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자니


 새벽같이 일어난 아이. 저녁 늦도록 안 자려는 아이. 졸린 채 낮잠을 건너뛰며 벌건 눈으로 놀자며 달라붙는 땀으로 촉촉한 아이. 씻기면 금세 또 뛰놀며 다시 땀범벅이 되는 아이.

 옆지기가 말랑공을 가져와서 발에 끼고 들었다 내리는 놀이를 아이한테 물려준다.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잠은 안 자면서 공놀이를 한다.

 하기는. 잠을 안 자겠다면 놀려야 하고 함께 놀아야겠지. 나는 아이하고 더 놀거나 참으로 신나게 놀려고 마음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사진을 찍고 나서 셈틀 바탕화면에 깔며 생각한다. 마음껏 뛰놀며 스르르 곯아떨어지게끔,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면서 스르르 꿈나라로 가도록, 어버이가 아이하고 살을 부대끼면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려야 한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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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


 자전거를 몬다. 아이를 태우고 읍내에 다녀온다. 작은 아이는 수레에 태울 수 있다. 어른은 몸무게가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수레에 못 탄다. 작은 아이라서 이 수레에 탈 수 있다. 읍내에 닿는다. 작은 아이는 콩콩콩 뛰듯 걷는다. 작은 아이 키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는 몹시 무시무시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로서는 조그마한 아이 때문에 차를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골목에서는 빠르기를 아주 늦추어야 옳다. 아니, 커다란 자동차를 골목까지 밀고 들어오며 다녀야 할 까닭이 있을까.

 읍내에 다녀오고 나서 아이를 씻긴다. 네 살 아이는 저 하고픈 대로 하면서 말을 안 들을 때가 잦지만, 아이가 하고픈 대로 말하지 않으니까 말을 안 듣는다 할 수 있겠지. 씻고 싶은 아이한테 씻자고 하면 금세 쪼르르 달려온다. 씩씩하게 옷을 잘 벗고, 땀에 젖은 옷을 빨자고 하면 이내 알아듣는다. 벗은 옷을 아버지한테 건넨다.

 따순 물은 미리 받았다. 아이를 씻긴다. 오늘은 몸이 많이 힘들기에 때밀이는 하지 말까 하고 비누만 바르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때를 밀어 본다. 때가 시원스레 나온다. 이렇게 시원스레 때가 나오는데 내가 좀 힘들다 해서 때밀이를 미루면 아이는 찝찝하겠지. 나는 내 손이 크다고 느낀 적이 없으나, 아이 팔뚝 때를 밀고 어깨와 등허리와 엉덩이와 두 발바닥을 문지르다 보면, 아이가 느끼기에 아버지 손이 얼마나 크랴 싶다.

 저녁 열 시가 되도록 잠을 안 자고 놀겠다는 아이가 겨우 잠이 든다. 자리에 눕고도 한 시간 가까이 떠들면서 노는 아이 이마를 쓰다듬고 손을 잡는다. 아이 손은 아직까지 참 작다. 앞으로 한 살 두 살 더 먹고 열 살을 더 먹고 나면 아이 손이랑 아버지 손이랑 엇비슷한 크기가 될까. 그때까지 아이는 참으로 작은 아이일 테지. 작은 아이하고 살아가는 큰 어버이라 한다면, 큰 어버이는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사람이어야 좋을까. 더 따뜻할 사람이 되기보다 늘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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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그리면서 웃기


 사진기가 없던 먼 옛날 태어나 아이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였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느꼈을까를 돌아보는 일은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글이나 책이 없던 더 먼 옛날 태어나 아이들을 사랑하며 지내는 아버지였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톺아보는 일은 덧없다고 느낍니다. 사진기도 있고 글이나 책도 있는 오늘 내 삶자리에서 내 아이들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몸이 훨씬 튼튼했다면 나는 내 살림을 어떻게 꾸렸을까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내 몸이 더욱 여렸으면 나는 내 살림살이를 어찌 다스렸을까를 되짚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습니다. 등허리가 결리고 쑤셔서 방바닥에 드러누워 되새깁니다. 내 몸이 훨씬 튼튼했다면 나는 우리 살붙이를 한결 따사로이 껴안는 품을 옳게 건사하기 힘들었으리라 느낍니다. 내 몸이 더욱 여렸으면 사진이고 글이고 책이고 없이 오직 깊은 마음과 너른 품으로 아이들을 얼싸안았으리라 느낍니다.

 깊은 새벽이 아니고서는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하고 옆지기를 담은 사진 또한 깊은 새벽이 아니고서는 갈무리할 짬을 내지 못합니다. 8월 24일을 맞이한 새벽녘, 8월 9일에 찍은 ‘아이가 어머니하고 그림 그리는 사진 넉 장’을 들여다봅니다. 8월 9일에 찍은 고작 넉 장밖에 안 되는 사진인데, 이제껏 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헌책방마실을 하며 필름으로 찍은 사진 가운데에는 지난해인 2010년 여름에 찍었지만 스캐너로 긁지 못하기까지 한 녀석이 있습니다. 필름 서른여섯 장 한 통을 스캐너로 긁자면 적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하루 한 시간이든 한 주 한 시간이든, 아니 한 달 한 시간이든 오직 아버지 사진일을 하자며 한 시간을 빼기란 몹시 빠듯합니다.

