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62] 함께 걷는 논둑길

― 손님이랑 빗길 나들이



  논둑길을 걷습니다. 우리 시골집으로 마실을 온 손님과 함께 논둑길을 걷습니다. 비가 내리는 길이라 논둑길은 질퍽거리는데,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빗물이 고인 자리는 일부러 찰박거리며 뜁니다. 어머니 손을 잡다가 아버지 손을 잡다가 손님 손을 잡으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우산을 써도 즐겁고, 우산이 없이 비를 맞아도 즐겁습니다. 그저 즐겁게 뛰놀며 걸어갈 수 있는 놀이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가니, 손님과 함께 걷는 길은 시골길입니다. 논둑길이나 들길이나 숲길을 걷습니다. 논둑길을 걷고 들길을 걸으며 숲길을 걷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마당에 걸상을 놓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없으니 큰길에서도 거리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목소리가 고스란히 서로한테 닿습니다.


  나는 네 목소리를 듣고 너는 내 목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끼리 속닥속닥 노래하는 사이사이 멧새가 날아들면서 보드라운 빛을 흩뿌립니다. 구름이 흐르고 풀잎이 사그락사그락 흔들립니다.


  메꽃을 봅니다. 나리꽃을 봅니다. 싱그러운 볏포기를 봅니다. 들꽃을 바라보고 들풀을 마주합니다. 풀내음을 마시고 빗내음을 먹습니다. 이야기꽃은 어느덧 이야기밥이 되어 배가 부릅니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안아 주거나 업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은 스스로 삶을 가꾸는 노랫가락입니다. 4347.7.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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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1] 새끼 고양이 나들이

―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는 집



  나즈막하고 여린 고양이 소리를 곧잘 들었지만, 이 소리가 새끼 고양이 소리인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엊그제 낮에 풀숲 사이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노는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알았어요.


  며칠 앞서 밤에는 마당에 내려서서 달과 별을 보는데, 어미 고양이가 나를 보고 캬악 하고 소리를 냈습니다. 이 녀석이 네 집 아닌 우리 집에서 웬 캬악 소리인가 하면서 똑같이 캬악 하면서 마주 소리를 냈지요. 그때까지 몰랐지만, 새끼 고양이하고 밤마실을 나왔기에 새끼를 지키려는 마음에 캬악 했구나 싶었습니다.


  아침과 낮에 새끼 고양이를 살몃살몃 만납니다. 우리 집 헛간에서 태어난 작고 가녀린 아이들은 햇볕을 쬐려 어미와 함께 나들이를 나오곤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면 헛간에서 조용히 있고, 우리 집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오면 한참 뒤에 천천히 마당으로 나옵니다.


  빨래를 널다가 새끼 고양이를 만납니다. 빨래를 널며 조용조용 움직이니까, 풀숲에 있던 새끼 고양이는 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진기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마루문 여닫는 소리에 놀라서 숨어요. 하기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가 굳이 사진에 찍히고 싶겠습니까.


  여러 날 풀숲 너머로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우리 집 헛간이나 뒤꼍 풀숲에서 먹고자는 마을고양이는 우리 식구가 옆을 지나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우리 식구도 마을고양이를 해코지할 일이 없습니다. 서로 알맞게 떨어진 채 한마을에서 살고, 또 한집에서 지냅니다. 새끼 고양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도 우리 마을과 우리 집에서 지낼까요? 아니면 다른 마을이나 다른 집을 찾아서 떠날까요?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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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29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함께살기님 집 헛간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군요!!^^
그러지 않아도 저도 오늘,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를 읽으며
내내 즐거웠는데요~
아이고~ 새끼 고양이의 모습이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숲노래 2014-06-29 18:59   좋아요 0 | URL
아, '고양이하라'라, 재미있는 말이네요~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잘 건사해서
사진으로 찍기 퍽 어려웠지만,
마당 한쪽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두 시간쯤 기다린 끝에
두 장 찍을 수 있었어요 ^^

