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끊어지며 읽는 책
 ― 애 아빠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 1 -

 “더운데 씻어요?” “응, 이따 씻을게.” “아기를 만지는데 자주 씻어야 돼.” “흠, 알았어, 이제 바로 씻을게.”

 땀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아침나절부터 쉴새없이 아기와 옆지기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습니다. 옆지기가 씻고 나오면서 저보고도 씻으라고 했으나, 저는 좀더 일을 하고 땀을 뺀 다음에 씻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땀이 나면서 안 씻고 아기를 만지고 기저귀를 갈면 아기한테 안 좋다고 말하니, 저로서도 더 미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주 씻어야 합니다. 기저귀 빨랴 밥하랴 치우랴 뭐하랴, 하루 내내 온갖 일을 치르면서 땀을 줄줄줄 쏟아내니까요.

 이제 이른저녁이라고 할 만한 여덟 시를 조금 넘긴 때, 겨우겨우 밥을 먹고 나서 한숨을 돌리자니, 씻는방 대야에 담긴 기저귀가 한 가득. 몇 시간 눈감고 지나갔더니 또 이만한 일거리가 쌓입니다. 그리고 옆지기가 벗어 놓은 옷과 옆지기 기저귀. 흠.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빨래감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다짐합니다. 내 빨래라도 줄이자고. 걸레 빨아 방바닥 훔치기에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고단해서 못하는 마당에, 내 빨래감이라도 늘면, 그 한 가지 하는 데에도 힘들다.

 참 그렇습니다. 아기가 제 옷(반바지)에 오줌을 누든 똥을 누든, 웬만하면 그냥 말립니다. 또, 젖은 옷을 벗고 갈아입을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가 제 몸에 똥오줌을 누었다고 하여 아기를 집어던지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겠습니까.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이렇게 해 주어도 쉬 잠들지 않습니다. 아니, 속에서 뭔가가 밖으로 나가 주었기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롱해롱 실실 샬샬 웃는지 뭐하는지 가벼운 얼굴로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부비적부비적 하느작하느작 꿈틀꼼틀.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놀아 달라고 합니다. 세상 어느 어버이가, 제 몸에 똥오줌이 범벅이 되었다 한들, 아기가 놀아 달라고 하는데 마다하고 씻는방으로 달려가서 씻을 수 있겠습니까. 빨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등이나 머리에 땀이 배이지 않게 추스르노라면, 젖은 몸과 옷은 마릅니다. 어느새 마릅니다. 이리하여 제 몸과 옷은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여 있습니다.


 - 2 -


 오늘은 모처럼 쉴까 싶은 날이었으나, 아기 젖병을 조금이나마 싼값으로 장만하려고 〈아름다운 가게〉에 옆지기와 함께 찾아갑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찬 몸이지만, 힘내어 겨우 가게에 닿고, 두 시간 가까이 이 물건 저 물건 살펴봅니다. 신발도 보고 옷도 봅니다. 그러나 옆지기 몸에 맞는 녀석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두 시간쯤 땀 뻘뻘 흘리면서 아기한테 땀띠가 날세라 걱정근심끌탕. 팔이 떨어질 듯한 고단함은 저리 가라이고, 아기가 걱정입니다. 겨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먹을 때. 애 엄마 미역국은 가위로 자르면 안 되기에 손으로 마른미역을 뚝뚝 끊습니다. 이제 손바닥과 손가락 모두에 굳은살이 깊에 박여서 마른미역을 손으로 뚝뚝 끊어도 그다지 안 아프지만, 아예 안 아프지는 않습니다. 서너 달 더 이렇게 손으로 끊으면 앞으로는 아예 안 아플 날을 맞이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오얏과 감을 먹이고 감자 썰어 넣어 미역국 끓입니다. 누런쌀에 지은 콩팥밥을 국에 탑니다. 아기가 젖 달라고 합니다. 옆지기는 젖을 물립니다. 젖을 다 물리고 아기가 잠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다 마른 기저귀를 갭니다. 그래도 아직 젖 물리기가 끝나지 않아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펼칩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책장을 넘깁니다. 옆지기가 말합니다. “그 책(오늘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헌책방에서 사 온 책) 닦았어요?” “아니…….”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걸레를 집어들고 책을 박박 닦습니다. 밥자리로 돌아옵니다. 허리가 참 아픕니다.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다 못 먹고 조금 남깁니다. 어쩔 수 없이 잠깐 돌리고 있는 조그마한 김치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 한 병을 꺼냅니다. 뽕. 병나발로 한 모금 두 모금씩 마십니다. 크. 낡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김치냉장고에 넣은 맥주는 그리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목마름은 조금 풀어 줍니다.

