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8.6.

숨은책 532


《私のなかの朝鮮人》

 本田靖春 글

 文藝春秋

 1974.10.5.



  미움을 가르치면 미움을 물려받아 미움을 키웁니다. 사랑을 가르치면 사랑을 이어받아 한결 너르고 깊이 사랑을 펴요. ‘미움 = 나를 잊고 남을 노려보고 꺾으라’는 길이고, ‘사랑 = 나를 스스로 돌보는 마음부터 키워서, 스스로 나를 돌보듯 기꺼이 이웃을 돌보는 숨결로 거듭나라’는 길입니다. 우리 터전은 으레 ‘국가안보·사회정의’란 이름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나를 잊도록” 내몰았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지키고 돌보고 가꾸는 길이 아닌, “나를 잊고 나라에 몸바치는 톱니바퀴가 되도록” 밀어붙였달까요. 이웃나라 사람들이 나라힘에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면, 나라에서 닦달해도 총칼을 안 들 테고, 옆나라로 쳐들어갈 일이 없겠지요. 우리도 똑같아요. 서슬퍼런 총칼로 억눌리던 기나긴 날이란 우리가 스스로 잊고 나라힘에 휘둘리던 몸짓입니다. 《私のなかの朝鮮人》은 1933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혼다 야스하루 님 발자취를 담습니다. 이이는 1968년 김희로(권희로)를 지켜보고서 《私戰》이란 책을 씁니다. 뒷날 〈김의 전쟁〉이란 영화로 알려지지요. 박정희 총칼나라를 나무라고, 재일조선인한테 벗바리가 될 글이며 책을 꾸준히 써낸 붓끝이란, 참다운 나를 스스로 사랑하려는 길이었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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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7.24. 단연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낱말책을 엮을 적에 어느 낱말을 올리거나 덜어내느냐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합니다. 꼭 더 넣어야 하느냐를 살피고, 이제는 덜어도 되려나 생각합니다. 둘레에서 아직 쓴다면 그대로 둘 만하고, 어느덧 해묵은 낱말이로구나 싶으면 그만 자리에서 내려와 조용히 쉬라고 속삭입니다.


  제가 안 쓰는 낱말 가운데 ‘단연(斷然)·단연코’가 있습니다. 이 한자말을 왜 안 쓰느냐 하면 즐겁게 생각을 펴도록 북돋우는 우리말이 수두룩하거든요. 이를테면 ‘바로·참말로·무엇보다·누구보다’나 ‘아주·매우·무척·몹시·너무’가 있어요. ‘더없이·그지없이·가없이·그야말로·이야말로’가 있고, ‘꼭·반드시·도무지·조금도·하나도’가 있으며, ‘먼저·마땅히·늘·언제나·노상’이나 ‘첫째·으뜸·꼭두·꽃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딱자르다’를 씁니다. 어떤 이는 우리말로만 쓰면 말결이나 말길이 좁지 않느냐고 합니다만, 우리말을 스스로 얼마나 살피거나 부리거나 다루거나 생각해서 쓰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아직 우리말을 우리말스럽게 쓰는 길을 거의 모르는 채 아무 말이나 쓰는 사람이지는 않을까요?


  아무 말이나 쓰면 아무 생각이나 합니다. 아무 말이나 쓰면 남(사회)이나 꾼(전문가)이 쓰는 말씨를 고스란히 따릅니다. 아무 말이나 쓰느라 아무 생각이나 하기에 남말이나 꾼말에 휘둘립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길이라면 스스로 말길을 찾고, 삶길이며 살림길이며 사랑길을 찾아요. 가장 쉬운 곳부터 헤아릴 노릇이에요. 생각을 담는 아주 조그마한 낱말 하나를 어느 만큼 살펴서 쓰느냐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생각이 무엇이며 어떻게 뻗어서 어떻게 자라는가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쉬운 말이 아름길(평화)인 까닭이 있어요. 쉽게 말하도록 말씨를 가다듬기에 어린이하고 동무를 하고, 풀꽃나무하고 마음으로 만납니다. 쉽게 글을 쓰려고 글결을 추스르기에 우리 마음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날갯짓하는 생각이 빛납니다. 쉬운 말은 아름길로 가는 첫단추이자 숲길이며 바다라고 할 만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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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7.24.

