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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5. 매화나무 노란 열매 2013.7.2.

 


  사람들이 매실효소 담근다면서 따는 매화나무 열매를 보면 알이 아주 작다. 저렇게 작은 알일 적에 따는 열매가 사람 몸에 얼마나 좋을는지 아리송한데, 매실효소를 담으려는 이들은 열매가 하나도 안 익었을 뿐 아니라, 아직 굵지 않았을 적에 모조리 딴다. 소담스레 익는 열매가 한 알조차 없는 매화나무는 잎사귀만 짙푸른데, 어딘가 애처롭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 매화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웃들은 이리저리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 높이 키가 자라지 않도록 가지를 꾸준하게 쳐서, 사다리 없이도 열매를 딸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애써 가지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한쪽에 너무 배게 가지가 나거나 끄트머리에 벌레가 좀 많이 먹는구나 싶은 데는 잘랐지만, 다른 가지는 모두 그대로 둔다. 우리 식구 깃들기 앞서 으레 가지를 잘리며 지냈을 이 매화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뻗고 줄기를 올리며 잎사귀와 꽃과 열매를 북돋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요즈음은 노란 빛과 붉은 빛이 감도는 매화 열매가 익는 모습을 아이들과 바라본다. 알이 참 통통하고 단단하다. 노랗고 붉은 빛이 감돌 때에는 ‘노붉다’고 해야 할까? 매실빛이라 한다면 바로 이 같은 노랗고 붉은 빛을 가리켜야 하지 않을까? 한자말로 ‘황매실’이라 하는 사람이 있지만, ‘黃’이라는 한자로는 노랗고 붉은 빛을 담아내지 못한다. 지난날에도 오늘날처럼 매화나무 열매를 안 익었을 적에 땄을까 궁금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매실빛도 매화나무 모습도 제대로 모르는 채 살아가지 않나 싶다. 우리 집 매화나무가 짙푸른 그늘 넓게 드리울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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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5 10:04   좋아요 0 | URL
탐스럽게 잘 영근 노랗고 붉은 매실이 보기가 좋습니다.
향기가 아주 좋치요~^^
정말 매실,하면 새파란 열매만 떠올릴 듯 해요..
잠깐 지나가는 매실을 파는 시장이나 마트에는 온통 초록색 매실만 나오니까요..
지난번 매화나무 열매 담으신 사진도 참 좋았어요~.

숲노래 2013-07-05 11:03   좋아요 0 | URL
가게나 시장에 나오는 매실은...
따지고 보면 '매실'이라 할 수도 없는
'안 영근 풋열매'인데다가
'자라지도 않은' 열매라 해야 옳지 싶어요.

오늘은 아침 먹기 앞서,
며칠 앞서 딴 노붉은 매실을 작게 썰어
아이들과 먹었습니다 ^^
 

고흥집 4. 우리 집 풀밭 2013.6.30.

 


  풀밭을 바라본다.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아마 풀은 제멋대로 자란다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풀 나름대로 제멋’으로 자라니까 제멋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손길을 보며 자란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손길로 저희를 쓰다듬거나 마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자란다. 우리 집 풀밭은 좀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땅심을 북돋우고 싶기에 한동안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오래도록 농약과 비료에 길든 땅뙈기에 숱한 풀이 나고 자라다가 겨우내 시들어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기운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이 풀도 좋고 저 풀도 좋지. 이 풀도 반갑고 저 풀도 고맙지. 다만, 나무한테 가는 길은 낫으로 벤다. 매화나무, 뽕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여기에 올해에 우리가 심은 어린나무로 가는 길만큼은 거님길을 낸다. 매화나무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만져 보려고 풀밭을 낫으로 베면서 지나간다. 큰아이가 따라온다. 우리 집은 워낙 풀밭이니 이제 아이들은 이럭저럭 익숙하다. 늘 맡는 내음을 느끼고, 늘 보는 빛깔을 마주한다. 얘, 사름벼리야, 이 풀이 바로 풀빛이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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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 하늘타리잎 큰멋쟁이나비 2013.6.28.

