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안기


 네 식구 먹을 밥을 차리는데 옆지기가 부른다. 밥 차릴 때에 얼마나 바쁜데 왜 부른담. 그러나, 부를 때에는 부를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일 테지. 옆지기가 첫째 아이한테 안아서 건넸는지 첫째 아이가 스스로 안았는지, 첫째 아이 무릎에 둘째 아이가 눕는다. 네 살 아이가 한 살 동생을 무릎에 앉히면서 웃는다.

 무거울 텐데, 힘들 텐데, 꽤 오래 이렇게 있네. 조금 뒤 힘들다며 옆지기 손을 얻어 동생을 바닥에 내린다. 몇 분 안지 않아도 힘들다고 느끼면, 첫째 아이부터 제 어머니나 아버지 무릎에 털썩 주저앉거나 살살 비집고 들어오는 일을 그치면 좋으련만. 아침부터 밤까지 네 식구 함께 복닥이는 바쁜 나날이다.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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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에 안겨 자렴


 “자려고 하네. 가슴을 토닥이면 잠들어요.”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놀다가 만화영화를 첫째랑 함께 들여다보는데, 뒤에서 옆지기가 한 마디 한다. 둘째 얼굴을 바라본다. 졸음이 가득하다. 가슴을 살살 토닥인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뜰락 말락 하다가 살며시 감긴다. 이대로 이십 분 남짓 재운다. 슬슬 온 식구 잠들 무렵이 되기에 셈틀을 끄고 옆방으로 건너간다. 자리에 얌전히 눕히려는데 둘째가 그만 깬다. 깨더니 조금 뒤에 똥을 조금 눈다. 조금 뒤에는 똥을 조금 지린다. 속이 썩 좋지 못해 곱게 잠들지 못했구나. 까닭이 있고 뜻이 있겠지. 아이야, 부디 네 어머니나 네 아버지 품에 곱게 안겨 새근새근 잘 자렴. (4344.10.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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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렴


 아버지는 아침에 집 고치는 일을 하고, 어머니는 둘째를 재우고 나서 첫째랑 마을 한 바퀴 마실을 한다. 첫째랑 두 시간 가까이 마을 한 바퀴 돌기를 했기에 고단함이 몰려들어 낮잠을 잔단다. 아버지는 잠든 아이 곁에 살며시 누워 함께 눈을 붙이다가는 책을 조금 읽는다. 시골집으로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느긋하게 드러누워 본다. 그래 봤자 얼른 다시 일어나 청소와 손질을 마저 해야 하지만, 이렇게 함께 낮잠 조금 자고 책도 살짝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이 좋은 날을 좋은 넋으로 좋은 꿈을 키우면서 누리자. 아이야, 잘 자렴. 자고 일어나서 또 신나게 놀렴. (4344.10.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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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는 어머니 안는 아이


 뒤집기에 이어 목가누기를 할 줄 아는 둘째 아이를 곧잘 무릎에 앉힌다. 모두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기기를 건너뛰고 서기를 할 듯하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를 떠올린다. 첫째 아이도 기기를 건너뛰고 서기부터 했다.

 엊저녁 새 보금자리에서 처음으로 만화영화를 본다. 새 보금자리 인터넷은 끊기지 않는다. 이렇게 끊김 없이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니 눈물겹다. 이제 다섯 달이 갓 넘은 둘째 아이는 화면에 흐르는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본다. 아버지가 낮에 셈틀을 켜고 일할 때에도 무릎에 앉고는 곰곰이 바라본다.

