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슾노래 어제책

숨은책 474


《어제와 오늘의 사이 3 지금은 몇時인가》

 이어령 글

 정도선·왕상혁·유경아·박창해·와카바야시 히로·W.A.Garnett 사진

 서문당

 1971.3.20.



  인천은 서울로 보낼 살림을 뚝딱뚝딱 만들어서 보내는 ‘공장도시’였고, 아침저녁으로 서울로 일하러 다녀오는 사람이 넘치는 ‘침대도시’였어요. 그래도 동무들하고 밤늦도록 뛰놀던 1980년대 끝자락까지 낮에는 제비를 보고 밤에는 박쥐를 마주했어요. 지난날에는 서울·대전·광주를 가리지 않았을 제비일 텐데, 오늘날에는 큰고장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둘레에 조그맣게라도 숲이 있으면 참새가 깃들는지 모르나, 그야말로 새바람도 새노래도 자꾸 멀어지는 서울이며 큰고장이에요. 1971년에 다섯 자락으로 나온 《어제와 오늘의 사이》 가운데 셋째 자락은 사진에 글을 붙인 얼개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접어든 우리 터전’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뜻있는 엮음새인데, 막상 수수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드뭅니다. ‘문화·사회·예술’이란 이름을 앞세우는 얼개가 퍽 아쉽습니다. 230쪽을 보니 “이른 아침,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이 깨이던 우리들의 상쾌한 아침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저 버렸다.”라 적는데 사진에는 ‘참새 아닌 제비’가 빼곡히 줄짓습니다. 내로라하는 글님이 제비랑 참새를 못 알아보았을까요? 시골이며 숲하고 동떨어진 채 서울에서 잿빛집살이를 하느라 우리 곁 새빛을 잊어버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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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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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3


《여권신장파》

 휘트니 채드윅 글

 장희숙 옮김

 열화당

 1993.2.1.



  1999년 여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기 앞서까지 ‘저작권’이 무엇인지를 영 몰랐습니다. ‘한국 저작권·세계 저작권’ 모두 몰랐어요. 이무렵 저랑 책집마실을 자주 다닌 분은 저작권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책벗님은 늘 저를 타이르고 가르쳤지요. “최종규 씨 말이야,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다는 양반이 저작권이 뭔지도 모르면 어떡하나?” “읽기만 했지, 쓰지는 않았으니 모르지요.” “거참. 자네도 앞으로 책을 쓸 사람이 될 텐데, 미리 공부 좀 하지?” “제가요? 저는 그저 읽고만 싶은데요.” “안 돼. 읽기만 하더라도 저작권이 뭔 줄 알아야지.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을 안 한 줄 아나?” “그게 뭔가요?” “뭐, 가입은 1987년에 했다고 하지만 자꾸 유예를 해서 2000년이 되어서야 불법출판을 못하게 법으로 막지.” “그런 게 있나요?” “자 봐 봐. 오늘 산 책을 살펴보라고. 여기 이 책에 ⒞가 있나 없나?” “없네요.” 《여권신장파》를 비롯한 숱한 열화당 책은 1999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더 찍지도 팔지도 않습니다. 이때 이 출판사는 ‘열화당이 세기말에 드리는 사은 대잔치 1999.11.1.∼1999.12.31. 정가의 50%’같은 종이를 겉에 붙이고, 책자취에도 붉은물로 꾹꾹 찍었어요. 아, 그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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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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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2


《삶의 노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열아홉 사람

 피천득 옮김

 동학사

 1994.12.20.



