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11] 짝님



  ‘짝’을 이루는 사람이 반갑습니다. ‘짝’이 되어 어울리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오래도록 내 짝이기를 바라고, 언제까지나 함께 짝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둘은 살가운 ‘짝꿍’이 되고, 기쁜 ‘짝지’가 됩니다. 반가우면서 사랑스러운 짝이기에, 서로서로 ‘짝님’이 됩니다. 좋은 님이면서 고운 님이고, 그리운 님이면서 기쁜 님이기에 짝님입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애틋한 님이요, 가슴속에 까만 씨앗을 심는 살뜰한 님입니다. 서로서로 님이 되면서 웃고, 너와 내가 함께 님이 되기에 노래합니다. 짝꿍은 짝님입니다. 짝님은 짝지입니다. 둘은 ‘한짝’입니다. 4348.2.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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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1 님


  예부터 한겨레는 이 땅에서 ‘님(임)’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사랑으로 마주하는 이를 가리켜 ‘님(임)’이라 했어요. 어른은 서로 그리면서 ‘님(임)’이라 했고, 아이는 동무끼리 이 말을 따로 쓰지는 않았으나, 해를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고 꽃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고 풀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고 나비를 바라보면서 으레 ‘해님·별님·꽃님·달님·풀님·나무님·나비님’이라 했어요. 어른은 집 둘레에 수많은 ‘님’이 있어서, 이 님이 우리 집, 그러니까 ‘보금자리’를 보살펴 준다고 여겼습니다. 한겨레가 이 나라에서 쓰던 ‘님(임)’이라는 낱말은, 오늘날 이 땅에서 ‘신(神)’이라는 낱말로 가리키는 모든 숨결을 가리킨 셈입니다.

  그런데, ‘님’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면서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왜 그런가 하면, 지난날 가운데 조선 무렵에는 나라에서 유교를 종교로 삼으면서 ‘임금’한테만 ‘님’을 붙여서 ‘임금님’처럼 쓰도록 닦달했습니다. 고려 무렵에는 나라에서 불교를 종교로 높이면서, 이때에도 ‘임금’한테만 ‘님’을 붙여서 ‘임금님’과 같이 쓰라 몰아세웠습니다.

  임금이라고 하는 사람 하나, 그러니까 정치 우두머리인 한 사람,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종교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거머쥐면서 사람들한테서 세금을 뽑아내고 사람들을 군대(싸울아비)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종(노예)처럼 부려 소작인살이를 보내도록 했던 그 한 사람만 ‘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정치 권력자와 지식인 따위는 여느 사람들더러 ‘임금님’이라 부르도록 윽박질렀는데, 여느 사람들은 칼부름과 주먹다짐 앞에서는 허리를 꺾으면서도, 뒤에서는 고개를 돌리고는 ‘임금놈’이라 불렀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거의 즈믄 해 즈음 우리는 ‘님’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못 쓰도록 억눌린 채 살았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모든 ‘신’이라는 숨결을 ‘님’이라 말했는데 말이지요. 그러니, 나라에서는 불교와 유교 권력을 휘두르면서, 마을에 있는 작은 비손집(사당)을 나쁘게 여겼지요. 조선 무렵에는 사직단이라는 곳을 지어서 ‘사내가 가시내를 억누르는 또 다른 가시방석’을 마련하기까지 했습니다.

  요즈음에는 누리모임(인터넷 동호회) 사람들이 서로를 ‘아무개 님’이라 부릅니다. 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던 여느 사람들이 으레 쓰던 말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요즈음 서로를 ‘님’이라 부를까요? 무언가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아쉽게도 아직 깨닫지는 못한 채 쓰는데, ‘님’이 ‘신’을 가리키던 오랜 한국말인 터라, ‘사람 몸마다 깃든 새로운 숨결’이 바로 ‘님’이기에, 누리모임이라는 곳이 곳곳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너와 내가 똑같이 고운 목숨이요 숨결’이라 여겨 이 낱말을 이름으로 삼아서 쓰고, 이 이름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서 제 빛을 찾는다고 하겠습니다. 4348.1.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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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2 말과 넋과 삶



  사람은 누구나 삶을 가꾸는 넋을 말로 짓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나라와 겨레는 다르지만, 다 다른 나라와 겨레에서 ‘제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넋을 짓고, 말로 지은 넋으로 삶을 짓습니다. 그래서, 말을 가꾸는 삶은 넋을 가꿀 수 있고, 넋을 가꾸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말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넋을 가꿀 수 없으며, 넋을 가꿀 수 없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누구나 스스로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손수 생각을 북돋우면 마음에 환하게 그림 하나 그릴 수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거나 캐내서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쓰며 핀란드사람은 핀란드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한국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사람이 일본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핀란드사람이 핀란드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토박이말’일 텐데, ‘그냥 토박이말’이 아니라, 내 생각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는 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글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한글로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담을 수 있습니다. ‘굿바이’는 영어를 담은 한글입니다. ‘사요나라’는 일본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쎄쎄’는 중국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이러한 ‘한글’은 말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쓸 말은 그예 수수한 말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이고, 시골과 도시에서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쓰고, 지식이 적은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 나란히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많이 배우거나 책을 꽤 읽은 사람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이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은 ‘조금도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로는 넋을 가꾸지 못하고, 이런 말로는 삶을 가꾸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을 털어내고서,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이러한 말로 넋을 가꿉니다.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아니라면, 말부터 못 가꾸니까 넋을 못 가꾸지요.


