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7


《인천 화교 이야기》

 김보섭 사진

 인천광역시중구한중문화관

 2017.6.8.



  인천역 둘레에서 살아가는 동무 가운데 누가 화교인가를 딱히 생각하거나 가리지 않았습니다. ‘화교’란 이름인 집안에서 태어난 동무가 꽤 있을 텐데, 그냥 같이 놀고 그저 같이 수다를 떨고 그대로 동무 사이입니다. 만석동·화수동을 놓고서, 또 차이나타운·청관 같은 이름을 붙이면서 마을을 가르려 하던데, 마을사람은 그냥 마을에 살고 골목사람은 그저 골목에서 어울립니다. 어린이 눈높이에서는 송현동·선린동·전동·내동·용동·관동·신흥동·신생동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동무네’입니다. 《인천 화교 이야기》처럼 ‘인천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이웃’을 글이나 사진으로 담으려는 책이 곧잘 나옵니다만, 어쩐지 ‘예술·역사·기록’으로만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이름을 가르지 말고 이웃이자 동무로 바라보면 안 될까요? ‘그들과 우리’가 아닌 ‘너랑 나랑 우리’입니다. 같이 인천역부터 동인천역까지 걷고, 거꾸로 동인천역에서 인천역까지 걷습니다. 만석동부터 신흥동까지 걷고, 거꾸로 신흥동부터 만석동까지 걷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에 아침 낮 저녁으로 내내 걸어다니면서 끝없이 수다를 떨었어요.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 “해도 넘어갔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저녁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ㅅㄴㄹ


예술도 역사도 기록도 아닌

그냥 이웃이자 동무인 삶으로 보면

글이나 사진은 아주 다르다.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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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6


《홀로 있는 時間을 위하여》

 김형석 글

 삼중당

 1975.3.20.



  1988년에 드디어 푸른배움터를 가면서 ‘국민교육헌장 외우기’를 더는 안 시키겠거니 여기며 숨을 돌렸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면 번호를 부르거나 몇째 책상에 앉은 아이를 일으켜 외우도록 시키고, 우물쭈물하거나 한 마디라도 틀리면 몽둥이가 춤추거나 따귀가 날아올 뿐 아니라, 골마루에 나가거나 배움칸 뒤쪽에서 한 시간씩 손을 들고 서야 했습니다. 때로는 애국가 몇 절을 외우라고 시키는데, 배움터라는 데가 왜 이리 아이를 못살게 구는지 알 턱이 없어요. 이름은 ‘배우는 터전(학교)’이지만, 속내는 ‘가두어 괴롭히는 곳(감옥)’ 같습니다. 배움터에서 〈도덕〉이나 〈철학〉이란 갈래를 배울 적마다 속으로 물었어요. “힘없는 아이를 날마다 때리고 윽박지르고 막말을 일삼으면서 어떻게 도덕이며 철학이란 말을 혀에 얹으며 가르친다고 할 수 있나요?” 《홀로 있는 時間을 위하여》는 제가 태어난 해에 나온 손바닥책이요, ‘젊은이 가운데 대학생’한테 눈높이를 맞춘 ‘생활 철학 강좌 수필’입니다. 온해(100살)를 살아낸 그분이 군사독재로 서슬퍼렇던 무렵에 쓴 글은 수수한 사람들 살갗으로 안 와닿는 구름 너머 수다였지 싶습니다. 살아남자면 달콤발림을 해야 했을는지 모르나, 그무렵 아이들은 맞으면서 살아남았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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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5


《샘터 특별편집 : E.T.》

 윌리엄 코츠윙클 엮음

 샘터출판부 옮김

 샘터사

 1983.2.23.