 그러나, 찜질팩을 새로 해 달라, 보리차 새로 끓여야 한다, 잠깐 아기 어르고 있으라, 뭐뭐뭐 하노라니, 따 놓은 맥주는 그대로 두면서 부리나케 움직입니다. 어제 낮에 동네 골목길에서 주워 와서 옥상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서랍장도 걸레로 훔치고 집으로 들여야 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놓은 기저귀 빨래도 걷어야 합니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 이 모든 일을 다 치러 냅니다. 조금 쉴 만한 때에 옆지기가 “여보 ……” 하고 부르면 퍼뜩 놀라면서, 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슬며시 짜증이 일려고 하지만, 제 몸을 스스로 쓰기 어려워서 어렵게 부탁하는데, 함부로 짜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셔요. 제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늘 혼자서 하던 일을 옆지기한테 부탁하거나 시켜야 한다고 할 때에, 우리 옆지기는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때에도 우리 옆지기가 저처럼 못난 마음으로 뿔을 내거나 짜증을 내겠습니까.

 철이 덜 든 저는 아무 말 없이, 옆지기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해 줍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허리가 몹시 아파, 끊어질 듯 아파서, 이제 고작 서른넷밖에 안 된 주제에, 집안일을 할 때에도 지팡이를 짚고 하고프다는 생각이 날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한손으로 한쪽 무릎에 힘을 실어 겨우 버티어 일어서거나 걸음을 옮깁니다. 작지 않은 소리로 ‘끙’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고’ 하는 말이 자꾸자꾸 튀어나옵니다. 쑤시지 않은 몸이 없고, 지끈거리지 않는 머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깊은 밤, 아기가 내어놓을 기저귀더미를 헤아린다면, 바로 이때, 낮나절 쌓인 기저귀를 모두 빨아내야 합니다.


 - 3 -

 오늘은 보리술 두 병. 금세 비워 버린 보리술 두 병. 한두 병 더 마시고픈 생각이 꿈틀대지만, 살림돈도 아끼고 내 몸도 생각해야 하며, 밤새 아기 치다꺼리 하자면 더 마시면 안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굽니다.

 그리고 씻는방. 허리가 끊어지려고 하니 쪼그려앉아서 어그적어그적 걸음을 옮기면서 빨래감을 하나씩 바닥에 깔고 비누질하고 비빔질하고 헹굼질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오늘도 어느덧 스무 장 가까운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다른 빨래도 꽤 있었습니다. 밤새 나올 기저귀까지 더하면,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되는 기저귀를 빠는 셈입니다.

 요만큼 쓰는 사이 아기가 오줌을 한 번 눕니다.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 둘레를 닦습니다. 조금 뒤 옆지기가 기지개를 켜면서 어깨죽지가 아주 아프다고 합니다. 어깨죽지를 주무릅니다.

 저도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주무르고 싶은데, 제가 제 몸을 주무를 겨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기와 옆지기를 생각하면 아주 튼튼한 몸이고, 두 사람은 저를 많이 부려먹으면서 조금씩 몸풀이를 하고, 하루이틀 몸에 살이 올라야 합니다.


.. 병원으로 뛰어가 본들 자식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서 모기만 한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향해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좀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을까? 아마 ‘부디 살아만 다오’라고 애원을 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소원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그처럼 자식의 생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한다 ..  《고맙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제이북,2003) 16쪽


 없는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참말 책 읽을 겨를이 없으니 아무 책이나 펼치지 못합니다. 어설픈 책은 이내 덮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아이 키우기(육아)’를 다룬 책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그야말로 없는 틈을 또 쪼개고 다시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몇 가지 ‘아이 키우기’ 책을 장만하여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읽던 책이 많고, 갓 스물을 넘긴 때에 읽던 책도 많으나, 아직까지 못 본 책이 훨씬 많습니다. 저한테 ‘아이 키우기’ 책은 세상을 좀더 깊이 살피고 널리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었기에, 늘 가까이하는 책이 됩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던 때에도, 여자친구조차 없고 혼인할 꿈도 꾸지 않던 때에도 ‘아이 키우기’ 책을 읽으며, 내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내 이웃에 아이가 있을 테니까, 내 이웃 아이한테 어버이가 되는 마음으로 되새기자고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느님이 ‘어린이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듯, 어린이 마음이 되려 하고, 어린이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며, 어린이 삶을 돌아보고자 애쓰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하느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성경만 천 번 만 번 읽어서는 부질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몸소 한 번 치르는 일만큼 커다란 일도 없고요.


