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57] 딸기알 함께 먹는 이웃
― 딱정벌레와 애벌레와 개미와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우리 식구는 들딸기 먹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마다 들딸기를 실컷 먹던 어느 날, 며칠쯤 바깥마실을 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누군가 우리 들딸기밭에 몰래 들어와서 ‘덜 여문 딸기’까지 모조리 훑어 가져갑니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다녀오느라 여러 날 집을 비우니, 우리 들딸기밭에 며칠 나가지 못하는데, 꼭 이 즈음 누군가 모조리 훑습니다.

  날마다 바구니를 그득 채울 만큼 들딸기를 많이 거두던 들딸기밭이 텅 빕니다. 우리 마을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우리 들딸기를 모조리 가로챘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함께 누리거나 같이 즐기는 마음이 없는 모습을 읽습니다.

  씨가 말랐을 뿐 아니라, 들딸기넝쿨이 많이 짓밟혀 더 나기 어려운 자국을 살펴봅니다. 덜 여문 들딸기까지 따더라도, 이제 막 영글려 하는 넝쿨은 그대로 두어야 할 텐데, 이런 넝쿨까지 그예 짓밟은 자국을 보면 부아가 치밀기보다 안쓰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 몸가짐이 되었을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런 매무새가 되었을까요.

  군데군데 들딸기알이 몇 남습니다. 벌써 들딸기를 마지막으로 맛보는 셈인가 서운하지만, 아이들한테 몇 알이라도 맛보게 하려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런데, 몇 안 남은 들딸기알마다 딱정벌레와 애벌레가 잔뜩 달라붙습니다. 개미도 달라붙습니다. 그래, 그렇지. 이 들딸기알은 사람만 먹지 않아. 너희들 딱정벌레도 먹고 애벌레도 먹으며 개미와 진딧물도 먹지. 풀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함께 먹지.

  벌레가 앉아서 단물을 빨아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이 들딸기알 먹는 모습을 보니, 이 아이들을 휘휘 털어서 훑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먹을 작은 들딸기알조차 모조리 훑었으니, 풀벌레는 얼마나 서운하며 슬플까요. 예부터 콩을 석 알씩 심을 적에 사람은 한 알만 먹도록 한다고 했지만, 풀벌레가 먹을 들딸기알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 오늘날 시골사람 손길은 어떤 빛이 될는지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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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기인가요

숲노래 2014-06-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산딸기라고 할 수 있어요.
뭐, 그래도 좋은 들밥
잘 먹으셨기를 바라는데,
덜 여문 것까지 다 훑은 까닭은
효소로 담그거나 술을 담그려는 목적 때문이지 싶어요.
그러니 한 알이라도 더 훑어서 몽땅 가져가려고 했겠지요 ^^;;

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못됐네요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숲이 우거지고 푸른 바람이 불며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는 별빛이 늘 잔치를 벌이는 시골에 보금자리를 두어 살아가니 얼마나 즐거운가요.

  도시에서 살기에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습니다. 비록 숲이나 냇물이나 골짜기나 바다가 없다 하더라도 마음 가득 따사롭게 마주하는 눈빛이라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숲집을 누립니다.

  우리는 숲집을 누립니다. 나무와 풀과 꽃이 있는 부동산을 누리지 않습니다. 나한테 있는 돈으로 지구별을 통째로 사들여야 숲이나 바다나 꽃을 누리지 않아요.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적에 비로소 삶을 누립니다.

  시외버스는 도시를 벗어나고 더 벗어나며 자꾸 벗어납니다. 우리 시골집과 가까울수록 시외버스에서 우리 집 풀내음을 맡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탄 시외버스에 탄 다른 분들이 시외버스에서는 냄새가 안 좋아 머리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아, 그렇지요. 참말 나도 얼마 앞서까지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달리 말해요. 나는 내가 누리고픈 냄새를 맡아요. 나는 내가 보고픈 빛을 봐요. 나는 내가 먹고픈 밥을 기쁘게 차려서 먹습니다. 돌아갈 시골집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시골빛이 사랑스럽습니다.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살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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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5] 딸기를 먹는 손

― 오월에는 들딸기를 따자



  들딸기도 멧딸기도 멍석딸기도 사람이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들과 숲에서 돋는 딸기는 딸기풀이 스스로 씨앗(열매)을 떨구고 넝쿨을 뻗으면서 퍼집니다. 멧새가 빨간 열매를 따먹고 훨훨 날아 똥을 뽀직 눌 적에 멀리 퍼지기도 합니다. 들쥐나 다람쥐가 갉아먹다가 이곳저곳에서 똥을 뽀직 누면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딸기넝쿨을 걷어냅니다. 사람들은 멧자락을 허물어 길을 내거나 공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닦습니다. 들짐승과 숲짐승은 딸기를 퍼뜨리지만, 사람은 딸기를 없앱니다. 딸기를 먹고 오월을 누리는 들짐승과 숲짐승이 살아갈 터를 없애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들딸기나 멧딸기가 없어도 된다고 여깁니다. 비닐집을 세워 농약과 비료를 주면 얼마든지 더 굵은 비닐집딸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른봄이나 늦가을에까지 딸기를 먹는 사람들이에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을 앞둔 길목에서 누리는 딸기를 잊는 사람들입니다.


