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3


《조선말 규범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엮음

 학우서방

 1968.2.20.



  2021년에 《쉬운 말이 평화》라는 책을 내놓기까지 걸어온 ‘말 배움길’을 헤아리면 어느 하나도 만만하지 않았고 걸림돌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남녘하고 북녘으로 갈렸고, 둘로 갈린 나라만큼 서로 쓰는 말결이 꽤 갈렸어요. 북녘책을 쥐어서 읽어 보고, 북녘사람을 만나서 말을 섞어야 실마리를 열 텐데, 북녘은 어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인지, 또 어떤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쓰는지 알기 어렵더군요. 헌책집에서 만난 《조선말 규범집》은 북녘 맞춤길을 살핀 조그마한 책이고,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학우서방’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한테 책으로 배움길을 이으려고 힘쓴 곳이라지요. 다만 남녘은 일본 한겨레한테 이바지하지 않았대요. 북녘만 이바지했답니다. 앞으로 두 나라가 하나로 된다면 맞춤길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까요? ‘두 갈래 말’로 삼아 서로 다른 틀을 지키고 가꾸도록 해야 할까요? 영국 영어랑 미국 영어가 다르듯 남녘 우리말하고 북녘 우리말도 조금 다르되 서로 아끼는 길이 나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북녘에서는 남녘책을 스스럼없이 읽고, 남녘에서는 북녘책을 홀가분하게 읽는 터전을 열어야 할 테지요.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사이좋게 손잡으면서 마음을 맞추기를 빌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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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3.14.

숨은책 502


《여류보도사진가 마가레트 버크-화이트》

 장양환 엮음

 해뜸

 1988.7.17.



  1998년 여름이 저물 무렵 사진기를 다루고 사진을 찍는 길을 처음 배웠습니다. 동아리 뒷내기(후배)한테서 사진기를 빌렸는데 새뜸나름터(신문배달지국)에 도둑이 들어 이레 만에 잃었습니다. 새뜸(신문)을 나르며 얻는 일삯으로 사진기를 어떻게 갚나 싶어 아찔했는데, 우체국에서 “손님은 오랫동안 적금을 부어 주셨고, 외대학보에 꾸준히 글을 실으니 믿을 수 있어서 30만 원을 빌려줄 수 있어요.” 하고 얘기했습니다. 처음 받은 빚(은행대출)으로 사진기를 둘 사서 뒷내기한테 하나 돌려주고, 다른 하나를 아끼면서 썼습니다. 빚은 석 달에 걸쳐 갚았습니다. 열린배움터를 그만두기 앞서 신문방송학과 네 해치 수업을 다 들었는데, ‘보도사진’도 있어요. 강사는 사진기 다루는 길만 들려주었고, 스스로 헌책집을 돌며 여러 사진책을 뒤적이면서 눈길을 틔우려 했습니다. 《여류보도사진가 마가레트 버크-화이트》를 이무렵 만났어요. 앞에 붙은 ‘여류’란 이름이 거슬렸으나 예전에는 이렇게 했겠지요. 마가레트 버크-화이트란 분은 오롯이 새롭고 상냥하면서 참한 눈썰미에 손길로 사진길을 연 분이라고 느끼거든요. 저한테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를 알려준 스승이라면 이분을 꼽습니다. 사진에 사랑을 포근하게 담으셨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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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3.14.

