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10) 시작 1


밖으로 나가자 하늘도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했다 … 아직 잠이 덜 깬 경비에게 일러두고, 병원으로 가는 논두렁길을 걷기 시작했다

《야마모토 토시하루-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달과소,2003) 20쪽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했다

→ 조금씩 환해진다

→ 조금씩 밝아진다

 …



  나는 어릴 적에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놀곤 했습니다. 누군가 노래를 시키는데 딱히 부를 노래가 없거나 장난을 치고 싶으면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준비, 시이작!” 하고 외치면서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 ‘시작’이라는 낱말을 듣고 새기고 말하고 썼는지 잘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둘레에서 익히 말했고 손쉽게 들었습니다.


 노래 불렀다가 노래 끝났다

 자, 달려!


  나는 어릴 적에 왜 “노래 불렀다가 노래 끝났다”처럼 말하면서 놀지 못했을까요? 어릴 적에 “자, 달려!” 하고 말하기도 했는데, 왜 “준비, 시작”이나 “준비, 땅”이나 “요이, 땅” 같은 일본말을 써야 했을까요? 왜 예전에는 이런 일본말을 제대로 짚거나 바로잡아 주는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웠을까요?


  어느 때에는 ‘시작’이라는 말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으며 장난과 놀이를 즐겼습니다. “시작과 끝”이라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처음과 끝”이라고도 말합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어”라고도 말했지만 “공연을 해”라고도 말했습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나 “시작도 끝도 없다”처럼 쓰는 분이 많지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나 “처음도 끝도 없다”처럼 쓰는 분이 있고, “수업을 한다고 알리는 종소리”처럼 쓰는 분이 있습니다.


 논두렁길을 걷기 시작했다

→ 논두렁길을 걸었다

→ 논두렁길을 걷기로 했다

→ 논두렁길을 걸어 보았다


  한국사람이 일본말을 쓴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말뿐 아니라 영어나 프랑스말이나 중국말을 섞어서 쓸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사람이 이웃이나 동무한테 한국말이 아닌 외국말을 섣불리 섞어서 쓴다면, 서로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때로는 지식 자랑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바이바이’처럼 무척 널리 쓰는 영어나 ‘시작’처럼 매우 널리 쓰는 일본 한자말은 어떤 말이 될까요?


 이야기가 시작되다 → 이야기를 하다 / 이야기를 열다

 회의가 시작되다 → 모임을 하다 / 모임을 열다

 곧 학기가 시작하면 바빠질 것이다

→ 곧 새 학기가 되면 바쁘다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 날이 어두워진다

→ 날이 어둑어둑진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 날이 밝는다


  한국말에서는 따로 ‘시작’을 붙이지 않고 ‘하다’ 꼴로 씁니다.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가 아닌 “밥을 먹습니다”이고, “길을 가기 시작한다”가 아니라 “길을 간다”입니다. “이제 막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가 아니라 “이제 막 이야기를 듣는데”예요.


 처음 . 첫

 첫끈 . 첫삽 . 첫머리 . 첫술 . 첫발


  때와 곳을 살펴서 ‘처음’이나 ‘첫’ 같은 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첫끈’이나 ‘첫삽’이나 ‘첫머리’나 ‘첫술’이나 ‘첫발’ 같은 말을 넣어도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맨 처음”을 가리키는 ‘꽃등’이라는 오래된 한국말도 있습니다.

곰곰이 헤아리고 살펴서 알맞게 쓰면 됩니다. 4337.4.24.흙/4342.6.19.쇠/4348.3.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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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자 하늘도 조금씩 환해진다 … 아직 잠이 덜 깬 지킴이한테 일러두고, 병원으로 가는 논두렁길을 걸었다


지키는 사람을 가리켜 한자말로 ‘경비(警備)’로 적습니다. 우리는 ‘경비는 경비일 뿐’이라고 여기지만, 경비 같은 낱말을 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경비원(警備員)’도 그렇고, ‘수위(守衛)’도 그렇습니다. 그나마 등대를 지키는 사람을 두고는 ‘등대지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등대경비’나 ‘등대경비원’처럼은 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리 말투와 말씨를 헤아리면서 ‘건물지기’나 ‘건물지킴이’, 또는 ‘학교지기’나 ‘학교지킴이’, 아니면 ‘바다지기’나 ‘바다지킴이’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산림감시원(山林監視員)’이 아닌 ‘산지기’나 ‘산지킴이’나 ‘숲지기’나 ‘숲지킴이’ 같은 이름을 빚어내어 쓸 수 있습니다. 단출하게 ‘지킴이’나 ‘지기’라고만 써도 잘 어울립니다.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 공연 시작 / 업무 시작 /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 시작도 끝도 없다 /