 


  나비가 살아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나비가 자라려면 어떤 터전이어야 할까. 나비가 알을 낳고, 이 알이 깨어나려면, 또 깨어난 알에서 자랄 애벌레가 씩씩하게 크려면, 어떤 보금자리가 이루어져야 할까. 나비가 알을 낳고 깨어나는 데와 나비가 알을 못 낳고 깨어날 수도 없는 데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 한여름으로 접어들며 온갖 나비를 두루 만나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사람들만 왁자지껄 부산스레 모여서 살아가는 데에서는 나비를 만나기 몹시 어렵다. 그래도 나비는 도시 한복판 어디엔가 있는 풀섶에 깃들어 알을 낳고는 목숨을 잇는다. 느긋이 앉아서 먹을 꽃가루 하나 찾기 어려운 도시에서조차 나비는 사람들한테 말을 건다. 비록 도시사람 누구나 제 갈 길과 제 할 일에 바빠 나비춤을 쳐다보지 않지만, 게다가 나비는 가녀린 팔랑날갯짓으로 낮게 날다가 자동차에 치이고 버스에 치이며 사람들 발에 밟히지만, 그래도 사람들한테 말을 걸려고 도시 한복판에서조차 드문드문 알을 낳으며 살아간다. 우리 집 나비들은 어떠할까. 우리 집 나비들은 살 만할까. 우리 집 나비들은 내려앉을 꽃송이 넉넉히 누리면서 즐겁게 짝짓기를 할 만할까. 하늘타리 잎사귀 뻗는 돌울타리 한쪽에 앉아서 쉬는 큰멋쟁이나비 한 마리 바라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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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 개망초꽃 작은주홍부전나비 2013.6.24.

 


  풀이 있어야 꽃이 피고, 꽃이 있어야 벌나비 춤을 춘다. 풀이 없으면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피지 않으면 벌나비 찾아들지 않는다. 한국말에는 ‘꽃을 담는 그릇’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집 안쪽에 따로 꽃그릇(화분)을 두지 않았기에, 이런 그릇 가리키는 낱말을 지을 일 없다. 마당이 꽃밭이면서 텃밭이요, 집 둘레가 풀밭이면서 꽃밭이고, 울타리가 바로 꽃나무요 덩굴이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지붕은 온통 흙이고 짚으로 덮고, 지붕에서는 박이 자라 꽃을 피우니, 예부터 한겨레는 숱한 풀과 꽃으로 온 집안과 마을을 가꾸었다고 느낀다. 이제 시골마을마다 농약 비료 듬뿍 쓰고, 지붕 갈고 마당 시멘트 바르면서 들풀을 몹시 싫어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풀포기 조금만 자라도 모기 걱정을 하거나 뱀이 나온다고 근심한다. 그런데 풀이 자라지 않으면 누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집 안팎에 풀이 흐드러지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숨을 마실까. 철 따라 다른 풀이 자라고, 달마다 새로운 풀이 돋아, 푸르며 맑은 바람이 솔솔 불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싱그러운 숨결 될 수 있지 않을까. 씩씩하게 자라는 개망초에 흰꽃 맺히고, 개망초꽃에 작은주홍부전나비 앉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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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26 02:24   좋아요 0 | URL
화분보다 꽃그릇이란 말이 더 예뻐요! *.*

숲노래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꽃그릇'은 제가 한 번 만들어 본 낱말이에요.
'화분'이라는 낱말이 그리 내키지 않아서요 ^^;;
 

고흥집 1. 초피나무 범나비 2013.6.22.

 


  아이들 저녁 먹이려고 부산하게 밥을 짓고 국을 끓인 다음, 마당 꽃밭에서 풀을 뜯다가, 갓 깨어나 날개를 말리는 범나비 한 마리 본다. 이야, 드디어 ‘우리 집 나비’를 만나는구나.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틀림없이 ‘우리 집 나비’가 꽤 태어났을 텐데,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다. 오늘 비로소 ‘허물벗기’까지 마친 범나비를 본다. 풀뜯기와 저녁차리기는 뒤로 미룬다. 작은아이가 아버지 사진 찍는 곁에 찰싹 달라붙는다. 큰아이는 마루에서 만화책 보느라 바쁘다. “보라야, 저 범나비는 바로 우리 집에서 알을 깬 나비란다. 우리 집 풀잎과 나뭇잎 실컷 뜯어먹고서 이제서야 예쁜 나비로 태어났지.” 곰곰이 생각하니, 올봄에 풀을 뜯다가 범나비 애벌레를 한 마리 보고는 “요 녀석, 너 혼자 이 풀 다 먹으면 안 돼. 우리 식구 다 같이 먹는 풀이야.” 하고 말한 적 있다. 그때 그 애벌레일까. 마을에 초피나무는 우리 집에만 있으니, 가을에도 또 알을 낳고, 이듬해에도 새롭게 알을 낳아 우리 마을에 나비춤 한껏 나누어 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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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4 09:32   좋아요 0 | URL
아~범나비군요.~^^
함께살기님 집의 범나비야, 안녕~!! ^^

숲노래 2013-06-24 10:33   좋아요 0 | URL
다들 호랑나비라고 하지만...
'호랑'이란 말 쓰인 지
참 얼마 안 되었답니다...

예전엔 모두 범나비라고 했는데
이제는 99.99% 호랑나비라고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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