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 영풍문고


 시외버스를 내린 광주역 한켠에 커다란 영풍문고가 있다. 아니, 영풍문고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책방 문간에는 한글로 ‘영풍문고’라 적히지 않는다. ‘YPBOOKS’라고만 적힌다.

 어마어마하게 많다 싶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외버스역 둘레 커다란 저잣거리에서 아이 손을 잡으며 이맛살을 찡그린다. 아이는 버스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시끄러우면서 어수선한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대로 뛸 수 있어 좋다며 웃는다.

 어쩐지, 이렇게 어수선한 저잣거리 한켠에 책방이 있다는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서울 연신내 먹자골목으로 바뀐 골목 한켠에 예부터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헌책방 〈문화당서점〉이 있다. 이런 모습을 돌아본다면 광주역이라 해서 얄궂거나 낯설다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헤아려도 낯설다. 아니, 낯설밖에 없다. 아니,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무슨 책을 누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시끄러이 떠드는 데에서 책을 읽을 만한가. 책을 팔 수야 있겠지. 시끌벅적한 서울국제도서전 같은 데에서도 책팔이는 잘만 하니까.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책팔이만 있고 책읽기는 없는지 모른다. 사람들 스스로 차분해지면서 맑아지자 해서 읽는 책인데, 사람들 스스로 차분해지거나 맑아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찻길을 더 넓히고 더 크면서 빠른 자가용을 장만하는데다가, 아파트와 쇼핑센터만 잔뜩 올려세우잖은가.

 한손에 책을 쥐며 걸어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책을 넣었다 싶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광주역에서뿐 아니라 서울역에서도 인천역에서도 부산역에서도 대구역에서도 대전역에서도 똑같다. 한손에 책을 곱다시 쥐며 맑은 눈빛과 낯빛으로 따사로운 몸짓을 선보이는 사람을 마주치지 못한다. (4344.8.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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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8-05 23:14   좋아요 0 | URL
음 언제 광주고속버스 터미날에 영풍문고가 생겼는지...몇년전 광주에 갔을적에는 없었는데 말이죠.예전 광주의 무슨 고등학교부근의 헌책방 거리와 서방시장부근의 헌책방을 간 기억이 나는군요.서방시장 헌책방들은 거의 문을 닫았는데 나머지 헌책방들은 잘 있는지 궁금해 지는군요.
 


 가방에 담는 책 



 육십 리터들이 내 커다란 가방에는 내가 쓴 책을 여러 권 넣습니다. 이 책들을 늘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길에서 마주하는 고마운 이한테 슬며시 선물하곤 합니다. 그러나 퍽 오랫동안 고마운 이를 못 만나 마냥 가방 무게만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헌책방마실을 한다면 헌책방 일꾼한테 드릴 책을 여러 권 챙기니 이 책들 무게가 꽤 나갑니다. 나는 한두 군데 헌책방이 아닌 모든 헌책방을 다니려 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쓴 책이 나올 때에 글삯을 받지 않고 책을 받습니다. 책을 내놓아도 돈을 벌지 못합니다. 책으로 글삯을 받아 책을 선물하고 살아가니 벌이가 영 시원찮습니다. 그러나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내 둘레 고마운 사람과 헌책방에서 샘솟습니다. 내가 하루 열 시간 남짓 들여 집일을 하며 어설피 건사하는 살붙이한테서 비롯하는 사랑으로 글을 씁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옆지기를 만나지 않고, 두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 홀로 돌아다니면서 나 혼자서 누릴 겨를이 아주 많았을 뿐 아니라, 책값으로 돈을 꽤 많이 썼을 테고, 이래저래 글을 훨씬 많이 썼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옆지기와 두 아이 때문에 내 온삶이 책읽기하고는 자꾸 멀어지고 말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읽기’가 ‘몸으로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읽기’로 거듭나거나 새로워지곤 합니다. 날마다 열 시간 남짓 들여 집을을 하면서도 집살림을 옳게 건사하지 못하는데, 열 시간 남짓 들인다 해서 집일이나 집살림을 옳게 건사하기 만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쯤 해서는 집식구와 사랑스레 보금자리를 일굴 만하지 않다고 깨닫습니다. 다 다른 책을 날마다 열 시간 남짓 몇 해를 읽을 때보다 늘 같은 집일을 날마다 열 시간 남짓 몇 해를 할 때에, 더 깊으며 너른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읽는 셈 아닌가 하고 몸으로 느낍니다. 가방에 담아 땀 뻘뻘 흘리며 짊어지는 책들은 집일을 하는 어버이로서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고마움을 예쁘게 나누고 싶기에 선물하려는 책들입니다. (4344.8.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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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하나씩 쓰는 책느낌글


 지난 2010년 유월에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면서 내 나름대로 한 가지를 다짐했다. 시골집에서 달삯을 내지 않고 살아가며 나 또한 달삯을 대느라 허덕이지 않는 삶을 꾸릴 수 있으면, 이동안 하루에 한 가지씩 책느낌글을 쓰겠다고. 나 홀로 마음으로 새긴 다짐은 얼추 잘 지켰다. 2011년 들어서 7월 31일까지 그럭저럭 지켰다. 정 못 쓰는 날이 있을 때에는 그 주에 하루에 두 꼭지를 쓰곤 했다.

