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는 옷

 


  선물받는 옷은 우리한테 찾아온 새 옷이다. 우리한테 선물해 주는 옷은 선물하는 분들이 깨끗하게 빨아서 건넨다. 새로 받는 옷에서는 ‘새로 받는 옷 냄새’가 있다. 가게에서 옷을 새로 살 때에도 ‘새로 사는 옷 냄새’가 있다. 우리 식구는 ‘새 옷’을 받거나 장만하면 그대로 입히지 않는다. 먼저 한두 차례 빨래를 해서 ‘새 옷 냄새’를 빼낸다. 그런데, 한두 차례 빨래를 하고 햇볕에 말린대서 ‘새 옷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입히고 빨고를 여러 달 되풀이하면 ‘새 옷 냄새’는 비로소 차츰 줄어든다.


  오늘날은 거의 모두라 할 만한 옷가지를 공장에서 화학섬유를 짜서 만든다. 화학섬유를 짜서 만드는 옷에 화학약품으로 빛깔을 입힌다. 오늘날 여느 도시사람은 화학세제로 옷을 빨래한다. 오늘날 여느 도시사람은 화학성분으로 만든 비누로 몸을 씻는다. 옷을 가게에서 새로 산다 한들 달갑지 못하지만, 옷을 누군가한테서 얻을 때조차 그리 반갑지 못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를 스스로 풀려 하는 이웃이 드물거나 없다면, 이 얼거리에서 ‘새 옷 냄새’를 줄이며 아이들 옷을 입히는 길을 찾아야겠지.


  들판에 서거나 들길을 걸으면 들내음이 몸에 스며든다. 멧길을 걷거나 멧자락에 안기면 멧내음이 몸에 감돈다. 바다에 서거나 바닷물에 뛰어들면 바다내음이 몸에 어린다. 살아가는 길이 살아가는 내음이 된다. 생각하는 삶이 곱게 풍기는 내 삶내음이 된다. (4345.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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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아래 잠들기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밤새 뒹굴면서 잔다. 아이들은 이리 굴러서 척 기대고, 저리 굴러서 착 달라붙는다. 자다 보면 잠자리를 빼앗긴다. 하는 수 없이 이리 쪼그리고 저리 옹크린다. 두 아이만 방에 두면 으레 한 녀석은 위를 보며 눕고 한 녀석은 아래를 보며 눕는다. 어떻게든 자는 녀석들이니, 부디 오래오래 고단함이 모두 가시도록 잘 자면 좋겠다. (4345.7.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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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대기 냄새

 


  장마철이 되니 집안이 눅눅하다. 옷도 이불도 눅눅하다. 가끔 볕이 반짝 하고 날 때에 보송보송 마르지 않은 옷가지하고 이불을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한두 시간이 되더라도 햇볕을 쬐면서 따순 기운을 곱게 품기를 빈다. 고작 한 시간 볕을 쬔다 하더라도 이불을 덮거나 깔 때에 냄새가 다르다. 눅눅한 채 있어야 하는 이불에서는 눅눅한 내음이 흘러나오고, 햇볕을 조금이라도 쬔 이불은 햇볕을 쬔 만큼 햇볕 내음이 퍼져나온다.


  포대기를 빨래한다. 장마철이 이어지면서 포대기도 눅눅해진다. 그렇지만 장마철에 이불을 빨래할 엄두를 못 내듯 포대기를 빨래할 엄두를 못 낸다. 여러 날 포대기 빨래를 미루다가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저녁 씩씩하게 빨래하자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포대기로 둘째를 업을 수 없는 노릇이다. 더디 마르더라도 빨아 놓고 보자고 생각한다. 더디 마르는 바람에 외려 꿉꿉한 냄새가 배고 말더라도 빨지 않고서야 쓸 수 없다고 여긴다.


  포대기는 이틀 만에 보송보송 마른다. 포대기를 빨고 나서 ‘이불도 이렇게 잘 마르면 참 좋겠네’ 하고 생각한다. 둘째는 날마다 다리힘을 키우니, 이 포대기도 앞으로 몇 차례 쓰고 나면 옷장에서 오래도록 잠을 잘 테지. 마지막까지 둘째 아이랑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네 좋은 내음을 나누어 주렴. (4345.7.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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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조각에 벤 생채기

 


  재활용 쓰레기를 치우다가 그만 유리 조각에 손가락이 찔리다. 피가 퐁 하고 솟는다. 왜 재활용 쓰레기 사이에 유리 조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어떻게 여기에 유리 조각이 들었나 하고 따지기보다, 그릇이나 잔이 깨졌을 때에 곧장 말끔히 안 치웠으니 손이 벨 만하겠다고 느낀다.


  피가 솟는 손가락으로 일을 조금 더 하다가 물로 헹군다. 피 솟는 생채기를 솜으로 꾹 누른 다음 밴드를 붙인다.


