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러 첫째 아이랑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레쯤 돌아다니고 집으로 돌아올 텐데, 이동안 옆지기가 둘째 아이랑 잘 견디어 주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집일을 도맡는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동안 제발 비가 그쳐서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가 잘 말라야 그나마 수월할 텐데, 이 비는 7월을 지나고 8월이 접어들지만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살아남나. 이 짓궂은 빗줄기는 언젠가 그치기는 그칠 텐데, 참으로 사람을 잡는구나 싶도록 모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다시 새벽부터 밤까지, 날마다 빨래를 예닐곱 차례 하면서 밥을 차리고 아이를 씻기며 집안을 쓸고 닦는다. 그나마 이렇게 하려고 용을 쓸 뿐, 아이하고 가붓하게 그림책을 읽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지 못한다. 등허리가 몹시 아프다. 손목 저림이 가시는가 했더니, 이제 등허리가 몹시 아파 자리에 앉거나 설 때면 아주 괴롭다.

 모두 잠든 깊은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서 생각한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웃는 낯으로 예쁘게 노래 부를 수 있어야 어버이 노릇을 하는 셈 아닌가 생각한다. 참으로 아프고 더없이 힘든 나날이라지만 밝게 웃고 맑게 노래하는 삶일 때라야 사람 구실을 하는 셈 아니겠느냐 생각한다.

 아직 어버이 노릇은 멀었고 사람 구실마저 까마득하다. 옆지기가 아버지한테 내어준 이레쯤 될 말미를 전라남도 고흥과 강원도 춘천시를 돌며 보내는 동안, 아무쪼록 몸과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면서, 이 힘겨운 여름날, 곰팡이가 끝없이 피는 살림집과 도서관을 잘 마무리짓고 우리를 기다릴 좋은 보금자리를 기쁘게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저, 내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며 글 한 조각 쓴다는 생각으로 겨우 일어나고 두 주먹 불끈 쥔다. 이제 기저귀 빨래부터 하면서 하루를 열어야겠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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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5 : 책을 읽는 도시

 경상남도 김해는 퍽 예전부터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마을이 들어서면서 책도시로 거듭나려 애쓴다고 합니다.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저마다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퍽 힘씁니다.

 ‘책읽는 도시’는 시장이나 군수가 “자, 이제부터 우리 시(군)는 책을 읽는 시(군)입니다!” 하고 외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책을 읽고 두루 책을 사랑한다면, 시장이나 군수가 나서기 앞서 따사롭고 너그러운 책도시나 책마을로 이름을 날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책읽는 도시’를 내세우는 까닭은, 그만큼 책을 안 읽기 때문이요, 책을 읽을 도서관이 없기 때문이며, 책을 살 책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자체마다 ‘책읽는 도시’가 되고 싶으면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첫째, 건물이 우람한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동이나 면이나 리에 조그맣게 책쉼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아직 살아숨쉬는 새책방과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책방 살림 잇도록 돕는 한편, 새로운 새책방과 헌책방이 문을 열도록 여러모로 도와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책을 읽자고 외친다 한들, 책읽기 모임을 열어 독서토론을 한들,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이 재미없거나 책을 들출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재미있게 느낄 만한 삶터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할 만큼 삶이 너그러워야 합니다. 메마른 정치와 서글픈 경제와 비틀린 제도권교육을 그대로 두면서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모두 대학입시에 목매달도록 하면서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아슬아슬하게 목숨줄을 잇거나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는다면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긴 채 돈을 벌러 다니는 어버이가 저녁나절 고단함에 절디전 몸으로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못 읽히는 어버이는 당신 삶을 살찌울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찬찬히 살피거나 읽지 못합니다.

 책만 읽자 해서, 도서관을 큰돈 들여 짓는다 해서, 무슨무슨 걸개천을 길거리에 내걸거나, 이름난 몇몇 글쟁이를 불러서 강연모임을 마련한다 해서, 어느 도시인들 ‘책읽는 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무엇보다 살아가기 좋은 터전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로 시원시원 조용히 오가는 삶터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하면서 수천 억을 들여 새 경기장 짓는 데에 돈을 바치는 데가 아니라, 새 경기장 지을 자리에 숲을 지키고 돈을 아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책 하나 가슴에 고이 품자고 하는 데입니다.

 경제성장을 바라면 ‘책읽는 도시’가 안 됩니다. 일류대학을 꿈꾸면 책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만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이 모여 책마을이 태어납니다. (4344.7.31.해.ㅎㄲㅅㄱ)
 

(내 고향 인천을 생각하면서 쓴 글. 인천은 책도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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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31 20:51   좋아요 0 | URL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는데
일년 책 읽는 평균 권수가 한권이 안 되더군요. 그나마 거의 학습지이고
그리고 서울 경기 쪽이 평균 수치가 훨씬 높구요. 여하간 생각이 많은 통계였답니다. ㅡㅡ;;

숲노래 2011-08-01 06:0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문학책은 읽어도 환경책은 읽지 않아요.
환경책이 무언지 제대로 모르니까,
사회운동도 환경운동도 평화운동도... 아무런 진보운동도 하지 못해요.