.. 내 아이가 몇 시에 자고, 보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아버지는 드물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을 개성으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린다. 육아라는 것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아기도 부모를 통해서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  《칭얼대는 아이와 허둥대는 아빠》(투영,2001) 126쪽


 책을 읽다가 자꾸 덮습니다. 다른 일거리가 많아서 덮기도 하지만, 책과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덮습니다. 우리 아기는 두 시간(짧으면 한 시간 반이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데, 책에는 서너 시간에 한 번 젖을 물리라고 나옵니다.

 책은 평균치만 나온다고 할 텐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아기하고는 참 다릅니다. 그러나 아예 도움이 안 되는 책은 아닙니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다섯수레,2001)도 여러모로 도움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기를 낳아서 기르려는’ 우리한테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방접종 문제를 다룬 책은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웠고(한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기가 걸리는 병을 ‘병원에 가서 고치지’ 않고, 집에서 고치는 길을 일러 주는 책은 이제까지 못 봅니다. 아기를 배면 병원에 가고, 아기가 칭얼대도 병원에 가면 그만일까 궁금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그저 ‘자가용 장만해서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갈 채비를 해 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유모차를 안 쓰고 업거나 안거나 걸리게 하려는 어버이들한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내일을여는책,1999)에서 길잡이를 얻었으나, 그 뒤로는 더 없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유모차 장만하기’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예방접종을 왜 맞아야 하는지, ‘비.시.지’가 뭔지, 예방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되고, 예방주사를 맞으면 무엇이 나은지를 알려주는 책이나 이야기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산모수첩’을 주고 있으나, 이 산모수첩에는 ‘예방접종을 언제 맞아야 하느냐’만 적혀 있을 뿐, 왜 맞아야 하고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주사를 맞고 나서도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비.시.지’뿐 아니라 ‘디.티.피’가 도무지 뭘 가리키는 주사인지는 인터넷에서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산부인과 간호사들도 잘 모르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비.시.지.’ 주사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놓았다고 하기에, 그 주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비.시.지 주사를 놓았다’고만 대꾸할 뿐, 알파벳 줄인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그만이었고, 나중에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다만 한 가지, ‘비.시.지. 주사는 앞으로 두 번 더 맞아야 하는데, 그때를 지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 4 -


 요사이 새로 장만한 책을 모두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짤막짤막 도움이 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큰틀에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책을 구태여 파고들 까닭은 없다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나누고자 책을 펴내려고 할 텐데, 이렇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누군가 나서서 새로운 책을 쓰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꾸 모자람과 아쉬움을 깨달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니 책마을은 차츰차츰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자람을 못 느끼고 아쉬움을 안 느끼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자람과 아쉬움을 채워 주는 책이 새로 나와도 알아보지 않을 뿐더러, 모자람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책에 매여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결 나은 삶으로 옮겨가려고 하지 않고, 이웃사람이 조금이나마 나은 삶으로 거듭나려고 애쓸 때 거들지는 못하더라도 헤살을 놓지 않을 만한 우리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허리가 아파 죽겠으면서 괜히 책을 뒤적이다가 시간만 잡아먹고 아기는 아기대로, 책은 책대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채 보내는 하루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냥 좀 드러누워 쉬어야겠습니다. (4341.9.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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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책


 아기 낳아 기르면서 육아책 말고는 볼 겨를이 없더라는 어느 분.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육아책을 곧잘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큰 깨우침과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던 때에도 즐겨 찾으면서 읽었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마음에 담았다. (4341.9.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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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킬로그램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내 몸무게는 68킬로그램이었다. 이때 내 몸은 퍽 호리호리했고 어깨와 가슴만 크고 넓었다. 군대에서는 ‘괴물’처럼 살아야 하다 보니까, 군대를 마친 뒤 몸무게가 조금 불었고, 이 몸무게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래도 군대를 마친 뒤 신문딸배를 하면서 살았으니 69∼70킬로그램을 오갔는데, 신문딸배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간 1999년 8월부터 몸이 꽤 불었다. 몸쓰기보다는 머리쓰기를 많이 하는 일이 되다 보니까, 74∼75킬로그램, 한때 78킬로그램까지 나가기도 했다.

