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30. 빗방울 달린 빨래집게 2013.12.9.

 


  다른 고장에는 눈이 내려도 고흥에서는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다. 다른 고장에서 눈이 내린다 할 적에 고흥에서는 으레 비가 내린다. 겨울에 차가운 비가 마당을 적시고 평상을 적신다. 마당 한켠 까마중과 후박나무를 적신다. 겨울로 접어든 찬비가 내린 이튿날, 마당 한쪽 어린 살구나무는 마지막 잎사귀를 모두 떨군다. 어린 살구나무 둘레에 후박잎을 잔뜩 덮었기에, 마지막 살구잎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찾을 길이 없다. 틀림없이 살구잎은 후박잎하고 다른데 못 찾겠다. 고개를 돌려 빨랫줄을 바라본다. 빨래줄에 몇 그대로 둔 빨래집게에 겨울빗방울 달린다. 잎 모두 떨군 살구나무도 예쁘고, 찬비를 대롱대롱 매단 빨래집게도 예쁘다. 찬비가 내리니 까치와 까마귀와 직박구리와 딱새와 참새와 박새와 멧비둘기마저 조용하다. 모두들 이 찬비를 그으려고 후박나무나 동백나무 가지에 조용히 깃들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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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10 20:57   좋아요 0 | URL
간만에 빨래집게를 보는 것 같습니다.^^
빨래집게 사진이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10 23:51   좋아요 0 | URL
연출할 수 없는 모습들이
예쁜 사진이 되는구나 싶어요~
 

고흥집 29. 하늘타리 붉은 잎잔치 2013.11.26.

 


  고샅길 쪽에 있는 우리 집 헛간 벽을 타고 하늘타리가 다닥다닥 뻗는데, 늦가을이 되니 이 잎사귀가 온통 붉게 물든다. 이웃 다른 집들은 벽이나 담에 넝쿨 뻗으면 보기 싫다며 모조리 걷어내시지만, 우리 집만큼은 그대로 둔다. 여름에는 푸르니 싱그럽고, 가을에는 짙붉게 물드니 그야말로 그림이 된다.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가려고 자전거를 고샅길로 빼고 대문을 닫으려다가 한참 서서 이 가을빛을 바라본다. 잎빛과 하늘빛과 구름빛이 어쩜 이리 고울까. 고샅길이 옛날처럼 흙길이었으면, 길바닥 흙빛이 한결 곱게 얼크러졌겠지. 헛간이 시멘트벽 아닌 흙담이었으면 훨씬 어여쁜 무지개빛으로 해맑았을 테고.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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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8. 가을나무 2013.11.26.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학교는 1998년부터 문을 닫았다. 이곳에 농약을 치는 마을사람 없고, 학교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사람 없다.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가. 나무는 비와 바람과 햇볕으로 씩씩하게 자란다. 나무는 나무결 그대로 건사하며 하늘바라기를 한다.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면서 가을빛을 뽐낸다. 나무 앞에 서며 한참 가을노래 듣는다. 바람 따라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쏴르르 물결소리 들려주는가 싶더니, 장끼 한 마리 포도독 꽁꽁꽁 하면서 날아간다. 너도 이 나무 한쪽에 앉아서 가을노래를 함께 들었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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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7. 겨울 들빛 누리기 2013.11.23.

 


  사람들은,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울 빈들’이 어떤 빛인지 모른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고 볼 일이 없다. 요새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겨울 빈들 빛깔을 느끼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기 일쑤이다. 옛날 같으면 가을걷이 마친 논을 바지런히 갈아서 보리를 심느라 ‘겨울 빈들’ 빛깔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요새는 시골사람도 먹고살 만하니까 겨울 빈들을 그대로 놀린다 할 수 있다. 아니, 이제 시골에는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으니 마늘심기조차 하기 벅차 그대로 빈들로 둔다고 할 만하다.


  우리 집 논은 아니지만 겨울 빈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문만 열면 들판이니까. 가을걷이가 끝나고 꽁댕이만 남은 논배미에 새잎 푸릇푸릇 돋는다. 누렇게 바랜 볏꽁댕이 사이로 푸른 잎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풀이란 이렇게 대단한 숨결이요 목숨인 줄 다시 깨닫는다. 어쩌면, 이대로 이 볏포기는 쑥쑥 자라지 않을까. 겨울 빈들은 누렇기만 하지 않다. 겨우내 더 자라지는 않지만, 누렇게 시든 볏포기 사이로 푸릇푸릇 올라온 앙증맞은 새잎 푸른 빛이 올망졸망 넘실거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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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6. 빨래빛 고운 2013.5.1.

 


  아이가 있는 집은 빨래빛이 한결 곱다. 아이들한테 입히는 옷은 알록달록 어여쁘기 때문이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알록달록 어여쁜 빛이 흐드러지는 옷을 입을 만하다. 아이도 어른도 아름다운 빛을 실컷 누리면서 싱그러운 풀과 파란 하늘하고 사이좋게 어울리면 날마다 즐겁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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