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


 보일러에 기름 300리터를 넣는다. 기름집에 전화를 넣으니 이날 따라 기름 넣는 집이 많다며 못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듬날 아침에 와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5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울린다. 다른 목소리인데 기름집이다. 금방 기름 들고 간다면서 어디인지 묻는다. 같은 기름집 일꾼인데 이렇게 다른 목소리일 수 있을까. 기름차를 모는 일꾼은 어디어디라 하니 금세 알아듣는다. 곧 기름차가 우리 멧골집으로 찾아오고 기름통에 기름바늘을 꽂고는 콸콸콸 넣는다. 기름차를 모는 기름집 일꾼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 마을에서 살다가 서울로 가서 마흔 해를 살았고, 이제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늘그막에 기름집 일꾼으로 하루하루 보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구나, 그래서 이렇게 금세 알아듣고 쉬 찾아와 주시는구나. “시골에 살면 좋지요. 요새는 시골에도 유치원 차가 다 들어와서 태워다 주고 태워 오잖아요. 도시도 도시대로 좋지만 시골도 시골대로 좋지요.” 어느덧 300리터가 다 찬다. 기름집 일꾼한테 잔돈이 없어 집에 있는 천 원짜리를 어찌저찌 긁어모아 삼십이만 칠천 원을 맞춘다. 기름집 일꾼한테 기름값을 건넨다. 추운 저녁날, 방에 있으라던 아이가 문을 빼꼼 내밀더니 신을 꿰고 마당으로 나온다.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웃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기름값을 받던 아저씨가 이 가운데 오천 원을 덜어 나한테 도로 내민다. “아이 과자나 사 주셔요.” “네? 괜찮아요.” “아이가 귀여워서 깎아 드려요.”

 인천에 살던 때, 일곱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5층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 아파트는 연탄 때는 아파트였다. 방마다 연탄 한 장 넣어 불을 때니까 이렇게 해 본들 따뜻할 수 없고, 나중에 기름보일러라는 녀석이 한창 나오며 널리 사랑받을 즈음 동네방네 기름보일러 놓는 집이 늘었다. 위아래옆 이웃집이 거의 다 기름보일러로 바꾸며 나무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구리파이프 깔아 시멘트로 다시 덮느니 뭐를 하느니 하고 나서 아주 느즈막히 우리 집도 기름보일러를 놓는다. 기름보일러를 놓는 데에는 여러 날이 걸린다. 먼저 마루를 뜯어내고, 마루에 있던 짐을 방 한쪽에 몰아놓는다. 마루에 파이프 다 깔고 시멘트로 덮어 말린 뒤에 짐을 다시 마루 한쪽으로 죄 몰아놓고, 이제는 방에 있던 옷장이며 짐이며 모조리 붙인 다음 방도 똑같이 바닥을 들어내어 파이프를 깐다. 그런데, 내가 떠올리기로는 처음부터 구리파이프를 쓰지 않고 피브이시인가 플라스틱 같은 파이프를 쓰느라 겨울에 한 번 얼어터져서 다시 구리파이프로 바꾼 줄 안다. 다른 이웃집도 비슷한 일을 숱하게 겪었고.

 이렇게 기름보일러를 들이기까지 집집마다 난로를 방이나 마루에 놓고 살았다. 그런데 난로라 해 봤자 불이 얼마나 세겠는가. 연탄으로는 안 되니 아파트 중앙난방을 한다며 스팀이 나오기는 했으나 창문이 얼지 않을 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일쑤였다. 그나저나 기름보일러이기 때문에 기름집에서 기름을 사 와야 한다. 우리 집은 아들이 둘, 그러니까 기름을 사다 나를 일꾼이 쏠쏠히 있는 셈. 국민학교 5학년이었나, 이무렵부터 형이랑 나는 주말마다 20리터들이 기름통을 둘씩 들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 왔다. 형은 집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날랐다. 우리 집은 4층인데 계단에서도 쉴 줄을 몰랐다. 어린 꼬맹이가 20리터들이 기름통을 한손에 하나씩 들고 세 살 위 형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벅찼는지. 그러나 조금이라도 뒤처지만 형한테 꿀밤을 맞았기 때문에 손이 얼얼해 떨어질 노릇이었어도 죽어라 좇아갔다.

 예나 이제나 기름을 사다가 보일러를 돌리면서 ‘기름값 에누리’를 받아 본 적이란 없다. 늘 숫자판에 찍힌 그대로 값을 치렀다. 그런데 5000원 에누리라니.