 군대에서 80킬로그램이 된 적이 한 번 있는데, 75킬로그램이라는 무게를 넘어가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여겨졌다. 몸무게만큼 힘은 더 잘 써서 무거운 짐도 너끈히 나를 수 있기는 하지만, 몸은 굼떠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방 너덧 개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여러 시간 거닐며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퍽 고달팠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충주 산골짜기에서 일하게 된 2003년 9월 무려부터는 72∼74킬로그램을 오갔다. 가볍지는 않으나 무겁지도 않은 몸무게였고, 이 몸무게는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싱 하고 달리면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쉬며 몸풀이를 하면 도로 제자리를 찾고, 다시 서울에서 충주로 자전거를 달리면 또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느긋이 지내면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충주 살림을 접고 고향마을 인천으로 온 2007년 4월, 3.5톤 짐차로 석 대를 꽉꽉 눌러서 채운 책짐을 실어나르고 무거운 책장을 새로 들이고 책 자리를 새로 잡고 하는 동안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몸무게는 70∼72킬로그램 사이를 오가게 된다. 어느 하루도 몸 홀가분히 쉬는 날이 없으니, 책상맡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열 시간이 넘어간다고 해도 뱃살이 나올 겨를이 없다. 날마다 손빨래를 하고, 방바닥 걸레질을 하며, 밥하기와 설거지를 쉬지 않으니까, 내 몸에 군더더기살은 붙지 않는다. 게다가 틈틈이 자전거 마실을 하지, 서너 시간씩 걸으면서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하지, 외려 얼굴이 말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올 팔 월 십육 일. 아기가 태어날 무렵. 옆지기와 함께 배앓이를 나누어 하면서 밤잠도 낮잠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밥해 먹이랴 집 치우랴 무어 하랴 아주 바쁘게 돌아치는 동안 몸무게는 68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아기가 태어나고 기저귀 갈랴 빨랴 치우랴 밥하랴 청소하랴, 몸무게가 66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눈자위는 푹 꺼지고 눈밑이 꺼매진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밥맛을 잃고, 밥을 먹지 못하면서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루에 한 시간 자기도 어려운 가운데 잠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펼라치면, “여보, 벼리가 오줌 누었어요.”나 “여보, 벼리가 똥 누었어요.” 하는 소리.

 아이를 막 낳은 어머니가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으랴, 빨 수 있으랴, 더욱이 손수 미역국을 끓여먹을 수 있으랴. 옆에서 지아비 된 사람이 모든 시중을 들어야 한다. 옆지기는 깊은 밤 젖먹일 때를 빼놓고는 새근새근 잠이 들지만, 지아비는 맥주잔이라도 붙잡으면서 잠을 좇으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다림질을 한다.

 요 며칠, 일산 옆지기 어머님 댁에 와 있어서, 옆지기 밥해 주는 몫은 크게 덜었다. 어느 만큼 몸이 느긋해지니 마음도 풀어져서, 이른저녁에 일찌감치 눈을 감아 본다. 밤새 잠을 못 잘 테니까.

 그러나 한 시간 반쯤 눈을 붙였을까. 아기 오줌 기저귀를 한 번 갈아 받친 저녁 열한 시부터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까지 내처 뜬눈으로 보낸다. 새벽 두어 시쯤 갑작스레 똥을 무더기로 내보낸 어린아기는 기저귀를 여섯 장 한꺼번에 쏟아내었고, 미리 다림질해 마련해 둔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았을 때가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 미리 빨아 널어둔 기저귀도 이즈음 거의 마르고. 아기도 더는 똥질과 오줌질을 하지 않으면서(그래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하지만, 그 뒤로는 왕창 쏟아내지는 않았다) 한숨을 돌렸는데, 새벽 네 시쯤 한창 힘들어 다문 십 분이나 삼십 분이라도 눕고 싶던 때, 옆지기가 나를 부른다. “여보, 착유기 좀 가져다 줘요. 아무래도 젖을 짜내야겠어요.”

 아기가 아무리 신나게 젖을 먹어도 한쪽 젖은 퉁퉁 불기 마련. 남자인 내가 젖몸살 아픔을 얼마나 알겠느냐만, 잠들지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아픈가를 살갗으로 느낀다.

 익숙하지 않던 젖짜기 기계를 안 아프게 쓰는 길을 어렵사리 알아냈고, 지아비 된 사람은 기저귀가 모자랄세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도록 다림질을 한다.

