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삶쓰기 빨래하기


 아이는 이제 오줌을 잘 가린다. 그런데 아이가 앉는 변기가 작은지 요새는 변기에 오줌을 누어도 자꾸 샌다. 아이가 나날이 크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변기에 얌전히 앉고 바지도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안 하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쉬를 하면 엉덩이며 허벅지며 바지며 다 튄다. 오늘 하루만 속바지 세 벌과 겉바지 두 벌을 버렸다. 오줌을 가려 빨래감이 줄었다 싶더니,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빨래감을 쏟아낸다. 오줌으로 젖은 바지를 들고는 짜증을 낸다 한들 어쩔 길이 없다. 아이보고 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소금 얻어 오라고 꾸중하지만, 이런다고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가뜩이나 물이 얼어 멀리 물을 길어오는 데까지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데, 자꾸 빨래감이 나오면 속이 아프고 힘들다. 예전에는 아이가 오줌을 누어도 “그래, 잘 눠.” 하고 말한다든지 가만히 다른 일을 해도 되었으나, 이제는 밥을 하다가도 뭐를 하다가도 허리가 아파 살짝 드러누워 쉬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아이를 변기에 제대로 앉혀야 할 뿐더러, 쉬를 눈 아이 밑을 닦아야 한다.

 겨우겨우 아이를 재워 놓고는 느즈막한 저녁나절 아빠는 글조각 하나라도 건사해 볼까 싶어 셈틀을 켜는데, 멍하거나 띵할 뿐 도무지 손을 쓰지 못한다.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보기도 하고, 멀뚱멀뚱 앉기도 하지만, 좀처럼 새마음을 차리지 못한다. 살림하는 어머니들한테는 책읽기라든지 글쓰기라든지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었을까. 책이고 글이고 뭐고 돌아볼 겨를 없이 바빠맞을 뿐 아니라, 어쩌다가 숨돌릴 겨를을 얻었달지라도 숨마저 못 돌리며 밤하늘 별바라기를 하며 한숨을 쉴 뿐인가. 아이 옆에 다시 드러누워 잠들고도 싶지만, 밤새 아이 기저귀를 갈며 잠을 뒤척일 테고, 새벽나절 일어나서 맑은 넋으로 글조각 조금 붙잡는다 하더라도 아이는 다시금 일찌감치 깨어나 아빠하고 놀자고 옷소매를 붙들겠지.

 잠든 아이 기저귀를 채우는데 퍼뜩 깬다.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하기에 가슴에 귀를 대고 토닥토닥거리다가는 “쉬 마렵니?” 하고 물으니, “응, 쉬 마려.” 한다. 기저귀를 푼다. 변기에 얌전히 앉힌다. 쉬를 깨끗하게 누도록 해 준다. 밑을 닦는다. 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아이는 눈을 살며시 떴다가 감았다 한다. 다시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통통통 뛰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아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이윽고 일어나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무거우면서도 보드랍게 눈을 떴다가 감는다. 깨어나려나 마려나. 허, 아이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며 돌아앉는다. 아이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문득 뒤돌아본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아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빠도 졸립다. 아무래도 함께 쓰러져야겠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다. (4344.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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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만들기


 주말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가는 김에,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로 한다.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 앞서, 선물로 드릴 사진을 만든다. 첫딸 사름벼리가 시골집에서 복닥이며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큰 녀석과 작은 녀석 두 가지로 만든다. 사진찍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사진 선물. 글쓰는 사람한테는 구슬땀 흘려 내놓은 책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지. 왜냐하면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빼고 딱히 내놓을 만한 재주가 없고 돈도 없으니까. (434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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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걱별


 밤과 새벽에 일어나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아빠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쉬를 눕니다. 찬겨울 찬새벽이지만 꽤 따스하다고 느낍니다. 모처럼 시골집에 아이 이모랑 삼촌이 찾아와서 하룻밤 함께 자기 때문일까요.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 별을 보다가 굵직한 일곱 별이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올려다봅니다. 저 별을 어릴 적에 무슨 별이라고 들었던가. 주걱별이었나? 국자별이었나? 물바가지별이었나?