숨은책 530


《굳세월아 군바리 1》

 나병재

 서울문화사

 2003.11.25.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나면 누구나 겪기 마련이지만, 누구도 안 쓰거나 입을 다물려고 하는 ‘싸움판(군대)’ 이야기가 있어요. 하루 내내 퍼지는 거친 말씨에 주먹질에다가, 살곶이를 하고 싶어 새내기(신병)를 괴롭히는 짓, 마을가게 바가지, 끝없이 걷기, 끝없이 눈삽질, 끝없이 모래삽질, 끝없이 걸레질, 얼음 깨서 빨래하기처럼 쓸쓸한 일이 가득했어요. 《굳세월아 군바리》는 ‘서울내기 대학생’이 군대에 끌려가는 나날을 갈무리하는데, “그럼 한 번만 줘라! 한 번만 하고 가자!(14쪽)”나 “저곳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한 분께, 내가 한 번 준다!(180쪽)” 같은 대목처럼 살곶이에 넋나간 사내 모습을 잘(?) 그립니다. 싸움판(군대)이란, 새내기(신병·이등병) 적에 얻어맞고 시달리던 나날이다가 차츰 윗자리(고참)가 되며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며 길드는 굴레입니다. 맞은이(피해자)였으나 때린이(가해자)가 되는 사내가 수두룩합니다. 이 탓에 끔찍한 그곳 이야기가 외려 안 드러나는구나 싶어요. 맞거나 짓밟혔기에 똑같이 때리거나 짓밟아야 할까요? 이런 곳이 싸움판인데 나라(정부)도, 숱한 사내도 쉬쉬합니다. 아이들은 싸움판 아닌 숲을 누려야 합니다. 싸움판은 주먹질(폭력)뿐 아니라, ‘동성폭력’이 늘 춤추는 곳입니다.


ㅅㄴㄹ


끔찍한 비추천도서이지만
비추천도서이기에
더 차분히 '군대 문제'를 
단출히 적어 보려 했다.

폭력을 되풀이해서 되물림하고
사회에 퍼뜨리는 바탕이
바로 군대라고 할 만하다.

군대에서 길들지 않으려고
날마다 싸워야 했고,
동성폭력을 끊으려고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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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70


《불론디의 英語》

 Chic Young 글·그림

 신동운 엮고 옮김

 문학사

 1963.9.20.



  그림꽃(만화)을 좋아하고 동무하고 뛰놀기를 즐기지만 어머니가 갖은 일을 다 하는 줄 알기에 집안일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보내던 어린날입니다. 어머니는 이웃집 아주머니하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노릇도 합니다. 형하고 틈틈이 어머니를 거드는데, 다 돌리고 한두 자락쯤 남으면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우리가 돌리는 새뜸’을 드리고 ‘아주머니가 돌리는 새뜸’을 받아요. 예전에는 집마다 아버지(아저씨)가 새뜸을 펴서 읽기를 좋아하는 만큼, 이 새뜸 한 자락이 퍽 값졌습니다. 어른이 다 보고 나면 이제 헌종이로 삼을 테니 모두 이 새뜸종이를 노립니다. 저는 이 가운데 한칸그림이나 넉칸그림을 노려요. 그무렵 〈한국일보〉에는 ‘블론디 만화’를 실었습니다. 영어를 배울 적에 좋다면서 둘레에서 많이 오려모으는데, 어쩐지 미국살림이 낯설어 영 재미없었습니다. 《불론디의 英語》는 진작부터 ‘만화 몇 칸’으로 ‘살아숨쉬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짚어 주는 길잡이책입니다. 이 책에는 “경기여자고등학교 도서관 “標語 : 讀書는 向上의 길, 注意 : 책장을 넘길때 손에 침칠을 마십시요”나 “기증도서 : 중 1학년4반 김용주·고영신·신창숙·지정애 (1964.11.14.)” 같은 자국이 있습니다. 새삼스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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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82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

 편집부 엮음

 진주프린트사

 1946.10.20.



  어릴 적에는 흰종이 구경이 어려웠습니다. 흰종이는 배움터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할 적에 글살림집(문방구)에 가서 한 자락에 20원을 치르고 샀어요. 1982년에 어린이는 버스를 타며 60원을 치렀습니다. 하얀 그림종이 한 자락에 20원이란 만만하지 않은 값입니다. 이와 달리 누런종이(갱지)는 20원이면 스무 자락을 사지요. 그렇다고 누런종이를 마음껏 쓰지는 못해요. 다 돈이거든요. 딱종이(딱지)를 접을 종이조차 모자라고, 배움터에서는 다달리 마병모으기(폐품수거)를 시키니, 늘 종이 한 쪽이 아쉬운 나날이었습니다. 우리 종이살림은 1990년으로 접어들며 나아졌지 싶은데, 총칼굴레(식민지)에서 갓 풀린 1946년이라면 종이가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은 경남 진주에 있던 ‘진주프린트사’에서 쇠붓(철필)으로 그려서 찍은 배움책인데, 겉종이는 미군이 쓰던 길그림(지도)을 잘라서 댔어요. 안쪽에 ‘U.S.Navy Hydrography’ ‘From Netherlands Government charts to 1941’ 같은 글씨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미군은 길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버렸을까요. 한글이 아닌 다른 글씨요, 종이가 두껍고 좋으니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를 가르치는 책에 쓸 종이로 삼자고 여겼을까요. 배우려는 마음은 언제나 대단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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