 이틀 동안 한 번도 씻지 못했다. 씻을 겨를이 없다. 잠깐 아기가 우리한테 평화를 선사하는 때에는 씻을 힘이 없어서 그냥 드러누워서 눈을 붙인다. 그렇지만 ‘으 끙 끄’ 하는 나즈막한 외마디소리를 듣고 화들짝 깨어나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간다. ‘어차피 다시 땀으로 젖을 텐데 뭐 하러 힘들게 씻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찬물로 기저귀를 빨지만 하나도 안 시원하다. 널어 놓은 기저귀는 보송보송 말라 가는데, 내 목덜미며 허벅지며 때가 밀릴 만큼 땀이 범벅이 되었다.

 날이 밝고 한잠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옆지기 어머님이 아기방을 치우자고 이야기한다. 방에 먼지가 많을 테니 아기한테 안 좋으니까 쓸고 닦잔다. 아기를 옆방으로 옮긴다. 옮길 때 햇볕으로 눈이 부시지 않도록 잘 가리고, 옆방에서도 햇볕을 쐬지 않게 가려 놓는다.

 부지런히 쓴다. 신나게 걸레질을 한다. 걸레를 빤다. 다시 걸레질을 한다. 이불을 턴다. 팡팡팡 두들기며 턴다. 또다시 온몸을 땀으로 씻어냈다. 낮 열두 시 십 분. 옆지기가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한다. 낮밥을 먹기로 한다. 벌써 밥때인가? 옆지기 부모님 사는 집으로 온 다음부터, 밥때를 놓치기는 해도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다. 좋다. 밥 먹고 보자.

 밥상 차릴 즈음 후다닥 씻는다. 씻는 김에 똥오줌 기저귀도 빤다. 옆지기 기저귀도 함께 빤다. 부랴부랴 씻고 빨래한 뒤 널고 말리면서 밥술을 든다. 밥술을 뜨기 앞서 아기방에 들어가 엉덩이에 살며시 손. 촉촉하다. 오줌이군. 기저귀를 간다. 겉싸개 기저귀는 다리미로 말린다. 다리미로 말린 겉싸개 기저귀가 이번에는 엉덩이 기저귀가 된다. 엉덩이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긴다. 밥먹고 나서 빨자.

 빨아 둔 기저귀가 다 말랐다. 하나하나 걷는다. 이제 또 다림질을 해야지. 그러는 동안 또다시 똥오줌 기저귀는 새로 나올 테고, 빨래감은 또 나올 테며, 새로 너는 빨래는 자꾸자꾸 나오리라. 아기는 때맞춰 똥오줌을 누고 젖을 먹으며, 지아비 된 사람은 밀리지 않고 빨래질을 해낸다. 한 번 밀리면 죽음은 아니고, 두어 번 밀린다고 해서 기저귀가 모자라지 않는다. 다만, 여러 차례 밀렸을 때에는 어김없이 똥벼락이 내려서 기저귀가 바닥이 날 때가 있기에, 한 번이라도 빨래를 밀리지 않으려고 한다.

 갈고 빨고 다림질하고 어르고 안고 달래고 쓰다듬고 하는 데에 한 시간 가운데 오십 분쯤 쓴다. 한 시간에 10분쯤 쉴 틈이 난다. 이때에는 수첩에 아기 매무새와 움직임 들을 적어 놓는다. 옆지기 가슴 주무르기를 한다. 팔다리 주무르기를 한다. 이러다 보면 ‘빼기 시간’이 되어서, 다음번 기저귀 빨래 시간을 갉아먹는다. 가끔가끔, 아기는 한 시간에 한 번이 아닌 두 시간에 한 번 오줌을 지리면서 빨래감을 줄여 주곤 한다. 이때에는 얼마나 고마운지 넙죽 절을 하게 되고, ‘빼기 시간’으로 갉아먹었던 모자람을 넉넉히 채우게 된다. 잠깐이나마 마루에 나와 허리돌리기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효소를 타서 물 한 잔 마신다.

