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기저귀 잔뜩 넌 빨래대 그만 와장창 소리 내며 쓰러진다. 빨래대를 받친 무겁고 큰 돌은 부질없었다. 후박나무 빨래줄에 넌 빨래들은 빨래집게가 틱틱 풀어지며 마당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보다 못해 빨래줄 빨래를 모두 걷는다.

 

 바람은 벽에 건 온도계를 날려 깨뜨린다. 천천히 몸이 낫는가 싶었으나, 된바람 맞으며 빨래를 널다가, 또 걷다가 그만 덜덜 떨다가 몸살까지 걸린다.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걸고 나서 자리에 드러눕는다. 갤갤 앓는 소리 몇 시간쯤 낸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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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치는 여섯 손

 


 옆지기가 피아노를 친다.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가서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친다. 내가 둘째를 안고 데려가서 너도 쳐 보렴 하고 피아노 앞에 대니 둘째도 제 작은 손을 놀려 피아노 건반을 똥똥 친다. 이윽고 옆지기가 둘째를 받아 앞에 앉혀 함께 피아노 건반을 친다. 이제 세 사람 여섯 손이 피아노를 친다. 두 사람이 피아노 한 대를 함께 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세 사람이 함께 친다. 아버지는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 사람이 피아노를 치면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으니까. (4345.1.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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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 창호종이문 바르기

 


 부엌 창호종이문을 드디어 바른다. 바르고 보면 뚝딱 하고 해치울 만한데 나는 이 일을 여태 미루었다. 부엌 나무문에 붙은 헌 창호종이를 뗀 지 스물닷새쯤 되었으나, 이런저런 일을 치른다는 핑계를 스스로 붙여 이제껏 안 바르며 지냈다.

 

 찌뿌둥한 몸으로 드러누워야 하나 생각하다가, 한 시간 품을 팔자고 다짐한다. 마당가 헛간에서 풀을 꺼내 작은 대야에 담는다. 물을 조금 담아 왼손으로 비빈다. 햇살 드는 대청마루에 몇 분 둔 다음 하얀 천에 풀을 석석 발라 먼저 나무문살에 붙인다. 문고리 자리는 가위로 알맞게 잘라 예쁘게 댄다. 몇 분 기다리고 나서 창호종이를 바른다. 창호종이는 한 장 반 든다.

 

 예전에는 창호종이만 발랐다는데, 이제는 하얀 천을 먼저 바르고 이렇게 창호종이를 붙인단다. 하얀 천은 어떤 천일까. 무슨 천인지는 모르고, 면내 천집에서 ‘창호종이 바를 때에 속에 대는 천’이라고 여쭈어 사 왔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이렇게 하신다기에 우리도 이리 해 보았다.

 

 속에 천을 한 겹 붙이고 창호종이를 붙이니, 창호종이에 구멍 날 일이 없다. 아이는 부러 구멍내기 놀이를 하지만, 따로 놀이를 않더라도 문을 여닫다가 그만 구멍이 나곤 한다. 천으로 한 겹 대니 어쩌다 손가락이 문살 사이로 쏙 들어가 톡톡 치더라도 구멍이 나지 않는다.

 

 하룻밤 잘 자면 곱게 마르겠지. 이웃집 할머니는 잘 말린 나뭇잎 한두 장을 함께 붙이면 한결 그윽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자면 가을날 문을 발랐어야지. 한겨울에 무슨 나뭇잎을 잘 말려 함께 붙이나. 남녘땅 고흥이 안 춥대서 이래저래 미적미적 일을 미룬 셈인가. 낮잠 한 시간을 못 자고 창호종이를 바른 탓에 이듬날은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좋다. 하루쯤 몸을 더 부리거나 굴려도 좋다. 밀린 일 하나 씻어 아주 기쁘고 홀가분하다. (4345.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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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05 11:26   좋아요 0 | URL
와우, 창호지가 요즘에도 있네요.
저게 습도 조절엔 그만이라는데.
저도 어렸을 땐 창호지 바른 집에서 살았는데...
운치있고, 정감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2-01-05 14:26   좋아요 0 | URL
시골집은 모두 창호종이문이에요.
그래도 다들 예쁘게 잘 사셔요.
우리 집도 창호종이문이라 좋은데,
어쩔 수 없이 벽은 시멘트랍니다 ㅠ.ㅜ

