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7


《민주시민의 교육》

 해인사 쎄미나에서

 중앙교육연구소

 1962.9.



  ‘입시 수험생’이어야 하던 무렵, 둘레 어른이 ‘공교육 정상화’나 ‘선행학습 금지’ 같은 말을 하면 알쏭했습니다. 모든 어린이랑 푸름이를 ‘대학바라기’로 몰아넣는 틀을 그대로 두고는 배움터를 바로세울 수 없으니까요. 미리 배우고(예습), 다시 배우라(복습)고들 하면서, ‘선행학습(미리배움)’은 안 된다고 막는 일은 덧없으니까요. 즐겁게 잘 배우면 나이를 건너뛰어도 좋아요. 배우기 벅차면 여러 해 머물어도 돼요. 또래하고만 어울려야 하지 않아요. 언니 동생하고도 어울릴 뿐 아니라, 풀꽃나무랑 숲이랑 바람이랑 바다하고도 어울려야지 싶어요. 총칼로 나라힘을 거머쥔 일이 벌어진 뒤에 나온 《민주시민의 교육》은 허울만 ‘민주시민’이되, 속내로는 ‘군사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도록 길들이는 배움살이’를 다룹니다. 우리는 왜 배우고 가르칠까요? 대학교를 마쳐야 돈을 잘 벌고 이름을 얻기 때문인가요? 대학교도 초·중·고등학교도 안 다니면서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익힌 다음 마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허울로만 ‘민주’에 ‘시민’이라고 씌우지 말고, 참한 어른이 되도록, 착한 눈빛이 되도록, 고운 마음이 되도록, 푸른 숲누리가 되도록 배우면서 나아가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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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85


《天相の弦 8》

 山本おさむ 글·그림

 陳昌鉉 도움

 小學館

 2006.6.1.



  주머니는 가난한데 읽어야겠구나 싶은 책을 알아보면 괴롭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하다면 책집에는 얼씬을 말아야 할는지 모르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서 이 쌈짓돈으로 몇 자락쯤 장만할 수 있으려나 어림합니다. 책집에서 보금자리로 옮겨갈 수 없는 책은 ‘서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책값을 대려고 일하지는 않으나, 일삯으로 거둔 살림돈을 푼푼이 책값으로 헙니다. 옷을 안 사고, 머리를 안 깎고, 주전부리를 치우고,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적게 먹거나 안 먹으면서 책을 곁에 놓으면 되리라 여겨요. 《天相の弦》이란 만화책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우리말로는 2003년에 조용히 나오다가 석걸음에서 멈췄습니다. 일본말로는 열걸음까지 나왔는데, 그리 사랑받지 못했는지 일찍 판이 끊어졌습니다. 짝을 맞추기 버거워도 어떻게든 찾아내려 하는데, ‘진창현’이란 분이 경북 김천을 떠나 일본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깎으며 숲바람을 가락틀(악기)에 담아낸 땀방울을 헤아립니다. 스승이나 배움터나 지음터(공장)가 아닌, 깊은 멧숲 한복판에서 홀로 나무를 켜고 깎고 다루었기에 ‘스트라디바리’처럼 아름가락을 들려주는 길을 찾아내었지 싶어요. ‘진창현’ 님을 알아본 이웃은 숲바람처럼 노래하려는 마음을 나누던 분이었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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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477


《소록도의 구술 기억 ⅴ》

 김영희·황은주·김시연·제하나 듣고 씀

 국립소록도병원

 2020.10.28.



