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에 쓰는 글


 셈틀 켜서 글을 쓸 겨를을 내기 힘들다 보니, 새벽·아침·저녁·밤으로 공책을 펼쳐 글을 쓴다. 낮에 아이하고 놀거나 책을 읽히다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면, 이때에도 공책에 글을 쓴다. 아이는 아빠 하듯 저도 작은 수첩에 ‘글씨 작은’ 그림을 줄 맞추어 깨알같이 그린다. 공책에 글을 쓰기로 한 지 어느새 보름쯤 지난다. 얼마나 쓸까 궁금했는데 앞으로도 신나게 쓰겠구나 싶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셈틀 앞에 앉는 겨를을 줄일밖에 없다. 그러면 이제는 공책에 글을 꽤 많이 쓰는 삶이 될 텐데, 공책에 쓴 글은 언제 타자로 옮길 수 있을까. 이래저래 까마득하다. 다만, 공책을 쓰다가 셈틀을 켤 수 없어도 내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끝없는 이야기를 적바림한다. 한숨과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적는다. 조금은 홀가분하다고 느끼고, 살짝살짝 마음풀이를 한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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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우는 소리


 새벽 다섯 시 무렵부터 닭이 운다. 이오덕학교에서 치는 닭이 이맘때에 운다. 다섯 시 무렵부터 일곱 시 즈음까지 운다. 닭이 홰치며 내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하루를 제대로 열자고 생각한다. 닭이 우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내 몸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조금 더 드러누우며 생각한다. 어제 하루 무슨 일을 했기에 이토록 몸이 고단할까. 일찌감치 일어나서 한창 글쓰기를 하다가 닭울음을 들었다면 가만히 헤아린다. 오늘은 닭울음을 들을 때까지 얼마나 내 삶을 내 글로 잘 여미었다 할 만할까.

 닭 우는 소리를 들었으니 글쓰기를 살짝 멈추어야 한다. 우리 식구 오늘 아침 먹을 쌀을 씻어서 불려야 한다. 쌀을 불리고 두 시간쯤 뒤에 불을 넣어야지. 밥냄비에 불을 넣은 다음 밥상을 어떻게 차리나 살피고,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를 생각해야지. 닭이 울기 앞서까지 내 일을 마치지 못하면 내 일만 붙잡느라 집살림은 밀어놓는 셈이요, 닭이 울 때까지 잠든 채 못 일어난다면 하루는 그야말로 어수선 어지럼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닭울음을 들은 적이 없다. 닭울음을 들을 길이 없다. 어느 누구도 닭울음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시계를 맞추어 놓은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에 마음속으로 ‘그무렵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일어난다. 잠자리에 들 때에 몇 시 즈음에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잠들면, 언제나 이무렵이나 이보다 조금 일찍 눈을 뜬다. 시계에 기대 버릇하면 언제까지나 시계에 매인다. 달력에 기대어 날짜를 헤아리면 노상 달력에 붙들린다.

 바람이 흐르는 날씨를 살필 때에 내 몸은 나 스스로 다스린다. 흙에 서린 기운을 읽을 때에 내 마음은 내 손길로 어루만진다.

 쥐어짜는 지식으로 쥐어짠 책은 달갑지 않다. 지식을 제아무리 꾹꾹 쥐어짠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나오겠는가. 지식을 쥐어짜서 얻을까 말까 알쏭달쏭한 기름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

 책이란, 쥐어짜는 지식으로는 일굴 수 없을 뿐더러, 쥐어짜는 지식으로 엮어서는 안 된다. 책이란, 부드럽거나 따사롭거나 넉넉하거나 사랑스러운 내 삶으로 하나하나 일구어야 한다. 책이란, 내 사랑과 믿음을 고루 섞거나 가지런히 차려 놓듯 내놓아야 한다.

