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22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정인 글

 거름

 1985.6.20.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치면서 1994년에 ‘지옥철(인천·서울 전철)’을 타느냐, 서울 이문동에 삯집을 얻느냐로 망설이니 “이 집도 빚으로 살잖아? 삯집 얻어 줄 돈 없어.” 하는 어머니 말을 듣고는 ‘하루 다섯 시간씩 책을 읽지’ 하고 여겼어요. 어릴 적에는 부천을 지나며 복사밭을 흔히 봤어요. 열아홉 살에는 새벽과 밤마다 납작오징어가 되었지요. 짐짝조차 아닌 납작오징어. 납작이가 되어도 손을 위로 뻗어 악으로 책을 폈고, 바람날개(선풍기) 없이 여닫이를 올려서 들어오는 바람으로 겨우 숨돌리는데, 칸마다 일본 글씨랑 ‘MITSUBISHI·MITSUI’ 같은 이름이 붙기에 알쏭하다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읽고서 뒤늦게 속내를 알았어요. 아리송한 대목을 풀어준 어른은 못 만났어도 이때부터 책을 널리 만났어요.


서울 지하철 건설이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무렵이었다 … 박 대통령은 별 주저없이 건설을 명령하였다. 미쓰비시, 미쓰이 등 일본의 대기업들이 공사입찰에 달려들었다. 낙찰결과는 1대에 평균 6350만 엥이었으며 … 당시 일본의 국내가격은 대당 3240만 엥 … 일본 대기업이 취한 폭리액수는 2003억 엥이었는데, 그 중 7억 5천만 엥을 공화당 실력자였던 김성곤을 통해 정치자금으로 헌납했다. (21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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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8.

숨은책 531


《the Analyzed Bible : the prophecy of ISAIAH vol 1》

 Campbell Morgan 머리말

 Fleming H.Revell com

 1910.



  옆에 서울이 붙은 탓에 서울내기는 인천에 오면 “야, 인천에는 그런 것 없잖아?” 하고 놀렸습니다. “뭐야, 인천이 시골이냐? 토큰도 없네?”로 놀리기도 했어요. ‘쇠’라고도 하던 작고 동그랗고 구멍이 뚫린 삯쪽(차표)을 종이로 하건 쇠로 하건 뭐가 대수로울까 싶은데요. 인천도 1992년에 쇠로 찍은 삯쪽이 나오지만 몇 해 뒤 사라집니다. 이젠 쇠도 종이도 아닌 네모판(교통카드)으로 넘어가거든요. 《the Analyzed Bible : the prophecy of ISAIAH vol 1》은 ‘이사야’를 담은 거룩책인데 1910년에 처음 나오고서 1939년에 “Presented to the Library of the Moody Bible Institute by Mrs.G.H.Warwick 1939”란 쪽종이가 붙은 채 ‘무디 성경 학교’로 가고, 어느 해인지 모르지만 ‘광주신학교 도서관’으로 간 뒤에 버림받습니다. 어릴 적에 “인천에 무슨 역사가 있는데?” 같은 놀림말을 익히 들으면서 ‘자잘해 보이는 자취’를 담은 종이나 책이나 새뜸을 늘 건사하려 했어요. 오늘(1980년대)은 이곳이 후질는지 모르나, 앞으로는 이곳 자취를 새롭게 남기고 싶었거든요. 삶터를 전남 고흥으로 옮긴 2011년부터 전라도 쪽 ‘자잘한 자취’가 눈에 밟힙니다. 흐르고 거치는 책 한 자락에 깃드는 이야기를 이 고장은 얼마나 읽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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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8.

숨은책 529


《황금의 꽃 1》

 이현세 글·그림

 팀매니아

 1995.10.7.