 기름차를 떠나 보낸다.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데 기름차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뭔가를 가슴에 잔뜩 안고 달려온다. “휴지라도 드려야 하는데, 깜빡했네. 재미있게 잘 사셔요.”

 내 나이 예순이 될 2034년 겨울날, 내 고향마을인 인천 골목동네로 다시 찾아가 본다 할 때에, 그곳 그때에 만날 내 딸아들 뻘 될 젊은이한테 나는 무슨 말 무슨 이야기 무슨 꿈을 들려줄 수 있을까. (4343.1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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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2-06 08:18   좋아요 0 | URL
전 내 나이 예순에 돌아갈 고향이 없어요. 부럽고 따뜻하고 존경받을 이야기입니다. ^^

숲노래 2010-12-06 12:35   좋아요 0 | URL
오늘 살아가는 그곳을 좋은 고향으로 가꾸어 주셔요~
 



 헌책방을 다니며 느끼는 여러 가지


 1992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즐겼고, 돈이 없으면 책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끼니를 굶어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서관이나 새책방에서도 하염없이 책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꼭 헌책방에서만 이렇게 책을 보며 지냈습니다.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헌책방처럼 책을 보기에 마음 가벼운 곳이 없어서 그랬다는 느낌뿐입니다. 새책방은 ‘팔아야 하는 책’을 두는 곳이라서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책을 들고 구경하면 손때나 땀이 배고 말아, 팔기에 꺼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제가 막상 보고픈 책은 다른 이가 빌려가서 없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 도서관 ‘새책 사들이는 돈’은 너무 적어서 새로 쏟아지는 좋은 책을 알뜰히 갖추지 못해요. 더욱이 웬만한 도서관은 ‘책과 자료 찾아서 보는 곳’이라기보다 수험생과 고시생들 시험공부 하는 곳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리하여 제 나이 열일곱부터 헌책방을 꾸준히 다녔습니다.

 책방에 너무 오래 머물며 책도 얼마 안 사면서 구경만 하면 책방 일꾼이 안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안 좋아할 수 있지만 아무 마음도 안 쓸 수 있습니다. 책방에 오래 머물며 책만 봐서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아니라, 책읽는이(책손) 몸가짐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갈리거든요.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지식이 많다 해도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고 남을 업신여긴다거나 다소곳하지 못하다면, 사람 됨됨이가 없다고 하겠지요. 쉽게 말해, 책만 아는 바보입니다. 그렇지만 책은 거의 못 읽거나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지식이 적다 해도 몸가짐이 곧고 깨끗하며 이웃을 사랑하거나 다소곳할 줄 안다면, 사람 됨됨이가 훌륭하다고 하겠지요. 헌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값싸고 묵은 책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나보다 낮게 본다’면 어느 헌책방 일꾼인들 반갑게 맞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내가 읽을 책만 생각해서 다른 책손님이 구경하기 힘들도록 길을 막는다든지, 책을 함부로 다루면서 책을 밟거나 책탑을 쓰러뜨린다면 누구도 이런 책손을 좋아할 수 없어요.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책을 많이 사 가서 팔림새에 도움이 되는 책손’을 싫다고 하지는 않으나, ‘책은 많이 사 가지만, 책을 아끼지 않거나 마구 다루는 책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새책방이야, 책이 지저분해지면 반품을 하면 그만입니다. 도서관은 낡은 책은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은 책방 일꾼이 맞돈을 주고 사들여서 갖춘 당신 재산이기 때문에, 헌책방 나들이가 아직 낯선 사람들 눈에는 ‘그저 값싸고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빛바랜 책’이라 해도, 당신 딸아들처럼 소담스러운 보배예요. 또 이 보배를 뒤지고 살피면서 반가운 책 하나 찾아가는 사람이 많은 만큼, 헌책방 일꾼은 당신 일터를 보배곳간으로 느낍니다.