     이야기가 시작되다 / 회의가 시작되다 /

     이제 곧 학기가 시작하면 바빠질 것이다 /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820) 시작 2


내가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시작하여 체험수기류의 잡문이나마 열정을 가지고 끼적일 수 있었던 건 내 팍팍한 삶에서 빚어지는 나와 세상의 긴장감 덕이었다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179쪽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시작하여

→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해서

→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알아서

→ 뒤늦게 글이라는 걸 써서

→ 뒤늦게 글이랍시고 써서



  뒤늦게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고, 뒤늦게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늦게 처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뒤늦게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뒤늦게 해서”라고만 적으면 되고, “뒤늦게 알아서”라고 적어도 됩니다. ‘처음으로’를 꾸밈말처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7.8.6.쇠/4348.3.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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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해서 내 삶을 어쭙잖게나마 힘을 내고 끼적일 수 있던 까닭은 내 팍팍한 삶에서 나와 세상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


“체험수기(體驗手記)류(類)의 잡문(雜文)이나마”는 “내 삶을 어쭙잖게나마”나 “내 이야기를 어설프게나마”로 손보고, “열정(熱情)을 가지고”는 “힘을 내고”나 “씩씩하게”나 “기운차게”나 “힘껏”이나 “다부지게”로 손봅니다. “있었던 건”은 “있던 까닭은”으로 손질하고, “내 팍팍한 삶에서 빚어지는 나와 세상의 긴장감(緊張感) 덕(德)이었다”는 “내 팍팍한 삶에서 나와 세상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나 “내가 팍팍하게 살며 세상과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826) 시작 3


그는 20대에 접어들면서 아르헨티나의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 비올레따는 유년시절부터 기타와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윤경-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이후,2000) 61, 63쪽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다

→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다

 기타와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 기타와 노래를 배운다

→ 기타와 노래를 배웠다

 …



  말끝을 늘이면서 ‘시작’을 붙입니다. 말끝을 늘이면서 ‘것’을 붙이는 말씨하고 비슷합니다. 말끝을 늘이고 싶다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하겠다면 이렇게 할 노릇이지만,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기로 한다”라든지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기로 했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본다면, “떠돌아다니며 지냈다”나 “떠돌아다니며 살았다”나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나 “떠돌아다니며 사람들하고 어울렸다”처럼 쓸 수 있어요. 말끝을 늘이려 한다면, 이야기가 될 말을 붙여야 합니다. 기타를 배운 일을 나타낼 적에도 이와 같아요. “기타와 노래를 차근차근 배웠다”라든지 “기타와 노래를 하나하나 배웠다”라든지 “기타와 노래를 즐겨 배웠다”라든지 “기타와 노래를 둘레 어른들한테서 배웠다”처럼 말끝을 늘이면 됩니다. 4337.8.22.해/4342.6.19.쇠/4348.3.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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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무 살로 접어들면서 아르헨티나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다 … 비올레따는 어릴 적부터 기타와 노래를 배웠다


‘20대(二十代)에’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스무 살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여러 지방(地方)”은 “아르헨티나 구석구석”이나 “아르헨티나 여러 곳”이나 “아르헨티나 이곳저곳”으로 손질하고, ‘유년시절(幼年時節)’은 ‘어릴 때’나 ‘어릴 적’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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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9) 부락/자연부락 (ぶらく, 部落, ひさべつぶらく, 被差別部落)


나라 안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모든 마을들을 내 발걸음으로 찾아보고 적어도 하룻밤씩은 머물고 싶다는 것이었다 … 그 꿈은 다시 한 번 우리 나라의 모든 자연부락들을 찾아보고 그 마을들의 삶과 사랑과 꿈의 생채기를, 그 기침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곽재구-참 맑은 물살》(창작과비평사,1995) 121∼122쪽


 우리 나라의 모든 자연부락

→ 우리 나라 모든 마을



  이 보기글을 가만히 보면 ‘마을’이라는 낱말을 쓰면서 ‘자연부락’이라는 낱말도 함께 씁니다.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자연부락’이나 ‘부락’이라는 낱말을 쓰니까, 글쓴이도 이 말을 따라서 쓸는지 모르고, 어쩌면 글쓴이가 스스로 이런 말을 먼저 쓸는지 모릅니다.