  2019년 어느 날 광주 어느 헌책집에 들러서 책을 돌아보다가 《삶의 노래》를 만났습니다. 1994년에 나온 책이지만 그무렵에는 이런 갈래 책을 안 들췄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새삼스레 눈에 뜨여 집어들어 펴자니 안쪽에 ‘도서 열독허가증’이란 누런종이가 붙습니다. 뭔 종이인가 하고 살피니 ‘교무과장’이란 이름이 보이고, ‘1995.2.13. 반납’이란 글씨가 찍힙니다. 아, 사슬터(감옥)에서 읽힌 책이로군요. 어떤 잘못으로 사슬살이를 하는 이들도 책을 만나도록 꽤 애쓴다고 들었는데, 나라(교도소)에서 들여보낸 책 가운데 하나였지 싶어요. 사슬터에서는 부드럽고 곱고 착한 이야기를 담은 책만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깃든 사람이 마음으로 부드럽고 고우며 착한 길을 가기를 바라는 뜻일 테지요. 2000년 언저리에 《교정》이란 달책에 우리말 이야기를 이태 남짓 실은 적이 있습니다. 사슬터에 깃든 분한테 ‘우리말을 부드러이 쓰면서 마음을 달래는 길’을 밝혀 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기꺼이 썼는데요, 마음을 부드러이 달래는 말길은 어디에서나 활짝 열면 좋겠어요. 배움터도 사슬터도, 여느 보금자리나 일터도,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가 아닌 삶에서 짓는 사랑스러운 말꽃으로 마주한다면 이 별은 참말 아름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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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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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6


《버림받은 사람들》

 표문태 엮음

 중원문화

 1987.12.30. 



  어느덧 제 나이는 ‘출판사 편집장’도 아닌 ‘출판사 대표’쯤 되는 자리예요. 적잖은 또래나 동생은 ‘대학 교수’도 하고, 여느 배움터라면 ‘교감’에 가까운 나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나이를 굳이 빗대었는데, ‘장·대표·교수·교감·교징’ 같은 자리에 다가서기 앞서까지는 이래저래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이런 자리에 가까이 이르거나 이 자리에 앉고 난 뒤에는 어느새 입을 싹 씻어요. 암말을 안 해요. 아무 목소리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숱하게 치르면서 “무슨 박사”나 “무슨 교수”나 “무슨 사장”이란 이름을 밝히는 이를 아예 안 믿는 나날입니다. 쇠밥그릇을 붙드는 사람한테는 이웃이나 동무가 없거든요. 《버림받은 사람들》은 ‘징용 한국인 원폭 피해자 수기’를 그러모읍니다. 2010년이나 2020년이 아닌 1987년에 이런 책을 묶었습니다. 엮은이 표문태 님은 나라나 들꽃모임(시민단체) 도움손이나 도움돈 없이 오롯이 홀로 피땀을 바쳐 이런 일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표문태 님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버림받은 글님”입니다. 일찍부터 ‘가난하고 따돌림받고 아프고 억눌리고 짓밝히고 슬프고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을 이웃이며 동무로 삼아서 붓으로 옮겼거든요. 앞으로는 “사랑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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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4


《朝鮮時調集》

 최영해 엮음

 정음사

 1946.



  스스로 노는 어린이는 놀이노래를 스스로 짓습니다. 가락도 말도 스스로 붙여요. 지난날 ‘오락실’이나 오늘날 ‘인터넷게임’을 하고 만화영화를 보는 어린이는 놀이노래를 스스로 안 짓습니다. 가락도 말도 ‘오락실이나 인터넷게임이나 만화영화를 만든 어른이 지은’ 대로 따라서 부르며 길듭니다. 제가 마을이며 골목에서 동무들하고 얼크러지며 뛰놀던 1980년대 끝자락까지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어린이 스스로 지은 놀이노래를 들었으나, 어느새 이 놀이노래는 ‘골목놀이가 감쪽같이 사라져야 하’면서 나란히 사라졌습니다. 누가 가르쳐야 노는 아이가 아닌, 누가 알려줘야 노래하는 아이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날갯짓하는 아이예요. 《朝鮮時調集》은 총칼에 짓밟히던 굴레에서 벗어나며 비로소 태어난 책입니다. 값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꾸러미에 담은 노래(시조)를 읽다 보면 어쩐지 삶하고 너무 동떨어져요. 아무래도 ‘시조’는 흙을 짓거나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는 수수한 자리가 아닌, 벼슬이나 임금 곁에서 맴도는 글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총칼굴레에서 벗어난 뒤 ‘시골노래 모으기(농요·민요 채록)’나 ‘어린이 놀이노래 갈무리’를 안 했습니다. 더러 모으더라도 책으로는 거의 안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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