 지난 열다섯 해 동안(199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을 비롯해서 이 나라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틈나는 대로 찾아다니며 살아갑니다. 헌책방마다 저를 기다리는 반갑고 살가운 책이 있는 한편, 책 하나 알뜰히 다루고 돌보는 헌책방 일꾼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저보다 책읽은 깜냥과 깊이가 훌륭한 다른 책손을 보면서 고개숙여 배우기도 하고, 헌책방까지 가는 동안 길에서 부대끼는 우리 삶터와 숱한 사람들을 보면서 ‘책 하나 즐기는 내가 이 늘;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면 더 좋을까’ 하고 깨닫습니다. 갖가지 책이 숱하게 많은 헌책방은, 책만 있는 곳이 아닌, 책 아닌 앎과 슬기가 언제나 가득한 문화 쉼터라고 느낍니다. (4339.9.19.불.처음 씀/4343.11.30.불.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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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버스


 시골버스는 진작 끊겼다. 면내에서 택시를 탄다. 면내 택시도 모처럼 장사를 할 테지. 택시삯이 아쉬우나 시골택시 일꾼은 이럴 때 돈을 벌어야지. 요새는 너나없이 자가용이 다 있기에 아저씨들 벌이는 참 형편없잖은가. 그제 오랜만에 인천으로 볼일을 보러 면내로 시골버스를 타고 나갈 적에 버스가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며 어기적어기적 큰길가에서 제자리 맴돌기를 하며 하늘바라기를 하자니, 어느새 들어온 시골버스가 뒤에서 뽕뽕 하며 나를 불러 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앞쪽에 앉은 늙수그레한 아지매가 버스기사하고 말을 나눈다. 버스 몰기 힘들지요, 아니요 힘들지 않고 손님이 없으니까 달리다가 졸려요, 네 그러시군요. 버스에서 내릴 무렵, 내 자리 맞은편 걸상 아래에 놓인 까만 비닐봉투를 본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 비닐봉지를 들어 걸상에 올려놓고 안을 열어 본다. 마침 이때에 시골버스 일꾼이 손전화를 받는다. 손전화로 버스에 뭐 물건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 소리를 듣기에, 내가 얼른 여기 물건 있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아, 손님이 여기 뭐 있다고 하네요, 네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걱정하지 마셔요.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나 헌 자동차 살 돈조차 없다. 시골버스만 고만고만하게 탄다. 시골버스를 타며 이 버스를 마치 넉넉하고 큼직하며 한갓진 택시로 여긴다. 시골택시는 늘 더 빨리 달릴 길로만 달리지만 시골버스는 골골샅샅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아주 적은 돈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닐 수 있으니, 우리 식구한테 시골버스는 택시와 마찬가지이다. 같은 길을 달리면, 시골버스로 우리 시골마을 어귀부터 면내까지 1600원이고, 택시로는 꼭 1만 원이다.

 엊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작 끊긴 시골버스는 탈 수조차 없는데, 저녁 아홉 시 오 분에 면내에 시외버스를 내리고 보니, 차부 가게는 벌써 문을 닫아걸었다. 아이 까까라도 하나 사들고 돌아갈까 했으나 빈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아이는 집에서 일찌감치 잠들어 있겠지. 택시 타는 데로 간다. 택시 일꾼 한 분이 나와 준다. 차가 오래 서 있느라 안이 차다며 미안해 하신다. 괜찮아요, 내내 버스를 타고 왔는데요.

 택시삯이 아쉬우나 깊은 저녁이지만 집까지 안 들어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린다. 택시삯 만 원을 치른 다음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 살림집 몇 채 있는 길은 불빛이 조금뿐인데 참 밝다고 느낀다. 이 불빛 때문에 밤하늘 별이 조금 덜 보인다. 그래도 밤하늘 별은 더없이 따사롭게 빛난다.

 초롱별이 그야말로 초롱초롱 빛나는 논둑길로 접어든다. 개장수 집에서 개들이 짖어댄다. 이 개들은 저희를 꺼내 달라는 듯한 목소리로 짖는다. 개장수 집 곁을 스칠 때마다 눈을 이리로 돌리지 못한다. 자칫 이들 가여운 개들 구슬픈 눈망울을 마주칠까 두렵다. 그러나, 이들 개로서는 목숨을 앗겨 고기국으로 바뀌기 앞서 저희를 따사로이 마주해 줄 사랑스러운 눈길 한 번을 기다리지 않으려나. 내가 개장수 집 우리에 갇힌 개라 한다면, 나를 꺼내 주지 못할지라도 나를 한 번이나마 바라보며 생각해 줄 눈길을 기다리겠다고 본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바람소리도 잦아든 저녁나절 길을 걷는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골목마실을 할 적에도 이런 느낌이었다고 떠올리는데,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포근함을 느끼기는 했어도 별을 볼 수는 없었다. 어여쁜 꽃그릇과 예쁘장한 빨랫줄은 많았으나, 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초롱별은 맞이할 수 없었다. 시골마을일 뿐 아니라 멧기슭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는 어여쁜 꽃그릇이라든지 예쁘장한 빨랫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멧새가 있고, 짓궂지만 멧쥐가 있으며,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과 논밭을 타고 달리는 바람소리가 있다. 감나무는 시골에도 도시에도 있다. 엊그제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곳곳 살림집마다 까치밥을 알뜰히 남긴 모습을 보며 콧등이 시큰했다. 감나무는 어디에서도 감나무인걸.