  일본말사전에서 ‘部落’을 찾아보면 “부락, 촌락, 취락”으로 풀이를 합니다. ‘部落’을 ‘부락’으로 풀이하니, 일본말사전도 참으로 엉뚱합니다. 이는 말풀이도 번역도 아니니까요. ‘thank you’를 ‘쌩큐’나 ‘땡큐’로 적는다면, 이는 말풀이도 번역도 아닙니다. 그리고, ‘촌락(村落)’이나 ‘취락(聚落)’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런 말마디는 한국사람이 쓰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쓰고, 더러 중국사람도 쓸 테지요.



ぶらく(部落)

1. 부락, 촌락, 취락(= 集落)

   - 山間さんかんの部落ぶらく

2. → ひさべつ(被差別)ぶらく


ひさべつぶらく(被差別部落) : 피차별 부락(江戶 시대에 최하층 신분이었던 ‘えた’ ‘非人’ 등의 자손이, 법령상 신분은 해방되었으면서도, 아직 사회적으로 차별·박해를 받아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곳. (= 部落·未解放部落)



  한국말은 ‘마을’입니다. 한국사람은 먼 옛날부터 ‘마을을 이루며’ 삽니다. 마을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나랏님이 마을을 지으라고 해서 마을을 짓지 않아요. 사람들이 스스로 저마다 보금자리를 지어서 가꾸기에, 이러한 보금자리가 하나둘 모여서 저절로 마을이 됩니다.


  마을은 저절로 생깁니다. 마을은 스스로 생깁니다. 마을은 저절로 이룹니다. 마을은 스스로 이룹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에서는 ‘部落’을 ‘ぶらく(부라쿠)’로 읽습니다. 그리고, 이 일본말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일본사람은 왜 한국에 이 일본말을 퍼뜨렸을까요? 일본에서는 ‘ぶらく(부라쿠)’를 ‘ひさべつぶらく(被差別部落)’와 같은 자리에서 썼어요. 일본에서는 ‘피차별부락’이 있고, ‘부락해방운동’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에 널리 있는 ‘마을’을 짓밟으면서 괴롭히려는 뜻으로 이런 ‘부라쿠(ぶらく, 部落)’를 한국에 끌어들여서 퍼뜨립니다. ‘村落’이나 ‘聚落’은 무엇일까요? 이런 낱말은 한국에 있는 마을을 ‘학술조사’를 하면서 퍼뜨립니다.



 집 . 마을 . 고을 . 고장 . 시골



  한국사람이 쓰는 말을 제대로 짚어야 합니다. 먼저 ‘집’이 있습니다. 저마다 ‘집’을 이루어 살림을 가꿉니다. 집이 모여서 ‘마을’이 됩니다. 마을이 모이면 ‘고을’이 됩니다. 고을이 모이면 ‘고장’이 됩니다. 여러 고장은 저마다 흙을 일구면서 손수 삶을 짓는 터전입니다. 이리하여 이 모두를 크게 아울러서 ‘시골’이라 합니다. ‘시골’이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짓는 터전을 가리키고, 더 크게 헤아리면 옛날에 사람들이 ‘지구별’을 바라보면서 쓰던 낱말입니다. 숲과 들과 봉우리와 골짜기와 냇물이 골고루 어우러진 곳을 ‘시골’이라는 낱말로 가리켰거든요. 문학을 하거나 학문을 하는 모든 분들이 한국말을 잘 살펴서 알맞게 가려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3.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라 안에 저절로 생긴 모든 마을들을 내 발걸음으로 찾아보고 적어도 하룻밤씩은 머물고 싶다는 꿈이었다 … 그 꿈은 다시 한 번 우리 나라 모든 마을들을 찾아보고 그 마을과 얽힌 삶과 사랑과 꿈이 스민 생채기를, 그 기침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다


“자연적(自然的)으로 형성(形成)된”은 “저절로 생긴”이나 “저절로 이루어진”이나 “스스로 이루어진”으로 손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는 “싶다는 꿈이었다”로 손봅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은 “우리 나라 모든”으로 손질하고, “그 마을들의 삶과 사랑과 꿈의 생채기”는 “그 마을과 얽힌 삶과 사랑과 꿈이 스민 생채기”로 손질하며, “듣고 싶은 것이다”는 “듣고 싶은 마음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부락(部落) : 시골에서 여러 민가(民家)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 ‘마을’로 순화

