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쓰는 끈으로 책을 묶기


 1995년부터 책을 끈으로 묶는 솜씨를 익혔습니다. 1995년에는 옥매듭 짓기를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아직 서툴었습니다. 그러나 옥매듭 짓기가 서툴든 익숙하든 살림집을 옮겨야 했고 책을 묶어야 했습니다. 2000년 2001년 2002년이 되면서 옥매듭 짓기는 차츰 발돋움합니다. 해마다 잔뜩 늘어나는 책살림을 해마다 다시 묶고 풀면서 시나브로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힙니다. 2003년 2005년에는 손바닥 굳은살이 더 두꺼워지고, 책 묶는 솜씨는 한결 발돋움합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더는 책을 묶고 싶지 않았으나 또 책을 묶고 나르면서 옥매듭 짓기는 더욱 나아졌고, 2009년과 2010년에는 이제 마지막이라고 여기면서 또 묶고 또 풀면서 손바닥이 통째로 굳은살이 됩니다. 2008년에 태어난 첫째 똥오줌기저귀를 날마다 수십 장씩 빨면서 굳은살이 아주 단단해집니다.

 이제 내 손이 좀 쉬면서 책묶기 아닌 책읽기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2011년 다시 책묶기를 합니다. 묶고 풀기를 되풀이하면서 책을 다루는 매무새는 차츰 거듭나는데, 나는 책을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인데, 책을 다루는 매무새가 이렇게 거듭나는 일이란 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을 묶으며 땀방울이 이마에서 툭툭 떨어져 신문종이를 적시는 동안,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는 하루 내내 아이 곁에 붙어서 젖을 물리고 재우며 노래합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아닌 한 해 두 해 세 해입니다. 아이는 세 해쯤 되니 이제 스스로 마음껏 뛰놀며 제 살아갈 길을 찾아나서려는 모양새가 엿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이 스스로 뭔가 일거리를 찾을 수 없으니, 더 오래 어버이가 곁에서 밥과 옷과 집을 사랑과 믿음으로 베풀어야겠지요.

 2011년에 또다시 책묶기를 하며 예전에 쓰던 끈을 꺼냅니다. 1995년부터 쓰던 끈 가운데 버린 끈은 얼마 안 됩니다. 너무 오래되거나 낡아 끊어지면 버리지만, 웬만해서는 안 버리고 1995년 끈까지 꽤 남아, 이 끈을 새로 잇고 덧대면서 2011년까지 고이 씁니다. 예전 끈을 늘 되쓰지만 되쓰는 끈으로는 해마다 새로 책묶기를 할 때면 으레 많이 모자라서, 지난날 쓰던 끈하고 견주면 곱배기로 장만해서 씁니다. 2010년에는 푸른끈을 아마 80개쯤 사다 썼지 싶어요.

 고뿔을 앓는 첫째는 새벽녘에 코피를 잔뜩 쏟고도 그냥 곯아떨어집니다. 얼굴 닦는 천에 물을 묻혀 아이 얼굴과 코 둘레를 닦고 코에 물을 몇 방울 넣습니다. 태어나던 병원에서 억지로 맞힌 철분제와 항생제 주사 때문에 몸앓이를 하는 둘째는 밤새 끄에끄에 소리를 내면서 잠투정을 하고 잠꼬대를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도 끄에끄에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곁에서 토닥이며 젖을 물려 새근새근 재웁니다. 이제 아버지는 간밤 똥오줌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해대면서 아침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해야겠지요. (4344.6.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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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삶과 사랑


