑤입니다. 《모래 군의 열두 달》 같은 책조차 제대로 알려지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그나마 잡지 《녹색평론》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두루 독자를 얻고 있는데, 잡지를 꾸준히 찍을 수 있을 만한 독자수일 뿐이지,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다듬거나 새로워지도록 다스릴 만한 독자수는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독자수와 책 팔림새가 오늘날 우리 모습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눈높이요 우리 얼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움직임이요 매무새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스스로 한결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더 물질문명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려는, 속보다 겉에 훨씬 더 마음을 쏟는 우리들 삶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음료수 판매대에 가면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다양한 포장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회수가능한 유리병, 회수불능 유리병, 재생가능 플라스틱병, 재생불가능 플라스틱병, 재생가능 캔 등이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첫 번째 선택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음료수를 사지 않는 것이다 … 헬스클럽의 회원이거나 스포츠센터의 직원인가? 회비를 냈다고 해서 자원을 남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니는 클럽에서도 일회용 면도기의 사용을 권하는가? 집에서는 수건 한 장이면 될 것도, 거저 쓸 수 있다고 몸을 닦는 데 세 장씩 수건을 쓰는 건 아닌지? 수건 한 장마다 세탁하고 건조시키는 데 에너지가 든다. 회비에 포함됐다고 해서 20분 동안 샤워하지는 않는가? ..  (79, 92∼93쪽)


 저는 동네에서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내걸며 꾸리고 있지만, 정작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은 ‘생태환경책’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면서 차곡차곡 그러모아 보아도 생태환경책으로는 책꽂이 두어 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잡지를 빼고 낱권책으로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책이 아닌 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이웃하고 나눌 책으로는. 아니, 제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쯤 되면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까지 다 하더라도.

 참말로 오늘날 한국땅에서 생태환경책은 출판사에서 잘 안 냅니다. 잘 안 팔리니 잘 안 낼밖에 없는데,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환경 문제가 아주 큽니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정작 환경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해 보면 ‘쓰레기 안 버리기’를 넘어서기 어렵고, 요즈음은 ‘이명박 대운하’쯤을 겨우 건드릴 뿐입니다. 스스로 환경책을 읽어 보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환경책이 있는 줄 모르고, 우리 삶을 살리는 환경 문제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20세기 많은 질병들은 현대 건축자재들이 발명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콘크리트, 합성카펫 등 기타 물질들에서 방출되는 증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 우리들의 집과 아파트에는 플라스틱, 접착제, 페인트, 프롬알데히드, 용제, 방부제, 살균제,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함유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새 집에 어떤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  (136쪽)


 성당 반모임을 하러 이웃집에 찾아가 보면, 이웃집에 계신 분들 밥은 모두 하얗습니다. 오로지 흰쌀로만 밥을 짓습니다. 찌개며 반찬이며 조미료를 많이 치는 분도 있고, 조미료를 안 친다지만 유기농 곡식으로는 장만하지 못하곤 합니다. 으레 ‘비싸서 안 쓰지’ 하고 말하지만, 유기농 곡식이 비쌀 일이란 없는데, 이런 흐름을 붙잡지 못합니다. 성경에 적힌 좋은 말씀을 받아먹는 가슴이지만, 이 좋은 말씀을 자기 삶으로까지 녹여내지 못합니다. 신부님이 스스로 당신 삶을 바꾸며 ‘환경을 생각하는 밥먹기’를 말씀하고 알려주어도 이를 몸으로 받아들여 고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라 못 고쳐지는지 모르지만, 믿음 앞에서는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 없음을 돌아본다면, 밥먹기에서도 이 땅과 사람을 헤아리는 매무새로 너끈히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소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안 미치고 여물 먹고 자란 소 고기’를 먹자면, 이 땅에서 유기농 곡식을 빚어내고자 애쓰는 농사꾼들 땀방울을 도시사람이 즐겁게 사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도 제 고향 인천은 천주교구 테두리에서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내걸어, 몇 군데 성당과 답동 교구청에는 크고작은 걸개천을 내겁니다. 다른 지역교구에서는 이렇게 안 하지만. 또 다른 교구뿐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는 아무런 걸개천도 안 내걸지만(종교 이야기를 들었지만, 천주교회에서도 몇 군데에서만 이렇게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걸개천까지 내걸지 않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3) 덮지 않고 꽂지 않고 책상맡에 놓는 책


