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7] 하늘 보면서 걷기

― 시골에서 지내는 뜻



  나는 하늘을 보면서 걷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할 적에도 으레 하늘을 보면서 발판을 구릅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하늘을 보면서 걷습니다.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하늘을 보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낮하늘이 얼마나 파랗게 환한지 올려다봅니다. 밤하늘이 얼마나 새까맣게 어두우면서 갖은 별빛으로 눈부신지 올려다봅니다. 낮에는 하늘과 구름이 환해서 눈살을 살며시 찡그립니다. 밤에는 새까만 바탕에 별빛이 초롱초롱하기에 눈살을 가만히 찡그립니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하늘을 압니다. 흙을 보는 사람은 흙을 압니다. 나무를 보는 사람은 나무를 압니다. 그리고, 책을 보는 사람은 책을 알며,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화를 알아요. 야구를 본다면 야구를 알 테고, 축구를 본다면 축구를 알 테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바라보는 것을 압니다. 스스로 바라보는 대로 배워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을 살피면 날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하늘읽기’나 ‘날씨읽기’를 할 줄 모릅니다. 하늘을 안 보기 때문이고, 구름맛이나 바람내음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뱃사람은 바다에서 하늘과 물과 바람을 온몸으로 헤아리거나 읽습니다. 바다에서 바다를 읽지 않으면 고기를 못 낚아요. 바다에서 하늘과 바람을 읽지 않으면 그만 비바람이나 물결에 휩쓸릴 수 있어요. 이리하여,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하늘을 읽고 흙을 읽으며 풀과 나무를 읽었어요.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꾸리거나 지으려고 하늘도 흙도 풀도 나무도 읽었어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다가 때때로 눈을 살짝 감으면서 큼큼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혼자 걷거나 아이들과 걸으면서 풀내음과 나무노래를 맞아들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도 있으나, 돌을 만지면서 배울 수도 있고,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배울는지 스스로 살필 노릇인데, 나는 시골에서 하늘을 보고 읽고 배우고 느끼고 싶습니다. 4347.10.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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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0-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느낌이네요

숲노래 2014-10-23 10:36   좋아요 0 | URL
네 아주 시원하답니다~
 

[시골살이 일기 76] 여기, 시골에서 놀아요

― 놀이터가 삶터가 될 때에



  자동차가 드물었을 적에,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아이들은 마음껏 뛰면서 놀았습니다. 자동차가 없었을 적에, 도시라는 곳은 따로 없이 서울도 똑같은 시골이었고, 이때에는 어디에서나 모든 아이들이 신나게 뛰면서 놀았습니다.


  자동차가 아주 많다 못해 넘치는 요즈음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이 뛰놀기 어렵습니다. 시골은 도시와 대면 자동차가 없다 여길 만하지만, 경운기와 트랙터와 콤바인이 쉴새없이 지나다니고, 오토바이가 꽤 많습니다.


  얌전히 앉아서 놀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온몸을 개구지게 놀려야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튼튼하게 자라면서 씩씩하고 아름다운 넋을 가꿀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집에서고 마당에서고 길에서고 언제나 뛰거나 달립니다. 그야말로 쉬지 않고 뛰거나 달립니다. 기운이 늘 넘치고, 기운이 다하도록 놀았으면 새로운 기운을 뽑아내어 놉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치워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자동차를 끌고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섣불리 자동차에 태우지 말고,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리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어른들도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리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고샅이나 골목에서 일거리를 찾고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야 하는 곳은 어른한테도 안 알맞은 일터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여행이나 나들이가 아닙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에서 즐거운 숨결과 노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숲을 찾지 말고, 우리 보금자리와 둘레가 아름다운 숲이 되도록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극장이나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어야 합니다. 고속도로나 발전소를 새로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보듬어 숲을 돌보아야 합니다. 궁궐을 짓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던 지난날에는 사람들 누구나 나무로 집을 짓고 땔감으로 삼았어도 나무가 모자랄 일이 없었고, 숲이 망가질 일이 없었습니다. 큰 건물을 세우고 고속도로와 발전소와 온갖 문화시설을 만드는 오늘날에는 기름만 뽑아서 쓰지만 나무가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숲이 허물어집니다.


  우리가 두 다리로 딛고 선 어느 곳이나 시골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이도 어른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놀고 일하며 쉴 수 있기를 꿈꿉니다. 놀이터가 삶터로 되고, 삶터가 일터인 나라를 모든 사람이 누리기를 꿈꿉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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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5] 함께 자라는 사람들

― 아이를 얼마나 바라보는가



  빨래터와 샘터를 치우러 가자고 하면 두 아이가 모두 신나게 웃으면서 얼른 신을 뀁니다. 그야말로 잰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신과 옷을 갖추고는 “다 됐어요!”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빨래터 치우기는 아주 재미난 놀이인 터라, ‘빨래터 가자’ 하고 한 마디만 꺼내면 모든 일을 아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빨래터 가야겠는데, 마룻바닥에 어지른 소꿉을 치우자’ 하고 말하면 1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장난감을 척척 치웁니다.


  우리 집에서 빨래터까지 꽤 가깝습니다. 너덧 집을 지나면 바로 빨래터입니다. 짧은 길이지만 아이들은 이 길을 춤추면서 걷고, 노래하면서 갑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이기에 아이들 노랫소리는 온 마을로 퍼집니다. 외치듯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온 들로 스밉니다.


