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하는 뜻


 둘째 아이가 물똥을 눈다. 기저귀 옆으로 똥이 주르륵 샌다. 아이가 누운 평상으로 똥이 흘러넘친다. 똥이 가득 담긴 기저귀를 살살 풀어 엉덩이를 닦고 평상을 닦는다. 어머니는 물을 받아 아이 엉덩이를 닦고, 아버지는 걸레를 쥐어 평상을 닦는다. 평상을 들어낸다. 평상 밑에 쌓인 먼지를 훔친다. 아이를 눕히느라 아이가 누운 평상 밑은 좀처럼 쓸거나 닦지 못했다. 아이가 물똥을 많이 누어 흘러넘친 나머지 이렇게 밑바닥까지 훔치면서 치운다. 아이가 찡얼거리며 잠을 못 이룰 때에는 시원하게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는 뜻이요, 살포시 품에 안고 바깥바람을 쐬며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게 해 달라는 뜻이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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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볶음밥


 어제에 이어 오늘 저녁에도 새우볶음밥을 한다. 아마, 첫째 아이가 생각하기로는 새우볶음밥이리라. 그러나, 아버지가 밥을 차리기로는 먼저 감자를 두 알이나 세 알을 아주 가늘고 작게 채 썰어 넣고, 당근과 무와 호박과 양파와 버섯 또한 아주 가늘고 작게 채 썰어 넣어 함께 물로 볶은 다음에 새우살을 녹여 함께 버무리는 볶음밥일 뿐이다. 마지막에 시금치나 근대나 열무를 채 썰어서 섞는다. 아버지 혼자 먹거나 어머니랑 둘이 먹을 때에는 새우살을 구태여 넣지 않는다.

 하루를 마무리짓는 저녁에 밥을 하면서 볶음밥을 한다. 웬만하면 새밥을 한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빠듯할 때에 볶음밥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참 고단한 볶음밥이다. 밥을 하기 힘들어 볶음밥을 하자고 생각하지만, 막상 볶음밥을 하자면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모른다. 차라리 여느 밥을 새로 하고서 반찬을 두 가지 마련하기가 훨씬 쉽다. 한꺼번에 다 집어넣는다는 볶음밥이라고 할 터이나, 이 볶음밥을 하자면서 품과 손을 얼마나 많이 빨리 빠듯하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볶음밥을 하자면 손이 훨씬 많이 간다. 따지고 보면 여느 밥을 해도 손이 많이 간다. 아니, 밥을 차릴 때에는 어떠한 밥이든 손이 많이 간다. 오늘 저녁, 첫째 아이는 대단히 기운이 처졌을 뿐 아니라 먹구름이 감도는 아버지 곁에서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가 저녁을 해서 차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저 개운하거나 기쁘거나 신날 때라면 오늘처럼 아버지가 저녁을 차리는 모든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볼 일이 없었겠지. 내가 생각해도 저녁을 해서 차리기까지 부엌과 방을 얼마나 자주 오가며 얼마나 자주 칼과 도마를 다시 씻고 다시 쓰는지 모른다. 그릇을 얼마나 자주 씻고 닦아 반찬이나 밥을 담아 옮겨야 하는지, 겨우 밥상을 차렸다 하더라도 어지러진 부엌을 치우느라 또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오늘은 참말 모처럼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가 고작 네 살밖에 안 되는데, 제 어버이 눈치를 보는 일이란 몹시 안 달갑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안다. 아이를 헤아리며 내가 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하고 곱씹는다. 내 어머니도 참말 힘들었겠지. 내 어머니도 몹시 고단했겠지.

 조금도 좋을 일이 없지만, 이렇게 지나고 보니, 나는 나대로 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낱낱이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는 나대로 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낱낱이 들여다보았기에, 이렇게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부엌일을 하자고 쉴새없이 손을 움직일 수 있겠지.

 다른 날, 아이는 제가 얼마나 아버지한테 걸리적거리는지를 깨닫지 않는다. 그릇을 나르랴 수저를 나르랴 냄비를 나르랴 뭐를 하랴 하면서 방과 부엌을 뻔질나게 오가는 까닭을 헤아리지 않으며 그저 앞에서 길막기만 하면서 논다. 오늘은 제가 잘못한 일이 많다 보니, 아버지 눈치를 보며 제가 얼마나 길막기를 하며 걸리적거리는가를 조금이나마 느낄까.

 함부로 바라서는 안 된다. 섣불리 꿈꾸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새우볶음밥을 했을 뿐이다. 밥을 옳게 안 먹으면서 투정을 부리는 아이 입맛을 살리고 싶어서 아이가 잘 먹는 새우를 넣은 볶음밥을 했을 뿐이다. 아이가 아버지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 안 된다. 아이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모두 깨닫기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그저 아이대로 사랑스러우면서 고맙다.

