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이면서 사람이다. 아이는 아이이면서 고운 목숨이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고마운 목숨이다.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새 숨결 불어넣으며 오늘 하루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좋은 목숨이다.


  풀을 먹으면 풀내음이 젖어든다. 고기를 먹으면 고기내음이 밴다. 콜라를 마시면 콜라내음이 풍긴다. 냇물을 마시면 냇물내음이 스민다. 내 몸에 들어오는 먹을거리는 그냥 밥이 아닌 목숨인 터라, 내가 먹는 결 그대로 내 삶이 된다. 곧, 내가 읽는 책 하나는 얕거나 깊은 지식이 아닌 바로 내 삶이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삶을 읽는 셈이고,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에 따라 스스로 이녁 삶을 살찌우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이는 삶에 지식만 쟁일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삶에 사랑을 따사롭게 누빌는지 모른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참말 사랑이 맞을까. 아이를 입시학원에 넣는 일도 사랑일까. 아이가 학교에서 동무들끼리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도, 또 따돌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아도, 또 점수따기 시험경쟁으로 동무를 밟고 올라서도, 어버이 된 이들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고 할 만할까.


  어느 아이도 100억 원이나 1000억 원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새까만 자가용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즐겁게 뛰놀 동무를 바란다. 어느 아이도 맛나게 함께 먹을 밥을 바란다. 어느 아이도 새근새근 달게 잠들 좋은 잠자리를 바란다. 어느 아이도 고운 노래를 바란다.


  아이를 마냥 바라본다.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 넌 아이다. 더운 여름 한낮, 어머니 실장갑을 끼고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 넌 아이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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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거꾸로 생각한다. 아이는 제 어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가 얼마나 기쁜지 모를 만큼 재미날까.


  사람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어느 책은 재미있다 말하고 어느 책은 재미없다 말한다. 어느 영화는 볼 만하다 말하고 어느 영화는 볼 만하지 않다 말한다. 거꾸로 생각한다. 책을 쓰거나 영화를 찍은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 삶을 재미있다고 느낄까.


  아이가 빛종이 하나를 들고 달려온다. “비행기 접어 줘.” “저번에 접어 주었는데.” “비행기 접어 줘.” “기다려요. 아버지 다른 일 하니까.” “비행기 접어 줘.” “아버지 하던 일 끝나면 접을게.” “비행기 접어 줘.” 아이는 제가 바라는 뜻을 이룰 때까지 달라붙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비행기를 접는다. 다 접은 비행기를 아버지가 휙 날린다. 꺄아. 소리를 지르며 웃는 아이가 비행기를 쥔다. 기운차게 날린다. 종이 한 장은 책으로 묶이고, 비행기가 되며, 놀잇감이 되다가는, 좋은 이야기로 숨결을 잇는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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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 아이들

 


  사진을 찍는 어버이 곁에서 사진을 배우며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흙을 사랑하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온갖 도시 문명과 문화를 누리는 어버이 곁에서 온갖 도시 문명과 문화를 빨아들이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친다 할 때에는, 누구보다 어버이인 나 스스로한테 가르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할 때에는, 바로 나 스스로 어떤 삶인가를 돌아보는 나날입니다.


  깊은 밤 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 아버지를 찾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누여 다시 재웁니다. 두 아이 모두 깊이 잠들었구나 싶어, 아버지는 슬쩍 조용히 일어나 셈틀을 켜고는 글을 쓰려 했는데, 아이는 곁에서 아버지가 안 자니 서운하다며 이렇게 찾아듭니다.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면 무릎이 없는 듯 저립니다. 피가 흐르지 못해 쭈뼛쭈뼛 저릴 때에 아이를 살며시 들어 자리를 바꿉니다. 피가 다시 흐르며 저릿저릿 간지럽습니다.


  사진쟁이 아버지가 사진기 다루는 매무새가 어여쁘다면 사진쟁이네 아이들 또한 사진기 다루는 매무새가 어여쁩니다. 흙일꾼 아버지가 연장을 잘 간수한다면 흙일꾼네 아이들 또한 연장을 잘 간수합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아버지가 들길을 호젓하게 달릴 줄 안다면, 자전거수레 누리는 아이들은 들길을 호젓하게 달리는 보람을 마음껏 받아들입니다. 서로 좋은 사랑이자 꿈이고 이야기입니다. (4345.5.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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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26 20:23   좋아요 0 | URL
어이쿠 DSLR이 상당히 무거운데 저러다 떨어뜨리면 고장이 나질 않을까요? 요즘 중고 똑딱이 디카는 한 3~4만원 주면 살수 있는데 그걸 쥐어주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숲노래 2012-05-27 07:17   좋아요 0 | URL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아이가 떨어뜨리지 않는 줄 잘 알고, 첫째 아이는 돌쟁이일 때부터 저렇게 놀았으니 아주 홀가분하게 잘 쓴답니다.
 


 꽃씨 바람 불어도 좋아

 


  시골 들길 어디를 걸어도 손쉽게 마주하는 민들레 꽃씨 하얗게 핀 줄기 꺾어 후우 하고 바람에 휘 날리며 멀리멀리 퍼지도록 하며 놀아도 좋아. 내가 네 어버이로서 무엇을 가르치려 할 수 있겠니. 네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며 가장 사랑스레 꿈을 꾸는 넋을 돌볼 수 있도록 어여쁜 길을 먼저 씩씩하게 걸어가며 활짝 웃는 삶 하나 넌지시 보여줄 만하지 않을까.


  오늘 이 길 함께 걸어서 좋다. 오늘 이 길 나란히 걷다가 네 모습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어 좋다. 오늘 이 길 서로 뛰놀며 걷다가 이야기꽃 한 자락 피우며 파란하늘 드넓게 껴안을 수 있어 좋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삶이란, 어버이 가슴속에서 조용히 잠자는 ‘어버이로서 어린이였던 지난 삶’을 일깨우며 오래오래 맑고 따스한 마음을 천천히 돌보는 삶이리라 생각한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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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고 싶어

 


  자전거수레에 아이들을 태우고 면내에 다녀올 때에는 뒤에서 서로 조잘조잘 떠들며 논다. 옆지기가 자전거를 새로 배우느라 천천히 옆마을 뒷마을 두루두루 천천히 달리니, 수레에 탄 첫째 아이가 “나 내리고 싶어.” “나 달리고 싶어.” 하는 말을 자꾸자꾸 한다. 첫째 아이를 수레에서 내린다. 첫째 아이는 방방 뛰며 좋아라 한다. 자전거 옆에서 자전거 뒤에서 자전거 앞에서 신나게 달린다. 아이는 끝없이 달린다. 아이가 2킬로미터 즈음 달렸을 때에 “힘들지 않아? 괜찮아? 앉을래?” 하고 묻는다. “응, 괜찮아.” 하고 말한다. 이리하여, 다섯 살 첫째 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내려 거의 4킬로미터를 달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는 “괜찮아. 얼른 우리 집에 가서 씻고 자면 돼.” 하고 말한다. 너는 누구네 딸아이인가? 우리 딸아이일 테지. (4345.5.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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