 시골별도 해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이듬해에 마주할 시골별은 올해 시골별보다 줄겠지. 첫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보다 둘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은 훨씬 적겠지. 첫째가 무럭무럭 커서 아빠 나이만큼 되었을 때에는 시골별을 한국땅에서 얼마나 껴안을 수 있으려나.

 시골별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에는 책은 몽땅 쓰레기라고 여긴다. 시골별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책은 차츰차츰 쓰레기하고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4343.1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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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20   좋아요 0 | URL
털털 거리는 시골 버스가 한편으로 낭만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하지요.예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충남 서산까지 버스로 간적이 있는데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에 도착했지요.처음에는 영월 동강의 모습을 보면서 굽이 굽이 가는 버스 밖 경치에 취해서 시간 가는지도 몰랐지만 어느새 지겨워 져서 잠만 쿨쿨 잤던 기억이 나네요^^

숲노래 2010-11-28 06:57   좋아요 0 | URL
버스든 무어든 너무 오래 타고 움직이면 힘들어요. 한 시간 달린 뒤에는 두어 시간은 쉬고 해야 비로소 나들이가 된다고 느낍니다~~
 

 지난 11월 10일 인천 마실을 하며 찍은 골목 사진 107장에다가 헌책방 사진 열 몇 장이 메모리카드에 말썽이 생겨 그만 날아갔다고 여겼는데, 이번에 인천 마실을 하면서, 사진일을 하는 아는 분 셈틀에 '50만 원짜리 복원 프로그램'이 있다기에 맡겨 보았는데, 세 시간에 걸쳐 되살리기를 하여 모두 살려내어 주셨다. 이렇게 놀랍고 기쁘며 고마울 수가. 

 

 골목개가 짖는 바람에 골목고양이가 슬슬 걷다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고양이 눈이 이렇게 커진 모습은 이날 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 사진도 이번에 살아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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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36   좋아요 0 | URL
ㅎㅎ 축하드려요^^
 

'마이리뷰'에 올려야 할 글이지만, 책방에는 안 들어간 책을 이야기해야 하기에 이곳에 적바림합니다. 

 
 작은 손으로 뿌리는 작은 씨앗
 [책읽기 삶읽기 28] 갓골생태농업연구소·마실이학교, 《우리 마을입니다》



 조그맣게 나와서 조그맣게 읽히는 책 《우리 마을입니다》를 읽습니다. 이 책은 여느 책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책이라 출판사 누리집(gmulko.cafe24.com)에 따로 이야기를 해서 계좌로 돈을 보내고 나서야 받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에 주문 글을 띄우면 책 하나 그날 바로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판에 느릿느릿 받을 수 있을 뿐더러, 책값은 고작 5천 원인 작은 책을 받기까지는 여러 날이 걸립니다.


.. 출판사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한결같이 녹색의 쉼터를 만들어 주었고, 마당에 심어 놓은 앉은뱅이밀은 자라지 않아 포기하려고 하는 어느 날이면 그 자리에 낮게 피어났습니다. 이름 없이 가난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님과의 만남은 출판사에 큰 축복이었습니다. 자연과 농부님들은 날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과 출판사도 그 규모에 맞게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  (119쪽/그물코 출판사 소개)


 《우리 마을입니다》는 대단한 이야기를 담지 않습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작은 마을에 깃든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담습니다. 《우리 마을입니다》는 대단한 이야기를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한 마을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담으면 넉넉하니까요. 잘나지 않고 못나지 않은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수수하게 담으면 되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을입니다》 같은 이야기책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작은 마을에서만 나올 만한 책이 아닙니다. 서울 종로구 평동 자그마한 삶자락 한켠에서도 나올 만하고, 제주시 삼도1동 조그마한 삶마당 한구석에서도 나올 만합니다. 대단히 이름난 사람이라든지 대단히 알려진 유적지라든지 대단히 멋스러운 관광지 이야기를 담아야 할 《우리 마을입니다》가 아닙니다. 저마다 오순도순 어울리거나 복닥이거나 부대끼는 조용한 이야기를 담으면 될 《우리 마을입니다》입니다.