 손잡이가 달린 물바가지처럼 생겼다 했고, 도시에서도 쉽게 알아보았을 뿐더러, 늦게까지 동무들하고 놀다 보면 어김없이 올려다보던 별입니다. 국자별만큼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밝은 빛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한테도 저 국자별인지 주걱별인지 물바가지별인지를 보여주었던가? 아빠가 아이한테 저 별 이름을 국자별이라 가르쳐 준다면 아이는 국자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크겠지요. 아빠가 아이한테 요 별은 이름이 주걱별이라 이른다면 아이는 주걱별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면서 자라겠지요.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습니다.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이는 일은 자칫 두렵습니다. 아빠는 아빠가 살아온 마음에 따라 가장 살가우면서 아름답다 느끼는 이름을 곱새기면서 고운 이름으로 별 하나 이름을 붙여 아이하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쉬를 눈 텃밭에는 마당에 쌓인 눈을 눈삽으로 퍼서 뿌립니다. (4344.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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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1-03 08:47   좋아요 0 | URL
저에겐 칠형제 별이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1-01-03 08:49   좋아요 0 | URL
네, 바라보는 곳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각했을 테니까, 다 다른 이름들이 저마다 예쁘리라 생각해요.

새해에 즐거우며 반가운 일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 좋은 사람 = 좋은 삶
 ― 2010년에 반갑게 만난 새책 일곱 가지



 한 해를 갈무리하는 마지막날이 되면 으레 올 한 해 새로 나온 책으로 어떠한 책을 뜻깊게 읽었는지 되새기곤 합니다. 2010년을 마감하고 2011년이 되거나 2012년이 된다든지, 때로는 2020년이나 203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2010년에 나온 반가운 책’이 있기도 합니다. 느즈막하게 알아채거나 마주하는 좋은 책은 뒷날 느즈막하게 마주하는 대로 뜻깊으며 고마운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올 한 해에는 올 한 해대로 반가우면서 고마이 마주한 책을 즐기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꼭 한 가지 책만 꼽을 수 없을 뿐더러, 일곱 가지 책을 추리면서도 이렇게 일곱 가지만 추리는 일도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지만, 이들 일곱 가지 책을 제 깜냥껏 어떻게 제 삶으로 녹여내었는가를 들려주면서, 이들 일곱 가지 책을 속속들이 사랑하고 두루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문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ㄱ. 좋은 밥을 먹고 싶으면 좋은 삶을 일구어야지

- 책이름 : 우리 안에 돼지
- 글 : 조슬린 포르셰,크리스틴 트리봉도
- 옮긴이 : 배영란
- 펴낸곳 : 숲속여우비 (2010.2.5.)
- 책값 : 7000원

 맨 먼저 《우리 안에 돼지》라는 책을 꼽아 봅니다. 2010년에 나온 ‘가장 손꼽힐 환경책’을 들라면 서슴없이 이 책을 꼽습니다. 《우리 안에 돼지》는 조그마한 부피로 조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서, 바로 이 조그마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멀리하거나 손사래치면서 까맣게 잊기까지 한다고 깨우칩니다.

 깨우쳐 주는 책이라 해서 좋은 책은 아닙니다. 지식을 다루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몹시 많습니다. 환경책이라 할 때에는 ‘지식 다루기’로 깨우치는 데에서 그치면 참다이 환경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살아가며 착한 넋을 보듬는 가운데 사랑과 믿음을 나부터 내 가슴에 예쁘게 아로새기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일 때에 비로소 ‘환경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지난 열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나온 훌륭한 환경책으로 《수달 타카의 일생》(그물코,2002)만 한 책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안에 돼지》는 《수달 타카의 일생》과 함께 ‘환경책을 읽으며 내 삶을 사랑스레 일구고픈 꿈’을 꾸는 분들이 왼쪽과 오른쪽에 나란히 놓을 책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저는 올해 이 책을 제 둘레 세 사람한테 선물해 주었습니다.