 그런데 이렁저렁 하루를 보내는 동안 책 한 번 펼치지 못한다. 옆지기 어머님이 세탁기로 한 집식구들 빨래가 마루에 나오면, 옆지기 어머님도 바빠서 미처 개키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다니는 어린 옆지기 동생은 빨래 개기를 안 한다. 시키면 할 테지. 이래저래 바쁜 가운데 빨래가 마루에 널브러진 지 두 시간쯤 지나서 겨우 짬을 내어 빨래를 갠다. 빨래를 개면서 ‘집안일로도 이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으신데, 우리가 아이를 데려와서 더 힘드실 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할 일이 많아도, 옆지기 어머님도 할머니가 된 즐거움을 누리는 맛’이 힘듦보다 더 크지 않으랴 싶다. 오늘 아침에도 아기를 씻기면서 옆지기 어머님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아기 돌보기를 더 거들어 주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저러나, 나도 옆지기도, 또 옆지기 어머님도 책을 읽지 못한다. 모든 일을 다 끝난 늦은 저녁에는 몸이 고단하니 책장을 못 넘기고, 햇볕 좋은 아침과 낮에는 이 일 저 일 부대끼느라 책장을 못 펼친다. 나 또한 밤늦게 다림질을 하고 겨우 숨을 돌리면서 불빛에 기대어 책장을 한두 쪽 넘기는데, 그러다가 기저귀 갈이를 하다 보면, 책은 어느새 덮어놓게 된다.

 책 좀 읽고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내가 아직 모르는 세상 이야기를 배우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여러모로 어리숙한 내 마음밭을 푸근히 가꾸고 싶어도, 책과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끈은 놓지 않는다. 아직은 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은 책과 떨어진 채 지내야 하지만, 우리 아이가 책이요 우리 옆지기가 책이며 우리 옆지기 어머님이 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달려가자. 어제그제는 그나마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잠을 더 자 주었다고 몸무게가 2킬로그램 늘어서 68킬로그램이 되었다. (4341.8.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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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8-30 09:24   좋아요 0 | URL
읽어가며 제가 다 힘이 드네요.ㅎㅎ
벼리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더운날 고생이 많으세요. 이렇게 도와주시는 남편 잘 없어요.
옆지기님이 아주 고마워하고 계실겁니다.

숲노래 2008-08-30 16: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제대로 못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더구나, 제가 일이 많아서
일산과 인천을 오가야 하니 더 고달픕니다.
인천에서만 아기를 낳고 돌볼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이 일이 어그러지면서
참 쉽지 않은 부모요 아이가 되었어요.

에구... 아무튼 고맙습니다 ^^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작가로 걷는 길’과 ‘기저귀 빠는 길’과



 - 1 -

 지난 8월 16일 새벽 다섯 시 사십육 분에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낳기는 옆지기가 낳고, 저는 옆지기 진통을 함께 받았습니다. 스물네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옆에서 부축이고 주무르고 양수와 피를 닦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옆지기가 찬 기저귀를 빨고 밥을 떠먹였습니다. 이제 옆지기는 자기 손으로 밥과 국을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되었지만, 아기를 안아 올리기에도 힘이 모자란 형편. 얼추 한 주쯤 지나면서 혼자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볼 수는 있으나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일을 시켜서도 안 되지요. 예부터 세이레라는 말은 괜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낳는 진통과 아이낳기와 아이 돌보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또 제가 손수 거들면서,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을 넉넉한 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쉬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며 다른 집식구들이 애먹을 수밖에 없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예전에는 머리속에 깃든 지식으로만 알던 이야기를, 이제는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으로 깨닫습니다.

 처음 진통을 하던 8월 15일 새벽부터 오늘 8월 23일 아침까지, 제가 잠든 시간이 얼마나 되나 손꼽아 봅니다. 한 주 동안 다문 열 시간이나마 잠을 잤나 모르겠습니다. 자리에 눕기로는 열 몇 시간은 누워 있은 듯하지만, 제대로 잠든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쯤밖에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낳는 동안 아파하는 옆지기를 돌볼 때에는 돌본다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몸을 쓰지 못하는 옆지기를 돌본다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이즈음은 옆지기와 아기 시중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옆지기가 기운을 차려서 조금 움직이며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 낮나절 잠깐 눈을 붙일 뿐, 그 앞과 뒤로는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쉴 겨를이 아니라 잠들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둘∼스무 번 똥와 오줌을 지리거나 누는 아기입니다. 좀 자라면 덜할지 모를 텐데, 그때는 덜하더라도 누는 똥과 오줌이 늘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젖을 먹으면서도 오줌이나 똥을 누고, 젖을 먹고 잠든 다음에도 오줌이나 똥을 누며, 칭얼거려서 가슴에 안아 줄 때에도 오줌과 똥을 지립니다.