이 아이들이 크면 한결 쉽게 사진으로 담겠지만,
아무래도 새끼일 적에도 몇 장 담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이 아이들은 우리 집 헛간에서 자꾸자꾸
새끼를 낳으리라 봅니다~
 

[시골살이 일기 60] 초등학교 놀이터 쓰레기

― 어른 몸짓 아이 생각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곧잘 나들이를 갑니다. 그곳에는 놀이터가 조그맣게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둘이 놀기도 하고, 때때로 마을 동무를 만나서 섞이기도 합니다. 퍽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초등학교 놀이터에 와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가 있으며, 아이와 함께 노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살짝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나무바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제 면소재지에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가서 놀이터에 들렀습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뛰놉니다. 놀잇감이 몇 가지 없어도 이 몇 가지 놀잇감으로 즐겁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놀던 몇 아이가 이녁 어머니와 함께 놀이터를 떠납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하고 말하니 아이들은 아쉬움 없이 놀이터를 떠납니다. 큰아이가 문득 나를 부릅니다. “아버지, 시소 놀게 이리 좀 와요.” 아직 우리 아이들은 어려 저희끼리 시소를 못 탑니다. 그래, 도와주지.


  시소놀이를 마치고 다른 놀이를 할 즈음, 놀이터를 둘러보다가 모래밭에 온갖 쓰레기가 널린 모습을 알아챕니다. 아, 이 비닐쓰레기를 누가 여기에 버렸을까. 지나칠 수 없어 하나씩 줍습니다. 주운 비닐쓰레기를 작게 접습니다. 모래밭 귀퉁이에 폭죽놀이 빈 껍데기도 있습니다. 밤에 누가 여기까지 와서 폭죽놀이를 하고는, 빈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갔지 싶습니다. 놀이터 둘레에는 면소재지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를 담은 종이잔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 쓰레기, 저곳에는 저 쓰레기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초등학교 놀이터에 있는 쓰레기는 틀림없이 이곳에 와서 놀던 아이와 어른이 버립니다. 그리고, 이 쓰레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나 어른이 주워야 합니다. 또는 이곳을 지나가는 누군가 주울 테지요.

  집에서 방바닥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릴까요. 학교에서는 교실바닥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릴까요. 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쓰레기를 아무 데에나 쉬 버릴까요.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라면 쓰레기를 버릴 수 없습니다. 바닷가이든 숲이든 집이든 마을이든 학교이든,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좋아하며 삶을 누리는 곳이라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뿐더러, 쓰레기가 눈에 뜨이면 스스로 줍거나 치우겠지요.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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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9] 제비들과 노래해
― 어미 제비는 한결 가까이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갯짓하기까지 얼마 안 남습니다. 이제 어미 제비는 새끼한테 거의 마지막이라 할 먹이를 물어 나릅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면서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이끌면서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한테 마지막 먹이를 물어다 주면서 어떤 마음이 샘솟을까요.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먹이를 물어 나른 어미 제비는 이제 빨랫줄에도 살그마니 내려앉습니다. 새끼 제비가 이제나 저제나 둥지를 스스로 박차고 날아오를까 하고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빨랫줄에 앉은 제비를 보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인사합니다. 아이들이 폴짝거리면서 손을 흔드니 어미 제비는 포르르 날아서 헛간 위쪽 전깃줄로 옮겨 앉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노래하는 제비들 목소리는 사뭇 다릅니다. 새끼 티를 벗고 어른 티가 나려는 듯합니다. 며칠 앞서까지 가느다랗거나 가녀린 목소리였다면, 오늘 아침에는 제법 굵고 씩씩한 목소리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나날이 새로운 목소리로 거듭납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답게 더 말을 잘 할 뿐 아니라 노래도 잘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답게 말씨마다 또렷한 기운이 드리우고, 누나가 하는 말이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든 곧잘 따라합니다. 손놀림도 늘어 혼자서 장난감 조각을 잘 떼고 붙이면서 놀아요. 두 아이는 모두 호미를 쥐어 땅을 쫄 수 있으며, 자전거 마실을 하다가 비파 열매를 둘 따서 건네니, 비파 열매를 둘이서 마당 한쪽에 호미로 땅을 콕콕 쪼더니 심습니다.