인문책은 지식을 쌓는 책이 아니라,
나부터 삶을 바꾸려는 책이거든요...
 



 아이들한테 책 읽히는 어머니


 둘째가 찡얼거린다. 첫째는 칭얼거린다. 둘째를 돌보던 어머니가 첫째가 건넨 그림책을 받는다. 두 아이가 드러누워 함께 책을 들여다본다. 두 달을 조금 지난 갓난쟁이가 무슨 책을 알까 싶지만, 어머니랑 누나가 곁에 누워서 좋은지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면서 좋아한다. 어머니랑 누나가 어느 한쪽을 들여다보니 저도 책을 읽는 듯 들여다본다. 책을 읽을 때에는 혼자 읽고 혼자 삭인다. 책을 읽힐 때에는 서로 읽고 함께 받아들인다. (4344.7.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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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19:33   좋아요 0 | URL
된장님께서 사진을 애정깊게 찍으시네요.
항상 마음이 풀어짐을 느낍니다.

숲노래 2011-07-29 05:13   좋아요 0 | URL
늘 곁에 있으니까,
곁에 있는 대로 찍어요~
 



 푸른개구리


 작은방에 푸른개구리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푸른개구리는 어떻게 이리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새벽 네 시 반에 퍼뜩 깬다. 작은방에 불을 켜고 뜨개질을 하던 옆지기가 불러서 벌떡 일어나 두리번두리번 살피어 조그마한 푸른개구리를 한손에 살며시 쥐어 문을 열고 마당으로 휙 던진다. 푸른개구리는 펼친 손에서 펄쩍 뛰어 저리로 날아가듯 뛴다. 푸른개구리 등짝과 다리는 촉촉하다. 이 촉촉한 살결로 제 목숨을 고이 잇겠지.

 옆지기가 개구리 치워 달라며 큰소리를 낸 탓에 첫째 아이도 그만 깬다. “개구리가? 나왔어?” 하며 묻던 첫째는 다시 재우려 해도 잠들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다 잤어.” 하는 말을 되풀이한다. 밤 열한 시 가까이 되어 잠든 네 녀석이 새벽 네 시 반 조금 넘은 때에 다 잤다고 일어나면 말이 되니.

 아버지는 새벽 세 시 반에 잠에서 깨어 방바닥에 기저귀를 잔뜩 펼쳤다. 간밤에 방 온도가 1℃ 떨어지면서 보일러가 돌아갔고, 뜨끈뜨끈한 방바닥이니 비로소 기저귀도 제대로 마르겠다 싶어, 부리나케 온 바닥을 기저귀 판으로 만든다. 이러고 나서 어젯밤 빨아 애벌로 헹군 기저귀를 마저 헹군다. 어젯밤에 다 빨기는 했어도 널 자리가 없어 그냥 두었기에, 이렇게 방바닥에 잔뜩 넌 김에 이 녀석들을 헹구어 벽에 잔뜩 걸어야지.

 애벌로 헹군 기저귀를 마저 헹구고 나서 첫째 옷가지랑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한다. 다 마친 빨래는 차근차근 빈 자리를 찾아 넌다. 이렇게 하고 나서 겨우 잠들었다 싶을 무렵 옆지기가 불러서 잠이 사라졌다. 푸른개구리야, 넌 하루라도 빨래를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살림을 꾸릴 수 없는 이 조그마한 집에 무슨 일로 찾아왔니. 방바닥에 펼친 기저귀가 다 말랐으니, 이 녀석은 얼른 개고 방바닥에 미처 펼치지 못한 다른 기저귀를 펼치라는 뜻을 일러 주려고 찾아왔니. (4344.7.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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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한테 책 읽히는 누나 2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밥을 하느라 몹시 바쁘다. 식구들 밥을 먹이고 나서 설거지를 하며 밥상을 치우는데, 혼자서 방바닥을 잔뜩 어지르며 책을 읽던 첫째가 어느새 둘째 곁에 눕더니 그림책을 펼친다. 저번에 동생 곁에 누워 그림책 읽히던 일을 떠올렸을까. 그림책을 배에 얹어 한 장씩 넘기며 동생이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펼친다. 조잘조잘 노래를 하듯 떠든다. 그림책을 읽는 말마디가 아니라, 이제껏 주워들은 온갖 말마디를 아무렇게나 잇고 섞고 엮어 떠든다.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힌다며 번쩍 펼친 손이 동생 목을 누른다. 그래도 둘째는 저랑 놀아 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좋은지 같이 웃고 떠든다. 설거지하느라 물에 젖은 손으로 사진기를 쥐고는 한참 바라본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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