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32] 후박나무 자전거
― 가을빛 마시는 하루

 


  면소재지 마실을 다녀온 뒤 후박나무 마당에 자전거를 세운다. 땀을 들이며 가방을 벗는다. 기지개를 켠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나들이를 마친 뒤,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집안으로 들이느라 애를 먹기 일쑤요, 자전거 둘 만한 보금자리 얻기가 퍽 어렵기까지 하다. 값싼 자전거이든 비싼 자전거이든,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 놓으면 누군가 훔쳐간다. 살짝 한눈을 파는 사이에 몰래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자물쇠를 채웠어도 끊고 훔치는 사람이 있다.


  시골이라고 훔치는 사람이 없겠느냐만, 도시에서처럼 애를 태우는 일은 없다. 더구나,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찾느라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자전거 둘 만한 자리가 넉넉하다.


  가만히 헤아리면, 도시에서는 끔찍하도록 늘어난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가 설 자리를 잃는다. 도시에서는 사람조차 설 자리를 잃는다. 두 다리로 느긋하게 나들이를 다니기 어렵다. 아이들이 골목이나 길에서 느긋하게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땅바닥에 금을 긋거나 돌로 그림을 그리며 놀지 못한다. 흙바닥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였고, 그나마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이라 하더라도 뛰놀 빈터가 없다. 모조리 자동차가 들어서고, 자동차가 떡하니 서지 않더라도 쉴새없이 지나다닌다.


  나무그늘 밑에 자동차를 세우지도 못하고, 자전거를 세우지도 못하는 도시이다. 도시에서는 땅을 깊게 파서 차 댈 곳을 마련한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거의 없다.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녀도 자전거를 마땅히 세울 빈터가 없다. 자동차는 사람들 걷는 자리까지 함부로 올라선다. 그야말로 사랑스럽지 못한 삶터가 되는 도시요, 참말로 아름답지 못한 마을이 되는 도시라고 느낀다.


  가을빛 고운 날, 후박나무 그늘에 서서 구름을 바라본다. 나무 한 그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무가 자라는 흙땅은 얼마나 싱그러운가. 나무가 마주보는 저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맑은가.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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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1] 시골에서 만나는 뱀
―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시골에서 살아간다고 하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뱀이 나올까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분 있으면, “우리 집에는 지네도 함께 살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작은 지네도 아니고 굵다랗고 커다란 지네라고, 우리는 이런 지네 만나면 쓰레받기에 담아서 바깥으로 내보내는데, 마을 이웃들 보았으면 술병에 담든지 기둥에 못으로 박아서 약으로 쓰려 한다고 덧붙입니다.


  시골이니, 시골 흙에 지렁이와 개미만 있지 않습니다. 사마귀와 메뚜기도 있고, 여치와 방아깨비도 있습니다. 제비와 박새와 딱새와 참새가 얼크러지고, 직박구리며 꿩이며 까치이며 꾀꼬리이며 소쩍새이며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우리 집 둘레 풀밭에는 개구리가 많이 살아가니 으레 뱀을 볼 만합니다. 다만, 뱀이 꺼리는 풀이 우리 집 둘레에서 많이 돋아, 뱀이 좀처럼 우리 집에는 못 나타난다고 느껴요. 숲이나 들에서, 다만 아직 농약을 뿌리지 않은 숲이나 들에서 뱀을 만납니다. 농약을 뿌린 숲이나 들에는 뱀이 없어요. 뱀뿐 아니라 개구리도 없어요. 풀도 농약을 맞아 죽지만, 뱀도 개구리도 개미도 풀벌레도 모조리 농약을 맞아 죽어요.


  십일월 한복판을 지나 십이월 가까운데, 아직 겨울잠에 들지 않은 뱀을 길에서 만납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인데, 아스팔트 찻길 한복판에 뱀 한 마리 또아리를 틀고 볕바라기를 합니다. 날이 추우니 이곳에서 따순 볕을 받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척 보아도 곧 자동차에 밟혀 죽겠구나 싶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차바퀴로 짓밟을 만한 데에서 볕바라기를 하니까요.


  여름에는 여름대로 뱀한테 말을 겁니다. 얘, 얘, 너 내 눈에 뜨여서 그렇지, 다른 사람 눈에 뜨였으면 벌써 잡혀서 술병에 갇히거나 찢겨 죽었을 테야. 요즈음은 옛날 같지 않아 뱀이 많이 줄어, 너를 잡아 보약 쓰려는 사람 많거든. 얼른 풀숲으로 숨으렴.


  나는 풀숲을 거닐 적에 뱀에 물릴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 뱀이 왜 사람을 물겠습니까. 기껏 사람 물어 보아야 곧바로 잡혀 죽을 텐데, 얼른 꼬리를 감춰야지요. 어쨌든, 뱀이 있어야 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며 파리며 풀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수리와 매와 소쩍새는 뱀을 잡아먹습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살아가야 숲이 살고, 숲이 살 때에 사람도 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면, 이 땅을 농약이나 비료로 더럽히거나 망가뜨릴 일이 사라지겠지요. 4346.11.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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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11-1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헉 전 넘 무섭네요 사진까지 보니 글은 정겹게 읽었지만

숲노래 2013-11-19 10:44   좋아요 0 | URL
물끄러미 바라보면 하나도 안 무섭고 귀엽답니다 ^^
 

[시골살이 일기 30] 집으로 집으로
― 눈과 마음과 머리를 트는 길

 