   - 이웃 부락에서는 매달 5일에 장이 선

자연부락(自然部落) : 취락(聚落)으로서 한 무리를 이루고, 사회생활의 기초 단위가 되는 촌락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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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8) 비밀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콸콸콸 누가 수도꼭지를 틀어 놓아서 생긴 걸까? 궁금하지? 내가 이제부터 그 비밀을 말해 줄게

《장 뒤프라/조정훈 옮김-바다가 생겼대》(키즈앰,2012) 5쪽


 이제부터 그 비밀을 말해 줄게

→ 이제부터 그 수수께끼를 말해 줄게

→ 이제부터 수수께끼를 말해 줄게

→ 이제부터 숨은 얘기를 해 줄게

→ 이제부터 그 숨겨진 얘기를 해 줄게

 …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비밀’이라는 낱말을 무척 널리 씁니다. 어른도 아이도 이 낱말을 아주 널리 씁니다. 그런데, ‘비밀’은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낱말을 한국사람이 쓴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우리 삶자락에 이 낱말이 스며든 지는 그야말로 얼마 안 됩니다.


 비밀이 탄로 나다

→ 숨긴 일이 드러나다

→ 감춘 것이 알려지다

 비밀을 누설하다

→ 숨긴 일을 드러내다

→ 감춘 것을 흘리다

 절대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 꼭꼭 숨겨야 하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 꼭 감추어야 하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비밀’은 두 가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숨긴 일’이나 ‘감춘 것’을 한자말로 옮겨서 ‘비밀’이 됩니다. 둘째는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수께끼’를 한자말로 옮겨 ‘비밀’인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수수께끼’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복잡하고 이상하게 얽혀 그 내막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어렵게 풀이말을 달았구나 싶은데, ‘비밀’ 말풀이와 같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우주의 비밀 → 우주 수수께끼

 뇌의 비밀 → 뇌 수수께끼

 피라미드의 비밀 → 피라미드 수수께끼


  꼭 오래된 낱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는 낱말도 얼마든지 쓸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과 얽힌 수수께끼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누구나 즐겨쓰던 낱말이 어느 날부터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면, 왜 이렇게 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어떤 낱말이 툭 불거져서 널리 퍼진다면, 왜 이렇게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비밀’이라는 한자말이 오늘날처럼 널리 쓰이기 앞서 “우주 수수께끼”라고 말했습니다. “별 수수께끼”라든지 “지구 수수께끼”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우주 비밀”이라고도 않고 “우주의 비밀”이라면서 ‘-의’까지 사이에 넣어서 말합니다. 왜 이런 말투가 갑작스레 널리 퍼졌을까요?


  수수께끼는 어렵지 않습니다. ‘-의’를 붙이는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우주의 비밀”이라는 말투는 “宇宙の秘密”과 같이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옮겼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뇌의 비밀”이나 “피라미드의 비밀” 같은 보기글도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고스란히 ‘한글 껍데기로만 옮긴’ 말투입니다.


  한자말 ‘비밀’을 쓰든 영어 ‘미스테리’를 쓰든 다 괜찮습니다. 다만, 한국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언제나 ‘수수께끼’라는 낱말을 쓰면서 생각을 주고받거나 키우거나 갈고닦았다는 대목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3.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콸콸콸 누가 물꼭지를 틀어 놓아서 생겼을까? 궁금하지? 내가 이제부터 수수께끼를 말해 줄게


‘수도(水道)꼭지’는 ‘물꼭지’로 손질하고, “생긴 걸까”는 “생겼을까”로 손질합니다.



비밀(秘密)

1.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 비밀이 탄로 나다 / 비밀을 누설하다 / 절대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2.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

   - 우주의 비밀 / 뇌의 비밀 / 피라미드의 비밀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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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90) 경우 1


책을 낸다는 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터이나, 내 경우에 있어서는 내 글의 모양은 이런 것이요 혹은 나는 바로 이런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소

《김규동-어머님전 상서》(한길사,1986) 머리말


 내 경우에 있어서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

→ 나한테는 이런 꿈이 있다

→ 나는 이런 꿈이 있다

→ 나는 이런 꿈을 꾼다

 …



  이 보기글에 나오는 ‘-에 있어서는’은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먼저 이 대목을 덜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경우(境遇)’인데, “내 경우에는”은 “나는”이나 “나한테는”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경우가 밝다 → 셈이 밝다 / 생각이 밝다 / 철이 들다 / 슬기롭다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마라

→ 자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마라

→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라

→ 올바르지 않은 짓은 하지 마라

→ 철없는 짓은 하지 마라


  한국말사전에서 ‘경우(境遇)’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면 “사리나 도리”로 풀이합니다. ‘사리(事理)’는 “일의 이치”라 하고, ‘도리(道理)’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이라 합니다. ‘이치(理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도리에 맞는 취지”라 하고, ‘조리(條理)’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라 합니다. 여러모로 살피면 ‘경우’란 ‘바른길’이라든지 ‘앞뒤가 맞는 갈피’라고 할 만합니다. 짧게 간추리면 ‘셈’이나 ‘철’이나 ‘슬기’입니다.


