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5


《new prince readers 1》

 龜井寅雄·三省堂 編輯所

 三省堂

 1923.10.26. 1벌/1936.12.25. 8벌



  ‘산세이도(三省堂)’는 처음에는 책집이었다고 합니다. 1881년에 섰다지요. 1915년부터 책을 펴내고, 1922년에는 ‘콘사이스 사전’을 선보였대요. 일본에서 낸 ‘콘사이스 사전’은 우리나라에서 고스란히 베꼈습니다. 일본은 꽤 일찌감치 온갖 낱말책을 엮어냈는데, 그만큼 나라밖 살림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만, 이웃나라 살림빛을 배우려는 이가 퍽 많았다는 뜻이면서, 이처럼 두루 배운 이들이 제 나라에 이야기빛을 펴는 터전까지 제법 단단했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땀흘려 지은 책을 두루 팔고 알리는 몫을 하는 책집이 진작부터 있었기에 차곡차곡 책밭을 일구었구나 싶어요. 《new prince readers 1》는 1923년에 나온 ‘영어 길잡이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전남 순천 헌책집에서 만났는데, 이 책을 읽은 분은 ‘1930년대 무렵 순천에 있던 책집’에서 장만해서 읽었더군요. 1923∼1936년 사이는 아직 우리로서 ‘우리말꽃(국어사전)’조차 엮어내기 버거웠기에 영어사전은 엄두조차 못 낼 때요, 영어도 일본사람이 지은 일본책으로 배웠겠지요. 책집이란, 책을 사고파는 터일 뿐 아니라, 책으로 살림빛을 나누는 징검다리요 쉼터라고 느낍니다. 골골샅샅 작고 알찬 마을책집이 더 늘고 북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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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7

《冬の流行 婦人子供洋服の作方》
 編輯部 엮음
 主婦之友
 1933.12.

  겨울 한복판을 지나고 새봄을 앞둔 2021년 1월에 솜이불을 처음으로 장만했습니다. 포근한 시골자락에서 살며 솜이불까지 안 덮어도 되리라 여기다가, 막상 솜이불을 아이들 잠자리에 펴고 보니 매우 좋더군요. 왜 진작 안 갖추었을까 하고 뉘우쳤습니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언제나 ‘아이먼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옛말에 ‘어른먼저(장유유서)’가 있지만, 저는 밥도 옷도 살림도 늘‘아이먼저’를 살핍니다. 버스를 타고내릴 적에도 늘 ‘아이먼저’요, 아이가 먼저 즐겁고 홀가분히 뛰놀거나 노래할 터전을 헤아립니다. 《冬の流行 婦人子供洋服の作方》은 ‘主婦之友’ 곁책(부록)으로 1933년 12월에 나왔다는데, ‘主婦之友’는 ‘主婦の友’란 곳입니다. 이 이름이 우리나라로는 “주부의 벗·주부생활”로 퍼졌어요. “-의 벗·-생활”로 이름을 붙인 숱한 달책(잡지)은 하나같이 일본 달책을 베끼거나 흉내냈습니다. 그나저나 이웃나라에 싸움판을 벌인 일본인데, 싸움 한복판에도 ‘어린이한테 입힐 옷’을 헤아린 책을 꾸렸네요. 아무리 총칼질을 앞세우더라도 어린이가 ‘먼저’인 줄 조금은 생각했나요? 어린이가 배부르면 어른은 마음이 부릅니다. 어린이가 웃으면 어른은 기쁩니다. 어린이나라일 적에 아름나라이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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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1


《그게 무엇이관데》

 최불암 글

 시와시학사

 1991.11.1.



