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5


《가정의 벗》 185호

 양재모 엮음

 대한가족계획협회

 1984.1.1.



  모든 아이는 어른 눈빛이나 몸짓이나 말결에 흐르는 마음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하는 거짓말을 알아채지만 마치 모르는 척하고, 그냥 어른들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듯 군다고 느껴요. 우리 마음에 사랑이 흐른다면 아이는 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못 돌보지 않아요. 가멸차기 때문에 아이를 잘 보살파지 않아요. 아이는 돈으로 자라지 않고, 어른도 돈으로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요. 《가정의 벗》은 ‘대한가족계획협회’라는 곳에서 펴낸 달책이라는데, 185호를 보면 1984년 무렵에 퍼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알림말이 눈에 띕니다. 그래요, 1984년 그무렵 마을 곳곳에 이런 ‘나라 알림말(국가 표어)’이 붙었어요. 예전에는 ‘여러 아이’를, 이러다가 ‘두 아이’를, 이윽고 ‘한 아이’를 낳자는 나라 알림말이 우표에 깃들기도 했어요.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돈을 받고서 아기를 꽤 여러 나라로 보냈습니다. 누가 어느 집에서 낳은 아기이든 포근히 아끼고 사랑하는 터전하고는 멀었어요. 오직 사랑을 바라는 아기일 테니 어른인 우리도 오직 사랑을 아기한테 물려주면 될 텐데요. 나라에서 ‘가족계획’을 안 세워도 좋으니 모든 마을하고 살림집에 따사로이 사랑이 흐르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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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8


《THE SPIKE》 56호

 권부원 엮음

 제이앤제이미디어

 2020.6.



  제가 마친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2009년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졸업증명서를 떼야 했기 때문인데, 모처럼 찾아간 배움터 어느 골마루에서 “쩍, 쩍, 쩍 ……” 하는 소리가 울립니다. 낯익은 소리예요. 누가 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맞는다는 뜻입니다. 배구 이야기를 다루는 《THE SPIKE》가 있고, 2020년 6월에 나온 56호는 이재영·이다영 씨가 책낯에 나란히 나옵니다. 둘은 쌍둥이 배구선수로 이름났고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그런데 2021년 1∼2월에 이다영 씨가 인스타그램에 선배 선수를 비아냥거리는 글을 잇달아 띄우더니 ‘자살 소동’을 벌였고, 이튿날 ‘이재영·이다영 학교폭력’이 불거졌습니다. 쌍둥이 배구선수가 벌인 ‘자살 소동’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여태 가슴에 묻고 살던 생채기를 제대로 건드렸다지요. 배구 국가대표였던 어머니 뒷배에 힘입어 동무하고 뒷내기한테 칼부림까지 하며 돈을 빼앗고 괴롭힌 짓이 드러났는데, 쌍둥이는 집에 숨어 인스타질만 합니다. 때리고 괴롭히는 짓은 좀체 안 사라지고, 때린짓을 일삼은 이들은 어쩐지 뉘우칠 줄을 모릅니다. 철없는 옛날일 뿐일까요. 아직도 철없으니 어떻게 고개숙여야 하는지 모르지 싶어요. 점수·성적만 바라본 우리 민낯입니다.


ㅅㄴㄹ


.
쌍둥이 배구선수 참 어이없더라.
오늘도 인스타질이더라.
이들은 삶과 살림과 사랑을
배운 적이 없구나 싶다.
참으로 딱한 아이들이다.
아마 그들 스스로 뭘 잘못한 줄
하나도 못 깨달았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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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9


《のはらひめ》

 中川千尋

 德間書店

 1995.5.31.



