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20. 덩굴잎에 후박가랑잎 2013.9.17.

 


  돌울타리 타고 자라는 덩굴풀이 시멘트마당으로 죽 뻗는다. 이 녀석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한다. 시멘트빛을 가리며 풀빛을 드리우니 보기에도 즐겁고, 아이들이 놀다가 이쪽에 넘어져도 시멘트바닥에 무릎이 까질 일 없어 퍽 괜찮다. 날마다 이 둘레를 지나다니며 풀빛이 싱그럽고 풀내음이 맑다고 생각하다가 새벽이슬 촉촉히 내려앉은 밤빛 가랑잎을 본다. 아침저녁으로 마당 한켠에서 돌나물 뜯을 적에 후박나무 가랑잎을 걷으며 뜯곤 하는데, 시멘트마당 바닥을 채우는 덩굴풀에 덩그러니 떨어져 밤을 새고는 새벽이슬 싱싱하게 내려앉은 후박가랑잎을 바라보니 새삼스럽다. 가을빛이니? 삶빛이니? 나무빛이니? 잎빛이니? 사랑빛이니? 꿈빛이니? 이슬빛이니? 보금자리빛이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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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9. 맨발로 노는 재미 2013.9.15.

 


  맨발로 놀며 흙을 느낀다. 시멘트마당이라면 시멘트를 느끼지. 풀밭이라면 풀을 느끼고, 아침에는 풀밭에 내려앉는 이슬을 느낀다. 어디에서나 발바닥이 땅을 느낀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맨발과 맨손은 온누리를 느낀다. 맨손으로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맨발로 이불을 꾹꾹 눌러 빨 적에 얼마나 기쁜가. 아이들은 맨발로 살며 맨발로 놀고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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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8. 가을로 가는 집 2013.9.9.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새롭게 즐겁다. 봄에는 날마다 흐드러지며 싱그러이 빛나는 봄볕이 즐겁고, 여름에는 후끈후끈 무더우면서도 시원스레 부는 여름바람이 즐거우며, 가을에는 날마다 새삼스레 익으며 고소한 내음 퍼뜨리는 가을내음이 즐겁다. 동백꽃에 내려앉는 겨울에는 봄을 부르는 겨울꽃이 즐겁다. 바깥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을빛을 바라본다. 가을로 가는 우리 집이로구나. 며칠 더 있으면, 또 거기에서 며칠 더 지내면, 가을빛은 한껏 샛노랗게 물들 테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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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7. 고무신 나비 2013.9.9.

 


  큰아이 노란 고무신에 네발나비가 앉는다. 마당으로 내려서려다가 멈칫 한다. 네가 여기 웬일이니 하고 물으려다가 날개를 쉬려고 내려앉았겠거니 생각한다. 대청마루에 살그마니 앉아서 한참 조용히 바라본다. 사진기를 들어 한 장 찍는다. 다시 한 장 찍는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찍고 싶어 사진기를 들고 섬돌로 내려서려 하니, 네발나비 깜짝 놀라 파르르 날아오른다. 나비가 스스로 날아오를 때까지 내려서지 말았어야 했나. 그러나 우리 집 풀밭에 내려앉아 쉬면 되지. 우리 집에는 풀밭이 많으니 어디에나 느긋하게 앉아서 쉬렴. 우리 집에는 고들빼기꽃도 많고 부추꽃도 많으니 어느 꽃에나 살포시 앉아서 꽃가루도 꿀도 실컷 먹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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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6. 자전거 마당 2013.8.26.

 


  마당이 조금 더 넓다면 아이들이 더 신나게 자전거놀이를 즐기리라 생각하지만, 이만 한 마당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빙글빙글 잘 돌면서 자전거놀이를 즐긴다. 더 작대서, 더 크대서, 할 놀이를 못 하거나 안 할 놀이를 하지는 않는다. 처마와 뒷간에 박힌 못으로 빨래줄을 잇고, 후박나무 그늘에 평상을 놓으며, 두 아이와 아버지가 타는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늦여름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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