  ‘경우’가 밝다면, 셈이나 생각이나 밝거나 철이 들거나 슬기롭다는 소리입니다. ‘경우’에 어긋난다면, 자리에 어긋나거나 어리석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철없다는 소리입니다.


 만일의 경우 → 만일 / 어쩌다가 / 때로

 대개의 경우 → 대개 / 흔히 / 으레

 어려운 경우에 처하다 → 어렵다 / 어려워지다


  ‘경우’는 ‘조건·형편·사정’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보기글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런 뜻으로 쓰는 ‘경우’는 군더더기입니다. ‘-의 경우’ 꼴로 쓰는 말투는 일본 말투이기도 합니다. 4337.7.19.달/4348.3.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책을 낸다는 일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을 터이나, 나는 내 글은 이런 모습이요 또는 나는 바로 이런 생각과 꿈이 있소


‘의미(意味)’는 ‘뜻’으로 손보고, “내 글의 모양(模樣)은 이런 것이요”는 “내 글은 이런 모습이요”로 손봅니다. ‘혹(或)은’은 ‘또는’이나 ‘아니면’으로 손질하고, “이런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소”는 “이런 생각과 꿈이 있소”로 손질합니다.



경우(境遇)

1. 사리나 도리

   - 그는 늘 경우가 밝다 /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마라

2.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된 형편이나 사정

   - 만일의 경우 / 대개의 경우 / 어려운 경우에 처하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95) 경우 2


대개의 경우 엄마들은 직장일, 아이의 양육, 가족 문제 그리고 집안일과 관련하여 이중의 부담을 지는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

《안드레아 브라운-소비에 중독된 아이들》(미래의창,2002) 51쪽


 대개의 경우

→ 흔히

→ 으레

→ 거의 모든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

→ 아주 힘들다

→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

 …



  ‘대개(大槪)의 경우’ 같은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적어도 ‘대개’로만 적어야 할 텐데, 한자말 ‘대개’는 한국말로 ‘거의 모두’를 가리키고, ‘흔히’나 ‘으레’로 손보아야 합니다.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도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이때에는 번역 말투입니다. “아주 힘든 자리에 놓인다”는 뜻일 텐데, “아주 힘들다”다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나 “아주 힘들고 만다”나 “아주 힘들기 마련이다”쯤으로 손질해 줍니다. 4338.2.27.해/4348.3.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흔히 어머니들은 바깥일, 아이 키우기, 식구 돌보기에 집안일까지 얽혀 겹겹이 짐을 지면서 아주 힘들다


“대개(大槪)의 경우”는 “흔히”나 “으레”로 손질하고, ‘직장(職場)일’은 ‘바깥일’로 손질하며, “아이의 양육(養育)”은 “아이 키우기”로 손질합니다. “가족(家族) 문제(問題)”는 “식구 돌보기”로 손보고, ‘-과 관련(關聯)하여’는 ‘-과 얽혀’로 손보며, “이중(二重)의 부담(負擔)을 지는”은 “겹겹이 짐을 지는”이나 “여러 겹으로 짐을 지는”으로 손봅니다.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는 “아주 힘들다”나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로 다듬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23) 경우 3


우리 나라의 경우 사정이 여의치 않다

《박병상-녹색의 상상력》(달팽이,2006) 7쪽


 우리 나라의 경우

→ 우리 나라는

→ 우리 나라에서는

 …



  ‘경우’를 붙인 보기글인데, 아무래도 군말입니다. ‘-는’이나 ‘-에서는’ 같은 토씨를 알맞게 붙이면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만큼은”이라든지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래도”라든지 “우리 나라는 참으로”처럼 꾸밈말을 보태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3.12.해/4348.3.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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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는 여러모로 어렵다