ㄴ.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을 때에는 좋은 사람이 되자

- 책이름 : 낙동강 before and after
- 글·사진 : 지율 스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동행들
- 펴낸곳 : 녹색평론사 (2010.3.31.)
- 책값 : 3000원 (http://www.chorok.org)

 지율 스님이 내놓은 조그마한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는 여느 책방에는 없습니다. 출판사로 전화해서 여쭈어야 합니다.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책을 이렇게 사고파는 일이란 바보스러운 짓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누리인 만큼 ‘책을 더욱 천천히 더디 걸리는 길을 따라 장만하여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책을 너무 손쉬우면서 게을리 장만해서 읽습니다. 이럴 바에는 아무 책조차 안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책은 집안에 드러누워 ‘무료배송 총알배송 당일배송’ 따위로 받아서 외우는 지식보따리가 아닙니다. 책 하나란 나 스스로 한결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깨닫도록 돕는 길동무입니다.

 지율 스님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는 잘 찍은 그럴싸한 사진책이 아니요, 못 찍은 엉성궂은 사진책 또한 아닙니다. 그저 지율 스님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은 고운 사진책입니다. 잘나고자 찍는 사진이 아니요, 내보이려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 앞에 선 사람(또는 사물이나 풍경이나 자연)하고 한 목숨 한 흐름 한 삶 한 넋이 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사진입니다.


ㄷ. 좋은 꿈을 이루려면 좋은 말을 해야지

- 책이름 :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 글·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정효진
- 펴낸곳 : 학산문화사 (2010.10.25.)
- 책값 : 4200원


 오자와 마리 님은 ‘착한 만화’를 그리는 분입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오자와 마리 님 작품은 몇 가지 안 되고, 이분 만화를 아는 분도 얼마 안 됩니다. 만화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 하는 분 가운데에도 오자와 마리라는 이름이 낯익은 분은 드물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딸기밭’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지구별에서 ‘착한 젊은이’하고 함께 ‘착한 삶’을 즐기고파 하는 바깥별 사람이 부대끼는 나날을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나쁜 짓을 할 마음이 없을 뿐더러, 나쁜 일을 할 까닭조차 없고, 나쁜 꿈을 꿀 일도 없는 ‘딸기밭(이치고다)’ 씨이고, 딸기밭 씨하고 함께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믿음과 기쁨과 웃음과 눈물과 어머니 보드라우며 넉넉한 품을 예쁘게 그릴 줄 알면서 만화로 빚을 줄 아는 오자와 마리 님 《이치고다 씨 이야기》입니다. 2010년 한 해 동안 1권과 2권이 나왔고 2011년에는 3권과 4권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 만화책도 고마운 벗님 셋한테 한 질씩 선물해 주었습니다.


ㄹ. 좋은 살림꾼으로 웃음꽃 집안을 이루려면

- 책이름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바닷마을 다이어리 3)
- 글·그림 : 요시다 아키미
- 옮긴이 : 이정원
- 펴낸곳 : 애니북스 (2010.10.20.)
- 책값 : 8000원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만화책 셋째 권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어그리는 작품이면서 따로따로 보아도 괜찮은 작품입니다. 3권부터 읽어 2권과 1권을 읽어도 됩니다. 권마다 다 다른 빛깔로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무늬를 빚습니다.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데에 넉넉할 한삶을 저마다 어떻게 꾸리거나 일구는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인데, 더 많은 돈이나 더 큰 이름이나 더 센 힘을 바라는 사람은 이 만화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안 나오지는 않아요. 다만, 이들은 아주 불쌍합니다. 돈을 바라면서 사랑을 잃는 사람이니 딱합니다. 이름을 얻으려 하면서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니 가엾습니다. 힘을 거머쥐면서 따스함을 내동댕이치니 안쓰럽습니다.