 아기 낳기 앞서, 동네 할머님과 옆지기 집에서 천기저귀를 얻어서 갖추어 놓았습니다. 아기 사타구니에 차는 하나와 등에 받쳐서 싸는 하나, 이렇게 두 장을 날마다 열두 번에서 스무 번을 써야 하니까, 날마다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스물 넉 장에서 마흔 장입니다. 그리고 옆지기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아랫도리에서 피를 흘릴 터이니, 옆지기 기저귀도 날마다 두어 장씩 빱니다.

 기저귀만 빨면 그래도 낫지만, 아기가 드러눕는 바닥 담요와 포대기도 빨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다 빨다가 너무 힘들고 빨래감이 많아서, 포대기는 하루에 한 번만 빨기로 하고 똥오줌 지린 데만 물로 헹구고 살짝 빨아서 다림질로 말린 뒤 다시 씁니다. 담요는 한 주쯤 쓴 다음 빨아야지요. 담요도 젖는 틈틈이 다림질을 해서 말립니다.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해서 먹여야 하니 밥을 합니다. 밥을 하는 사이 “여보, 아기가 오줌 쌌어요.” 하고 부르면, “네.” 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기저귀를 갈고 아기 엉덩이 닦고 바닥 포대기 살짝 빨아서 다림질을 합니다. 그러고 다시 밥을 해서 쟁반에 받쳐서 대접을 하고, 그런 다음 뒷간 빨래통에 담가 놓은 기저귀를 빱니다. 빨아도 빨아도 끝이 없기는 하지만, 어제는 비가 내내 그치지 않아 집안에 널어 놓은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습니다. 안 마르는 빨래에 부채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또 “여보, 아기가 똥 쌌어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며 포르르 달려가서 기저귀 갈고 엉덩이 닦고 포대기 또 빨아서 다림질을 하고 내려놓는데, 이십 분 뒤에 또 오줌을 지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로 갈아 준 기저귀를 사타구니에 받치고 누운 지 이십 분 뒤 또 오줌을 지렸습니다. 옆지기가 웃으면서, “벼리야, 아빠 이제 막 자리에 누웠는데 또 일으켜서 기저귀 갈아야 한다. 아빠 보고 한 번 웃어 줘라.” 하고 말합니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기를 째려보다가는 코로 볼을 한 번 눌러 준 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를 빨아서 다림질을 한 다음 눕힙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며칠 아기 돌보기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일감은 많았는데, 옆지기 어머님도 당신 댁을 돌봐야 해서 돌아간 뒤에는 일감이 훨씬 많아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왜 이리 짧으냐 싶습니다. 일은 고되게 하면서도 밥맛이 돌지 않아 밥을 못 먹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밥때를 챙기지 못합니다. 밥때를 챙기지 못하니 어느새 배고픔이 가라앉고, 나중에는 힘이 빠져 먹을 마음을 잃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날 잠을 못 자면서 빨래하고 뭐 하고 하느라 몸 균형이 깨진 듯합니다. 여느 때 71∼72킬로그램 하던 몸무게가 오늘아침에는 65.5킬로그램까지 줄었습니다.

 오늘 새벽 네 시 오 분에 기저귀를 갈고 나서 다섯 시 십구 분까지 빨래를 하고, 다섯 시 사십오 분까지 다림질을 하다가 아기 기저귀를 또 한 번 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지 않는다.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으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사람은 겪은 만큼 볼 뿐이다. 겪지 못했으니까 지식으로 머리속에 있어도 살갗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느낌(감동)이 없다. 때때로, 겪어 보지 않고도 (사물 속살을 꿰뚫어) 보는 이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바로 그 일을 겪지는 않았으나, 자기가 겪은 다른 일을 미루어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는 사람은 지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겪은 만큼 보는 사람은 삶으로 세상을 보고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는 사람이다. 우리(나와 옆지기)가 천기저귀를 마련해서 손빨래를 하고 아기한테 어머니젖을 먹이는 까닭은, 돈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생각하기 때문이요, 우리 삶을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천기저귀와 어머니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1회용 기저귀와 가루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몸이며 마음이며 같은가. 하루를 온통 바쳐도 모자랄 만큼 갖은 일에 허덕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나날은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견주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얼마 안 되는 나날을 아이와 우리 자신을 더 헤아리면서 이처럼 보낼 수 있다면, 서로한테 더욱 힘이 되고 즐거웁지 않겠는가.’