 8월 1일을 지나고 맞이한 8월 2일. 새 보금자리를 알아본다며 첫째 사름벼리랑 먼길을 나섰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슬슬 글쓰기를 하려고 하는데, 마실을 다니는 동안 새벽에 글쓰기를 한다며 집에서 바지런히 써둔 밑글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집에서 애써 쓴 밑글을 글막대기에 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저지른 바보짓은 돌이키지 못한다. 내가 몸소 저지른 바보짓이니 나 스스로 달게 받아들여야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밀렸다 여기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새 보금자리를 찾으면, 하루하루 기쁜 나머지 밀리고 자시고를 떠나 하루에 몇 꼭지씩 쓸 수 있으려나. 달게 곯아떨어진 아이 곁에서 아버지는 바보요 하고 속으로 외친다. (4344.8.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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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은 옷, 얻은 책, 얻은 삶


 첫째와 둘째한테 입히는 옷은 하나같이 얻은 옷입니다. 누군가 여러 해 예쁘게 입으며 무럭무럭 크고 나서 곱게 물려준 옷입니다. 때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이모가 고맙게 새로 사서 선물한 옷입니다. 아이 옷 가운데 어버이로서 새로 장만하여 입히는 옷은 양말 한 켤레뿐 아닌가 싶습니다.

 내 돈을 들여 장만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돈으로 사거나 얻지 못합니다. 내 돈을 들여 장만하는 책이라면 내 책이라 할 테지만, 내 책이라 해서 내 책으로 삼는 종이뭉치에 깃든 이야기를 내가 일구거나 엮지 않습니다. 고마운 이웃이나 동무가 온삶을 바쳐 알뜰히 일구거나 엮어 내놓아 선물해 준 책을 고작 돈 몇 푼을 들여 쉽게 얻을 뿐입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새로운 삶을 선물합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새로운 삶을 선물받습니다. 나는 내 옆지기한테 새로운 삶을 선물하면서, 나는 내 옆지기한테서 새로운 삶을 선물받습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내 아이한테서 노상 새로운 삶을 선물받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와 같은 아이한테서도 새로운 삶을 선물받을까요. 내 동무와 이웃은 저마다 사랑스러운 삶을 일구면서 당신 삶을 알뜰히 돌볼 뿐 아니라, 당신 둘레 고운 곁사람한테 고운 넋을 선물합니다. (4344.8.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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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


 시외버스 냄새. 많은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 바람도 햇볕도 흙도 물도 모두 설거나 메마르다. 길을 나서며 어디를 다닌다는 뜻이란 무얼까. 돈을 들여 돈을 쓰는 마실이 아니라, 삶을 들여 사랑을 나누는 마실이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까. 읍내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고,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돌볼까. 어떤 돈을 왜 벌어야 하고, 어떤 돈은 왜 써야 할까.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나무도 숲도 하늘도 냇물도 바라볼 수 없다. 오가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진땀이 나니, 이 길이 어떤 길인가 생각할 틈이 없고, 아이랑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오가는 자동차는 하나같이 너무 바빠 조그마한 골목에서도 마구 내달린다.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걷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모는 사람조차 모두들 바쁜 빛이다. 길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이든, 길가 밥집에서든, 똥오줌 거름으로 일군 곡식이나 푸성귀로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팔지 못한다. 너무 바쁠 뿐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더욱 빨리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율을 왜 올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주식을 왜 만들고 주식으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살림집이 아닌 아파트를 왜 지어야 하고, 아파트값에 왜 이리들 목을 매거나 떠들어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자동차를 왜 만들어야 하고,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왜 자꾸 넓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손에 쥐어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전화기로 인터넷을 쓰고 무어를 하며 또 무어를 하도록 자꾸자꾸 더 크고 더 비싸며 더 대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자동차를 몰며 서둘러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얼마나 바빠야 사람 삶일까. 얼마나 가멸차야 사람 삶인가. 얼마나 높고 반듯하며 대단해야 사람 삶이려나.

 교과서를 가르치는 제도권학교도 내키지 않지만, 자연이나 평화나 무엇무엇을 가르친다는 대안학교도 마땅하지 않다. 그저 책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삶이요. 언제나 평화로운 살림살이인 한편,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일구거나 돌보거나 건사하면서 조용히 논밭을 일구는 조그마한 삶이면 넉넉하면서 따사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실을 다니면서 마실이 부질없다고 느낀다. 마실을 다니면서 마실 다닐 일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고 느낀다. 내 보금자리에서 조그맣게 옹크리면서 내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늘 얼굴 마주하고 살 부비는 나날이 고마우며 거룩한 줄을 느낀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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