  2020년 12월 22일에 마지막으로 연 마을책집 〈한뼘책방〉이 있습니다. ‘한뼘책방’이란 이름으로 조촐히 책을 펴내면서 책집을 꾸리셨는데, 책은 앞으로도 내기로 하면서 책집만 닫았습니다. 마을 한켠을 보듬는 책집살림을 이어가는 줄 알았으나 좀처럼 마실할 틈을 내지 못하다가 마지막날 저녁에 늦지 않게 겨우 찾아갔어요. 아슬아슬했지요. 곧 책집을 닫으려 하는데, 이곳에 찾아온 손님 한 분이 저를 알아보시면서 “고흥에 사신다고요? 그러면 그 책을 드려야겠네요.” 하고는 2019년 12월 27일에 첫걸음을 내고 2020년 10월 28일에 다섯걸음을 내놓은 《소록도의 구술 기억》을 꾸러미로 건네주었습니다. 서울에 살기에 ‘서울 이야기’를 다룬 책을 다 알기 어렵듯, 고흥에 살더라도 ‘고흥 이야기’를 다룬 책을 모두 알기 어렵습니다. 외려 시골에서는 시골 이야기챡을 알기 더 어려워요. 마을하고 마을이 멀고, 읍내나 면소재지하고도 서로 멀거든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조용히 묶은 “작은사슴섬 입말”은 조그마한 섬에 묶인 채 살아야 하던 사람들 멍울이며 앙금이며 눈물이며 웃음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입말꾸러미를 묶으려고 애쓴 이웃이 있기에 놀랍고, 이 일을 서울 이웃이 했다는 대목이 더욱 놀랐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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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5


《永遠平和の爲に》

 カント 글

 高坂正顯 옮김

 岩波書店

 1949.2.20.첫벌/1952.5.30.6벌



  1795년에 처음 나온 “Zum ewign Frieden”를 일본에서는 1900년대 첫무렵부터 “永久平和論”이나 “永遠平和の爲に”로 옮깁니다. 우리말로도 여러 가지 나왔는데, 저는 ‘정음문고 2’로 나온 《永久平和를 위하여》(I.칸트/정진 옮김, 정음사, 1974)로 읽었습니다. 1700년대 이야기를 1974년에 나온 책으로 읽자면 아무래도 해묵은 빛을 엿볼 만한지 모르나, 싸움길이 아닌 어깨동무를 바라면서, 어떻게 해야 이 푸른별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을 멈추고서 푸르게 살아갈 만한가를 찾아나서려는 마음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1795년에 독일말로 나온 책을 이리 나무라거나 저리 꼬집은들 오늘 우리 삶에서 달라질 대목은 없어요. 1700년대라는 그즈음 눈높이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바라보려 했는가를 살피면서,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한테 어떻게 어깨동무를 들려주고 사랑을 노래하는 길을 밝혀야 아름다울까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岩波文庫 3739’인 《永遠平和の爲に》이니, 끔찍이 싸움판을 일으킨 이웃나라로서 좀 느즈막하다 싶지만, 1949년에 펴낸 대목하고 제법 읽힌 책자취를 보면서, 오늘 우리도 ‘총을 내려놓고, 밉질을 멈추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손잡는 길’을 찾아나서는 데에 마음을 모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푸르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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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9


《엄마, 나만 왜 검어요》

 김순덕 글

 정신사

 1965.12.20.첫/1967.3.20.3벌



  1965년에 나온 《엄마, 나만 왜 검어요》는 남북녘이 서로 을러대면서 죽이고 죽던 싸움판에 미국에서 총을 거머쥔 사람들이 찾아든 1950년에 깃든 씨앗이 열다섯 살 푸른나무로 자라는 동안 보고 겪은 일을 담아낸 책입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 물어볼 만합니다. 어머니는 쉽게 말하기 어려울 만합니다. 마을이며 배움터에서는 쉬쉬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따돌립니다. 미군 병사는 씨앗을 남기고서 이 땅에서 숨을 거두었을 수 있고, 제 나라로 돌아갔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옆나라 일본에서도 흔히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검은 살갗’으로 태어난 이 아이들을 나라에서는 얼마나 보듬거나 보살폈을까요? 오늘날 이 나라 숱한 지음터(공장)나 시골에서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없으면 다 멈추어야 합니다. ‘한겨레 젊은이’는 막일터(공사판)뿐 아니라 지음터나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라 밑살림이며 밑바탕을 거의 이웃일꾼이 도맡습니다. 고흥에서 ‘김 공장’을 꾸리는 분들 말을 들으면 이제는 이웃일꾼만 쓰려 한답니다. 이웃일꾼은 군말 없이 일을 잘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툭하면 빠지고 내뺀다지요. 이 나라에 이바지하는 이웃일꾼이 남긴 씨앗을 오늘 이 나라는 어떻게 돌보거나 아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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