한자말 ‘사정(事情)’은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뜻한다 하고, ‘여의(如意)하다’는 “마음먹은 대로 되다”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좋지 않다”나 “여러모로 힘들다”나 “그다지 알맞지 않다”나 “퍽 어렵다”쯤으로 다듬을 만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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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1 크거나 작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가 나란히 설 적에 키가 같을 수 있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키가 크거나 작을 수 있습니다. 둘을 놓고 보면 둘이 같거나 다릅니다. 100원이 있습니다. 100원은 99원보다 큽니다. 그러나 101원보다 작습니다. 101원은 100원보다 크지만, 102원보다 작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따지면, 더 큰 숫자나 더 작은 숫자는 없습니다. 이리하여, 한 달에 버는 돈이 1000만 원이라고 할 때에 0원이라고 할 때에 어느 쪽이 더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1000만 원과 999만 원을 대고, 999만 원과 998만 원을 대면서 차근차근 살피면 모두 같거든요.

  생각해 보면 됩니다. 1000만 원을 벌면 기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999만 원을 벌면 안 기쁠까요? 1001만 원을 벌면 더 기쁠까요? 998만 원을 벌면 덜 기쁘거나 안 기쁠까요? 이렇게 1만 원씩 덜면서 0원까지 오고 보면, 이러고 나서 -1만 원과 -1000만 원까지 가 보아도 모두 같아요.

  크기란 틀림없이 있습니다. 어떻게 있느냐 하면, ‘크기’를 생각할 때에는 크기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떠할까요? 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크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 아이가 큰지 작은지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 크기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으니까, 누구 키가 큰지 아예 알지 못해요.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으니,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참말로 ‘크기가 없’습니다.

  삶은 ‘크기’로 따지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큰’ 집도 없고 ‘작은’ 집도 없어요. 어느 만큼 되어야 큰 집이고 어느 만큼 되면 작은 집일는지 생각해 보셔요. 만 평쯤 되면 큰 집일까요? 그러면, 만하고 한 평이면? 만하고 두 평이면? 만하고 백 평쯤 되는 집이 옆에 있으면 만 평짜리 집도 ‘작은’ 집이 되고 맙니다. 열 평짜리 집이라 해도 아홉 평짜리 집이 옆에 있으면, 열 평짜리 집도 ‘큰’ 집이 되어요.

  삶도 집도 서로 같습니다. 우리는 ‘큰’ 집이나 ‘작은’ 집에 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살 만한’ 집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자여야 하지 않고, 가난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 만한’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즐겁게 지낼 집에서 살면 됩니다. 즐겁게 가꿀 살림이면 됩니다.

  책을 몇 권쯤 읽어야 많이 읽는다고 할까요? 한 해에 천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셈일까요? 그러면 구백아흔아홉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 셈일까요? 아닐 테지요. 구백아흔여덟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다고 하지 않을 테지요? 이 숫자대로 한 권씩 덜어 오백 권 …… 삼백 권 …… 백 권 …… 열 권, 한 권에 이릅니다. 이제 0권에 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 많이 읽는 잣대’란 없습니다. 삶을 따지거나 재는 잣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숫자는 언제나 눈속임입니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더 작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면 모두 사랑입니다. 더 큰 선물이 없고, 더 작은 선물이 없습니다. 선물이면 모두 선물입니다. ‘크기’를 따지려 할 적에는 ‘삶’을 못 봅니다. ‘크기’에 얽매이는 사람은 ‘사랑’하고 멀어집니다. ‘크기’를 자꾸 살피면서 붙잡으려 한다면 ‘꿈’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크기는 늘 눈가림입니다.

  큰 꿈이나 작은 꿈은 없습니다. 큰 마음이나 작은 마음은 없습니다. 큰 생각이나 작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있을 것’이 있습니다. 그저 우리 삶이 있고, 사랑과 꿈이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아야 합니다. 눈을 속이거나 가리는 거짓을 벗겨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열 마지기 땅뙈기를 야무지게 갈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열흘 동안 한 마지기 땅뙈기를 겨우 갈았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둘은 저마다 제 삶에 맞게 땅을 갈았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며 누군가는 100점을 맞을 테고 누군가는 50점을 맞을 테며 누군가는 0점을 맞습니다. 100점이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점수는 늘 점수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크기’나 ‘숫자’나 ‘점수’가 아닙니다. 은행계좌나 권력이나 이름값을 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보고 ‘삶’을 보며 ‘사랑’과 ‘꿈’을 보면 됩니다. 보아야 할 모습을 볼 때에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아낄 때에 삶이 되며,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할 때에 사랑과 꿈이 피어납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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