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9.4.

숨은책 540


《재미있는 종이접기 (120가지)》

 편집부 엮음

 남향문화사

 1971.5.5.



  어릴 적에 종이접기를 꽤 좋아했으나 막상 마음껏 쓸 만한 종이가 적었습니다. 2000년을 넘어선 뒤로는 종이가 매우 흔하다고 느끼지만, 1990년 첫무렵까지도 종이를 무척 아껴썼어요. 알림쪽(광고지) 뒤가 하얗다면 알뜰히 건사했어요. 어린이로 살던 1980년 언저리에는 길에 구르는 종이가 없나 하고 살피고, 신문종이까지 고마이 여겼습니다. 나중에 보니 모든 곳에서 종이가 드물지는 않더군요. 가난살림인 마을에서는 무엇이든 아쉬울 뿐이에요. 껌종이도 주워 두루미나 별이나 공이나 개구리를 접습니다. 집에 ‘종이접기책’이 있던 동무가 있었는지 모르나, 다들 눈썰미로 배우거나 스스로 길을 찾아내어 접었습니다. 《재미있는 종이접기 (120가지)》는 1971년에 나왔고, ‘여성단체협의회 추천도서’ 글씨를 겉에 박습니다. 그때 이런 책이 다 있었네 싶어 놀랍지만, 줄거리는 일본책을 고스란히 가져왔어요. ‘오리가미(折り紙)’는 일본 살림이고, 종이오리기는 중국 살림이며, 노엮기(지승공예)는 우리 살림입니다. 처음은 이와 같더라도 서로 얼마든지 받아들이거나 배울 만하고, 우리 나름대로 ‘종이접기’란 이름을 지었어요. ‘일본 종이두루미’하고 ‘우리 종이두루미’는 다르게 접어요. 종이로 꼬물거리며 시름을 잊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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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30.

숨은책 545


《續 主婦之友 花嫁講座 第五卷 習字兼用 手紙の書き方》

 石川武美 엮음

 主婦之友社

 1940.7.31.



  배움터가 서기 앞서는 순이돌이 누구나 집일·집살림을 같이 건사하고 배우며 돌보는 길이었습니다. 임금붙이·벼슬아치·글바치라면 글을 익히거나 읽었을 테지만, 수수한 순이돌이는 흙을 만지고 풀꽃나무를 읽으며 해바람비하고 동무하는 나날이었어요. 일본도 우리나라도 ‘국민교육’을 “하루 빨리 글과 셈을 익혀서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싸울아비(군인)나 톱니바퀴(부속품)가 되라”는 밑뜻으로 시켰습니다. 지난날 돌이(남자)만 으레 배움터에 밀어넣어 ‘국민교육’을 시켰는데, 싸움터 총알받이로 잔뜩 내보내야 했거든요. 이동안 순이(여자)는 집일과 아이돌봄을 도맡도록 갈라요.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지어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주던 옛날에는 함께 일하고 쉬고 놀고 배웠습니다.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할 적에는 늘 순이돌이가 어깨동무였어요. 《續 主婦之友 花嫁講座 第五卷 習字兼用 手紙の書き方》는 ‘싸울아비가 되도록 배움터에 들어가는 길이 막힌 순이’를 가르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밥짓기·옷짓기도 가르치지만 ‘글씨쓰기’도 가르칩니다. 일본은 순이한테 글씨를 가르치는 여느 책까지 냈습니다만, 우리는 순이한테 글씨를 가르칠 생각을 안 하기 일쑤였어요. 총칼에 눌렸다고는 하나, 돌이 스스로 눈을 안 떴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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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8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

 강형원 글·사진

 아트스페이스

 1989.



