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43] 놀라운 아침맞이
― 포근한 겨울날 손님

 


  설날에 고흥을 떠나 음성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습니다. 음성은 눈이 안 녹았고 얼음이 꽤 두껍습니다. 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오니 아직 한겨울인데 얼마나 폭한지, 낮에는 17℃까지 올라갔고, 오늘도 아침이 무척 포근합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마당에 서도 춥지 않습니다. 아니, 시원하고 상큼합니다.


  뒷간에서 똥을 누면서 문을 살짝 열고 마당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로 마을 참새가 예닐곱 마리쯤 내려앉아서 조잘거립니다. 직박구리와 딱새와 박새 들이 우리 집 뒤꼍에서 부산스레 춤추듯 날아다닙니다. 이른아침부터 온통 새노래입니다. 날씨가 따스하니 새들도 즐거운듯 이곳저곳 날아다니면서 노닙니다.


  새는 겨울에도 살아갑니다. 봄 여름 가을뿐 아니라, 겨울에도 바지런히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며 새끼를 돌봅니다.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깃든 딱새 두 마리도 언제나 딱딱딱 재미난 노래를 들려주고, 까치와 까마귀와 멧비둘기도 새삼스럽게 노래를 들려줍니다.


  시골살이란 무엇일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예나 이제나 시골에는 숲이 있고, 숲에는 새가 있습니다. 숲에는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며, 새는 애벌레를 잡아먹습니다. 나무는 애벌레한테 잎사귀를 내줄 뿐 아니라, 새한테 보금자리를 내줍니다. 사람은 나무 곁에서 애벌레가 깨어난 나비춤을 누리고, 애벌레를 잡아먹는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이러면서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모아 장작으로 삼고 집을 지으며 살림살이를 짜요.


  언제나 새노래를 듣는 시골살이입니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 아닌,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여기에 풀벌레 노랫가락이 감돌고, 개구리와 맹꽁이와 두꺼비 노랫자락이 얼크러집니다. 매미도 한몫 단단히 노랫사위 들려주어요. 곧, 시골살이란 시골노래입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노래를 듣고, 이렇게 듣는 노래에 절로 신이 나서 새삼스레 일노래와 놀이노래를 불러요. 그러면,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매미는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며, 새롭게 맞노래를 베풉니다.


  포근한 겨울날 우리 집 둘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어여쁜 손님을 맞이합니다. 얘들아, 고맙구나. 얘들아, 모두 반갑구나. 마음껏 춤추고, 기쁘게 노래하렴. 아름답게 날갯짓하고, 사랑스럽게 먹이를 찾으렴.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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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2] 흙과 하늘과 놀이
― 삶을 배우는 길

 


  흙이 있어 풀이 자랍니다. 풀이 자라며 나무가 튼튼합니다. 나무가 튼튼하면서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바람이 싱그러우면서 숲이 우거집니다. 숲이 우거지면서 냇물이 맑습니다. 냇물이 맑으면서 물고기 노닙니다. 물고기 노닐면서 들을 적십니다. 들을 적시며 푸른 숨결 넘칩니다. 푸른 숨결 넘치면서 갯벌이 드넓습니다. 갯벌이 드넓으면서 파다가 파랗습니다. 파다가 파랗게 빛나면서 하늘 또한 파랗게 빛납니다. 하늘이 파랗게 빛나면서 구름이 하얗습니다. 구름이 하야면서 빗물이 시원합니다. 빗물이 시원하면서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무지개가 피어오르면서 별빛이 환합니다. 별빛이 환하면서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우면서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갑니다.


  흙을 만지며 노는 아이는 지구별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지구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생각을 넓히고 몸을 살찌웁니다.


  흙 한 줌은 풀이 됩니다. 풀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바람이 됩니다. 바람은 숲이 되고 냇물이 되며 물고기 되다가는 흐르고 흘러서 고운 사랑으로 빛나는 숨결로 깃듭니다. 너른 우주로 돌아본다면 지구별이란 작은 흙알갱이 하나와 같을 수 있어요. 우리가 손으로 만지는 흙알갱이 하나는 어쩌면 지구별 하나와 같은 숨결일 수 있어요.