  유월에서 칠월로 넘어가는 길목에 새끼 제비는 이곳저곳에서 날갯짓을 익힙니다. 우리 집 어린 제비는 이웃집 어린 제비를 만나서 신나게 어울릴 테고, 우리 마을 제비는 이웃 여러 마을 제비를 만나서 즐겁게 어우러지리라 봅니다.

  훨훨 날며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훨훨 날며 하늘빛으로 깃털을 물들입니다. 훨훨 날며 하늘숨을 마시고, 하늘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제비 곁에서 제비춤을 추면서 제비와 노래를 부릅니다. 가벼운 몸짓으로 뛰고, 가붓한 얼굴로 까르르 웃습니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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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8] 뒤꼍에서 만난 실잠자리
― 풀숲놀이


  네 식구가 함께 먹을 풀물을 짜려고 풀을 뜯습니다. 풀물을 짜려면 들풀이나 숲풀을 뜯어야 합니다. 농약이나 비료 같은 기운을 아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풀을 뜯어야 합니다. 풀이 스스로 꽃을 피워서 씨앗을 맺은 뒤 스스로 퍼뜨려서 자라난 풀을 뜯어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사람 누구나 풀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풀죽을 쑤어 먹었다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을 달리 느낍니다. 다른 어느 것보다 풀죽이 맛나면서 좋기 때문에 풀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고 느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풀이 언제나 이웃이요 삶벗입니다. 흙일을 괴롭히는 풀이란 없습니다. 사람 곁에 있는 풀은 언제나 세 갈래예요. 첫째, 사람이 입으로 먹는 풀입니다. 둘째, 사람이 몸에 걸칠 옷을 짜도록 실을 얻는 풀입니다. 셋째, 사람이 그릇이나 바구니로 엮도록 쓰는 풀입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옛날 시골사람 삶에는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버릴 것이 없던 옛날 시골살이요, 버릴 것이 없던 옛날 시골살이라 할 만하기에, 옛날 시골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합니다.

  세 해 동안 즐겁게 묵힌 뒤꼍 일흔 평 풀숲을 천천히 누빕니다. 스무 가지 즈음 되는 풀을 뜯습니다. 온갖 풀이 저마다 얼크러져 자라니, 온갖 딱정벌레가 우리 집 뒤꼍 풀숲에서 자랍니다. 나는 온갖 풀을 기쁘게 얻으며 풀물을 짭니다. 이런 풀 저런 풀 기쁘게 뜯어 바구니에 담아서 부엌으로 가려는데, 실잠자리 한 마리 살랑살랑 바람 타고 날아서 내 앞에 앉습니다. 하늘빛 몸통과 꼬리로 춤추는 실잠자리입니다.

  걸음을 멈춥니다. 숨을 고릅니다. 이 아이는 제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타났구나 싶습니다. 싱그러운 풀숲에서 노닐며 누린 맑은 빛을 알려주고 싶어서 나왔구나 싶습니다. 학술이름으로는 ‘푸른아시아실잠자리’라 하는데, 내 눈앞에 나타난 이 실잠자리 몸빛은 ‘하늘빛’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뒤꼍에서 만난 실잠자리한테 ‘하늘실잠자리’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풀숲에서 풀을 뜯으며 놉니다. 딱정벌레하고 놀다가 실잠자리하고 놉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놀고, 해마다 보송보송 살아나는 흙땅을 밟으며 놉니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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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잠자리가 '하늘빛'이네요~
몸빛이 노랗거나 빨간 고추잠자리만 보았는데, 하늘빛 '하늘실잠자리'가
참 곱습니다.^^

숲노래 2014-06-10 09:43   좋아요 0 | URL
이제는 시골에서도 실잠자리는
만나기 참 힘들어요.

여느 잠자리도 실잠자리도
어디에서나 우리들과 함께
살 수 있기를 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