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를 먹는 나무


 “이게 뭐야?” “응, 나무야.” “이건 뭐야?” “응, 열매인가? 아니, 꽃이구나.” “꽃이야?” “응, 꽃이야.” “여기도 꽃, 여기도 꽃, 여기도 꽃.” 읍내마실을 나와 우체국 들러 하나로마트로 가는 길목, 아이는 길가에서 자동차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느라 잿빛이 되고 만 나무와 풀줄기를 바라본다. 잿빛이 되는 푸른 잎사귀를 쓰다듬고, 먼지를 잔뜩 머금은 꽃을 어루만진다. ‘이 녀석아, 손에 먼지 묻잖아.’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파르르 사라진다. 문득, 내가 우리 아이만 한 나이였을 지난 어느 날, 나도 내 아이처럼 이 ‘먼지나무’와 ‘먼지풀’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걷던 일이 떠오른다. 풀잎과 꽃잎에 앉은 먼지를 내 작은 손으로 닦아내던 일이 두 눈에 겹친다.

 아이는 예쁘다. 나 또한 예쁜 아이로 살던 나날이 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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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냄새 (자동차가 사람을 죽인다)


 첫째가 또 “아, 냄새!” 하고 말하면서 코를 싸쥔다. 자가용이 없고, 자동차를 탈 일이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어쩌다 한 번, 그야말로 한두 달에 한 번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자동차마다 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나부터 ‘아이고, 냄새야!’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 놔서’ 이렇게 느낀 그대로 곧바로 말로 내뱉지 못한다. 말없이 꾹 참는다. 옆지기는 이런 나를 보며 ‘왜 이리 찌푸린 낯’이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옆지기를 보면, 아마 나와 비슷하지 싶은데, ‘똑같이 낯을 찌푸린’ 모습이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자동차에서 켠 에어컨 바람이 내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코로 쉼쉬기 힘드니까.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를 되풀이한다. 에어컨을 켠 자동차이지만 아이를 생각해야 하기에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여니 바깥바람이 들어온다. 바깥바람을 쐬는 아이는 이제 코를 더 싸쥐지 않는다. 비로소 찌푸린 얼굴이 풀리고, 까르르 웃는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치고 ‘차 안에서 밝게 웃거나 맑은 눈빛을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에 찌들면서 ‘딱딱하게 찌푸리거나 굳은 얼굴’이 되고 만 탓이 아닌가 싶은데, 에어컨을 틀 때에는 등줄기나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흐르는 일은 없을 테지만, 몸과 마음은 나날이 무너지거나 무디어지는구나 싶다. 그나마 창문을 열고 자동차를 몰면 낫다 할 테지만, 자동차를 이룬 플라스틱과 쇠붙이에다가 기름을 태우면서 나는 냄새와 뜨거운 기운, 여기에 아스팔트를 달리면서 고무바퀴가 닳아 날리는 먼지가 온몸으로 깃들 테니까,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사람 몸에 좋을 구석’이 없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면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망가진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꺼도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다친다. 자동차를 어쩌다가 한 번 얻어 타는 사람조차 몸이 찌뿌드드하면서 고달픈데, 날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동차에서 한두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몸이며 마음이 얼마나 고달플까.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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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02 18:16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차를 안타 에어컨 바람의 냄새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냄새가 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에이컨 필터가 오래되서 그럴수도 있습니다.에어컨 필터도 때가되면 갈아주어야 한는데 차 주인중에는 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지요ㅜ.ㅜ

숲노래 2011-09-03 06:12   좋아요 0 | URL
오래된 차이든 새로 나온 차이든 다 에어컨 냄새가 나요.
둘째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 금세 눈이 발개진답니다.
필터도 필터이겠지만
에어컨이란 워낙 사람한테 나빠요...
 


 할머니가 두 개야


 옆지기가 말하기 앞서 나 스스로 느낀다. 아이는 어버이가 저를 나무라는 말까지 고스란히 따라한다. 아이는 저를 나무란다고 느끼지 못하기 일쑤이다. 아이는 저 스스로 잘못한 줄을 모르기 일쑤이고, 잘못한 줄을 모르기 일쑤이니 나무라더라도 나무라는 줄을 모르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나무라는 어른(어버이)이 잘못이다.

