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리기


 옆지기랑 아이랑 하루 내내 함께 살아가는 나날인데, 막상 옆지기랑 아이랑 하루 내내 어떻게 함께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잊기 일쑤이다. 새 보금자리로 옮기느라 바쁘고 힘들었으니까 이럴밖에 없다는 말은 그저 핑계이다. 여느 때에 옳게 살피며 바르게 생각했으면, 새 보금자리를 옮기는 동안 새로운 눈길과 마음길로 삶길을 열 테고, 새 보금자리에 또아리를 틀 때에는 또 이동안 새삼스러운 손길과 생각길로 사랑길을 열지 않겠는가.

 내가 너무 못한다고 느끼다가는 첫째 아이한테 공책 하나 갖다 달라고 부른다.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아이보고 너도 함께 그리라 말하면서, 엎드린 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다. 내 앞에는 뜨개질하는 옆지기가 좋은 그림이 되어 주니,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볼펜으로 슥슥 옮긴다. 뜨개질하는 사람은 실과 바늘에 온마음을 쏟는다. 그림으로 담기에 참 좋다.

 그림을 다 그리며 아이한테 보여준다. “누구니?” “어머니야?” “어머니한테 여쭤 봐.” 그림으로 담긴 사람은 어찌 느낄는지 모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저 바라보며 느낀 대로 담는다. 하루에 여러 차례, 아이랑 함께 그림 그리는 겨를을 마련하면서 나도 그림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한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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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업기


 마을 어르신들한테 밥을 한 끼 산다. 예전에는 마을잔치를 벌였다지만, 이제 마을 어르신들 나이가 제법 많아 마을잔치를 꾸리고 벌이고 하는 일이 벅차다며, 모두들 가까운 밥집으로 찾아가 밥 한 끼니 함께 먹는 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옆지기가 갓난쟁이 둘째를 업는다. 네 살 아이가 인형을 업는다. 제 어머니가 동생을 업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아버지한테 “콩순이 업어 줘.” 하면서 선 채로 등을 구부정하게 내민다. 콩순이 인형을 업히고 자그마한 천으로 감싼다. 인형 포대기는 작은 아이들 놀잇감답게 참 작다. 이 작은 천조각은 네 살 아이 인형놀이 포대기 구실을 하는구나.

 네 살 아이가 한 살 동생을 업지는 못한다. 이제 겨우 십칠 킬로그램 될까 말까 한 네 살 아이가 십일 킬로그램 훌쩍 넘는 동생을 업지 못한다. 앉은 자리에서 뒤에서 안기는 가까스로 하지만, 동생 무게를 네 살 아이가 견디지 못한다.

 첫째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된다면 서너 살쯤 될 동생을 안거나 업을 수 있을까. 첫째가 여덟 살이나 아홉 살쯤 된다면 대여섯 살쯤 될 동생을 안거나 업을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동생을 사랑하는 결이 첫째 아이한테 시나브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살붙이들 아끼는 매무새가 첫째 아이한테 살며시 물림한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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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곳 까만 신 어린이


 읍내마실을 하던 토요일 아침, 부산히 짐을 꾸려 버스 타는 데로 나온다. 예전 멧골집에서는 버스 타는 데로 나오자면 이십 분쯤 걸어야 했다. 고흥 도화 동백마을 시골집에서는 마당에서도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이 보일 때에 대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쳐도 버스가 멈추어서 기다려 준다. 대문에서 버스 타는 데까지는 걸어서 1분. 자동차 거의 드나들 일 없는 큰길이 마당에서 보인다. 고작 걸어서 1분 안쪽인 살림집이라 할 테지만, 참 조용하다. 해 떨어진 뒤로 마을 앞길을 지나가는 자동차는 거의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이 마을 사람이 느즈막하게 볼일 보러 오가지 않는다면 이 앞길을 지나다닐 자동차는 하나도 없다.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아이는 어머니 옆에 앉는다. 아이는 으레 어머니 앉음새를 따라한다. 어머니가 다리를 꼬면 저도 다리를 꼬겠다며 용을 쓴다. 갓난쟁이 동생을 업은 어머니가 아이를 받치느라 허리를 살짝 구부려 가만히 앉은 옆에서 첫째 아이는 다소곳하게 앉아 손가방을 든다. 손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까. 예전에 얻은 까만 신을 오늘 처음 신는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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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칼에 손가락 베기


