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손


 낮잠 없이 놀려 하고, 새벽 일찍 깨어 놀려 하며, 밤 늦게까지 놀려 하는 첫째 아이를 바라봅니다. 내가 이 아이를 옆지기하고 함께 낳아 살아가지 않았으면, 나는 내 어린 나날을 얼마나 돌아보았을까 궁금합니다. 때때로 돌아보기는 했을 테지만, 제대로 깨닫는다든지 살가이 느낀다든지 했을까 궁금합니다. 워낙 잠이 모자란 채 놀다 보니 한번 곯아떨어지면 여러 시간 꼼짝을 않고 꿈나라를 떠돕니다. 고단히 잠든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 넋이 아름다이 흐를 수 있도록 돕는 어버이가 아니라면, 나는 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보람이나 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윽박지르는 말이나 날선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내 아이 또한 윽박지르는 말이나 날선 말을 듣지 않도록 예쁘게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아이 손이 이웃을 어여삐 쓰다듬는 손으로 단단해지자면, 어버이인 나부터 내 이웃을 어여쁘 쓰다듬으며 단단해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잠든 아이가 꿈나라에서 좋은 이야기 예쁘게 길어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마를 쓰다듬습니다. (43444.8.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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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8-16 12:08   좋아요 0 | URL
새삼 느끼는 거지만 아이가 부쩍 컸네요. ^^
책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1-08-18 04:42   좋아요 0 | URL
아이는 날마다 놀랍도록 잘 커요~ ^^

마녀고양이 2011-08-17 01:33   좋아요 0 | URL
너무 이뻐요, 며칠 전 사진에서도 봤지만
머리에 핀을 여러개 꽂은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정말 천사가 따로 없네요.

숲노래 2011-08-18 04:42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면,
아이가 얼마나 하늘아이다운가를
자꾸 잊는구나 싶어요...
 



 수박 먹기


 옆지기와 아이가 수박을 잘 먹는다.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면, 나도 수박을 잘 먹었다. 수박을 먹으려는 아이한테 말한다. 수박을 먹고 싶으면 네 밥부터 다 먹어야지. 옆지기가 나한테 아이를 도와주라 말한다. 아이가 스스로 밥그릇을 싹싹 비우지 못하니까 싹싹 비워 주라 말한다. 바지런히 밥을 다 먹고 수박을 먹고픈 아이한테 다가간다. 옆지기랑 나는 일찌감치 밥을 다 먹었으나, 아이는 딴짓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며 밥자리에서 늘 늑장이다. 그렇지만, 수박을 앞에 놓으니 바쁘다. 밥을 훑어모으려 하는데, 아이가 하지 말란다. 아이 스스로 하겠단다. 그러니? 여태 언제 네가 그런 적이 있든? 가만히 바라본다. 아버지가 하듯 싹싹 훑는 시늉을 한다. 시늉이 제법 그럴싸하다. 시늉은 그럴싸하지만 잘 안 되니까 밥그릇을 한손에 들고 입에 대면서 다른 한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입에 퍼넣는다. 이제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싹싹 비웠어요!” “그래, 잘 했어요. 수박 먹어요.” 처음 제 스스로 싹싹 비우기를 해낸 네 살 아이는, 이튿날부터 따로 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싹싹 잘 비운다. (4344.8.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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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워