 아이가 잘못이 아닌 어른이 잘못이지만, 아이는 잘못한 어른이 다시금 잘못을 되풀이하더라도 예쁘게 함께 살아간다. 이러면서 꾸준하게 말을 건다. 언제까지 잘못을 되풀이하시겠어요?

 아이가 음성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일산 할아버지 할머니를 함께 만난다. 첫째가 네 살이 된 때에 이르러 비로소 네 분이 한 자리에 모인다. 늘 따로따로 마주하던 첫째는 네 분이 한 자리에 모인 한참이 지난 다음 한 마디를 한다. “할머니가 두 개야.”

 아이는 ‘개’라는 낱말을 잘못 썼다. 그러나 아이가 ‘개’를 잘못 썼으니 “할머니가 두 사람이야.” 하고 바로잡을 수 있으나, 이보다 아이 스스로 “할머니가 두 분 있는” 줄을 깨달은 대목을 반가이 여겨야지 싶다. 아이가 하는 말이야, 굳이 아버지가 나서지 않아도 두 분 할머니가 잘 타이르며 이끌어 주겠지. (4344.8.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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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사진찍는 누나


 백날째 맞이한 둘째를 보러 음성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음성 할머니는 둘째 가운뎃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 주신다. 음성 할머니가 댁으로 돌아가신 다음 둘째 사진을 찍는다. 첫째가 제 사진기를 찾더니 뽀르르 달려와 아버지 앞으로 끼어들며 동생 사진을 찍어 준단다. 처음에는 동생 코앞까지 다가가서 찍더니 곧 뒤로 한참 물러나서 찍는다. 여느 때에 늘 보던 대로 사진을 찍는다. 동생하고 예쁘게 놀아 준다. 이 착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둘이 살가이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아버지는 너희 곁에서 어머니하고 씩씩하게 서야지. (4344.8.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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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날 사진


 둘째가 태어난 지 백날을 맞이한다. 첫째 때에도 이러했는데, 아이 백날을 챙기는 분은 외할머니이다. 아버지 된 사람이나 어머니 된 사람 모두 백날이 언제인지를 어림하거나 챙기지 못한다. 챙긴다는 뜻은 백날을 하나하나 세서 언제가 되는가를 미리 이야기하신다는 소리이다.

 백날을 하루 앞둔 아흔아홉째 날 사진을 찍는다. 첫날에도 둘쨋날에도 늘 사진을 찍었다. 그렇지만 둘째 사진은 첫째 사진하고 대면 턱없이 적다. 첫째가 태어난 뒤 오늘에 이르도록 첫째 사진은 참 자주 많이 찍지만, 둘째 사진은 거의 안 찍는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손가락을 빤다.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얌전둥이로 지낸다. 둘째는 병원에서 하도 우악스럽게 잡아뽑는 바람에 뒷통수 한쪽이 비뚤어졌다. 둘째는 첫째하고는 사뭇 달라 밤에 깨지 않고 젖을 찾지 않으며 오줌도 누지 않는다. 둘째는 앞으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뿌리며 어떤 삶을 일굴까. 곧 아침 열 시가 되면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백날떡을 받으러 가야지. (4344.8.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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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8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8-28 13:04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
9월 중순쯤에 살림집을 옮길 테지만,
그때까지는 그대로 있으니까요,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 531번지 (우 380-892)
- 최종규 011.341.7125

오늘 하루도 즐거이 보내셔요~~

카스피 2011-08-29 22:29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가 참 튼튼해 보이네요.유아 사망율이 높던 옛날이야 아기 백일을 챙겼지만 요즘은 그닥 잘 챙기지 않는것 같더군요.그냥 백일 사진 찍는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숲노래 2011-08-30 05:55   좋아요 0 | URL
요즘은 바빠서 그래요.

요즘도 백날은 제대로 챙겨야 해요.
왜냐하면, 백날은 '아이'뿐 아니라 '어머니'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제대로 몸을 되찾느냐를 헤아리는 잣대이거든요.

이런 대목을 놓치거나 허술히 하면,
다들 메롱메롱이 되고 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