 햇살은 언덕길에도 비치고 달동네에도 비치며 아파트에도 비칩니다. 사람들 스스로 햇살을 못 느낄 뿐이거나 안 느낄 뿐입니다.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 살아가든 도시에서 살아가든 아리땁습니다. 어디에서나 웃음꽃 가득한 살가운 집안살림을 이룹니다.


ㅁ. 좋은 마을은 좋은 손길로 맺는 좋은 두레

- 책이름 :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글·사진 : 김태열, 김현경, 우미숙, 전홍규
- 펴낸곳 : 그물코 (2010.10.1.)
- 책값 : 4000원


 이탈리아 볼로냐는 협동조합도시라고 합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얼마 앞서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백제,1979)이라는 소설책을 다시 읽습니다. 《사하라 이야기》(2008)와 《흐느끼는 낙타》(2009)라는 싼마오 문학을 우리 말로 옮긴 ‘막내집게’라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 문학 《비밀일기》를 새로 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다시 읽습니다. 이 소설책을 다시 읽다 보니 ‘1940년대 첫무렵까지 힘차게 마을 협동조합을 꾸리다가 파시스트 무리한테 깡그리 짓밟힌 사람’ 이야기가 얼핏 나옵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를 아는 사람은 많을 텐데, 파시스트가 무너뜨리려 했던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소설책 하나를 다시 읽으며 새로 깨닫는 이야기가 가슴으로 스며드는 가운데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를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이 책을 쓴 네 사람이 조금 더 마음을 쏟거나 조금 더 품을 들였다면 훨씬 빛나는 책으로 태어났으리라 느끼지만, 우리네 삶터를 돌아보건대, 이처럼 조그마한 판으로 앙증맞게 이야기를 펼치기만 해도 넉넉하리라 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협동조합도시에 앞서 ‘생활협동조합(생협)’ 물건을 기쁘게 장만하는 흐름조차 거의 뿌리내리지 못하니까요. 아직까지도 생협 물건은 돈 넘쳐나는 부자들이나 사다 쓰는 줄 아는 바보스러운 지식인이 너무 많습니다. ‘아줌마 삶’이 되어 ‘생협운동’부터 하지 않고서는, 진보운동이나 환경운동이란 어느 도시에서건 뿌리깊이 파고들 수 없습니다.


ㅂ. 좋은 삶이기에 좋은 죽음

- 책이름 : 숨겨진 풍경
- 글 : 후쿠오카 켄세이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 (2010.1.21.)
- 책값 : 12000원

 누구나, 고맙게 얻은 목숨으로, 고맙게 살아가다가 고맙게 죽습니다. 고맙게 밥을 먹고 고맙게 똥을 눕니다. 《백성 백작》(그물코,2006)이라든지 《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같은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잘 나오기도 합니다.

 구제역이니 조류독감이니 하기 앞서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삶이 얼마나 좋은 삶인가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란 언제나 다시 생겨날밖에 없습니다.

 내 손으로 논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야 가장 옳으나, 가장 옳은 말을 좀처럼 나누기 어려운 이 나라입니다. 가장 옳은 일을 못한다면 둘째로 옳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둘째 셋째 넷째로 옳은 일이나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껴안으려나요. 좋은 삶이 아닐 때에는 좋은 죽음이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좋은 마을을 일구지 않으니 짐승들 또한 슬프게 살다가 슬픈 아픔을 곳곳에 흩뿌립니다.


ㅅ. 좋은 아이와 좋은 어버이

- 책이름 : 나와 너
- 글·그림 : 앤서니 브라운
- 옮긴이 : 서애경
- 펴낸곳 : 웅진주니어 (2010.4.1.)
- 책값 : 11000원


 나라밖 그림쟁이 앤서니 브라운 님은 몹시 아름다운 나날을 일구지 않느냐 하고 헤아리곤 합니다. 앤서니 브라운 님 작품을 볼 때면 마음으로 느낍니다. 당신을 만난 적이 없을 뿐더러 만날 길도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애써 코앞에서 마주해야만 당신 작품을 읽어낼 수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베풀어 놓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언제라도 당신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요.