  신분이나 계급을 가르는 말도 ‘껍데기 한글’입니다. ‘말’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입니다. 그래서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인 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알아차리고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슬기롭게 보고, 말을 언제나 새롭게 배울 적에, ‘나는 말을 가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을 가꾼다’고 될 때에 비로소 ‘나는 넋을 가꾼다’가 되며, 이때에 저절로 ‘나는 삶을 가꾼다’가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말을 꾸미거나 치레하는 일은 ‘말 가꾸기’가 아닙니다. 말을 이쁘장하게 꾸미거나 말을 그럴듯해 보이도록 치레하는 일은 ‘말 꾸미기’나 ‘말치레’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넋 꾸미기·넋치레’가 아니고 ‘삶 꾸미기·삶치레’일 수 없으니, 우리는 꾸미기나 치레가 아닌 가꾸기를 할 노릇이요, 말을 제대로 바라보고 똑바로 알아차리며 슬기롭게 가꾸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4348.1.1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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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03 : 만난萬難



어쩌면 1948년에 김구와 김규식 두 분이 평화적으로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평양에 갔던 남북협상의 재생이요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강만길-역사가의 시간》(창비,2010) 350쪽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 온갖 가시밭길을 뚫고

→ 숱한 가시밭길을 뚫고

 …



  한자말 ‘만난’에서 ‘萬’은 숫자로 ‘10000’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많이’나 ‘온갖’을 가리킵니다. ‘難’이라는 한자는 한국말로 ‘어려움’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많이 어렵다”나 “어려운 일이 많다”나 “온갖 어려움”인 셈입니다.


  손쉽게 “온갖 어려움”이라 적으면 되고, “갖은 어려움”이나 “숱한 어려움”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온갖 가시밭길”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1.29.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쩌면 1948년에 김구와 김규식 두 분이 평화롭게 통일민족국가를 이룩하려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평양에 갔던 남북협상을 다시 이루거나 이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평화적(-的)으로’는 ‘평화롭게’로 손보고, “건설(建設)하기 위(爲)해”는 “이루려고”나 “이룩하려고”로 손봅니다. “남북협상의 재생(再生)이요 연장선상(延長線上)이라는 생각”은 “남북협상을 다시 이루거나 이었다는 생각”으로 손질합니다.



만난(萬難) : 온갖 어려움

   - 만난을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 만난을 물리치고 청렴한 마음을 가져 보려고


..


묶음표 한자말 204 : 해조海藻



이곳에는 해조(海藻)도 많이 자라지만, 육지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꽃식물이 대부분을 차지해요

《얀 리고/이충호 옮김-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 43쪽


 해조(海藻)

→ 마풀

→ 바닷말



  한국말은 ‘마풀’이나 ‘바닷말’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옮기니 ‘해조’입니다. ‘바다海 + 말藻’이기에 ‘바닷말’이요 ‘해조’이거든요. 그러니, 이 보기글처럼 ‘해조’라는 바깥말을 한글로만 적은 뒤, 묶음표를 치고 ‘海藻’처럼 붙이면 아주 엉뚱합니다. 4348.1.29.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곳에는 바닷말도 많이 자라지만, 뭍에서 흔히 보는 꽃과 같은 풀이 아주 많이 자라요


‘육지(陸地)’는 ‘뭍’으로 다듬고, “흔히 보는 것과 같은 꽃식물(-植物)”은 “흔히 보는 꽃과 같은 풀”로 다듬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을 차지해요”는 “거의 모두를 차지해요”나 “거의 다 차지해요”나 “아주 많이 자라요”로 손질합니다.



해조(海藻) : 바다에서 나는 조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 마풀·바닷말·해조류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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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0] 조각놀이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갑니다. 두 아이가 쓸 새 연필깎이를 장만하러 가는 길입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제 마음에 맞는 연필깎이를 하나씩 고릅니다. 그림종이를 두 권 장만한 뒤, 더 고를 것이 있나 살피니 ‘미니퍼즐’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각맞추기 놀이판’이 네 가지 보입니다. 잘 되었구나, 이 놀잇감을 더 장만하면 재미있겠네. 두 아이를 불러 너희 마음에 드는 빛깔을 하나씩 고르라 이릅니다. 큰아이는 노란 바탕에 꽃나비 그림이 깃든 ‘조각맞추기 놀이판’을 고르고, 작은아이는 푸른 바탕에 무당벌레 그림이 깃든 ‘조각맞추기 놀이판’을 고릅니다. 다른 두 가지도 더 고를까 싶으나, 다음에 고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읍내마실은 오직 두 아이 선물을 장만하려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는 ‘자동차 모습을 한 연필깎이’ 하나만으로 마음이 부풉니다. 다른 놀잇감은 아예 안 쳐다봅니다. 연필깎이인 터라 굴러가지 않는데, 그저 ‘자동차 모습을 한 연필깎이’만 굴리면서 놉니다. 큰아이는 조각맞추기가 잘 안 된다면서 아버지한테 가져옵니다. 그래서 ‘조각놀이’는 어떻게 하는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잘 보렴 아이야, 조각놀이를 할 적에는 억지로 조각 하나를 이곳으로 가져다 놓으려면 안 되지, 네가 이 모습을 본대서 처음부터 할 수 있을 수 있고, 어쩌면 한참 해 보아야 할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해든 다 좋으니, 처음에는 아버지가 맞추는 손놀림을 보렴. 이 조각이 저쪽으로 가려면 천천히 돌고 돌아서 간단다. 그렇지? 조각이 하나씩 맞으면서 그림이 드러나고, 그림이 드러나면서 짠, 이야 다 맞추었지? 오늘 저녁은 이제 코 자고, 이튿날 아침에 네가 스스로 혼자 해 보렴. 4348.1.2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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