  ‘사진기자’는 사람이 아닌 이름에 따라 똑같은 숨결을 사뭇 다르게 담습니다. ㅈ에서 일하느냐 ㅎ에서 일하느냐로도 다르지만,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려느냐는 마음에 따라 확 다릅니다. ‘전투경찰·백골단’이라는 이름을 거느리는 눈길,  시위대·대학생’이라는 이름을 거머쥔 눈길,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만 마친 눈길, 아무 배움턱을 안 디딘 눈길이 다를 뿐 아니라, 서울눈하고 시골눈이 달라요.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바탕으로 나라지기를 뽑는 자리하고 들불처럼 번진 목소리를 묶습니다만, 수수하게 살림자리를 이룬 여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에 “빛나는 자랑이 될 올림픽”에 사로잡혀요. ‘검은짓(대통령 선거 부정)’을 알았어도 안 파헤쳐요. 퓰리처상은 안 받아도 되니, 골목집·시골집에서 마을사람·숲사람으로 살면서 ‘찰칵’ 찍기를 바라요.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에는 우리 기자들이 그 선거의 공정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재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기자들 대부분이 여기저기에서 부정이 저질러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선거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을 내리자, 야권 후보들은 심한 배신감을 나타냈다. (19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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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9


《television, the first fifty years》

 Jeff Greenfield 엮음

 Abrams

 1977.



  영어 ‘텔레비전’을 ‘바보틀(바보상자)’로 옮기기도 하지만 그냥 ‘티비(티브이)’나 일본말 ‘떼레비(테레비)’라 하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이 살림을 곰곰이 보면, 우리가 딸깍 켜 놓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봅니다. 토를 달 일이 없고, 못마땅하다면 다른 길(채널)로 돌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그리기보다 남이 보여주는 대로 휩쓸리기 쉽기에 ‘바보틀’이란 이름으로 옮길 만해요. 그래도 조금 추슬러서 바라보자면 ‘보임틀’쯤으로 옮겨도 어울려요. 보여주는 틀이니까요. 《television, the first fifty years》는 1977년이 “보임틀 쉰 돌”이라면서 이를 기려 두툼하게 엮습니다. 1928년부터 비롯한 볼거리란 무엇이고, 사람들은 무엇을 누리고, 이 보임틀로 무엇을 알리거나 팔려 하고, 나라흐름이나 삶흐름을 어떻게 얼마나 바꿨는가 하고 헤아려요. 우리한테 1977년은 아직 까마득히 억눌리던 총칼나라였으니 “보임틀 쉰 돌”을 생각할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어른아이 모두 보임틀 곁에 우르르 몰려앉아 마당놀이나 골목놀이가 감쪽같이 사라지도록 부추긴 한복판입니다. 참말로 1977년부터 열 해 뒤에는 마을놀이는 싹 자취를 감춰요. 이러면서 배움수렁(입시지옥)이 깊어가고 들빛도 숲빛도 스러져 갑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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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4


《철강지대》

 정화진 글

 풀빛

 1991.3.13.



  서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달리 일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길이 다르고, 저마다 삶자리에 맞추어 일거리를 찾습니다. 우리나라를 본다면, 힘·돈·이름으로 억누르거나 들볶는 짓이 꽤 길었어요. 이웃나라가 쳐들어온 때라든지 막짓 우두머리가 선 때뿐 아니라, 위아래로 사람을 가르던 오백 해가 있어요. 고구려·백제·신라란 이름으로 다툴 적에 수수한 흙지기인 사람들은 늘 싸울아비로 끌려다니면서 고단했습니다. 《철강지대》는 아름물결(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피어나던 무렵 나온 ‘일글(노동소설)’입니다. 그런데 이 일글을 읽다 보면 힘꾼·돈꾼·이름꾼이 일삼던 비아냥이나 금긋기나 끼리질이나 줄세우기 버릇을 ‘일꾼도 똑같이’ 하던 티가 군데군데 드러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일하는 땀값을 제대로 받고 나누는 아름누리를 바라는 길에서, 우리는 어떤 눈빛일 적에 어깨동무를 하며 즐거울까요? 틀이나 울타리를 세우면 속에서 곪습니다.


“니미럴, 요즘 애들은 당최 사내새끼들 같지 않아가지구, 차려입은 것 좀 봐라, 저게 기집애지 사내냐, 허허 참.” (24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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