  어릴 적에는 그림꽃책(만화책)을 보면서 왜 붓결이 일본스러운가를 잘 몰랐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일본 그림꽃을 마치 우리 그림꽃인 듯 꾸미거나 바꾸어서 팔기 일쑤였어요. 어린이 주전부리도, 어른들이 먹거나 마시거나 즐기는 살림도 온통 일본 살림살이를 베끼거나 따오거나 훔쳤습니다. 앞서거나 좋아 보이니 배울 만한데, 베낌·따옴·훔침은 배움하고 가장 멀어요. 배울 적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를 살펴 새로짓는 길로 나아갑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쩐지 우리스럽지 않은 이야기요 그림이라 느꼈는데, 가만 보면 총칼로 짓눌리던 지난날 살림살이를 1980∼90년대에도 털지 못한 우리 민낯이에요. 2020년대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서 그림님이 스스로 달라지려고 몹시 애쓴다고 느꼈지만 웃사내(마초)다운 결을 놓지 않아요. 그림꽃님(만화가)을 법으로 다스리려던 《천국의 신화》를 볼 적에도, 돈에 얽매인 푸른별 속살을 다룬 《황금의 꽃》을 볼 적에도, 그림님은 웃사내스러운 붓끝을 폅니다. 이 붓끝이 나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고스란히 우리 민낯입니다. 어깨동무가 아닌 돈질·이름질·힘질이 물결치는 판이고, 이를 그림꽃에 낱낱이 담았을 뿐이에요. 그저 그렇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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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7


《北傀의 南侵態勢》

박정희 국가비상사태선언

문화공보부

1971.12.6.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어른들 윽박질을 들으면서 자라며 늘 궁금했어요. 북녘은 사람들이 굶주려도 싸움연모(전쟁무기)에 쏟아붓고 싸움질만 시킨다지만, 남녘도 똑같아 보여요. 북녘이 싸움연모를 멈춰야 한다고 외치는 남녘이지만, 막상 남녘도 싸움연모에 더 돈을 퍼부을 뿐, 둘은 나란히 달렸어요. 남북녘 두 나라는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총칼을 들이대도록 사람들을 내몰고 길들인 셈이지 싶더군요. 《北傀의 南侵態勢》처럼 얇은 사진책을 으레 보았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는 이런 사진이나 글을 읽고서 반공독후감을 쓰고 반공포스터를 그리라 시켰어요. 임금자리를 지키려고 ‘국가비상사태’란 말을 지어내어 퍼뜨렸겠지요.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걱정을 심고 스스로 싸움박질이 일어나도록 미움·불길을 일으켰겠지요. 총칼은 사랑이 아닌 싸움이자 죽음으로 이어주는 길입니다.


이 책자를 보시는 분에게 : 3. 이 책자는, ‘국가비상사태선언’의 올바른 인식과그 실천을 위한 정부의 특별홍보계획의 하나로서, 북괴의 남친태세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소름끼치는 전쟁도발의 흉모를 사전에 분쇄하는, 강철같은 국민총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 자각과 분발을 촉구하고자 하는데 근본목적이 있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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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6


《朝鮮野史全集 卷二》

 윤백남 엮음

 계유출판사

 1934.7.25.



  나라 목소리를 갈무리한 자취라 ‘정사(正史)’요, 나라 목소리가 아닌 자취를 갈무리해서 ‘야사(野史)’라고 합니다. 나라에서 하기에 옳다(正)고 내세우면서 ‘나라자취’란 이름으로 들사람(野) 목소리를 뒷전으로 두곤 합니다. 틀을 지키자니 사람들 눈길이나 마음을 가두려 하지요. 《朝鮮野史全集 卷二》는 나라밥을 먹는 쪽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뒷이야기나 숨은얘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들노래나 들이야기까지는 아니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사·야사’ 모두 임금과 벼슬아치를 둘러싼 이야기에서 그치거든요. 나라자취조차 ‘이 나라가 다스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들여다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습니다. 나라자취가 못미더워서 뒷이야기를 남기는 쪽에서도 ‘나라를 이룬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짓고 돌보며 누리는 하루’를 살펴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아요. 1934년에 나온 ‘야사’뿐 아니라 그 앞뒤에 나오는 숱한 ‘야사’도 한문투성이였습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흙을 일구어 살림하고 옷·밥·집을 손수 건사하는 하루를 ‘우리말 아닌 한문’으로 얼마나 그려낼 만할까요? 들사람이 들살림을 지으며 들아이한테 들노래를 물려주고 들꽃을 돌보는 들빛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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