 손목이 끊어질 듯하대서 아이를 바라볼 때에 이맛살을 찌푸리지 말자. 허리가 두 동강 날 듯하대서 아이한테 말할 때에 쇳소리가 섞이지 않게 하자. 집일을 하면서 몇 시간 내리 쪼그려앉을 겨를조차 없다 할지라도 앓는소리 함부로 새지 않도록 하자.

 아이는 그저 아이이지 않은가. 아이가 미운털일 수 없지 않은가. 아, 팔뚝이 저려서 눈물이 난다. 이렇게 저린 팔뚝으로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할 일이 없는 일 하나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서른넉 달 만에 오줌을 아주 잘 가리는 첫째 아이가 얼마나 거룩한가. 우리 어머니는 형이 밤오줌을 다 가려 형 오줌기저귀 빨래는 안 해도 되고 갓난쟁이였을 내 오줌기저귀만 빨래하면 되었을 때에 얼마나 형을 고맙게 여기며 기쁘게 맞아들였을까. 아이들하고 살아온 지 네 해가 된다지만, 나한테는 아버지 소리가 그예 부끄럽기만 하다. (4344.7.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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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약


 옆지기가 한 주쯤 아무 일을 하지 말고 어디 나들이를 가서 푹 쉬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는 너무 힘든 나머지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무어라 대꾸를 하지 못한다. 저녁을 먹으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면서도 아무런 대꾸를 못한다. 그야말로 그냥 쓰러져야 하는데, 살붙이 셋이 고단히 잠든 깊은 저녁, 옆지기 말을 되새기면서 조금 더 잠을 미루어 보기로 한다. 오늘은 저녁밥을 차리기 앞서 왼손목이 다시 아프며 아무것도 집을 수 없었으나, 아프더라도 집일을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 생각하면서 둘째 기저귀를 빨고 밥을 차리며 설거지를 했다. 손목이 참말 대단히 아팠지만, 그래 아파서 어쩌겠니 생각하며 비눗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둘째가 잠투정을 할 때에 한 번 안기도 한다. 그렇지만 손목이 몹이 아프니까 옳게 안지 못한다. 옆지기가 아기를 이리 안으면 어쩌냐고 말하지만, 왼손목이 너무 아프니까 옳게 안을 수 없다. 조금 앞서 첫째가 쉬가 마렵다며 끙끙대며 깨어나기에 얼른 바지를 내려 오줌그릇에 앉힌다. 오줌을 다 눈 다음 오늘은 처음으로 첫째를 품에 안아서 한동안 토닥이고 나서 자리에 눕힌다. 왼손목이 또다시 맛이 갔기에 아이를 안으면 몹시 엉성한 매무새가 될 뿐 아니라 아프다. 전기가 벼락처럼 온다. 그렇지만 옆지기한테 하루 내내 아이를 돌보라 할 수 없을 뿐더러, 옆지기가 아이들을 씻기도록 할 수 없다.

 저녁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밥을 하는 자리에서도 이러한 마음이라면 이러한 마음이 스며드는 밥을 먹으면 살붙이들 마음이 좋을 수 없다고.

 감자와 무와 당근과 호박과 버섯과 양파와 시금치를 채 썰면서 몇 번이나 손을 자를 뻔했다. 아차 하고 겨우 손가락이나 손톱을 안 베었으나, 밥을 하는 사람으로서 도마질 소리가 그닥 듣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옆지기가 들려준 말을 자꾸자꾸 다시 생각하고 거듭 돌이켰다. 나보고 쉬라고? 나한테 이레나 말미를 주겠다고?

 말로라도 들려주면 좋을 노릇이리라. 아니, 말로라도 들려주기에 고마운 노릇이다. 나하고 옆지기가 서로 달라, 내가 옆지기처럼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파 아무 집일을 못하는 형편이라면, 나부터 내 옆지기한테, 여보 모쪼록 좀 쉬어요 어디 좀 바람 좀 쐬고 와요, 하고 이야기했으리라 생각한다. 내 옆지기 몸과 마음을 돌이킬 때에 아무런 집일이든 아이돌보기이든 하기 힘들 테지만, 이렇게 말할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옆지기가 걱정스레 마음을 쓸 만큼 나 스스로 내 하루를 옳게 건사하지 못했다. 내가 남자라서 그럴까. 남자는 집일을 도맡을 때에 참답거나 착하기 어려울까.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 《우리 엄마》를 읽으면, ‘우리 엄마’는 ‘사장님이 될 수 있었지’만 사장님이 안 되고 ‘우리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 두 아이한테 ‘우리 아빠’가 되는 사람인가, 잔소리꾼이나 꾸지람쟁이가 되는 사람인가.

