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2] 함께 살고 싶은 곳

― 하늘빛



  보름쯤 뒤에 면소재지 고등학교에 찾아가서 그곳 ‘책 동아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 한 가지하고 글을 쓰는 재미 두 가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텐데, 두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주고받을 때에 서로 아름다운 마음이 될까 하고 곰곰이 짚습니다. 두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지만, 이 자리에서 면소재지 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몇 가지 책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삶을 밝히는 길에 동무가 되는 책, 생각을 가꾸는 삶에 힘이 되는 책, 사랑을 보살피는 하루에 즐거운 노래가 되는 책, 아름답게 꿈꾸는 마음을 살찌우는 책, 눈길을 틔워 올바로 바라보는 매무새를 북돋우는 책, 따사로운 숨결이 흘러 반가운 책, 이렇게 여섯 가지 책을 가만히 고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도 이러한 책을 알려주면서 함께 읽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든, 도시에서 나고 자라든, 아이들이 마음밭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 아름답게 꿈을 꾸도록 도울 수 있는 책을 알려주면서 즐겁게 읽고 싶습니다.


  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과서도 책이라면 책입니다. 문제집과 참고서도 책 갈래에 넣는다면 억지스럽지만 책꼴을 갖추었습니다. 시집이나 소설책도 책이라 할 테고, 인문책도 책이라 하겠지요. 그러면, 만화책이나 그림책은 어떤 책일까요? 사진책은 아이들한테 아직 어려운 책일까요?


  한편, 시골마을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들을 보며 숲을 봅니다. 바닷일이나 들일이나 숲일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늘 가까이에서 마주합니다. 아이들 어버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고기잡이와 김말리기를 거든다면, 바다일을 거들며 삶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들에서 나락을 베거나 풀을 뜯으면서 풀포기랑 나물과 남새하고 얽힌 흙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숲에 깃들어 나무를 베거나 그냥 숲길을 걷는다면, 나무가 있어 우리 삶이 얼마나 넉넉하고 짙푸른가 하고 느끼도록 나무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골마을 ‘책 동아리’ 아이들과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무엇보다 “우리 같이 하늘부터 볼까?” 하고 말문을 열 생각입니다. 해를 같이 보자고, 풀벌레 노랫소리를 같이 듣자고, 가을바람이 살결에 어떻게 스미는가 같이 느끼자고 조곤조곤 말길을 틀 생각입니다.


  시골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교에 가거나 공장에 가거나 회사에 가거나 하자면, 시골을 떠나야 합니다. 시골에는 대학교도 공장도 회사도 없기 때문입니다. 참말 시골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아이들이 죄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요. 아마 거의 모든 아이들은 다시 시골로 안 돌아오고 도시를 삶자리로 삼을 수 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다시 시골로 돌아와서 이곳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살고 싶은 터전’으로 가꾸고 싶다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지요. 돈으로 쌀을 사다 먹을 수 있지만, 흙에서 나락을 일구어 손수 키운 쌀을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야지요.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수돗물을 못 마시고 밥도 못 끓여 먹지만, 시골에서는 전기가 끊어져도 냇물을 마시고 싱그러운 바람을 먹으면서, 나무를 때어 얼마든지 밥을 끓여 먹는다고요. 삶을 들려주고 보여주면서 책과 글이란 무엇인가 하고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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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 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이야기할 책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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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1] 종이비행기 잔치

― 삶자리



  마당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흙으로 된 운동장을 넓게 누리던 예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오늘날에는 ‘더러’ 흙운동장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빠르게 흙운동장이 사라집니다. 흙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아이들도 사라지고, 공을 차거나 치는 놀이가 아닌 스스로 온몸을 쓰면서 놀 줄 아는 아이들도 사라집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들판이 있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연을 만들 수 있자면 대나무를 베어서 깎아야 할 테니, 들판 한쪽에는 대나무가 자라야겠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며 놀면 한결 즐거울 테니 들한 다른 한쪽에는 온갖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야겠습니다.


  모든 땅에 남새를 심어 길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들이 논으로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빈터가 있어야 하고, 시골에는 숲과 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땀을 흘리면서 뛰놀 자리가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느긋하게 드러누워 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놀 수 있을 때에 일할 수 있어요. 일할 수 있을 때에 놀 수 있어요.


  시골에서 아이들이 자꾸 줄어들지만, 시골에 아이들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까닭을 시골사람 스스로 깨달아야지 싶습니다. 도시에 아이들이 아주 많지만, 도시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못할 뿐 아니라 싱그럽거나 착한 마음으로 자라기 어려운 까닭을 도시사람 스스로 알아차려야지 싶습니다. 삶자리가 놀이터이자 일터가 되지 못한다면, 삶자리가 쉼터이나 만남터이자 이야기터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도 어른도 모두 힘듭니다.


  너른 들이 있어야 씨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합니다. 너른 숲이 있어야 숨바꼭질도 하고 새랑 다람쥐하고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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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0] 꽃과 열매

― 한 해가 흐른다



  풀이 돋습니다. 잎이 납니다. 꽃대가 오르고 꽃망울이 터집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가 깃들어요. 차근차근 흐릅니다. 날이 지나고 달이 가며 철이 바뀝니다.


