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2.17.

숨은책 591


《富民文庫 6卷 앙고라 飼育과 採毛法》

 중앙산업기술교도소 교도국 엮음

 국민계몽선전사

 1966.8.6.



  어릴 적에 토끼를 기르는 이웃이 많았습니다. 토끼를 기르는 집은 ‘먹는 쪽’이 아닌 ‘파는 쪽’입니다. 동무가 기르는 토끼를 보려고 신나게 풀을 뜯고 배춧잎·무청을 주워서 찾아갔습니다. 동무네가 토끼를 팔면 토끼털을 얻고, 이 토끼털로 실을 꼬아 어머니가 뜨개질을 해서 뜨개옷을 팔았습니다. 이러다 어느 해부터 토끼를 기르는 집이 싹 사라집니다. 오리털이 넘치고 훨씬 값산 아크릴실이 퍼집니다. 《富民文庫 6卷 앙고라 飼育과 採毛法》을 읽으며 어릴 적 보고 겪은 일이 환히 떠오릅니다. 겉에 적은 “새로운 輸出産業 앙고라 兎毛生産, 1000萬弗의 外貨가 節約되고, 1000萬弗의 外貨가 獲得된다.”는 말처럼 마을이며 배움터에서 토끼를 참 널리 길렀습니다. 토끼고기를 구경도 못하고 토끼털로 짠 옷을 입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일군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 책 뒤쪽에는 “1. 토끼기르기 2. 食用개구리 養殖法 3. 副業事典 4. 토끼의 利用과 加工法 5. 西洋松耳 人工培養法 7. 카나리야 飼育法 8. 크로렐라 飼料 培養法”처럼 ‘돈 되는 길’을 알리는 책이 여럿 있다고 나옵니다. ‘부민(富民)’이란 이름부터 돈길이니까 무엇이든 돈으로만 바라보고 움직여야 할까요. 책 안쪽에 붙은 ‘종로서적’ 자취가 새삼스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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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7.

숨은책 589


《섭 no.1 코로나 시대의 사람》

 김정희·권지현·이도 엮음

 tampress

 2021.10.15.



  마을책집을 다닙니다. 큰책집을 다니지는 않습니다. “큰책집에 가면 책이 더 많을 텐데, 뭣 하러 작은책집에 가나?” 하고 묻는 분한테 “마을책집에 가면 책집지기가 가려서 놓은 책을 알맞게 만나요. 큰책집은 어느 고장이든 다 똑같은 책차림이라서 오히려 책을 못 누려요. 마을책집은 다 다른 책차림이기에 책을 새롭게 만나고요.” 하고 대꾸합니다. 열일곱 살에도 마흔일곱 살에도 눈앞에 읽을 책이 한가득입니다. 그렇게 끝없이 읽어대어도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훨씬 많습니다. 바다만큼 있는 ‘읽을 책’을 헤아리다가 “끝없이 읽기보다는 티없이 읽을 적에 즐겁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눈길을 밝히면서 삶을 읽고, 눈빛을 맑게 다스리면서 사랑을 읽는다면, 오늘 마주하는 책이 언제나 새록새록 스미리라 생각해요. 대구 마을책집 〈서재를 탐하다〉에서 《섭 no.1 코로나 시대의 사람》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마을새뜸도 엮고 마을책도 묶습니다. “대구는 큰고장이지 무슨 마을이냐?”고 묻는 분한테 “살아가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가꾸어 마을을 이룰 뿐입니다.” 하고 속삭입니다. 더 큰 곳을 보아도 안 나쁘되, 우리가 어우러지는 마을을 보면 즐거워요. 아름다운 빛은 우리 보금자리부터 피어나더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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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7.

숨은책 593


《월간토마토 vol.173》

 이용원 엮음

 월간토마토

 2021.12.1.