 첫째만 있었을 때에, 또 첫째와 둘째를 집에 두고 읍내에 혼자서 장마당 마실을 다녀올 때에, 두 아이는 퍽 제 어머니 말을 잘 듣는다고 느낀다. 여느 때와 달리 한 사람이 둘을 맡아 돌보는 줄을 어떻게든 느끼지 않느냐 생각한다. 또한, 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아버지 혼자 두 아이를 돌볼 때에도 두 아이는 아버지 말을 참 잘 듣는다.

 착한 첫째가 제 어버이 힘든 짐을 잘 나누어 맡는다고 느낀다. 귀여운 둘째도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어떻게 저를 예뻐 하는지를 잘 받아들이는구나 싶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레이든 고작 하루이든 혼자 말미를 얻어 집일을 잊고는 푹 쉬고프지 않다. 옆지기한테 집일을 도맡기면서 쉴 생각이 없다. 옆지기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저 보약으로 삼는다. 옆지기가 들려준 말을 곰삭이는 동안, 아프고 저려 움직일 수조차 없던 왼손목이 용케 움직이고 힘이 들어간다. 빨래도 설거지도 짐 들기도 못할 줄 알았더니, 보약을 먹고 나서 다시금 움직일 수 있다.

 보약은 딱 한 번만 듣는다. 보약은 꼭 한 번으로 끝이다. 이제 하루를 잘 자고 새 하루를 맞이하고부터는 첫째 아이를 꾸짖지 말자고 다짐한다. 잠든 아이 등을 쓸어내리면서 이듬날부터는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고 말한다. 보약을 먹은 아버지는 이 보약 기운이 얼마나 갈는 지 모를 노릇이지만, 참말 우리 두 아이한테 바라고 빌며 꿈꾸듯,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이 집에서 살아가자고 생각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내가 아픈 사람으로 지낸다 할 때에, 나는 내 고운 옆지기한테 보약을 줄 만한 그릇이 되는 어버이였을까. (4344.7.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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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에 찔리기


 미역을 끊다가 앗 따갑다 하고 느끼며 들여다보니, 손가락 마디 사이에 살짝 찔렸다.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면 찔린 자리가 따끔하다. 그렇지만 찔린 데를 자꾸 생각하면서 빨래를 미룬다든지 설거지를 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따끔거리는 채 미역을 끊을 수 없기에, 둘째를 낳고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미역을 가위로 자른다. 첫째를 낳아 미역국을 끓이던 때에도 가위를 쓰지 않았다. 다만, 그때에도 손가락이 찔려 너무 따끔거린 하루나 이틀쯤은 가위를 썼다. 저녁이 되고부터는 따끔거림이 가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냥 집일을 하다 보니 찔려서 피가 난 자리가 절로 아문 듯하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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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잠 자는 아버지


 두 아이와 옆지기랑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는 낮잠을 잡니다. 새벽에 글쓰기를 하고 이른아침부터 집일을 하며 살붙이 밥을 차리고 나서 빨래를 한 뒤에 아이를 씻긴 다음 숨을 조금 돌릴 만하다 싶을 무렵 낮잠을 잡니다. 아이 둘이 깨어나 칭얼거릴 무렵부터 부산한 하루가 열립니다. 월요일이라 더 쌓이는 집일이 아니고 일요일이라 아무것 없는 집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은 집일이고, 언제나 똑같이 치러야 할 집일입니다. 토요일이기에 밥을 굶어도 되지 않습니다. 금요일이기에 땀으로 절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될 까닭이 없습니다. 목요일에는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되지 않을 뿐더러, 수요일에는 똥오줌을 안 눈다든지 화요일에는 땀으로 끈적이는 몸을 안 씻어도 되지 않아요. 어제 하루 방바닥을 쓸고 닦았으니까 오늘은 살짝 지나가도 되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아침저녁으로 두 번 씻었으니까 오늘은 끈적거리는 몸을 안 씻어도 되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배불리 밥을 차려 먹었으니까 오늘은 밥을 굶자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짊어질 집일을 건사하면서 가까스로 낮잠 한 번 자며 숨을 돌립니다. 이때에 네 살 아이가 곁에서 함께 잠들어 주면 아주 고맙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일찍 일어나서 신나게 뛰고 소리지르거나 노래부르며 놀았으니, 살짝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쉬면 더욱 신나게 뛰고 소리지르거나 노래부를 수 있을 테니까요.

 참말,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는 사람한테는 낮잠이 없으면 안 됩니다. 낮잠뿐 아니라 밤잠을 이룰 겨를조차 없이 힘겹거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을 텐데, 하루하루 고마우면서 반갑게 맞아들여 즐거이 누릴 우리들은 하루에 한 시간 즈음, 낮나절에 모든 시름과 고단함과 어깨결림과 허리쑤심을 잊고 새근새근 맑은 얼굴로 꿈나라를 누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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