  다시 일을 한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긴다. 어느새 밴드가 떨어진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물을 만진다. 날카로운 조각에 벤 생채기가 다시 벌어지거나 아플 만하지만, 다시 벌어지지 않고 더 아프지 않다. 그렇구나 하고 여기며 늘 하던 대로 집일을 마저 한다.


  늦은 밤에 마지막 빨래를 하고 내 몸을 씻으며 곰곰이 돌아본다.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예쁘장하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궂은 일을 곧잘 하고 이런저런 구지레한 것을 꽤 만진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하얀 살결이고 말짱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힌 모습을 빼고는 딱히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궂은 일 쉬지 않는 이들 손가락이 두껍고 투박한 모습을 헤아린다면, 내 손가락은 참 가늘고 예쁘장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막일을 하거나 짐을 나를 때에 내 손가락과 손만 보고는 ‘저이가 무슨 일을 하겠어?’ 하는 사람들이 놀란다. 나는 내 가녀리고 가는 손가락과 손으로 훨씬 더 오래 많이 일을 하고 짐을 나르니까.


  모든 앎은 밑앎이기에 온누리를 살피는 앎은 바로 내 가슴속에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본다면 온누리를 환하게 꿰뚫거나 읽을 수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온누리는커녕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훑지 못한다.


  다시금 내 손가락과 손을 살핀다. 아주 예쁘거나 가냘프거나 곱상하지 않은 손가락이요 손이지만, 꼭 내 삶과 같이 예쁘고 투박하며 가냘프고 고운 손가락이요 손이라고 느낀다. 나는 내 삶을 읽으면서 내 사랑을 살피면 된다. 나는 내 몸을 돌아보면서 내 마음이 깃든 자리를 읽으면 된다. 나는 내 마음을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면 된다. 나는 내 살붙이를 사랑하면서 내 꿈과 길을 사랑하면 된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아프거나 다치기보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기를 바라니까 내 손가락에 베었겠지. 나는 손가락이 베거나 말거나 집일을 도맡으면서 살림을 꾸리겠다고 생각하니까 벤 손가락이 스스로 말짱하게 아물겠지.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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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장마를 어떻게 보냈을까

 


  엄살을 부리고픈 마음이 없고, 그렇다고 딱히 견주고픈 마음은 없으나, 2012년 장마철은 2011년 장마철보다 한결 수월하다고 느낀다. 아직 장마철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두고보아야 하는데, 2011년 장마철은 2010년 장마철하고 대면 되게 힘들었는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살아낸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느끼거나 치르는지 잘 모른다. 다만, 혼자 살던 때와 옆지기하고 둘이 있던 때에는 장마철이든 아니든 썩 대수롭지 않았다. 두 사람 살림이더라도 우리 집에서는 빨래 옷가지가 얼마 없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장마철과 겨울철 빨래가 참 고되구나’ 하고 깨닫는다.


  2008년부터 네 차례 장마철을 치렀다. 이제 다섯 차례 맞이하는 장마철이다. 올 장마철은 햇볕 구경하기 몹시 어렵지만, 여러 날 내리 빗줄기 퍼붓는 날은 없다. 나로서는 이 대목이 참 고맙다. 제아무리 드세게 빗줄기가 퍼붓더라도 딱 하루에서 그치고 이듬날은 빗줄기가 듣지 않고 구름만 가득하더라도 반갑다. 퍼붓는 빗줄기도 하루 내내 퍼붓지는 않고, 틈틈이 말미를 두니까 반갑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지난 장마는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떠올린다. 아이들 옷가지를 날마다 두어 차례나 서너 차례 손빨래를 하면서 ‘아무렴, 잘 보냈지. 아무렴, 올해도 잘 보내잖아.’ 하고 생각한다. 날씨가 궂고 축축해 틈틈이 새 빨래를 해서 말려야 하는 날이 끝나면, 나도 좀 수월하게 기계빨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계빨래를 한대서 내 몸이 가뿐해진다고는 느끼지 않아, 좀처럼 빨래기계를 안 쓴다. 아니, 이제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돌이 지나고 보니, 예전보다 오줌기저귀나 오줌바지가 한결 적게 나와, 날마다 빨래를 해야 하기는 하되, 빨래기계를 돌릴 만큼 빨랫거리가 넘치지는 않는다.


  어느덧 새날이 밝는다. 오늘은 오늘 몫만큼 새 빨랫거리가 나오겠지.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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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7-14 15:1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2010년 장마때 살던 지하에 빗물이 마구 들어와 양동이로 물을 퍼낸 악몽이 생각나네요ㅜ.ㅜ

숲노래 2012-07-16 09:44   좋아요 0 | URL
에고... 지하방에서는 안 살아야 할 텐데요...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