 그림책 《나와 너》는 영국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앤서니 브라운 님 삶에 걸맞게 다시 그린 작품입니다. 좋은 옛사람이 있기에 좋은 오늘사람이 좋은 그림책을 일굽니다. 좋은 흙이 있기에 올해에도 좋은 곡식을 얻으며, 좋은 님이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냅니다.

 나부터 좋은 어버이로 살아간다면 내 아이는 좋은 아이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무라기만 한다면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클 수 있으려나요. 말은 이리 하면서도 몸이 제대로 못 따르곤 하는데, 그렇지만 나부터 좋은 어버이로 살아내면서 내 아이와 내 짝꿍이랑 좋은 나날을 좋은 넋으로 어깨동무하고 싶어요. 내가 있고 네가 있으며, 네가 있어서 내가 있습니다.


ㅇ. 내가 거둔 열매

 다른 분들이 일군 열매 일곱 가지는 언제 들추어도 새롭게 즐겁습니다. 저 또한 올 한 해 여러 가지 열매를 일구었는데, 제 열매는 저를 비롯해 뭇사람들한테 어떠한 맛과 멋으로 스며들까 궁금합니다. 저는 올 한 해 네 가지 낱권책을 내놓았고,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세 권 내놓았습니다. 여느 책방에서 파는 낱권책 네 가지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5.),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6.),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9.), 《사랑하는 글쓰기, 잘못 쓰는 겹말 이야기》(호미,2010.12.)입니다.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8호와 9호와 10호를 내놓았으며, 저마다 이름을 달리 붙여 8호는 “오래된 책은 아름답다”이고, 9호는 “작은책방이 살리는 책마을”이며, 10호는 “책을 읽는 마음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2011년 새해에도 이웃 분들 좋은 책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나 또한 내 이웃들한테 좋다 싶을 만한 책을 기쁘게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꿈을 알뜰살뜰 보듬으면 좋겠습니다. (4343.12.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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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쳐쓰기를 생각하면서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돌아본다. 2006년 3월 어느 날 쓴 글. 

...... 



 내가 봐도 좋은 책이네요.


 이번(2006년 3월)에 헌책방 이야기를 한 권 더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오늘(2006년 3월 19일)부터 책방에 깔리는군요. 두께가 자그마치 6cm나 되는 두툼한 책. 낱권책으로 너무 두껍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더 담거나 더 쓰고픈 말이 있었으나 다 담지 못했으니까,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데’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은 글쓴이 마음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갓 나온 책을 만지작만지작거리다가 찬찬히 펼쳐서 읽어 봅니다. 제가 쓴 글이고, 글을 쓰면서도 또 쓰고 난 뒤에도, 책으로 묶는다고 할 때에도 또 교정·교열을 볼 때에도 읽은 글인데 다시 읽으니 몇 군데 잘못 쓴 낱말(이를테면 ‘가끔’이 아니라 ‘가끔씩’이라고 써서 잘못된 곳)이 보이는군요.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몇 가지 낱말을 빼고 죽 훑어보았을 때, “야, 내가 쓴 책인데, 내가 봐도 좋네. 한번 사서 읽으셔요.”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두께가 두꺼우면 어떻습니까. 책값이 29000원이지만 너무 착하게 매긴 값입니다. 한 해 동안 쓴 글이니 한 해 동안 느긋하게 읽을 생각을 하면 좋아요. 저는 이 책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또는 몇 시간 만에, 또는 며칠 만에 다 읽어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한 해에 걸쳐서 차근차근 읽고 맛보는 가운데 헌책방을 가까이해 줄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가 즐기거나 읽는 책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것’으로 곰삭이는 재미를 마음껏 누리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글을 쓴 제가 다시 읽어도 좋은 이 책, 한번 사서 보셔요. 거저로 선물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기꺼이 사 주셨다면 헌책방 사진 하나 잘 뽑아서 선물로 드리고 제 이름 석 자를 함께 적어 드리지요. (4339.3.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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