 글쓴이 삶을 읽자는 책이지, 글쓴이 머리속에 가득 찬 지식을 읽자는 책이 아니다. 글쓴이 삶을 나누자는 사진이지, 글쓴이 머리통에 꽉 들어찬 지식을 구경하자는 사진이 아니다. 삶에는 뜻이 있으며 길이 있다. 삶을 보면 저절로 뜻이나 길을 느끼면서 받아들인다. 애써 뜻을 내세운다든지 길을 크게 부풀리지 않아도 된다. 꾸밈없이 글쓴이 삶이나 사진쟁이 삶을 적바림하면 된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시에서만 살지 않으면 좋겠다. 정 도시에서 살아야겠다면, 몸은 도시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시골사람이라면 좋겠다. 살림집은 도시에 있을지라도 마음밭은 멧골이나 바다나 하늘을 노닐면서 홀가분하다면 좋겠다. 착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참된 넋으로 글을 손질하며, 고운 매무새로 글을 나누면 좋겠다. 책에 담는 글이란, 내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와 같다. (4344.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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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 권 살뜰하게 짓거나 엮으려면


.. 상인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수입을 떼어 저축하듯이 훌륭한 사람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재능을 기꺼이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신의 문을 열 때 자신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재능과 기술, 그들의 명성과 능력은 신성한 교감을 향한 목마름에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  《자발적 가난》(그물코,2003) 31쪽/랄프 왈도 에머슨


 향긋한 꽃냄새는 우리 코를 틔웁니다. 빛고운 꽃잎은 우리 눈을 맑게 해요. 시원한 샘물 한 모금은 우리 목구멍을 씻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흘리는 땀은 우리 몸에 군살이 없게 하며, 몸을 튼튼하게 가꾸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끕니다. 살뜰한 책 한 권은 우리 가슴을 열도록 이끌고 머리를 산뜻하게 다독입니다.

 찬찬히 헤아려 보아요. 살뜰한 책 한 권은 어떻게 나올까요. 바로, 책을 짓고 엮는 이가 내 모두를 바칠 때 나옵니다. 내 모든 머리와 가슴을 바칠 때 나옵니다. 책을 짓고 엮는 사람은 내 모두를 내놓고 펼칠 때 오히려 더 크게 깨닫고 더욱 깊이 알아채며 한결 큰 사람으로 자랍니다. 키는 스물 안팎에 다 자란다지만, 마음은 마흔이나 예순이나 여든에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내 모두를 내놓지 못한다든지, 고작 한두 가지만 펼친다든지, 아무것도 내놓거나 펼치지 않고 꿍하니 간직하거나 혼자만 품는다면 고이기 마련이에요. 썩어 버려요. 우쭐우쭐거리다가 제풀에 걸려 넘어집니다.

 책 한 권 내놓아 사람들한테 살뜰하게 다가가는 일이란, 나를 가꾸는 일입니다. 오늘 내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입니다. 나부터 새롭게 거듭나는 일입니다. 이웃들한테는 미처 몰랐던 일을 깨우치도록 돕고, 나로서는 진작부터 알았던 일을 더욱 잘 알게 거드는 일입니다.

 다만 내 모두를 바치고, 나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에 설 수 있을 때에만 이렇습니다. 그저 내놓고 펼칠 때라야 비로소 살뜰한 책 한 권이 됩니다. 제대로 내놓거나 펼치지 않는다면, 내놓거나 펼치면서 내 이름을 내세운다든지 우쭐거린다면, 책은 책답게 되지 않습니다.

 꽃잎, 줄기, 뿌리 하나도 씨앗 하나가 모든 알맹이와 속살을 바쳤기에 돋아나고 올리며 내릴 수 있습니다. 농사꾼이 하루라도 허투로 일하거나 땀흘리지 않거나 게으르다면 나락과 남새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요. 노동자가 살짝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딴전을 피운다면 기계가 멈추거나 고장나기 좋습니다. 온누리 어느 곳에서라도, 그 어느 일이라든지, 한동안 쉬거나 멈출 수는 있지만 온몸과 온마음을 바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되는 일이란 없어요.