  오뉴월에 딸기를 먹습니다. 첫물 딸기는 몇 줌 안 되지만, 이내 커다란 통을 그득 채울 만큼 됩니다. 며칠 더 지나면 큰 통을 여럿 채울 만큼 쏟아집니다. 들딸기는 사람도 먹고, 새도 먹으며, 개미와 풀벌레도 먹습니다. 들과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이 오뉴월에 새빨간 딸기를 먹으며 따스한 숨결을 북돋웁니다.


  싱그러운 딸기는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자랐을까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먹으며, 빗물을 먹습니다. 흙을 먹고, 풀내음을 먹으며, 사람들이 따스하게 내미는 살가운 손길을 먹습니다. 4347.5.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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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4] 저녁 자전거를 타려고

― 와 저기 봐



  저녁에 자전거를 타려고 마당에 자전거를 내놓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가까운데 두 아이 모두 잘 생각이 없고 배도 고프지 않습니다. 해는 저쪽으로 넘어갔지만, 자전거마실을 해 볼까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있으니 아이들과 저녁바람을 한 차례 마실 만합니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으니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보면서 좋아합니다.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손가락을 곧게 뻗습니다. “와, 저기 봐! 제비다!”


  그래, 제비로구나. 제비이지. 날마다 보는 우리 집 제비란다. 새벽 다섯 시에 어김없이 깨어나 재재거리면서 우리를 깨우려 하지. 네 아버지는 제비보다 일찍 일어나니 제비가 새벽에 노래할 적에 시계를 보면서 어쩜 우리 집 제비는 이렇게 날마다 거의 똑같은 때에 일어날까 놀라곤 한단다.


  제비는 이쪽 전깃줄에 앉다가 저쪽 전깃줄로 옮겨 앉습니다. 제비가 날면서 이리저리 앉으니 작은아이도 이쪽으로 손을 뻗고 저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 따라 “저기에 앉았다! 저기로 갔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제비는 하루를 마무리지으면서 우리 집 마당을 이리저리 납니다. 해가 아주 넘어가면서 달이 뜨고 별이 돋을 무렵 둥지에 깃들 테지요. 암수 두 마리가 사이좋게 깃을 부비면서 따사롭게 밤잠을 이룰 테지요. 네 살 아이 눈과 가슴에 제비 날갯짓이 또렷하게 드리우는 하루를 천천히 보냅니다. 4347.5.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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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3] 뜀박질

― 놀고 일하며 쉬는 곳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적까지 ‘집’이 어떤 곳인 줄 생각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만큼 내 어버이가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셨기에 즐겁게 뛰놀았구나 싶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집’을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새벽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 사이에 집을 나섰고, 학교에는 열한 시까지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걷거나 버스를 타느라 길에서 보내는 때를 빼니, 중·고등학교 여섯 해에 걸쳐 ‘집’이라는 곳에 머무는 때는 고작 다섯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게다가 이 다섯 시간이란 누워서 자는 때라면, 집은 어떤 곳일까요. 집이 집다울 수 있을까요. 짐은 그저 “자는 데”을 뿐이고, 학교가 학교이면서 집 구실을 해야 하는 셈 아닐까요.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머물지만, 학교는 학교 노릇도 집 구실도 하지 않습니다. 학교는 오직 입시지옥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슬기나 즐거움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사람이 기쁘게 웃고 어깨동무하는 슬기를 보여주지 않는 학교입니다. 이웃이 서로 아끼고 동무가 서로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는 학교입니다. 게다가 이런 학교에서는 뛰거나 놀지 못합니다. 수업을 받으며 웃어도 안 되고, 쉬는 때라서 노래를 해도 안 됩니다. 허울은 ‘학교’이지만 속내는 ‘감옥’과 같습니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집’을 생각합니다. 집은 어떤 모습일 때에 집이 될까요. 집이 모인 마을은 어떤 빛일 때에 마을이 될까요. 그저 여러 집이 모이면 마을이지 않습니다. 집은 집답게 예뻐야 하고, 마을은 마을답게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웃고 떠들면서 노래할 수 있을 때에 집입니다. 농약바람이 아닌 풀바람이 흐르면서 풀내음이 싱그러울 때에 마을입니다. 나무가 우거지면서 나무그늘과 나무노래가 감돌 때에 집이면서 마을입니다. 함께 놀고 함께 일하며 함께 쉬는 곳이 집이 되겠지요.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이야기꽃 피우는 데가 집이 될 테지요.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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