 몇 해 만에 새 칼을 샀나 모르겠다. 참 오랜만에 새 칼을 샀다. 고흥읍 장날에 맞추어 마실을 다녀오며 새 칼을 샀고, 장마당에서 능금 몇 알을 샀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능금 껍질을 새 칼로 깎다가 그만 엄지손가락 첫째 마디를 톡 하고 끊는다. 앗 따가와 하면서 칼을 개수대에 냉큼 던진다. 히유 하고 숨을 몰아쉰 다음 칼을 다시 쥐고 능금을 깎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안 되겠구나 싶어 옆지기한테 나머지를 깎아 달라 말한다. 그동안 무딘 칼을 쓰다가 잘 드는 새 칼을 쓰니 힘을 옳게 맞추지 못했다. 할 일이 많은데 손가락을 베면 어쩌나 근심스럽다. 옆지기는 나보고 빨래를 하지 말란다.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참 바보스럽다. 반창고를 붙인다. 책 갈무리는 장갑을 끼고 한다. 장갑을 낀 손으로 걸레를 쥐어 책꽂이 먼지를 닦는다. 맨손으로 걸레를 쥐어 닦을 때에는 책꽂이 덜 닦인 데를 느끼는데, 장갑 낀 손으로는 얼마나 제대로 닦았는지 잘 모르겠다. 으레 맨손으로 일하니 장갑 낀 손이 익숙하지 않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나절 둘째 갓난쟁이를 씻긴다. 아무 생각 없이 씻기는데, 옆지기가 괜찮느냐고 묻는다. 왜 묻나 궁금했는데, 칼에 베어 뜨끔할 텐데 씻겨도 괜찮냐는 소리였다. 느끼지 못하며 아이를 씻겼다. 그렇지만 첫째는 못 씻긴다. 이 소리를 듣고 나니 어쩐지 손가락이 아프다는 느낌이다. 이틀째 첫째를 못 씻기니 몹시 미안하다.

 곯아떨어져 자다가 아픈 둘째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깬다. 옆지기가 고이 달래어 새근새근 재운다. 첫째는 마냥 깊이 잔다. 방바닥에 불을 넣은 김에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방에 새 빨래가 걸리면 조금이나마 덜 메마르리라 생각한다. 오른손가락이 다쳤으니 거의 왼손으로만 빨래한다. 언제나 이렇게 빨래하며 살았으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 천천히 비비고 천천히 헹군다. 빨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모두 곱게 잔다. 다 마른 빨래를 개고, 덜 마른 빨래는 바닥에 넌다. 기지개를 켠다. 새벽 한 시 삼십오 분. (434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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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재우는 새벽


 첫째는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쉬를 눈다. 둘째는 새벽 네 시 조금 넘어 칭얼거리더니 어머니 옷자락에 왈칵 게운다. 우는 소리 시끄러운 소리에 첫째는 잠들지 못한다. 어머니가 한동안 둘째를 안고 어르다가 아버지한테 넘긴다. 아버지는 둘째 아이를 안고 이 방 저 방 오가다가 새벽녘 보름달 훤한 마당으로 나가 천천히 걷는다. 얼마쯤 안고 걸었을까, 칭얼거리는 소리 잦아들고 활갯짓 멈추었을 때에 방으로 들어온다. 흘깃 바라본다. 둘째 숨소리 새근새근 조용하다. 발걸음 소리 죽이며 자리에 눕힌다. 첫째 아이는 이동안 아버지 바지가랑이를 붙잡으며 좇아다닌다. 둘째를 누이고 첫째를 누인다. 첫째가 머리끈 풀어 달라 해서 머리끈을 푸니까 다시 머리끈을 해 달란다. 한숨을 길게 내쉰다. 한숨을 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절로 튀어나온다. 아이가 옆 머리끈 하나 마저 끌러 달라 이야기한다. 또 아버지 눈치를 보았을까. 첫째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누운 채 아버지 정강이를 쓰다듬는다. 몇 분쯤 뒤 아이 팔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진다. 첫째 아이 숨소리도 고르다. 드디어 새벽녘 세 시간 즈음 벌어지던 실랑이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어머니가 일어나 파리 때문에 못살겠다 말한다. 파리 두 마리를 잡는다. 파리는 더 있다. 아이 어머니가 몇 마리 더 잡고 모두들 잠자리에 든다. 어느덧 동은 튼다. 날이 훤하다. 온몸 쑤시지 않은 데가 없다. 아이들이 열 시까지는 콜콜 꿈나라를 누빈다면 좋겠구나. 나도 등허리를 펴고 싶다. (4344.11.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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