 보름 앞서 고작 넉 장 찍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어머니하고 즐거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웃습니다. 지난 보름 사이, 아버지로서 아이하고 얼마나 그림그리기 놀이를 즐겼는가 되돌아봅니다. 지난 보름에 걸쳐 새 보금자리 알아본다며 바깥마실을 한다든지, 바깥마실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나자빠진다든지 하며, 막상 아이하고 종이를 펼쳐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 적조차 드물고, 아이하고 어머니가 그림그리기 놀이를 하더라도 곁에서 사진찍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내가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이었어도 이런 내 삶을 느꼈을까 궁금합니다. 내가 글을 안 쓰는 사람이더라도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았을까 아리송합니다. (4344.8.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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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잘 씻는 아이


 석 돌을 지난 네 살 첫째가 손을 씻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손씻이가 영 어설프다고 느꼈으나, 이제는 제법 잘 비빕니다. 낯을 씻을 때에도 이마부터 턱까지 잘 문지릅니다. 이제 됐구나, 아니 이제 이렇게 씩씩하며 멋진 어린이가 되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팔월 들어 비로소 고개를 내민 햇살이 아스팔트길을 따뜻하게 데웁니다. 시골자락에도 흙길은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 시멘트길을 찾기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제 시골길도 으레 아스팔트길입니다. 다만, 도시처럼 자동차가 쉴새없이 드나들지 않습니다. 아이는 햇살 내리쬐는 따뜻한 아스팔트길에서 맨발로 걷습니다. 발바닥으로 넓게 스며드는 따순 기운이 좋겠지요. 아이가 따순 기운을 받아들일 흙길이 있는 시골이라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어른들은 흙길을 놔두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흙길일 때에는 비가 오고 나면 흙탕이 되고 파여서 자동차가 오가기 나쁘다’고 하면서 모조리 시멘트로 뒤집어씌우거나 아스팔트를 덮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맨발로 흙 기운과 햇살 기운 받아들일 살가운 자리를 한 뼘만큼도 놔두지 않습니다. 흙길을 흙길인 채 두며 텃밭으로도 돌보지 않고 그저 놀이터로 삼을 생각조차 없습니다. 고작 한두 평조차 아이들 놀이터로 놀리지 않습니다.

 아이야, 네 어버이는 땅 한 평 사서 가질 만한 돈마저 없는 사람이란다. 아니, 한두 평이나 열 평까지는 살 만한지 모른다. 그러나 너와 내가 흙길을 밟을 만한 자리에 꼭 한두 평이나 열 평만 땅을 팔 땅임자는 어디에도 없겠지. 아무쪼록 무럭무럭 씩씩하고 다부지게 잘 자라렴. 네가 씩씩하고 다부지게 손을 잘 씻듯, 네 동생한테 손씻이를 잘 가르치렴. (4344.8.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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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밀이 아버지


 곧 백날째 맞이하는 둘째를 씻긴다. 둘째는 저를 씻기려 하면 금세 알아챈다. 아주 좋다며 입을 쩍 벌린다. 까르르 웃는다. 씻길 때에도 웃으면서 좋아한다. 첫째는 요즈음 “싫어.”와 “안 해.”를 입에 달며 산다. 참말로 싫거나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투정이면서 놀이라 할까. “그래, 싫으면 씻지 마.”라 말하거나 “그래, 안 씻으려면 혼자 씻지 마.”라 말하면, 어느새 “씻어, 씻는다구.”나 “씻을래.”라 말한다. 자꾸자꾸 뒷북놀이를 한다.

 둘째를 씻길 때에는 젖을 물릴 때 쓰던 손닦개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으며 씻긴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내 손으로 닦으며 씻긴다. 네 살 첫째는 때를 밀면 제법 나온다. 손등과 팔뚝과 어깨를 거쳐 목덜미와 등판과 허리와 배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뒷꿈치까지, 골고루 때를 민다. 조그마한 몸뚱이에서 조그마한 때가 슬슬 벗겨진다.

 아버지가 때를 밀면 아이는 저도 때를 밀겠다며 슥슥 문지른다. 아이 힘으로 아직 제 때를 밀지 못한다. 아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스스로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살이 붙고 힘살이 붙는다. 시나브로 기운이 붙고 아주 천천히 슬기를 얻는다.

 아이가 제 낯을 옳게 씻을 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는 제 목덜미를 스스로 씻는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아직 물만 조금 묻힐 뿐이다. 그래도 말끄러미 지켜본다. 아이가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본다. 아이가 한참 혼자 깨작거리도록 둔 다음, 천천히 손을 들어 아이가 못한 일을 거든다.

 사람들은 아이가 참 귀여운 짓을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내가 볼 때에, 아이는 그닥 귀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살아낸다. 아이는 온힘을 기울여 살아간다. 아이로서는 모든 기운을 쏟아 살아숨쉬려 하는데, 이러한 몸짓이 무척 어설프거나 서툴기에 어른 눈썰미로는 ‘귀여운 짓’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아이한테는 살림이 아니라 소꿉놀이일 테니까, 아이가 노는 양은 귀엽게 느낄는지 모른다.

 때밀이 아버지로 지내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때밀이 시늉만 한대서 때를 밀 수 없다. 아이는 행주로 밥상을 닦고 걸레로 방바닥을 훔쳐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아버지를 거들어 둘째 기저귀를 함께 갈면서 팔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 책을 아이가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치우고, 밥상을 차릴 때에 수저와 그릇과 반찬통을 조금씩 같이 나르면서 어깨힘을 길러야 한다. 어머니랑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다리힘을 기르고,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빨래놀이를 하며 손아귀 힘을 길러야 한다. 때가 되면 아이는 저 혼자서 때밀이를 하며 씻기놀이에 푹 빠지겠지.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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