 첫째 아이는 백일 무렵부터 제 아버지가 사진찍기를 하는 줄 알아차렸다고 느낀다. 첫째 아이는 노상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아버지를 수없이 바라보다가는 여섯 달이 조금 안 될 무렵부터 아버지 사진기를 만졌다. 둘레에서는 아버지 사진기를 만지다가 망가뜨린다고 걱정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첫째 아이가 여섯 달을 조금 지날 무렵 사진기를 만진다 하더라도 망가뜨릴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예전에 쓰던 무거운 렌즈 붙은 사진기를 첫째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 두 손으로 낑낑 들고는 사진을 찍었다. 첫째 아이는 그 뒤로 이제껏 아버지 사진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일이 없다. 아마 나이가 제법 든 다음에는 떨어뜨릴는지 모르나, 어린 나날에는 떨어뜨릴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둘째 아이도 저희 누나처럼 머잖아 아버지 사진기 단추를 누를 날을 맞이할까. 둘째 아이도 돌이 되기 앞서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까. 아버지가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니니 아이도 시나브로 사진찍기에 익숙할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늘 공책과 볼펜을 챙겨 글을 쓰니 아이도 차츰차츰 글쓰기에 젖어들는지 모른다.

 새 보금자리 손질에 한창 바쁜데 옆지기가 까르르 웃으며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옆지기가 첫째 아이를 안고, 첫째 아이는 동생을 안는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안기 놀이’를 한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둘째를 낳을 무렵부터 새 보금자리를 찾느라 책짐을 꾸리고 바깥마실을 자꾸 다녀야 하는 한편, 집살림을 꾸리고 옮기며 푸는 일로 바쁘다. 벌써 여섯 달째 이렇게 살아간다. 여느 때에도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복닥이지 못하며 지냈는데, 짐을 꾸려 집을 옮기자며 더 어우러지지 못한다. 여느 사람들은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가 너무 힘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힘들다면 ‘집에서 아이들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어우러지면서 사랑을 나눌 겨를을 제대로 못 내는 일이 힘들다’고 해야 맞다. 집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들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나누는 옆지기가 제대로 살아간다고 해야 맞다.

 이 힘든 날을 날마다 벅차게 보내고 나면, 어느새 첫째 아이 팔뚝에 힘이 꽤 붙고 첫째 아이 키와 몸집도 퍽 자라서, 아버지 혼자 도맡는 집일을 조금씩 나누어 맡을 수 있겠지. 엊저녁 첫째 아이를 씻기며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아이는 혼자 낯과 손을 씻는데, 아이가 “벼리는 빨래 못 해. 아버지가 빨래 해.” 하고 말한다. 나는 “그래, 아버지는 빨래를 하는데, 앞으로 벼리도 커서 빨래를 함께 해 줘.” 하고 대꾸한다. (4344.10.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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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싸개


 새근새근 고이 자는 아이는 깊디깊은 새벽나절 한 차례쯤 잠에서 깨어 스스로 오줌을 눕니다. 낮잠을 건너뛰고 밤잠마저 일찍 들려 하지 않으며 온갖 어리광이며 떼를 쓰는 아이는 까무러치듯 곯아떨어져서는 그만 이부자리에 쉬를 누고 맙니다.

 둘째가 오줌을 눈 새벽 네 시 오십 분 무렵, 첫째도 오줌을 눕니다. 바지에 오줌을 흥건하게 눕니다. 바지와 속곳을 벗기는데 그저 누워서 엉덩이를 살짝 듭니다. 저도 잠결에 쉬를 눈 줄을 느끼는군요. 그러나 하도 잠이 찾아와서 칭얼댄다거나 일어나지 않고 엉덩이만 살짝 듭니다. 새 속곳을 입히고 새 바지를 입힙니다. 두 아이는 다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듭니다. 집안이 조용합니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동이 틀 테고, 동이 트고 아침이 찾아오면 두 아이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며 또 신나게 놀자며 웃고 떠들리라 봅니다.

 아이가 잘못해서 오줌싸개가 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조금 더 따사롭고 한결 더 넉넉하게 보듬어야 아이는 오줌싸개 아닌 귀염둥이로 자라리라 느낍니다. 아이를 다그치는 어버이는 제 허물을 숨기는 셈이요,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제 모자람을 드러내는 꼴이라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면, 나는 어버이도 어른도 사람도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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