 이 작은 책 《우리 마을입니다》를 일구는 사람,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책에 실을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남달리 빼어난 글쟁이가 되어야 하고 사진쟁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는커녕 초등학교 문턱조차 못 밟은 사람 또한 얼마든지 내 삶과 내 이웃과 내 동무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보급형 사진기조차 아닌 손전화에 딸린 사진기로 얼마든지 내 모습과 내 이웃 모습과 내 삶터 모습과 내 마을 모습을 살뜰히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눌 벗입니다. 서로서로 아옹다옹하거나 툭탁툭탁하는 자그마한 삶을 알뜰살뜰 이야기로 나눌 벗님입니다.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라든지, 연속극 이야기라든지, 전쟁 이야기라든지, 주식 이야기라든지, 아파트 이야기라든지를 나눌 까닭은 없습니다. 배추씨 심은 이야기를 나누고, 꽃씨 가꾸는 이야기를 나누며, 구름이 흐르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습니다. 바람 흐르는 소리를 듣고, 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 놀면서 재잘거리는 소리에 웃을 만합니다.

 어디 멀리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 보아야 내 ‘삶 발자국’이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웃나라를 다녀 보았다든지 유럽 나라나 중남미 나라를 밟았다고 해서 앎이나 슬기가 넓어지지 않습니다. 고작 이곳 이 땅에서 맴돌며 살았달지라도, 아니 부엌데기 소리를 들으며 집 안팎을 벗어나지 않으며 예순 해 일흔 해를 살았달지라도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먼 마실을 다니지 못하며 집에서만 고요히 살아온 사람들 삶에서 앎이나 슬기가 샘솟는지 모릅니다. 제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거나 맛이 좋다고 하는 가공식품일지라도, 투박한 농사꾼 손길로 땅에 뿌리고 보듬어 자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거두어들여야 빚을 수 있거든요.

 내 뿌리를 생각하고, 내 줄기를 헤아리며, 내 잎싹을 돌아봅니다. 내 꽃봉우리는 누구한테 예쁘게 보여주면 좋을까요. 내 온힘을 짜내어 맺은 열매는 누가 맛보도록 하면 좋으려나요. 가을녘 동네 감나무를 살피면, 까치밥 하나 없이 모조리 딴 집이 있으나, 까치밥 몇 알 남긴 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까치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만큼, 이제는 까치밥 따위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까치를 총으로 쏘아 잡아죽여야 하는 판이란 소리가 터져나오는데 무슨 까치밥을 남기겠어요. 그러나 까치밥은 다람쥐밥이고 박새밥이며 꾀꼬리밥입니다. 까치만 먹는 까치밥이 아니에요. 지난날에는 곰도 여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먹었을 까치밥은 아니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아마 생쥐나 멧쥐도 까치밥을 나누어 먹었을는지 모르지요. 그나저나 도시에는 감나무이든 배나무이든 능금나무이든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까치밥을 나눌 나무조차 없어요. 아니, 아파트숲 이룬 큰 마을에는 감나무가 없지만, 작디작아 재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새로 올려세워야 한다는 조그마한 골목동네 곳곳에 마흔 해 쉰 해 예순 해를 뿌리박은 집들 마당에는 으레 감나무가 있고, 이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대롱대롱 달리곤 해요.

 텃밭에서 아이랑 무를 뽑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는 제 아빠를 따라 텃밭에서 처음으로 ‘열매 거두기’를 합니다. 지난여름에 처음으로 텃밭에서 호미질을 한 아이요, 올가을에 처음으로 텃밭에서 무뽑기를 한 아이입니다. 이제 이듬해에는 아이로서는 처음으로 거름을 내어 밭에 뿌릴 테지요. 이듬해 봄에는 올여름에 아빠 엄마랑 함께 했듯이 호미나 괭이를 조그마한 손에 쥐고는 함께 밭을 갈아 새 고랑을 내고 새 이랑을 내어 아이 손톱보다 더 조그마한 씨앗 하나 예쁘게 심겠지요. 아이 손가락으로 보드라운 흙에 뽕뽕 구멍을 내어 아이 손으로 요 구멍에 둘셋씩 씨앗을 묻어 따순 흙한테 안기도록 하겠지요. (4343.11.26.쇠.ㅎㄲㅅㄱ)


― 우리 마을입니다 (갓골생태농업연구소·마실이학교 엮음,그물코 펴냄,2001.9.30./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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