 엿새를 새 보금자리 찾으러 돌아다닌 탓인지, 토요일에 드디어 시골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몸이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다.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우니 집일을 하지 못한다.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집일을 옆지기가 한다. 옆지기라고 몸이 썩 좋지는 않을 텐데, 이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숲이 내뿜는 기운을 고이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여러 일을 맞아들이지 않나 싶다. 그저 눕거나, 일어나서 움직이더라도 천천히 하느작거린다. 몸무게가 조금 줄어 66킬로그램을 살짝 넘을락 말락 한다. 좀 말랐다고 하던 고등학생 때에 65킬로그램이었는데, 몸이 가벼워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힘이 없다는 느낌일 뿐이다. 첫째를 낳아 백일을 치르며 잠을 거의 못 자던 때에 67킬로그램이었다. 이런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운 몸으로 멀거니 하루를 보낸다. 옆지기가 밥을 차려도 거들지 못한다. 설거지를 하기도 만만하지 않다. 기저귀 빨래랑 수건 빨래 몇 점을 해 보는데,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도맡아서 할 기운까지는 안 되리라 느낀다. 저녁을 먹고 나서 곧바로 자리에 드러눕는다. 일곱 시간을 내리 뻗었다가 빗소리가 여러 시간 그치지 않아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넣는다. 창문은 옆지기가 일찌감치 닫았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더라도 한두 줄을 끄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여겨 셈틀을 켜지만, 골이 지끈거려 글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버티고 앉는다. 새로 내려는 책 하나에 담을 글을 추스른다. 한창 하다가 더 일하면 머리가 빠개질는지 모른다 싶어 그치기로 한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막 태어나서 두 달을 넘기기까지 이럭저럭 용케 홀로 집일을 도맡으며 살아냈는데, 하루를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리에 서다 보니, 집일을 도맡을 때보다 집일을 못하면서 골골거릴 때가 훨씬 고단하면서 괴롭구나 하고 느낀다. 늘 그렇겠지. 더 튼튼한 사람은 더 일을 하더라도 금세 기운을 되찾기 마련이지만, 더 여리거나 아픈 사람은 일을 덜 하거나 안 하더라도 기운을 좀처럼 되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튼튼한 사람이건 여리거나 아픈 사람이건 밥 한 그릇씩 먹어야 한다. 때로는 여리거나 아픈 사람이 밥을 반 그릇이나 한 그릇 더 먹어야 한다. 여리거나 아파 튼튼한 사람만큼 일몫을 못한다면 일삯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나라인 이 나라를 헤아려 본다. 참으로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다 보니까, 성경에 나오는 말마디가 새록새록 아로새겨진다. 일을 더 많이 했대서 일삯을 더 줄 수 없다는 말마디. 일을 더 할 수 없으면서 딸린 식구가 있는 사람한테 외려 더 일삯을 준다는 말마디. 나는 내 아픈 옆지기한테 이제껏 얼마나 사랑을 나누었고, 내 작은 아이들한테 어느 만큼 사랑을 쏟았을까. (4344.8.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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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8 10:11   좋아요 0 | URL
몸살이 나셨군요, 첫째 아이는 괜찮은가요?
무리해서 다니셔서 힘드셨을거예요. 며칠 푹 쉬셔야 할텐데요.
그리고 옆지기님께서도 튼튼해지시면 좋으련만.

모두 건강해지시기 기원합니다.

숲노래 2011-08-08 21:34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 지내니까, 옆지기는 차츰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앞으로도 좋은 시골을 잘 찾아서 살아야지요 @.@

카스피 2011-08-09 23:24   좋아요 0 | URL
이런 오랫만에 여행이라 몸살이 나신것 같군요.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
 


 흙 닦기


 전주 헌책방거리 앞에서 택시를 탄다. 택시에서는 어김없이 에어컨 바람이 흐른다. 아이는 에어컨 바람이 몹시 싫다는 뜻으로 코를 손으로 감싸쥐고는 “냄새 나.” 하고 말한다. 택시 일꾼은 아이가 말하는 “냄새 나.”를 옳게 느끼지 못하리라. 그저 택시를 지저분하게 여긴다고 받아들일밖에 없으리라. 아버지는 “춥니?” 하고 말하며 손닦개로 아이 다리를 덮지만, 택시 일꾼이 이러한 말을 알아들을까. 아버지도 택시 에어컨이 싫고, 에어컨을 켤 때에 나는 냄새가 싫으며, 이보다 자동차에서 나는 플라스틱과 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싫다. 자동차 앞에 붙은 엔진이 달구어지며 나는 냄새는 고스란히 자동차 안쪽으로 스며드는데, 이러한 냄새를 느끼는 어른이 참 드물다. 아이가 낯을 찡그리며 내리고 싶다 하지만 내릴 수 있나. 이러다가 아이가 발을 툭툭 놀리더니 택시 앞자리 한쪽을 흙 묻은 신으로 건드리고 만다. 택시 일꾼이 아이를 나무란다. “가만히 있어!” 짜증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이다. 아버지는 “벼리야, 네가 신으로 이렇게 더럽히면 안 되잖아.” 하고 말하며 한손으로 흙 묻은 자리를 삭삭 닦는다. 말끔히 닦으려 하지만 다 닦이지는 않는다. 휴지에 물을 묻혀 닦아야 하는가 보다. 손바닥으로 여러 차례 훔친다. 아이가 밥집 같은 데에서 물을 쏟으면 아버지는 걸레를 찾아서 바닥을 훔친다. 아이가 길에다 무언가 쏟으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말끔히 닦은 다음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어 휴지를 넣고서 어딘가에서 쓰레기통을 보면 그때에 넣는다. (4344.8.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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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움


 둘째는 밤에 오줌을 거의 안 눈다. 어느 때부터인가 둘째 오줌누기가 이렇게 바뀐다. 밤에 오줌을 거의 안 누니까, 밤에 깨거나 일어나서 기저귀를 만질 때에, 기저귀를 갈지 않아도 되어 일이 수월하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날마다 어김없이 열 장 즈음 내놓는다. 아침마다 부산을 떨며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해서 널며 생각한다. 새벽에 부시시한 몸으로 두어 차례 빨래할 때하고 아침에 좀 바쁘기는 하더라도 몰아서 빨래할 때하고 어느 쪽이 낫니? 한두 시간이라도 느긋하게 두 다리 쭉 뻗어 잠들 수 있는 나날이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니? (4344.7.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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