  제가 꽃을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어릴 적에는 토끼풀꽃이나 개나리꽃을 톡 훑어서 귀에 꽂거나 머리에 얹으면서 놀았습니다. 순이만 꽃순이여야 하지 않아요. 돌이도 꽃돌이가 될 만합니다. 배움수렁을 거치고 열린배움터를 두 해쯤 다니고 새뜸나름이로 살다가 책마을 일꾼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는 꽃을 살짝 잊었습니다.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려고 무너미마을을 오가는 사이에 문득 꽃내음을 다시 보고, 떠난 어른이 멧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깨닫습니다. 멧꽃을 사랑하기에 멧꽃 같은 글을 쓰셨더군요.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며 골목마다 핀 들꽃을 새삼스레 봅니다. 어릴 적에는 뛰놀며 흘깃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보더군요. 《のはらひめ》는 우리말로 옮기면 ‘들순이’쯤. 들에서 맨발로 놀다가 들꽃을 엮으면서 동무하고 노래하는 소꿉을 다뤄요.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을 하나둘 읽다가 일본책까지 장만했습니다. ‘들꽃아이·들빛순이’ 마음을 담은 손끝을 곧바로 느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들순이에 숲돌이라면 아름다워요. 꽃아이랑 꽃어른이 손잡고 꽃노래를 부른다면 우리 삶터는 꽃터로 피어나겠지요. 꽃처럼 말하면 곱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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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1


《한석봉 천자문 만화(학습) 교본》

 ? 글·그림

 삼일출판사

 1980.9.



  아버지는 어린배움터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동시를 썼습니다. 집에 커다란 낱말책하고 자그마한 옥편이 있었어요. 여기에 《한석봉 천자문 만화(학습) 교본》이 있었지요. 열 살에 마을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웠는데 이 만화책이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1971년에 처음 나온 듯하고 꾸준히 새로 찍으면서 펴낸해만 달리 적던데, 같은 글·그림을 숱한 곳에서 고스란히 베끼고 훔쳐서 그대로 내기도 했습니다. 누가 쓰고 그리고 엮었을까요? 천자문을 만화로 엮자는 생각은 누가 했고, 어떻게 마무리를 했고, 일삯을 얼마나 받았을까요? 모든 글씨에는 뜻하고 소리가 흐릅니다. 한자뿐 아니라 한글에도 뜻이랑 소리가 나란히 있어요. 우리 나름대로 바라보고 겪고 생각한 숨결을 글씨로 옮겨서 나누는구나 싶어요. 겨울에 꽃처럼 내리는 눈, 봄날 새롭게 트는 잎눈, 둘레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 우리가 든든히 디디는 온누리, 함께 모여 살아가는 나라, 흙빛을 가리키는 ‘누렇다’라는 낱말까지 ‘누’에는 갖가지 숨결이 감돌아요. 마을 할아버지는 썩 재미나게 가르치진 못했지만 온힘을 다하셨어요. 온마음을 재미랑 즐거움을 더할 적에 말이 빛나고 글이 살아나지 싶습니다. 말빛은 삶빛으로, 다시 삶빛은 말빛으로 이어간다고 느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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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2


《박쥐통신》 1호

 한일박쥐클럽 엮음

 한일박쥐클럽

 2018.10.



  틈이 나면 놀았습니다. 토막틈이어도 손가락씨름을 하고, 발을 구릅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구름놀이입니다. 하늘빛을 보고, 비둘기가 푸드덕 나는 모습을 보고, 잔바람에도 춤추는 풀꽃을 봅니다. 어버이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도, 날마다 밀리는 숙제란 짐에 쌓여도 으레 쪽틈을 내어 놉니다. 어린 날 살던 곳에는 땅밑칸(지하실)이 길게 있었어요. 한낮에도 캄캄한 땅밑칸이라,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기만 해도 오들오들 떨고, 어귀에는 으레 박쥐가 살았습니다. 시골 아닌 인천 같은 큰고장에 웬 박쥐냐 할는지 몰라도, 제비랑 박쥐는 198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흔히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서 숨바꼭질을 한다며 으슥한 곳에 숨을라치면 박쥐가 되레 놀라 파다닥 뛰쳐나오고, 박쥐가 날아오르면 술래고 뭐고 없이 와와거리면서 박쥐를 따라 달렸습니다. 《박쥐통신》 1호를 보며 반가웠는데 2호는 언제 나올는지 아리송합니다. 아무튼 첫걸음이라도 만나니 좋아요. 숲에서도 살지만 사람 곁에서도 같이 살면서 나방을 사냥하는 박쥐는 어린이 놀이벗이었습니다. 낮에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깊이 잠드니 톡톡 쳐도 꼼짝을 안 해요. 살짝 누르거나 쓰다듬으면 되게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자꾸 만지면 귀찮다며 날개를 폈다 접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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