 아이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라는 몸이 되어 제 목숨을 누릴 때에는 꼭 세 가지를 돌아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첫째는, 아이 스스로 제 목숨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껴 저와 동무와 살붙이와 이웃이 다 달리 아름다운 사람인 줄을 알도록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아이가 살아가는 나날을 어떻게 하면 아이 손으로 착하게 꾸릴 수 있는가를 깨닫도록 돕는 일입니다. 셋째는, 아이가 아이 삶과 어버이 삶과 이웃 삶과 동무 삶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살펴서, 이 사랑스러운 삶을 참다이 껴안을 수 있도록 어깨동무하는 일입니다. (4344.6.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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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깃든 땀과 값과 꿈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구면서 좋은 글을 쓰려고 좋은 땀을 흘려 좋은 책 하나 태어납니다. 좋은 책 하나 태어났을 때에는 좋은 일을 해서 번 좋은 돈으로 좋은 마실을 즐기면서 좋은 책방에서 좋은 손길을 내밀어 좋은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장만합니다.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발걸음으로 좋은 골목을 천천히 거닐거나 좋은 자전거를 산들한들 달리며 좋은 보금자리로 돌아옵니다. 좋은 살림집에서 좋은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좋은 푸성귀와 곡식으로 마련한 좋은 밥을 차려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하루를 보냅니다. 좋은 잠자리를 펼쳐 좋은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좋은 꿈을 맞아들이도록 하고, 살짝 좋은 틈을 내어 좋은 책에 서린 좋은 얼을 되새깁니다. 좋은 책을 좋은 매무새로 읽으면서 내 좋은 삶을 한결 좋은 길로 거듭나도록 보살피는 좋은 기운을 얻습니다. 좋은 땀이 깃든 좋은 책을 읽으면서 내 좋은 삶을 날마다 새롭게 북돋웁니다. 좋은 책은 나 스스로 좋아하는 어여쁜 일터에서 땀흘려 얻은 삯을 그러모아 장만합니다. 좋은 꿈은 좋은 책을 하나둘 꾸준하게 맞아들이면서 좋은 흙을 밟고 좋은 바람을 쐬며 좋은 햇살을 누리는 기쁨을 밑밥 삼아 키웁니다. 나날이 책을 사귀고 책을 만나며 책을 사랑하며 지내는 동안, 책삶은 사랑삶으로 뿌리내립니다. (4344.6.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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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지는 빛


 새벽 네 시 반, 달 지는 빛을 본다. 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서 달 지는 빛만 마냥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해 뜨는 빛을 함께 바라본다. 해가 뜨는 빛살이랑 달이 지는 빛살이랑 똑같다. 지는 달과 뜨는 해는 같은 빛무늬이다.

 어릴 적에도 달 지는 빛을 본 적 있었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보았다고 떠오른다. 아주 드물게, 몹시 드물게, 한 해에 한 번쯤, 두어 해에 한 번쯤 보았다고 떠오른다.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어른이나 동무는 없었다. 달 지는 빛을 보여준 어른이나 동무도 없었다. 나 또한 동무한테 달 지는 빛을 보여줄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제껏 살아오며 내 둘레 살붙이라든지 이웃한테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적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웃마을을 천천히 돌던 요 며칠 헉헉거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혼자 헉헉거리는 자전거마실이 아이한테 뜻이 있을까. 아이 또한 헉헉거리며 길을 달려야 보람이 있을까. 아이랑 어버이가 즐기는 자전거마실이란 무엇일까. 아주 머나먼 길을 달릴 때에 자전거마실이라 할 만할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 일하고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무슨 삶을 보여주고 어떤 길을 지나며 이렇게 함께 오가는가.

 자전거는 어느새 논둑길을 달리고, 아이는 내려 달라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이는 수레에서 내려 논둑길을 작은 발 콩콩거리면서 내닫는다. 벼포기를 바라보고 논물을 바라보며 먼 멧등성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아버지가 바라보는 데를 아이가 바라본다.

 밤오줌을 스스로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된다면, 우리 집 첫째도 머잖아 아버지하고 달 지는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겠지.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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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숲이 아니어도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아늑하게 둥지를 틀 수 있고,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합니다. 나무는 어느 나무라 하든 좋습니다. 굴참나무이든 떡갈나무이든 멧벚나무이든 물푸레나무이든 살구나무이든 오얏나무이든 뽕나무이든 다 좋습니다. 온갖 나무가 백 그루쯤 뒤섞여 우거져도 좋습니다.

 사람이 빚은 책이 될 때에는, 좋은 책이 아니어도 백 권쯤 모이면 사람들이 즐겁게 펼칠 수 있거나 고맙게 쥘 수 있거나 아름다이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빚은 책은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백 권쯤 갖춘다면, 또 천 권이나 만 권쯤 갖춘다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갖춘다면 어떠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저 책이 있는 까닭은 이 책을 보고픈 사람과 저 책을 읽고픈 사람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얼크러진 삶터이니 다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온갖 책이 있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달리 아름다울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제법 팔리며 돈이 될 만한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아리송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참으로 좋다고 할 만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라면, 천 권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꼭 백 권쯤만 알뜰히 추려, 책꽂이 하나 좋은 나무를 골라서 짠 다음, 얌전히 꽂고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때가 더없이 어여쁘리라 생각합니다.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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