  인천 중구에 ‘신포시장’이라는 오랜 저잣골목이 있고, 한켠에 ‘치킨꼬꼬’란 이름으로 튀김닭집을 꾸리는 아재가 있어요. 아재는 예전에 뱃사람 살림밥을 짓곤 했다더군요. 2020년 겨울에 ‘치킨꼬꼬’로 찾아가서 아재한테 절하며 잘 지내시느냐고 여쭈니, 언젠가 최불암 씨가 이곳에 들러 ‘인천 뱃사람이 먹던 뱃밥’을 누린 적 있다고 말씀해요. 그 얘기가 〈한국인의 밥상〉에 나왔다더군요. “최불암 씨가 어릴 적에 인천에서 살았는데 몰랐나?” “오늘 처음 들었어요.” 단골가게 아재 말씀을 듣고 나서 《그게 무엇이관데》를 찾아 읽으니 최불암 님이 해방 언저리부터 인천 창영동에서 살며 신흥국민학교를 다닌 나날이 빼곡하게 흐릅니다. 골목빛에 골목나무에 우물에 아스라한 이야기를 여느 자리에서 갈무리했어요. 글에 조금 멋을 부리긴 했지만, 지나온 삶길을 투박하게 그렸기에 1940∼50년대 인천하고 1950∼70년대 서울을 새삼스레 헤아릴 알뜰한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굳이 ‘역사’란 이름을 안 붙여도 좋아요. ‘자취’요 ‘길’이요 ‘살림’이요 ‘삶’이면 넉넉해요. 스스로 하루를 사랑하며 보낸 아침저녁이 두고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사랑스러운 걸음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빛나는 발자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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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opinion/choibosik/2020/12/21/BTTRU4R26BBGVJAEKR2WYQDKUM/?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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슾노래 어제책

숨은책 474


《어제와 오늘의 사이 3 지금은 몇時인가》

 이어령 글

 정도선·왕상혁·유경아·박창해·와카바야시 히로·W.A.Garnett 사진

 서문당

 1971.3.20.



  인천은 서울로 보낼 살림을 뚝딱뚝딱 만들어서 보내는 ‘공장도시’였고, 아침저녁으로 서울로 일하러 다녀오는 사람이 넘치는 ‘침대도시’였어요. 그래도 동무들하고 밤늦도록 뛰놀던 1980년대 끝자락까지 낮에는 제비를 보고 밤에는 박쥐를 마주했어요. 지난날에는 서울·대전·광주를 가리지 않았을 제비일 텐데, 오늘날에는 큰고장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둘레에 조그맣게라도 숲이 있으면 참새가 깃들는지 모르나, 그야말로 새바람도 새노래도 자꾸 멀어지는 서울이며 큰고장이에요. 1971년에 다섯 자락으로 나온 《어제와 오늘의 사이》 가운데 셋째 자락은 사진에 글을 붙인 얼개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접어든 우리 터전’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뜻있는 엮음새인데, 막상 수수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드뭅니다. ‘문화·사회·예술’이란 이름을 앞세우는 얼개가 퍽 아쉽습니다. 230쪽을 보니 “이른 아침,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이 깨이던 우리들의 상쾌한 아침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저 버렸다.”라 적는데 사진에는 ‘참새 아닌 제비’가 빼곡히 줄짓습니다. 내로라하는 글님이 제비랑 참새를 못 알아보았을까요? 시골이며 숲하고 동떨어진 채 서울에서 잿빛집살이를 하느라 우리 곁 새빛을 잊어버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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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3


《여권신장파》

 휘트니 채드윅 글

 장희숙 옮김

 열화당

 1993.2.1.



  1999년 여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기 앞서까지 ‘저작권’이 무엇인지를 영 몰랐습니다. ‘한국 저작권·세계 저작권’ 모두 몰랐어요. 이무렵 저랑 책집마실을 자주 다닌 분은 저작권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책벗님은 늘 저를 타이르고 가르쳤지요. “최종규 씨 말이야,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다는 양반이 저작권이 뭔지도 모르면 어떡하나?” “읽기만 했지, 쓰지는 않았으니 모르지요.” “거참. 자네도 앞으로 책을 쓸 사람이 될 텐데, 미리 공부 좀 하지?” “제가요? 저는 그저 읽고만 싶은데요.” “안 돼. 읽기만 하더라도 저작권이 뭔 줄 알아야지.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을 안 한 줄 아나?” “그게 뭔가요?” “뭐, 가입은 1987년에 했다고 하지만 자꾸 유예를 해서 2000년이 되어서야 불법출판을 못하게 법으로 막지.” “그런 게 있나요?” “자 봐 봐. 오늘 산 책을 살펴보라고. 여기 이 책에 ⒞가 있나 없나?” “없네요.” 《여권신장파》를 비롯한 숱한 열화당 책은 1999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더 찍지도 팔지도 않습니다. 이때 이 출판사는 ‘열화당이 세기말에 드리는 사은 대잔치 1999.11.1.∼1999.12.31. 정가의 50%’같은 종이를 겉에 붙이고, 책자취에도 붉은물로 꾹꾹 찍었어요. 아, 그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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