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528


《1·21의 증인》

 김신조 글

 대한승공교육문화사

 1971.1.21.



  우리 아버지가 싸움밭(군대)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1’이 일어났고, 그 뒤로 사내는 싸움밭살이(군대생활)가 늘어나고, 예비군이 생기고, 온나라 사람한테 주민등록번호를 매겨서 집안살림까지 샅샅이 부라립니다. 1996년 여름에는 강원도로 북녘 물밑배(잠수함)가 넘어오고, 이때 강원 양구에서 싸움밭살이를 하던 저는 한 달 남짓 잠을 못 자는(24시간 전원 경계근무) 나날이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여느 사람들이 시달립니다. 옛날부터 어느 나라이든 싸움붙이(전쟁무기)를 잔뜩 움켜쥐면서 여느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1·21의 증인》을 읽으면 북녘이 얼마나 차갑고 서슬퍼런 바보짓을 하는가를 엿볼 만한데, 남녘이라고 안 차갑거나 안 서슬퍼렇지 않아요. 우두머리하고 벼슬자리가 사라지지 않고서야 어깨동무(평화)가 싹틀 틈은 없지 싶습니다. 총칼을 들고 으르렁거리는 곳에는 사랑이 없어요.


ㅅㄴㄹ


오늘 이렇게 인간 된 양심으로 신조의 전부를 말하게 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읍니다. 저에게 새로운 인간이 될 기회를 열어 주시고 따뜻한 정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박대통령 각하와 정부 및 전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사랑과 지도 편달이 있으시기를 바라겠읍니다. (이 책을 내면서/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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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99


《한국의 굿 5 평안도 다리굿》

 김수남 사진

 황루시·김열규·이보형 글

 열화당

 1985.3.20.



  어릴 적 곳곳에서 굿집을 보았습니다. 굿집에서 사는 동무도 여럿 있습니다. 어느 아이는 굿집을 숨기고, 어느 아이는 스스럼없습니다. 굿집이건 쌀집이건 책집이건 자랑거리도 숨길거리도 아닐 텐데, 배움터에서는 굿을 나쁘게 여기도록 얘기했습니다. 아이가 몹시 아플 적에 곧잘 굿을 했어요. 저는 워낙 여린 몸이라 “얜 굿을 해야 나으려나?” 소리를 들었어요. 칼로 째거나 뭘 먹으며 낫기도 할 테지만, 온마음을 기울여 튼튼하기를 비는 굿판일 텐데 싶어요. 푸른배움터까지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굿을 다룬 책을 하나둘 스스로 챙겨서 읽었습니다. 《한국의 굿》 꾸러미는 열일곱 살에 처음 만났고 스무 살을 넘어서며 모두 챙겨 읽었는데, 인천은 바닷마을이기에 굿집이 그렇게 많을밖에 없더군요. 바닷일을 하러 멀리 나가는 뱃사람이 걱정없기를 비는 굿이 흔했다더군요.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던 굿인데, 지난날 어린배움터(국민학교)는 왜 굿을 낡고 나쁘다고만 다뤘을까요? 인천에서 두고두고 내림으로 흐르던 굿살림을 문화·문화재로 보는 눈길을 왜 진작 키우지 못했을까요? 수수한 살림자리에서 조촐히 잇는 삶에는 ‘문화·예술·전통’ 같은 한자말 이름을 거의 안 붙이던 버릇 탓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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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19.

숨은책 524


《부에노와 말로》

 이원복 글·그림

 새소년

 1987.10.10.



  아주 어릴 적에는 그림꽃(만화)을 누가 그렸는가는 안 보았습니다. 그저 손에 쥐고서 파라락 펼치기 바빴습니다. 열 살 즈음 이르자 이제는 이름(그림꽃 이름·그림꽃님 이름)을 들여다봅니다. 열 살 언저리까지는 그림꽃이라면 다 들여다보았다면, 열 살을 지나고부터 마음에 드는 그림꽃님 이름을 찾아서 그 그림꽃부터 펼쳤습니다. 《부에노와 말로》는 그리 눈에 가지 않았으나 로봇을 그린 드문 그림꽃이라서 챙겨 보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착한이·나쁜이를 가르는 틀에 맞추고, 나쁜이는 박살나도 좋다는 얼거리로 흐르는데, 착한이가 나쁜이를 골탕먹일 적마다 도리어 쓸쓸하고 읽기 힘들었습니다. 착한이라면서 왜 골탕을 먹일까요? 나쁜이는 착한이가 늘 괴롭히고 골탕을 먹이니 더 악에 받치지 않을까요? 이 그림꽃을 빚은 분은 이윽고 《먼나라 이웃나라》를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붓을 매섭게 휘두릅니다. 곰곰이 보면, 한쪽 길만 옳다고 여기면서 이웃을 골탕먹이거나 괴롭혀도 좋다는 틀을 아이들한테 넌지시 심은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이러다가 《ロボット三等兵》이라는 그림꽃을 문득 보았어요. 일본에서 1955년부터 나왔는데, 어쩐지 ‘부에노’ 같고, 어느 모로 보면 ‘로봇 찌빠’ 같기도 하더군요.