  빨래터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들과 숲은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들과 숲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던 어른들 숨결을 함께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어요. 들과 숲은 곡식과 열매와 남새로 사람들을 살찌우고, 들과 숲은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살찌웁니다.


  아이들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으니 나는 늘 아이들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낼 적에는 늘 아이들이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이와 달리 면소재지나 읍내만 가더라도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앞장서서 걷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손을 잡고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싶은데, 때로는 달리기나 뜀뛰기를 하면서 가고 싶은데, 자동차 때문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하는 사회 얼거리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시끄럽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며 이것저것 눈을 홀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바람이 싱그러운 곳에서 아이들이 맑게 웃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무그늘을 누리며 냇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이 맑게 일합니다. 아이가 자랄 만한 데에서 어른이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느긋하게 뛰노는 곳에서 어른이 즐겁게 일합니다. 아이 입에서 노래가 터져나오는 곳에서 어른도 저절로 노래를 터뜨리면서 날마다 잔치를 이룹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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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4] 조용히 지나가는 시골

― 가을에 하늘과 들을 함께 바라보기



  하늘이 트인 곳에서 살면 트인 하늘을 봅니다. 하늘이 막힌 곳에서 살면 막힌 하늘을 봅니다. 바람이 싱그러이 부는 곳에서 살면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살면 매캐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이 탁 트이고 들이 곧게 열린 시골길을 두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달립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천천히 노래합니다. 처음 이 시골길을 달릴 적에는 노래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달리자니 몸이 퍽 힘들었어요. 이제 나는 예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무게가 나가는데, 외려 예전보다 가볍게 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까지 스스럼없이 부릅니다. 아이들은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으레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조용히 아이와 거닐 만한 데라고 느꼈습니다. 조용한 골목에서 꽃을 만나고 바람을 마시며, 언덕받이 골목동네에서 비로소 탁 트인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 못했어요. 좁은 골목을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면 이웃집에 소리가 퍼지는데, 노랫소리를 반기지 않을 사람들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는 집에서도 마당에서도 길에서도 곧잘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이 참으로 없기에 노래를 불러도 될 만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보다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내 마음을 하늘처럼 열고, 내 생각을 들처럼 보듬으며, 내 넋을 아이들과 함께 들여다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천천히 달리다가 때때로 멈춥니다. 자전거 발판 구르는 소리마저 없는 조용한 들 한복판에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물결을 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내처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에 감겨 들에 퍼지는 결을 느낍니다.


  어디에서든 삶은 흐릅니다. 어디에서든 우리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어디에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 스스로 삶을 일구어 아름다이 노래하면 됩니다. 매캐하거나 메마르다 싶은 도시라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 골목을 이루는 사람들은 골목밭을 일구어 골목꽃을 피웁니다.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 어디에서나 숲이면서 꽃밭입니다. 마음을 참다이 돌보면 언제나 하늘이면서 맑은 숨결입니다. 파랗게 밝은 하늘을 등에 지고 조용히 들길을 지나갑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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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3] 아이들과 나들이

― 몸을 살리는 하루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닙니다. 나들이란 자가용을 끌고 어느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 아닙니다. 나들이란 ‘쇼핑’도 ‘장보기’도 아닙니다. 나들이란, 말 그대로 우리 집 바깥으로 나가서 살며시 바람을 쐬고는 다시 들어오는 일입니다.


  해가 떨어진 저녁에 혼자 조용히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바라기를 하거나 나무바라기를 하면, 작은아이나 큰아이 가운데 한 녀석이 아버지를 알아챕니다. 조용히 저녁빛을 누리면서 저녁내음을 맡으려 했지만, 어느새 아이들한테 둘러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작은아이가 “아버지가 깜깜한데, 나간대. 누나야, 얼른 나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마을 한 바퀴를 으레 도니까, 작은아이가 콩콩콩 뛰면서 저녁마실을 하고 싶은가 봐요.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니면서 언제나 느낍니다. 아이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어디 먼 데를 다녀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버스이든 기차이든 살짝 타 보기를 바랄 뿐, 오래 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뛰거나 달리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걷기를 바라고, 걷다가 힘들면 어버이 품에 안기거나 업히기를 바라요. 또는, 아무 데나 폭삭 주저앉아서 쉬기를 바랍니다.


  나들이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홀가분하게 다니면 됩니다. 돗자리를 하나 챙겨도 좋고, 물병은 꼭 챙깁니다. 슬금슬금 걷다가 마땅한 풀숲이나 나무그늘이 있으면 즐겁게 앉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파서 쉬겠다고 하더라도, 살짝 앉았다가 일어납니다. 다 쉬었다지요. 그러고는 또 달리고 뛰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어른은 몸을 움직여 일합니다. 아이는 몸을 움직여 놉니다. 어른이나 아이는 모두 즐겁게 움직이면서 몸놀림을 가다듬습니다. 몸놀림이 아름다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잘 놀았다는 뜻입니다. 몸놀림이 부드러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온갖 놀이를 누렸다는 뜻입니다. 몸놀림이 사랑스러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동무하고 신나게 놀았다는 뜻입니다.


  몸놀림과 함께 손놀림을 헤아려 보셔요. 어릴 적부터 나뭇가지와 돌과 풀과 흙과 모래를 가까이 두면서 늘 만지작거린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손놀림이 멋지거나 야무지거나 곱거나 사랑스러운 어른이 됩니다.


  살가우면서 가벼운 나들이는 언제나 몸을 살립니다. 하하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꽃 피우는 마을 한 바퀴 걷기는 늘 몸을 살찌웁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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