 책을 짓고 엮는 일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느 곳 하나라도 마음을 안 둘 수 없으며, 어느 때 살짝이라도 몸을 안 쓸 수 없습니다. 한결같은 몸과 마음으로 내 모두를 바칠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고 살뜰한 책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책방에 아름답거나 살뜰하다 싶은 책이 드물다면, 그만큼 내 모두를 바쳐서 짓거나 엮은 책이 드물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이것저것 바치기는 했어도 적게 바쳤거나, 애써 바쳤다고는 해도 우쭐대는 넋이라거나, 돈을 너무 밝히면서 냈기에 아름다움과 살뜰함하고 멀어집니다. 남김없이 바치고 아낌없이 내놓으니 텅텅 비어 버린다 할 텐데, 텅텅 비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참말 아주 가난하며 쪼들리는 살림이지만, 용케 굶어죽지 않습니다. 되레, 텅텅 비우는 가난한 사람들이 조촐하고 즐거이 살림을 꾸리면서 빙긋 웃습니다. (4337.5.10.처음 씀/4344.1.16.글투 손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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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헌책방과 책을 생각하면서 쓴’ 책인지, ‘글을 쓰는 나 혼자만을 생각하면서 쓴’ 책인지를 살핀다면 ‘헌책방과 책을 생각하면서 쓴’ 책은 판이 끊어진 《공진석-옛책, 그 언저리에서》(학민사,1990)를 빼고는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책을 이야기하는 책 가운데에도, ‘사람이 즐기고, 사람이 만들었지만, 오히려 이 책이 나중에 사람을 가꾸고 보듬기까지 하는 책’을 이야기하느냐, ‘그저 잘 팔릴 만하도록 사람들 입맛에 달짝지근하게 맞추거나 책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두느냐’를 헤아릴 때에도 앞엣쪽에 들 만하다 싶은 책은 몹시 드물다고 느낍니다.

 제가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이름을 붙여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펴낸 까닭은, 참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헌책방 이야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즐기는 헌책방’이고, ‘사람이 즐기는 헌책’이며, ‘사람이 즐기는 책’입니다. ‘사람 냄새가 밴 헌책방’이며, ‘사람 냄새가 가득한 헌책’이고, ‘사람 냄새를 담은 책’이에요.

 책은 없어도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없이 책은 없어요. 삶이 없이 책은 없습니다. 곧, 책이 있다 한다면, 사람과 삶 다음에 있는 책입니다. 사람과 삶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책이에요. 그래서 저는 곰곰이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더라”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보다 됨됨이가 더 아름답고 알차면서 훌륭한 이가 많다고 봅니다. 삶을 볼 줄 알고 사람과 부대낄 줄 아는 매무새가 맨 먼저라고 느낍니다. 이 같은 몸가짐을 갖추지 않고 책만 가까이한다면, 우리 사람과 우리 삶을 헤살 놓거나 흐트리거나 망가뜨릴 천덕꾸러기이자 말썽꾸러기가 되기 쉽다고 보아요.

 책도 좋고 헌책도 좋고 헌책방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느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좋고 우리 삶이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4337.5.25.처음 씀/4344.1.16.글투 손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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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해 앞서 쓴 글입니다. 짧게 쓴 글에서 제 마음을 이렇게 짧게 적바림할 수 있는 매무새를 잘 추슬러야겠다고 다시금 되뇝니다.) 



 헌책방 헌책 느끼기


 나한테 즐거움과 기쁨을 베풀어 주는 온갖 책을 마음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낍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나한테 즐거울 책을 찾는 가운데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껴요. 해묵은 책이건 낡은 책이건 빳빳한 책이건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건 나 스스로 내 손에 집어들어서 반갑게 읽을 수 있다면 나한테 좋은 책이라고 믿습니다. (4339.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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