  바깥일을 보러 먼먼 마실을 다녀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먼길입니다. 순천을 다녀오더라도 가깝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다녀오는 길은 무척 멉니다. 고흥에서 다른 시골로 찾아가는 길은 훨씬 더 멉니다. 시골에서 시골로 움직이면, 새로운 시골빛을 누리며 즐겁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다녀와야 할 적에는 몸이 여러모로 고달픕니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려야 하고, 온통 빽빽하게 들어찬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가게와 전깃줄에 들볶여야 합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북돋울 수 있기에 먼 마실을 다녀요.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아름다운 꿈을 주고받다 보면, 다른 시끄럽거나 자질구레한 소리와 모습은 어느새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다만, 시외버스를 여러 시간 타면 속이 울렁거리고 골이 아파요. 그런데, 시외버스가 여러 고속도로를 거쳐 벌교읍 지나 고흥읍 동강면으로 접어들면 멀미와 울렁거림이 감쪽같이 사라져요. 버스에 탄 몸이라 바깥바람을 쐴 수 없지만, 바깥에서 흐르는 고운 시골바람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까요.


  시외버스는 과역면을 지나고 고흥읍에서 섭니다. 고흥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우리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동안 나는 군내버스가 달리는 시골길에서 흐르는 냄새를 맡고, 별빛을 느끼며, 풀노래를 듣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을 살찌우면서 삶을 빛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이며, 내가 선 이 마을은 어떤 이야기 흐르는 터전일까요.


  읍내에서 20분 달린 끝에 동백마을에 닿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늦가을이라 풀벌레는 더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누런 풀포기가 춤노래를 베풉니다. 버스는 등불을 켜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립니다. 나는 어두운 고샅길을 거닐며 밤하늘 별자리를 올려다봅니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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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9] 철 따라 다르다
― 가을길 걷기

 


  시골마을은 철 따라 다릅니다. 도시도 철 따라 다르다 여길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온도만 다르지, 철 따라 다른 모습은 하나도 없습니다. 풀과 나무가 자랄 빈틈 거의 모두 없애고 높직하게 시멘트집 짓는 도시에서는 봄과 가을이 어떻게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얼마나 다른가를 눈과 귀와 살갗과 마음으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시골마을은 온통 시멘트밭입니다. 논둑과 밭둑도 시멘트요, 마당과 고샅도 시멘트입니다. 논도랑마저 시멘트예요. 시멘트로 닦는 시골길은 경운기와 짐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시멘트로 닦은 시골길은 아이들이 놀기에 나쁘고, 어른들이 걸어 마실 다니기에 나쁩니다.


  너무 마땅한데, 시멘트바닥과 아스팔트바닥에는 씨앗을 못 심습니다. 나무와 풀은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에서 못 자랍니다. 자동차와 기계 다루기에는 좋다지만, 시골이라는 곳은 흙땅에 씨앗 심어 일구는 곳인 만큼, 자동차와 기계한테만 땅을 내주면 시골이 시골다움을 잃습니다.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는 길에, 읍내에서 군내버스를 내려 걷습니다. 사오십 분이면 넉넉히 걸어갈 길이지만 더 천천히 걸어 한 시간 삼십 분 들여 걷습니다. 걷다가 일부러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한참 기지개를 켜며 숲바람 마십니다. 수덕마을 지나 두곡마을로 접어드는 갈래길부터 자동차가 거의 없습니다. 이 길자락을 삼십 분 걷는 동안 군내버스 두 차례 지나가고 다른 자동차 넉 대 지나갑니다. 자동차 오가지 않는 동안 오롯이 풀내음 맡고 풀노래 듣습니다. 가을빛 내려앉은 들길을 누립니다.


  가을빛은 풀과 나무가 알려줍니다. 가을내음은 풀과 나무에서 흐릅니다. 숲이 있을 때에 철을 느낍니다. 숲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지는 빛과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가을에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 배부르게 나누지요. 봄에 씨앗을 심으며 부푼 꿈을 꾸지요.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가을길 함께 천천히 거닐며 흙과 숲과 하늘과 바람을 마음 깊이 받아안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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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8] 무엇을 그릴까
― 아이와 그림놀이 즐기기

 


  큰아이가 세 살이 꽉 차지 않을 무렵까지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도시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큰아이하고 어떤 그림놀이를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골목마실 자주 다니면서 골목동네에서 만난 골목꽃이랑 골목나무를 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그림그리기를 퍽 좋아할 무렵 시골로 보금자리 옮겨 살아가는 만큼, 아이는 늘 시골빛을 마주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집 둘레 풀을 봅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를 봅니다. 집 안팎에서 풀꽃과 들꽃을 바라봅니다. 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며 들내음 마시며, 이 기운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어 밥상에 올리는데, 아이들이 먹고 남은 풀이 밥상에 그대로 있습니다. 큰아이는 밥그릇 치운 밥상을 책상으로 삼아 그림놀이를 합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책상 곁에 우리 마당에서 뜯은 풀이 꽃접시에 담긴 채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림놀이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풀내음 살며시 아이 마음과 몸으로 스며들겠다고 느낍니다. 늘 풀을 마주보면서 풀빛을 그림에 담고, 언제나 풀을 먹으면서 풀내음을 그림으로 나타내겠구나 싶어요.


  무엇을 그림으로 그릴까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늘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지요. 무엇을 그림으로 그리며 즐거울까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보금자리를 가꾸고 돌보면서 배우고 깨달으며 맞아들이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으며 즐겁지요. 4346.10.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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