 다 읽고 또 읽는 책도 많지만, 다 읽고 또 읽은 다음 책상맡에 놓는 책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 번 거듭 읽어 줄거리를 꿰고 있기는 하지만, 늘 가까운 자리에 놓고는 둘레에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책을 소개할 때면 곧바로 집어들어서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저로서는 언제나 책상맡에 놓아 두면서 가끔 펼쳐 보기도 하고, 손님들한테 보여주기도 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 나는 내 딸의 인생이 특별한 인생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 애가 맑은 공기를 숨쉬고 맑은 물을 마시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푸른 지구를 즐기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 손자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매일 작은 일 한 가지씩만 실천한다면 우리는 함께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16쪽)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옮긴이가 여럿이라 그러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두루 읽기에는 알맞지 않은 옮김말이 보이고, 얄궂은 말투가 많습니다. 제대로 가다듬어지지 못한 글월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어느 만큼 잘사는 분이 자기 삶을 잣대로 삼아서 썼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국에서 2분만 들이며 할 푸른운동”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 같은 책처럼.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같은 책처럼. 그러나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는 ‘삶’보다 ‘지식과 운동’이라는 느낌이 짙고,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지만 못 고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서 ‘도시계획 대안찾기’에 머물고 말아, 일본사람 후쿠오카 켄세이 님이 쓴 《즐거운 불편》하고 견주어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우리한테는 ‘일본판 《즐거운 불편》’과 ‘미국판 《2분 간의 녹색운동》’을 ‘한국판 무엇무엇’이라고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책으로 새롭게 꾸며내도록,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고 생각을 북돋우며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잔디밭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잔디밭은 자연스럽지 못한 생태계이다. 단 하나의 종-잔디-을 넓은 지역에 기르기 위해 다양성을 사랑하는 자연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무성한 처녀림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을 번성하게 하고 지탱하는 것처럼, 자연은 잡초와 벌레 그리고 다른 식물과 동물 들을 잔디밭에 자라게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패배시키려고 한다. 우리가 잔디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죽인다면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생명의 다양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잔디밭을 줄여서 얻는 이익은 잔디 깎는 일이 줄어들고, 유지하는 데 힘이 덜 들고, 물을 적게 주고, 창 밖에 흥미있고 다양한 경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 우리가 사슴이나 비버, 물고기의 집을 마구 침입한다면 그 동물들은 우리가 떠난 후의 상태에 대해서 무어라고 생각할까? 인간들이란, 손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며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야생의 자연이란 몇몇 눈에 띄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수천 종류의 생명체들의 집이며, 그 중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미생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풍부하고 충만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 전에는 늘 호수에서 머리를 감았으나 나는 올해부터 머리감기를 그만두었다. 미생물분해가 가능한 샴푸를 쓸지라도 물속에 샴푸를 집어넣는 짓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호수에서 헤엄을 치고, 사람들은 낚시를 하며, 새들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물가를 따라서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 샴푸는 해양생태계에 본래부터 있었던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  (167, 180∼181쪽)


 혼자 살아가는 땅이 아니니까요. 혼자만 잘살면 그만인 터전이 아니니까요. 혼자면 잘되면 즐거운 삶이 아니니까요. 전우익 님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입니다. 이오덕 님 책이름 그대로 “나무처럼 산처럼” 꾸려갈 우리 삶입니다. 권정생 님 책이름 그대로 “하느님의 눈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4342.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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