  먹는 대로 똥을 누고, 마시는 대로 오줌을 눕니다. 풀을 먹으니 풀똥을 누고, 샘물을 마시니 샘물 같은 오줌을 눕니다. 나뭇잎은 가랑잎 되어 나무를 살찌우는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누는 똥오줌은 다시 우리가 먹을 풀밥을 고소하게 살찌우는 거름이 되어 흙으로 갑니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돌아옵니다. 어버이 웃음은 아이한테 스며듭니다. 아이들 놀이는 어버이 일거리로 젖어듭니다. 어버이가 즐겁게 하는 일은 아이들 놀이로 깃듭니다.


  흙을 보고 만지기에 놀이가 됩니다. 흙을 보고 만지며 일을 익힙니다. 흙을 보고 만지는 사이 삶을 깨닫습니다. 흙을 보고 만지는 동안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4347.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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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1] 아이들 발소리 듣기
― 겨울바람 사이로 귀를 기울여

 


  아이가 걷습니다. 처음 발걸음 디딜 수 있던 날부터 일곱 살을 맞이한 일월 한복판을 걷습니다. 큰아이가 처음 걸음을 디딘 곳은 인천 골목동네입니다. 그럭저럭 자동차 뜸한 골목이었지만, 아이가 내딛는 걸음을 느긋하게 누리려 할 적마다 앞과 뒤에서 자동차가 오르내렸습니다. 아이는 골목마실을 하면서 더 신나게 걷지 못했습니다.


  큰아이가 세 살 적부터 시골로 옮겨 살아갑니다. 큰아이는 자동차를 거의 걱정하지 않으면서 걷고 달리며 뜁니다. 가끔 지나가는 짐차나 택배차나 군내버스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워낙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적으니, 마당에서 놀다가도, 또 대청마루에서 놀다가도, 무슨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알아차립니다. 언제나 비슷한 때에 비슷한 자동차가 지나가거든요. 우체국 오토바이 소리라든지, 마을 이장님 짐차라든지, 저기 마을 어귀로 군내버스 지나가는 소리라든지, 우리 집에 들르는 택배차라든지, 언제나 거의 어김없이 비슷한 때에 똑같은 소리로 지나가요.


  자동차가 적을 적에는 이렇게 자동차마다 다른 소리를 헤아리는데, 자동차가 많은 곳에서 살면 아이 귀는 어떤 소리를 받아들일까요. 그리 궁금하지는 않아요.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아이가 듣는 소리는 바람소리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입니다. 개구리와 멧새와 제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입니다. 나뭇가지 흔들리고 풀잎이 눕는 소리를 듣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면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와 꽃씨 흩어지는 소리를 듣겠지요. 민들레와 같이 솜털 같은 씨앗이 날아가는 소리도 곧 들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침저녁으로 제비꽃과 괭이밥꽃 피고 지는 소리를 머잖아 듣기도 하리라 느껴요.


  두 아이와 마을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 발걸음 소리를 듣습니다. 사뿐사뿐 나긋나긋 가뿐가뿐 느긋느긋 디디는 발소리를 듣습니다. 폭신한 신을 신고 디디는 발소리는 아주 작습니다. 그렇지만 보록보록 디디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겨울바람 솨라라 부는 소리도 듣고, 바람소리 사이사이 흐르는 두 아이 발걸음 다른 소리를 듣습니다. 나풀나풀 나비와 같고, 너풀너풀 날갯짓을 하는 발소리를 빙그레 웃으면서 자꾸자꾸 듣고 또 듣습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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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9] 나무가 베푸는 숨빛
― 나무가 해맑기에 시골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따분하거나 심심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름드리 나뭇줄기를 안으면서 춥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왜 이런 느낌이었는지 예전에는 찬찬히 헤아리지 못했어요.


  고즈넉한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가끔 대문 앞으로 짐차나 오토바이 지나갈 때가 있지만 하루에 몇 대 안 지나갑니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자동차도 아주 드뭅니다. 자동차 소리가 아예 없지 않으나 거의 없어요.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아무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아요. 오직 바람소리가 감돕니다.


  한낮에도 자동차 소리 없이 멧새가 우리 집 둘레에서 지절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시골살이란 바람살이일까? 시골노래란 바람노래일까? 시골빛이란 바람빛일까? 그리고, 시골살이란 풀살이일까? 시골노래란 풀노래일까? 시골빛이란 풀빛일까?