나중에 돈을 모아 흙집을 따로 지어야지요~~~

하늘바람 2012-01-05 12:31   좋아요 0 | URL
이거 은근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릴때 발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쭈글쭈글 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숲노래 2012-01-05 14:27   좋아요 0 | URL
풀을 종이에 바르고서 좀 두었다가 붙이면 쭈글쭈글하지 않아요.
그런데 엊저녁 붙이면서 깜빡하고
또 그냥 붙였어요 ㅠ.ㅜ

잉잉..

hnine 2012-01-05 16:02   좋아요 0 | URL
딴 얘기인데, 산들보라하고 사름벼리, 남매가 진짜 많이 닮았어요 ^^

숲노래 2012-01-05 16:57   좋아요 0 | URL
음... 밤에 오줌 누어 기저귀 갈 때
빽빽 끝없이 울어대는 모습
참... 똑같아요 -_-;;;;;;;

마녀고양이 2012-01-05 21: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흰천을 먼저 붙이고 창호지를 붙이는거군요, 요즘은.
저는 첫 사진을 우선 봐서, 창호지는 천이구나 했어요... 긁적긁적.

깨끗하니 좋은걸요.

숲노래 2012-01-06 01:56   좋아요 0 | URL
창호지에서 '지'가 '종이'에요.
창호는 창문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창문 종이'란 뜻이에요.

붓글씨를 쓰는 종이도 바로 이 창호종이잖아요~ ^^
 


 손가락으로 먹는 밥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받는 너는 어떤 마음일까. 네가 배고프다 싶을 때에 너희 아버지가 알뜰히 밥을 차려 주든? 네가 먹고픈 밥을 기쁘게 차려 주든? 무언가 새롭다 싶은 밥을 차려 주든? 늘 똑같은 밥만 차려 주든? 너 밥먹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버지도 배가 고프니 밥을 먹지만, 네가 맛나게 알뜰히 밥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날에는 밥술을 뜨지 않아도 배가 부르단다. (4344.1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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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05 05:32   좋아요 0 | URL
네살 아이가 저렇게 혼자서 밥을 잘 먹는군요! 예쁘고 기특해요.
아이들이 제일 예뻐보이는 때는 역시 낮에 온갖 개구진 짓 다하여 엄마를 고단하게 한 후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모습과, 저렇게 밥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 같아요.

숲노래 2011-12-05 08:46   좋아요 0 | URL
아이가 사랑스러운 모습을 차츰차츰 더 느끼도록
더 예쁘게 잘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새날을 맞이합니다
 



 우물우물


 낮잠을 건너뛰는 첫째랑 복닥이면서 집일을 하다가 지친 아버지는 아이보다 일찍 뻗어 잠자리에 드러눕는다. 아이는 졸리면서 아버지를 따라 자리에 드러눕지 않는다. 전화기 울리는 소리에 문득 잠을 깨니 비로소 첫째가 내 옆에서 곯아떨어진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언제 잠들었을까. 그런데 둘째는 좀처럼 잠들지 않으면서 이리 칭얼 저리 헥헥거린다. 칭얼거리다가도 안으면 좋아하고, 바닥에 엎드리면 낑낑거리면서 울고. 첫째 아이가 동생 우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깊이 잘 때에는 그야말로 곯아떨어진 날. 곯아떨어진 주제에 입으로 무언가 오물오물 한다. 가만히 보니 귤을 입에 잔뜩 물고 곯아떨어졌다. 꿈나라에서 귤을 먹으면서 노니? 네가 잠들 때까지 버티지 못하니 미안하구나. 너도 아버지를 좀 봐주렴.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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