  어릴 적에 극장에 가는 값은 꽤 비쌌습니다. 둘레 어른이 “극장 갈래, 야구장 갈래?” 하고 물으면 늘 야구장이었습니다. 극장에 건 영화는 한 해를 기다리면 ‘토요극장·일요극장’ 같은 이름으로 보임틀(텔레비전)로 볼 수 있고, 그 뒤로 다시보기(재방송)라며 자꾸 틀어 주었습니다. 영화 〈E.T.〉가 막 극장에 걸리던 해에도 극장에서 볼 엄두를 못 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천에서 숭의야구장에 표를 끊고 들어간 일조차 드뭅니다. 으레 언덕으로 올라가서 먼발치에서 보거나 표 없이도 들여보내는 7회말에 비로소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소년중앙》이나 《보물섬》에 나오는 그림으로만 〈E.T.〉를 만난 끝에 드디어 한 해를 기다려 이듬해부터 보았어요. 막상 보고 나니 왜들 ‘자전거를 달리다가 하늘을 나는 이야기’가 그토록 설렌다고 하는가를 알겠더군요. 때리거나(사랑의 매), 짐을 잔뜩 주거나(숙제), 놀지 말고 배우기만 하라거나(시험공부) 닦달하는 어른들이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이 별에서 살며 ‘닦달 어른’이 없는 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샘터 특별편집 : E.T.》를 뒤적이면서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앞으로 어른이 되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노라 꿈꾸던 날을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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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4


《솔밭 아이들 제2호》

 문인숙·권진숙·박소희·명규원 엮음

 송림사랑방교회·송림어린이집

 1988.12.15.



  저는 ‘공부방’에 다닌 일이 없고, 공부방이 뭔지 아는 동무도 없다시피 합니다. 만석동에 살던 동무는 “우리 마을에 뭐가 하나 있긴 하던데, 난 거기 싫더라.” 했습니다. ‘공부’라는 이름부터 듣기 싫은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인데, 왜 가난마을에 찾아와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뭔가 가르치거나 함께하겠다는 대학생이나 어른은 ‘공부방’이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공부방’이란 이름이어야 가난마을 아줌마가 아이들을 보내리라 여겼을까요? 가난마을에 깃들어 애쓴 ‘공부방’이 나빴다거나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가난마을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은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저 ‘동무로 지내겠다’는 마음으로 같이 놀려고 찾아왔다고 보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대학교에서 철학·사상·인문을 익힌 깜냥으로 가난마을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저 ‘마을아이가 마을놀이를 하고 마을노래를 부르는 품으로 조용히 스며들어서 마을어른으로 같이 살’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밭 아이들 제2호》를 1998년에 처음 보았습니다. 송림동 동무들하고 신나게 뛰논 일만 떠오를 뿐 그곳에 공부방이 있었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가만히 보면, 공부방 어른들은 골목놀이를 하러 소매를 걷고 나온 적은 없었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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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3


《The Music Hour, fifth book》

 Osbourne McConathy·W.Otto Miessner·Edward Bailey Birge·Mabel E.Bray 지음

 Silvey Burdett com

 1930/1937.



  아홉 살 즈음, 할아버지 꽃날(생일)에 이웃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잔뜩 찾아오셨고, 저더러 노래를 불러 보라 하셨습니다. 배움터에서는 ‘음악’이란 이름으로 시험을 치러 줄을 세웠고, 앞줄에 서지 못하면 피리로 머리를 두들겨맞거나 종아리가 부풀도록 맞기 일쑤였습니다. 배움터 열두 해를 통틀어 앞줄에 선 적이 하루도 없는데,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 꽃날에 부른 노래만큼은 “잘 했다. 잘 부른다.”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들한테 노래란 줄세우기가 아닌 즐거운 사랑이었을 테니까요. 《The Music Hour, fifth book》은 어린이한테 노래를 들려주고 가르치는 책입니다. 다섯째 자락이 1930년에 나왔군요. 이즈음 우리나라는 총칼로 쳐들어온 이웃나라한테 억눌린 나날이기도 했습니다만, 어린이가 어린 나날을 꽃처럼 즐기고 나누도록 북돋우는 노래를 지으면서 알려준 어른은 몇이나 되었을까요? 시골에서 흙을 짓고 아기를 낳아 돌보는 수수한 어버이가 즐기고 나눌 만한 노래를 짓거나 알린 노래지기(음악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흔히들 ‘임금 곁에서 부르던 노래’만 ‘국악’으로 치는데, 어린이가 동무랑 놀면서 부르는 노래하고 어버이가 아기를 재우거나 들일·살림을 하며 부르던 노래야말로 ‘겨레노래’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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