ㅅㄴㄹ


1 : https://ja.wikipedia.org/wiki/%E5%89%8D%E8%B0%B7%E6%83%9F%E5%85%89

2 : https://ja.wikipedia.org/wiki/%E3%83%AD%E3%83%9C%E3%83%83%E3%83%88%E4%B8%89%E7%AD%89%E5%85%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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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15.

숨은책 468


《아버지와 아들 4》

 e.o.플라우엔 글·그림

 이숙희 옮김

 규장문화사

 1987.9.25.



  2005년에 ‘새만화책’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두툼하면서 곱게 펴내 주었습니다. 1987년에 처음 태어난 《아버지와 아들 1∼4》이 다시 빛을 보았어요. 1987년에는 독일로 배움길을 다녀온 어느 분이 알뜰하게 건사하면서 누리다가 독일대사관이 도와서 ‘규장문화사’에서 펴냅니다. 이무렵 여느 펴냄터에서 만화책을 내는 일이 드물었으나, 믿음길을 가는 곳에서 펴내며 여러 책숲(도서관)에 이 책이 깃들곤 했다지요. 그린이는 ‘나치 독일’이 아닌 ‘수수한 독일’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나치 아닌 수수한 사람을 사랑한 나머지 나치한테 붙들려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지요. 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차갑고 매몰차면서 어둡던 나날에 ‘어버이하고 아이’가 어떤 사이로 지낼 적에 아름답게 사랑이 피어나는가를 눈물하고 웃음으로 그려요. 저는 이 작은 만화책을 헌책집에서 보이는 대로 장만해서 이웃님한테 드리곤 했습니다. 알아보고 펴낸 손길이 있고, 눈여겨보며 건사한 헌책집지기 손빛이 있기에 두고두고 되새기는데, 제 곁에 둘 책을 장만하며 헌책집지기 이름쪽을 살짝 꽂아 놓았어요. ‘이문시장 앞 신고서점’은 이제 ‘덕성여대 앞 신고서점’으로 바뀌었고, 이문시장은 잿빛집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ㅅㄴㄹ

#ErichOhser #VaterundSohn


https://www.amazon.co.jp/s?k=Erich+Ohser&i=stripbooks&__mk_ja_JP=%E3%82%AB%E3%82%BF%E3%82%AB%E3%83%8A&ref=nb_sb_n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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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15.

숨은책 476


《바바마마를 찾아서》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샘터 옮김

 빛글

 2012.1.20.



  어릴 적에 그림책을 누린 일은 없다시피 하지만, 보임틀(텔레비전)이 바야흐로 집집으로 퍼지던 무렵에 주한미군방송(A.F.K.N.)이 ‘2’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주한미군방송에서 흐르는 말을 어린이가 알아들을 턱은 없으나 만화영화는 그림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세사미 스트리트’하고 ‘바바파파’를 반갑게 누렸습니다. 다만 어릴 적에는 ‘세사미·바바파파’ 같은 이름은 몰랐고 ‘닭사람·인형사람’이나 ‘물렁물렁 분홍이’쯤으로 여기면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난 1994년에 《바바빠빠》란 이름으로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퍽 늦었지요. 2012년에는 ‘빛글’이란 곳에서 ‘바바파파’ 이야기를 일곱 꾸러미로 선보였어요. ‘바바파파’가 처음 태어나서 마주하고 맞닥뜨리는 숱한 이야기에, 바바마마를 만나고 일곱 아이를 낳아서 재미나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포근히 들려주었습니다. 아름그림책이 뒤늦게라도 우리말로 나오니 고마우나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아름책이기에 꼭 오래오래 팔리거나 읽혀야 하지 않고, 새로 짓는 이야기로 담는 책이 넉넉히 태어나면 좋아요. 그나저나 ‘싸움을 멀리하고 조용하며 푸르게 사랑을 노래하는 마음 고운 바바파파’ 이야기를 주한미군방송에서 처음 알려준 셈인데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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