숨은책 498


《현대판 손오공 13 드래곤 볼》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

 유연숙 옮김

 서울문화사

 1990.4.26.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갔어도 만화읽기는 실낱같이 이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배움터에서 지내느라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마을 앞으로 만화책 빌려주려고 찾아오는 짐차(만화책 대여트럭)’ 아저씨한테 갈 수 없었어요. 이제 빌려읽기는 끝이요 사읽기로 접어듭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기다려 마을책집에 만화책을 사러 갔어요. 저는 중학생으로 형은 고등학생으로 함께 보던 만화책 가운데 《드래곤 볼》이 있어요. 그때 마을책집에서는 줄을 서서 이 만화책을 샀는데, 책집지기 아저씨는 오랜 단골인 제 몫을 늘 남겨 놓으셨어요. “애들이 찾아와서 구석구석 뒤지는데 겨우 숨겨 놨어.” 이레마다 나오는 만화잡지로도 읽고, 낱책으로도 읽었어요. 그러나 만화잡지는 우리 집을 옮기면서 어머니가 다 버리셨고, 만화책은 작은집 아이들이 설·한가위에 놀러와서 빌려가더니 하나도 안 돌려줬습니다. 헌책집에서 어렵게 《아이큐 점프》 1990년 12월호 별책부록을 만났습니다. 별책부록 끝자락에 적힌 말을 보고 웃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밝혀도 배움터에서는 이 만화책을 빼앗아 ‘유해도서’라며 불살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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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세계수준 : 《드래곤 볼》은 미국·프랑스·이태리·서독·일본 등지에서 만화화, 만화영화화 되어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세계 명작만화입니다. (책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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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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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3.14.

숨은책 501


《어머니의 손수건》

 이용남

 민중의소리

 2003.3.15.



  2002년 여름날 이 나라에는 두 가지 물결이 일었습니다. 하나는 한·일 두 나라가 함께 치른 공차기마당(월드컵)이요, 다른 하나는 한·미 두 나라가 같이 꾀한 싸움마당(군사훈련)입니다. 잔디밭에서 함께 공을 차면서 어깨동무나 꿈이나 사랑을 나누면 좋을 텐데, 흔히들 ‘축구 전쟁’이란 이름을 붙이더군요. 서로 즐겁게 놀면서 기쁘게 하나되면 안 될까요? 이른바 군사훈련은 ‘싸움 맛보기’입니다. 앞으로 싸움판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는지 미리 해보는 셈입니다. 아이는 소꿉을 하면서 놀이랑 살림을 익히지만, 군인은 군사훈련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빨리 저쪽을 물리치거나 죽이는가’를 익힙니다. 《어머니의 손수건》은 2002년 여름날 일어난 물결 가운데 하나인 ‘죽은 효순이·미선이’를 기리는 뜻을 멍울처럼 담아낸 사진책이에요. 나라에서 쉬쉬하던 일을 앞장서서 사진으로 담고 글로 풀어내었지요. 우리는 아직 평화나라가 아닙니다. 남·북녘이 싸움연모(군사무기)를 서로 어마어마하게 갖추어 으르렁거리듯 노려보는 삶터입니다. 여기에 주한미군이 있어요. 나라에서 주한미군한테 돈을 얼마나 대는지 밝힌 적이 없지만 엄청난 줄만 압니다. 어마어마한 총칼과 엄청난 싸움돈(군사비)을 들여야 아이들이 안 밟혀 죽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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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7


《獨逸史學史》

 Georg von Below 글

 讚井鐵男 옮김

 白水社

 1942.7.10.



  독일이 걸어온 자취를 살피는 일을 어떻게 갈무리했느냐를 다룬 《獨逸史學史》는 독일사람이 쓰고 일본사람이 옮깁니다. 1942년에 나온 책이니, 일본은 이웃나라 발자취까지 꽤 깊이 파고들었구나 싶습니다. 배우려면 끝없이 파고드는 길이로구나 싶은데, 이 책은 일본 아닌 우리나라 책집에서 사고팔렸습니다. 책끝을 보면 ‘釜山府 ○○町 金文堂書店’ 쪽종이가 붙어요. ‘부산시’나 ‘○○동’이라 안 적고 ‘府·町’이라 적으니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무렵입니다. 〈金文堂書店〉은 이제 부산에 없지 싶은데, 이 책집이 어느 자리에 언제부터 있었는가는 수수께끼입니다. 일본 책집이 적잖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하고, 그 책집은 일본책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사는 일본사람’이며 ‘일본을 따르고 배워야 하던 조선사람’한테 책을 선보였겠지요. 1942년이면 조선말(우리말)은 아예 엄두를 못 낼 즈음이니 책집에는 온통 일본글로 찍은 책밭이었으리라 봅니다. 앞길이 까마득한 나날일 텐데, 1950년이나 1955년이나 1960년까지 오직 일본말만 쓰고 일본글만 읽어야 하던 수렁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말글·삶·살림을 얼마나 돌보거나 가꿀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우리다운 넋을 얼마나 보살피거나 일굴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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