  스스로 심는 씨앗을 들여다보든, 남이 심은 씨앗을 살펴보든,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느낍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없다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릅니다.


  지난해와 올해가 같지 않습니다. 올해와 이듬해가 같지 않습니다. 해마다 다른 빛이요 냄새이며 무늬입니다. 해마다 달라지는 모습이고 삶이며 이야기입니다. 올해에 핀 고들빼기꽃이랑 지난해에 핀 고들빼기꽃은 다릅니다. 올해에 돋는 돌나물하고 이듬해에 돋을 돌나물은 다릅니다.


  ‘우리 집 부추꽃’을 바라봅니다. 하얗게 터지는 꽃망울을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은 봄과 여름에 고마운 풀밥이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어여쁜 꽃내음을 베풉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새까만 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씨앗은 스스로 떨어져 이듬해에 더 넉넉히 자라고, 씨앗을 조금 받아 둘레에 조금씩 뿌리기도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먹으면 즐거울까요.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기쁠까요. 어떤 꽃잔치를 누리고, 어떤 이야기마당을 누릴 때에 우리 삶이 환하게 피어날까요. 4347.9.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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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9] 풀과 농약과 아이들

― 왜 시골에 아이들이 없을까



  풀을 싫어하는 시골이 되면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골이 되면 농약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을 시골로 다시 데려오려면 풀을 사랑해야 합니다. 농약을 멀리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늙은 할매와 할배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온통 농약바람입니다. 어느 시골에서나 끔찍하게 비닐을 쓰고 태우며 파묻습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어느 시골이든 풀을 끔찍하게 싫어해요.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앞날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온통 농약투성이로 지내면서 비닐로 온 밭뙈기를 덮다가 끝없이 태우는 시골에는 어떤 앞날이 있을까요. 이런 시골에 아이들이 얼마쯤 남는다 하더라도, 무슨 빛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지내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유기농’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유기농이란 무엇일까요? 일본 한자말 ‘有機農’은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일구는 일을 가리킵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을 쓰면 안 되고, 비닐을 쓰면 안 됩니다. 여기에 항생제나 비료를 모두 안 쓸 때에 ‘유기농’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시골이 농약과 비닐과 비료와 항생제 범벅입니다. 오늘날 여느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 여느 어버이가 ‘먹이고 싶지 않은 곡식이나 열매’입니다.


  아이들이 도시에만 몰립니다. 그러나 도시에 몰리는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도시에 가두기만 할 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도시는 빈터가 없고 쉼터가 없으며 놀이터도 일터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곳에서 모든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풀이 자라야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듭니다. 풀이 자라야 나무가 튼튼히 섭니다. 풀이 자라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포근합니다. 풀이 자라야 풀잎을 꺾어 풀피리를 불고, 풀꽃을 따서 풀꽃반지를 낍니다.


  풀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풀이 없는 데에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시골은 풀을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터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기를 바란다면, 앞으로 시골에서는 농약을 걷어치워야 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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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8-1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박한 땅에 제일 먼저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아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살아가니까 풀이 잘 자라는 시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되네요!

숲노래 2014-08-15 05:50   좋아요 0 | URL
아스팔트를 깔아 자동차가 다닐 길이 아닌,
풀이 돋으며 아이들이 뛰놀 터가 되도록
우리 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시골살이 일기 68] 왜 시골에 왔느냐 하면

―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려고



  엊그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합니다. 태풍이 올라오니 모두들 집단속과 문단속을 잘 하랍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 없도록 하라는 얘기가 흐르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얘기가 떠돕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면사무소에서 두어 차례 더 방송을 합니다. 참말 태풍이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태풍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태풍은 한 해에 한두 차례쯤 이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풀도 나무도 드센 바람을 한두 차례쯤 맞으면서 한결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더욱 씩씩하게 줄기와 가지를 뻗거든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가 몇 해만 살다가 꺾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를 비롯해 감나무도 모과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매화나무도 탱자나무도, 모두모두 천 해쯤 너끈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천 해쯤 살아가자면, 드센 비바람을 해마다 한두 차례 맞이하면서 더욱 튼튼하면서 야무진 넋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줄기가 짧고 알곡이 많이 달리는 나락’을 심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입니다. 농협에서는 이런 나락을 ‘개량종’이라 말하지만, 이 볍씨는 개량종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할매와 할배가 ‘개량종 나락 볍씨’를 거두어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거든요. 해마다 농협에서 볍씨를 새로 사다가 심어야 비로소 알곡을 맺습니다.


  ‘개량종’이라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한 뒤 이듬해에 다시 심어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은 한 번 심으면 새로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하지 못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온 나라 들판에서 자라는 나락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인 대목이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라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이 자라는 들에다가 농약을 엄청나게 많이 치는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태풍은 한 차례 휘몰아치다가 지나가요. 그렇지만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고 땅을 망가뜨립니다. 들에 뿌리는 농약은 우리 몸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땅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살고 싶기에 시골로 와서 살아가면서, 도서관을 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들자면 여럿 있을 텐데, 맨 첫째로 꼽는 까닭은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고 싶다’입니다.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내 넋을 파랗게 밝히고 싶습니다. 내 사랑을 파랗게 가꾸고 싶습니다. 내 가슴속에 파란 별이 자라도록 돌보고 싶습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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