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잘하는 아버지

 


  한가위를 맞이해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가는 음성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온다. 내 어머니 일을 이모저모 거든다. 틈틈이 아이들을 보살핀다. 사이사이 빨래를 한다. 이부자리를 깔고, 아이들을 옆지기와 하나씩 재운다. 요즈음 이 나라가 이럭저럭 ‘성평등’을 이룬다고 말들 하지만, 내 보기에는 성평등은 허울뿐이요, 사내도 가시내도 저마다 스스로 맡을 집살림과 집일하고는 동떨어지지 싶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으레 늙은 어머니한테 살림과 일을 맡긴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 모두 살림과 일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는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니까, 오늘날은 사내도 가시내도 ‘집에서 다 같이 일도 살림도 안 하는 모습’으로 ‘성평등’을 이룬달까. 슬기로우면서 참답다 할 성평등이라 한다면, 저마다 즐겁고 기쁘게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림과 일을 함께 하는 모습이리라 느낀다. 반반씩 나누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힘이 세니까 더 하는 일이 아니다. 사내라서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가시내니까 해 주는 일도 아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사랑으로 누리는 살림이면서 일이다.


  적잖은 이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집안일 잘하는 아버지”라고 일컫곤 한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집안일을 모두 다 하는 일꾼”이랄까, 살림꾼이랄까,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가 집안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니 하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난 그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요, 내 온 사랑을 담아 보금자리를 아끼고픈 집식구 가운데 하나인데. (4345.9.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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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아이 오줌그릇

 


  9월 24일, 작은아이가 오줌그릇에 두 차례 쉬를 눈다. 다만, 두 차례로 끝났고, 이듬날에는 오줌그릇에 쉬를 누지 않는다. 그래도 열여섯 달만에 비로소 오줌가리기를 시킬 수 있던 셈이다. 퍽 더디더디 가는 노릇인데, 이제 하루에 한두 차례씩 오줌그릇 쓰기를 익히면, 방바닥이고 마룻바닥이고 부엌이고 오줌바다가 되는 일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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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나물뜯기

 


  날마다 뜯어 날마다 먹는 텃밭 나물을 함께 뜯는다. 이제껏 언제나 혼자 뜯었으나, 아이들이 나물을 조금 더 맛나게 먹기를 바라며 함께 뜯는다. 텃밭에 따로 무얼 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먹을 풀이 푸른 빛깔 뽐내며 쑥쑥 돋는다. 우리 식구는 조릿대랑 후박나무 어린 줄기 빼고는 다 먹는다. 산초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에서 튼 싹도 뜯어 먹는데, 산초풀은 산초열매처럼 싸아 하고 입에서 울린다. 질경이도 지칭개도 모시도 괭이밥도 까마중도 쇠비름도 다 먹는다. 돗나물은 싱그러운 잎사귀 몹시 곱기에, 돗나물 줄기를 뜯을 적마다 이처럼 고맙게 하늘이 내린 풀밥이란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한다. 내가 이름을 모르든 알든, 이 풀은 내 밥이 되어 주고, 우리 식구 몸으로도 좋은 숨결이 되어 스며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가 따로 붙인 이름으로 알아야 할 풀은 아니다. 저마다 곱고 좋은 풀이다. 내가 이름을 알건 모르건 내 둘레 사람들 모두 고우면서 반갑다. 저마다 보금자리를 일구고 마을을 이룬다. 저마다 예쁜 삶 누리면서 지구별을 빛낸다. 내가 큰아이랑 나물을 뜯을 적에 내 이웃도 논둑이나 밭둑에서 나물을 뜯겠지. (4345.9.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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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함께 그리기

 


  그림을 그리며 노는 누나 곁에서 알짱거리던 작은아이는 저도 그림을 함께 그리고 싶은데, 누나는 그림종이에 마구 금을 긋지 말라며 이리 가고 저리 숨는다. 작은아이한테 다른 그림종이를 하나 준다. 작은아이는 제 그림종이를 따로 받아 거기에 금을 죽죽 긋는다. 그러나 자꾸 누나 그림종이를 넘본다. 이윽고 누나는 저쪽으로 멀리 가서 등을 돌리고 엎드린다. 작은아이는 문득 새 놀이가 떠올랐는지 밥상이자 책상에 올라선다. 너는 밥상이든 어머니 등이든 걸상이든 사다리이든, 뭐든 다 타고 올라야 재미나겠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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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자전거 함께 타기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가슴으로 안아 작은자전거 뒷자리에 세우곤 한다. 이제는 작은아이 스스로 작은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타기도 한다. 큰아이 다리힘이 제법 붙어, 누가 끌거나 밀지 않아도 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마당을 휘휘 돌 수 있다. 다만, 아직 좀 힘드니까 오래도록 태워 주지는 않는다. 작은아이도 누나가 태워 주는 자전거를 오래 타려고 하지는 않는다. 서로 날마다 조금씩 자라고, 둘이 나날이 무럭무럭 크면, 이제 자전거 타며 노는 겨를이 늘겠지. 너희가 고무바퀴 자전거를 타는 날은 자전거수레에서 벗어나 저마다 씩씩하게 제 길을 달리는 날이 되리라. (4345.9.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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