  2007년부터 태어난 달책 《월간토마토》는 2021년 12월로 173걸음에 이릅니다. 씩씩하게 내딛는 걸음은 2022년으로도 이을 테고 2030년이며 2040년을 찬찬히 바라볼 테지요. 마을·고을에서 짓는 달책은 다달이 그 마을·고을에서 살아가는 숨결을 담습니다. 이달이 지나면 어느새 묵은 이야기로 여기지만, 이해가 지나면 어느덧 아련하면서 새롭게 바라볼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그달그달 우리 마을·고을 살림살이를 이웃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자리에서 누린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옛이야기’ 아닌 ‘오늘이야기’로 자란다고 느낍니다. 오늘 우리는 ‘옛이야기’란 이름을 쓰지만, 아주 오래도록 누구나 수수하게 ‘이야기’라고만 했습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기보다 스스로 오늘을 마주하며 차곡차곡 지은 삶을 옮긴 이야기인 터라 두고두고 싱그러이 되새길 만해요. 이야기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거든요. 이야기는 남이 아닌 내가 지어요. 대전 이야기를 담으면서 “다달이 대전”이라 안 하고 ‘토마토’란 이름을 넣은 눈길이 재미있습니다. 그럼요, 삶은 재미지게 누리면서 나누려는 하루인걸요. 돋보일 까닭이 없이 도란도란 가는 길입니다. 내세울 일이 없이 나긋나긋 날갯짓을 하는 하루입니다. 투박할수록 빛나는 우리 얼굴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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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5.

숨은책 580


《現代歐州》

 伊達源一郞 엮음

 民友社

 1914.2.15.



  헌책집을 다니다가 어쩐지 묵은 일본책이 보이면 쉬 지나치지 못합니다. 일본 책집에서 만나는 일본책이라면 일본사람이 읽은 책이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책집에서 만나는 묵은 일본책이라면 ‘총칼로 억눌리던 무렵에 일본글로 새길을 배운 한겨레’ 자취를 읽어낼 만합니다. 《現代歐州》를 얼핏 보면 일본책인지 아닌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나라도 꽤 오래도록 책에 한자만 까맣게 박았거든요. 책을 펴니 일본이 하늬녘(유럽) 여러 나라가 얼마나 나라살림을 일으켜서 옆나라를 차지하려고 애쓰는가 하고 차근차근 밝힌 줄거리가 가득합니다. 일본 벼슬꾼이 보기에 우리나라는 ‘우려먹을 밑밥’이었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이 책 속종이하고 여러 곳에 수수께끼 같은 글씨가 있습니다. “C.D.L. 類別·番號·大正 年 月 日 購入·備考. 中東文庫”라 나옵니다. ‘C.D.L.’이 무엇일까요? ‘中東文庫’가 귀띔일 테지요. 둘을 맞물려서 살피니, 1922년에 처음 연 배움책숲(학교도서관)이라는 중동고등학교에 깃든 자국입니다. ‘大正 年 月 日 購入’이란 자국만 있고 날을 안 적었기에, 1914년에 나온 책을 중동고등학교에서 언제 받아들였는 지까지는 모릅니다. 그무렵 누가 읽었는지도 몰라요. 그저 이 책은 기나긴 날을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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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5.

숨은책 590


《셈본 5-1》

 문교부 엮음

 문교부·한국인쇄주식회사

 1952.5.30.



  1982∼1987년을 다닌 어린배움터에서 배움책(교과서)을 받으면 어떻게든 겉종이를 챙겨서 싸야 했습니다. 그무렵 집에 달종이(달력)가 없는 동무가 많고, 날종이(일력)라도 있으면 이 얇은 종이로 겉을 쌉니다. 안 싸면 배움책을 싸서 나오는 날까지 두들겨맞아요. 봄에 받아 여름에 내놓고, 가을에 받아 겨울에 내놓지요. 길잡이(교사)는 하나하나 보며 뭔가 끄적인 자국을 안 지웠으면 ‘안 지운 만큼’ 때렸습니다. 늘 맞으면서 배운 나날인데, 한겨레가 서로 싸우던 때에 미국이 베푼 종이로 묶은 《셈본 5-1》를 보던 옛 어린이는 어떤 하루였을까요? 차분히 즐겁게 배우도록 어린이를 이끄는 어른이 그립습니다.


* 책을 아껴 씁시다. 이 책은 다 배운 다음에 아우들에게 물려줄 책입니다. 깨끗하게 아껴 써서 물려받은 아우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시다. 물건을 아껴 쓰는 것도 전쟁에 이기는 생활의 하나입니다. 국제 연맹 한국 재건 위원단(운끄라)은 한국의 교육을 위하여 4285년도의 국정 교과서 인쇄 용지 1,540톤을 문교 부에 기증하였다. 이 책은 그 종이로 찍은 것이다. 우리는 이 고마운 원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층 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국을 재건하는 훌륭한 일군이 되자. (대한 민국 문교 부 장관 백 낙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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