  나무가 있기에 숨을 쉽니다. 풀이 있기에 밥을 먹습니다. 풀밥을 즐겨먹든 고기밥을 즐겨먹든 풀과 나무가 있어서 밥 한 그릇 누립니다. 풀을 그대로 먹으면 풀이 있어야 하고, 고기를 먹자면 고기를 살찌우는 풀이 있어야 합니다. 풀밥이든 고기밥이든 모든 사람은 언제나 풀숨을 받아들이는 셈이에요.


  나무가 있어 집을 짓습니다. 나무가 있어 불을 피웁니다. 나무가 있어 종이와 연필을 얻습니다. 나무가 있어 호밋자루와 삽자루로 삼습니다. 나무가 있어 지게를 만들고 배를 뭇습니다. 석탄이 없고 석유가 없더라도 나무와 풀은 있어야 해요. 석탄과 석유 또한 나무와 풀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기에 생겨날 수 있어요.


  도시에서 문화나 정치나 사회나 예술을 꽃피우는 밑바탕이란, 제도와 시설과 돈이 아닙니다. 시골을 이루는 풀과 나무로 이루어지는 들과 숲이 바로 문화나 정치나 사회나 예술을 꽃피우는 밑바탕입니다. 시골들이 푸르고, 시골나무가 아름다울 적에 시골살이가 빛나고 도시살이가 알찹니다.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하루 내내 재미나게 놉니다. 나뭇줄기를 쓰다듬으면서 어제도 오늘도 맑게 웃습니다. 나무 곁에서 숨을 쉬고, 나무 둘레에서 밥을 먹습니다. 아이는 나무 곁에서 까르르 웃으며 뛰놉니다. 어른은 나무 둘레에서 밝은 얼굴로 일손을 놀립니다. 시골에는 나무가 있어 푸릅니다. 시골은 나무가 우거져서 포근합니다. 도시에도 나무가 있으면 푸릅니다. 도시에서도 나무가 우거지면 사람들 마음에 따스한 사랑이 새록새록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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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8] 반짝반짝 물빛
― 푸르게 흐르는 물내음 맡자

 


  멧골짝부터 졸졸 내려오는 물은 마을빨래터를 거쳐 들판으로 줄줄 퍼집니다. 이 물줄기는 마을과 빨래터와 들을 적신 뒤 바다까지 고이 흐르겠지요. 우리 마을 뒤쪽으로 있는 천등산부터 흐르는 물줄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스며들어 이루어졌겠지요. 빗물은 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모여 이루어졌겠지요.


  우리들은 냇물과 빗물을 마십니다. 우리가 마신 물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바다로 퍼지면서 새로운 빗물이 되고 냇물이 됩니다. 지구별을 감도는 푸른 바람이 맑은 물줄기로 젖어듭니다. 물을 마시는 몸은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지구별 숨결을 나란히 느끼는 셈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을빨래터로 물줄기가 흐릅니다. 한 해 내내 흐르는 마을빨래터 물줄기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해요. 요즈음은 집집마다 물꼭지를 틀어 쓸 수 있도록 땅밑을 팠지만, 예전에는 한겨울에도 마을빨래터에 모여 기저귀를 빨고 동이에 물을 길었다고 해요. 들일을 할 적에는 마을빨래터까지 호스를 이어 물을 받기도 해요.


  소복소복 눈이 덮여도 졸졸 흐르는 물줄기이지만, 이곳에서 빨래를 하거나 물을 길어 쓰는 손길이 없다 보니, 겨울에도 물이끼 생깁니다. 한겨울에도 아이들과 마을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나옵니다. 아이들은 물이끼 걷는 일을 씩씩하게 거든 뒤에 옷이 젖거나 말거나 물놀이를 합니다. 마당에서 둘이 놀다가 빨래터까지 달려가서 풍덩 뛰어들어 놀곤 합니다.


  겨울에 뛰어들면 춥지 않니? 그러나,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는 듯해요. 아니, 걱정할 일 없겠지요. 빨래터에 뛰어들어 온몸 적시며 놀다가 좀 춥다 싶으면 옷 갈아입혀 달라고 집으로 달려와요. 함께 물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끼리 물놀이를 즐겨요. 이렇게 물을 만지고 몸을 적시면서 차근차근 물내음을 깨닫고 물빛을 알아채겠지요. 반짝반짝 빛나는 물빛을 바라보면서 눈빛을 반짝반짝 밝힐 테지요.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해맑은 물을 먹으면서, 하루를 씩씩하게 누리겠지요.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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