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아이들

 


  아이들이 옥수수를 먹는다. 두 아이가 나란히 씻고 나서 새 옷을 입지는 않고, 알몸으로 옥수수를 먹는다. 마지막 무더위를 누릴 늦여름, 읍내 마실을 하며 장만한 옥수수가 있고, 전남 고흥하고는 아득하게 먼 강원도 양양에서 보내 온 옥수수가 있다. 아이들은 옥수수를 잘 먹는다. 한 소쿠리 있어도 둘이서 다 먹을 낌새이다. 한 아이가 입에 물면 다른 아이가 입에 물고, 한 아이가 입에서 내리면 다른 아이가 입에서 내린다. 서로서로 마주보면서 옥수수를 먹는다. 서로 나란히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요것들이 섬돌 시멘트 바닥에도 알몸으로 퍼질러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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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 있는 집

 


  아이들이 마당에서 논다. 여름날 마당 한켠에 커다란 고무통을 놓고 물을 받아 놀도록 하다 보니,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물갈이를 하며 ‘헌 물’을 텃밭에 주거나 마당을 쓸 때에 좌악 뿌리곤 했는데,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마당을 물로 쓸어내니 아이들도 어른도 맨발로 다닐 만하게 된다고 느낀다. 큰아이는 마당을 물로 쓸고 고무통에 새 물을 받을 때에 여러모로 잘 도와준다.


  작은아이가 씩씩하게 서고, 제법 빨리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차근차근 달리기를 익힐 무렵이 되니, 두 아이끼리 마당에서 잡기놀이를 하곤 한다. 숨기놀이도 하고, 여러모로 서로 오붓하게 놀 만하다.


  마당이 더 크다고 더 재미나게 논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당이 작다고 덜 재미나게 논다고 느끼지 않는다. 마당이 있고, 풀숲이 있으며, 나무가 자랄 때에 비로소 마당이라고 느낀다. 한식구 살아가는 보금자리라 한다면 마땅히 마당이 있으면서 텃밭이 붙어야 하는구나 싶다.


  아이들은 숨을 쉬어야 한다. 어른들도 숨을 쉬어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푸른 잎사귀가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뜯을 푸른 잎사귀가 있어야 한다. 도시에서 아파트를 짓는다 하더라도 마당 구실을 할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마당과 함께 텃밭으로 삼을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마당도 텃밭도 없는 아파트라 한다면, 이곳에서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살가이 숨을 쉬거나 노닐기 힘들 텐데.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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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30 12: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당있는 집이 참 좋아요
요즘 그런 집 찾기 쉽지 않지요

숲노래 2012-08-30 12:32   좋아요 0 | URL
음... 시골에는 널렸구요. 도시에도 꽤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안 찾으려고 하니까 잘 안 보이는 셈 아닌가 싶어요 ^^;;

카스피 2012-08-31 21:00   좋아요 0 | URL
워낙 아파트 숲에 가려살다보니 마당있는 집을 쉬이 찾지 못하는것 같아요.

숲노래 2012-09-01 00:31   좋아요 0 | URL
스스로 찾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마련이에요..
 


 아이 눈빛

 


  깊은 저녁에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마당으로 나온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우리 논은 아니나, 대문 앞은 온통 논이다. 논 저 멀리 멧자락이 보이고, 멧자락 위로는 하늘이다. 하늘에는 별이 환하다. 내 눈이 덜 좋아서 더 많이 못 보지만, 저 허여멀건 줄기는 미리내일 테지. 나는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살살 어르며 노래를 부른다. 작은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럽게 들리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며 생각한다. 집에서도 이렇게 사랑스레 목소리를 가다듬고 눈길을 다스리면 훨씬 좋을 텐데. 보드라운 아버지 노랫소리를 듣는 작은아이가 품에서 좋다고 느끼면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낸다. 저 하늘을 빛내는 별을 환하게 비출 만큼 맑게 빛내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이윽고 나도 아이 맑은 눈빛을 내 가장 맑은 눈결로 추스르면서 바라본다. 내 눈빛은 아이 눈빛으로 스며들고, 아이 눈빛은 내 눈빛으로 스며든다. 아이가 골을 부려도 어버이는 사랑스레 바라볼 수 있다. 어버이가 성을 내도 아이는 활짝 웃으며 마주할 수 있다. 눈빛에 사랑을 담아 서로를 감싼다. 눈빛으로 꿈을 실어 살뜰히 어깨동무한다. (4345.8.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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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쿵쿵

 


  새벽 다섯 시 사십 분께, 동이 슬슬 틀 무렵, 갑작스레 쿵쿵쿵 소리가 들린다. 작은아이가 잠에서 깨며 벌떡 일어나 평상을 밟고 방바닥을 밟으며 마루를 밟는 소리이다. 작은아이는 두리번두리번하며 누나를 찾는다. 누나와 아버지가 마루에 누워서 자는 줄 알아채고는 빙그레 웃는다. 그러고는 누나 옆에 착 달라붙는다. 누나를 이리저리 밀면서 깨우려 한다. 야, 야, 아직 여섯 시도 안 되었어, 누나 깨우지 마, 누나 더 자야 해.


  작은아이 손에 부채를 쥐어 준다. 작은아이를 내 배에 눕혀서 논다. 작은아이를 내 팔베개를 하며 놀고 또 이래저래 살을 부비고 간질이며 논다. 이러구러 거의 사십 분 남짓 노는데, 새벽녘 놀이가 만만하지 않다. 옆에서 어수선을 피우는 꼴이니, 큰아이도 슬슬 눈을 뜬다. 무척 고단해서 성가시다는 몸짓으로 동생이 놀자고 부르는 눈짓을 홱 돌린다. 그러나 큰아이는 아버지 품으로 안겨 이십 분쯤 엉겨붙고 뒹굴다가 스르르 일어나서 동생이랑 논다.


  둘이 참 부지런히 잘 논다. (4345.8.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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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아이

 


  잠든 아이를 무릎에 눕힌다. 한동안 부채질을 하고 어르면서 토닥인다. 깊이 잠들었구나 싶을 때에 평상으로 옮겨 누인다. 이마와 머리칼을 쓸면서 땀이 있는가 살피고, 옷자락 앞뒤를 살살 만지며 땀이 배었나 헤아린다. 땀 기운을 느끼지 않을 때에는 몇 번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고는 조용히 건넌방으로 간다. 땀 기운을 느낄 때에는 찬찬히 사그라들 때까지 천천히 부채질을 한다. 아이 몸과 내 몸이 닿는 자리는 후끈후끈하며 땀이 밴다.


  읍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무릎에 눕힌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기에 아이 몸을 손닦개나 긴옷으로 덮는다. 내릴 곳이 다가오면 가방을 짊어지고 어깨에 천가방을 꿴다. 아이가 집에까지 안 깨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걷는다. 가방을 메고 들며 아이를 안은 채 걷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내가 어버이라서 그럴까. 내가 기운이 세다고 느껴서 그럴까. 잘 모른다. 다만, 아이가 새근새근 잘 자면서 아버지 품에 안겨 집에 닿은 다음, 평상에 누여서도 예쁘게 잘 잔 다음 달콤한 꿈을 누리고서 일어나면 맑은 물로 몸을 씻고 하루를 마감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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