 아기 기저귀를 또 갈고 다시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니 여섯 시 삼십이 분. 이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까 했으나, 옆지기가 “여보, 나 배고파요, 밥 줘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고 대꾸하며 미역국을 뎁힙니다. 잠자는 방에서 날뛰는 모기를 잡고 이렁저렁 있는 사이 아기는 다시 똥을 지리고, 저는 다시 기저귀 빨래를 하니 여덟 시 사십사 분. 히유, 하고 한숨 돌리며 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지만, 또다시 밀려드는 ‘기저귀 갈기와 빨기와 다림질’.

 아기와 함께 산 지 오늘로 엿새째인데, 이제 아기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좋은지 꼬리한지, 또는 오줌을 지렸는지 똥을 누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아기는 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윽’ ‘끙’ ‘끄’ 외마디를 아주 나즈막하고 짧게 내뱉습니다. 마루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이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와서 이불 밑으로 손을 넣으면 촉촉하거나 물컹합니다. 기저귀 안 젖은 쪽으로 손을 닦고 다른 쪽으로 엉덩이를 살살 닦으면서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생각해 보면, 또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저런 돌봄이 노릇은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닌 제가 겪는 일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고단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 고단하고 힘든 일을 누구한테 맡길 마음은 없습니다. 빨아 놓은 기저귀는 안 마르고 아기는 또다시 오줌과 똥을 지리면 그지없이 까마득해서 부리나케 덜 마른 기저귀를 부랴부랴 다림질을 해서 대어 주는데, 꼭 ‘아버지가 되는 느낌’이어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삶이구나, 사람 삶이구나, 우리 삶이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옆지기 양수 냄새가 제 몸에 듬뿍 배어 있었고, 이주부터는 아기 똥오줌 냄새가 제 몸에 잔뜩 배어 있습니다.




 - 2 -

 아기가 아버지한테 잠깐이나마 ‘평화’를 선물해 주는 아침 열 시 반무렵. 조용히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잠을 자고 싶지만, 지금 잠을 자면 아예 셈틀을 켤 수 없기 때문에 눈 둘레를 주물러 주고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뒷간에 갈 때를 빼놓고는 책장 한 번 펼치기 힘든 요즈음, 셈틀을 켜고 글 한 줄 쓸 틈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걸려오는 전화 받기는 귀찮을 뿐더러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한창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짜증부터 덜컥 납니다. 맞은편에서는 제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길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얼른 끊고 싶으나, 자기 볼일을 마쳐야 전화를 끊어 주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전화 받기 몹시 힘들어요.” 하고 말해도 ‘얼마나 힘든 줄’을 거의 못 느끼지 싶습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하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집에만 계신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해야 할 몫은 늘 끝이 없었지 싶습니다. 제가 철이 든 뒤에도 그러했으니, 제가 막 태어난 아기였을 때에는 일감이 훨씬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육아책’을 못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볼 겨를도 없지만, 볼 꿈도 못 꾸었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볼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있으셨을까요, 없으셨을까요. 있으셨어도 하루하루 바쁘고 고단해서 연필 들어 일기장 적을 힘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연필을 들 힘이 있으면 빨래 한 점을 더 하거나 걸레질 한 번을 더 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고,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수발해야 했기에, 어머니 당신한테 ‘작가가 되는 꿈’이 있었다고 해도,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웃 동네에 사는 할머니 시인인 정송희 님 말을 들으면,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아이가 혼인하기까지 ‘시인이라는 이름은 젊은 날 걸치고 있었으나 시를 쓸 틈과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서른 해 남짓 접어놓은’ 채 사셨더군요.




 - 3 -

 여기까지 쓰는데 아기가 울어서 안아서 어르고, 조용해지면 밀린 기저귀를 빨고 다림질을 하고, 모처럼 해가 나서 빨래를 앞마당에 옮겨 널고, 옆지기 수박 잘라 주고, 똥 눈 아기 엉덩이 씻기고 하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버지도 밥을 먹어야 하건만 밥때를 챙길 겨를이 없고, 밥을 챙겨 줄 손이 모자랍니다. 이제 막 옆지기가 아기 젖을 물렸으니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은 숨통을 틀 듯합니다. 후다닥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와서 제 먹을거리를 챙기고, 남은 기저귀를 빨고 다려야겠습니다.

 새삼스레 ‘아줌마 작가’가 드물고 ‘아이 키우기와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남성 작가’만 많은 우리네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1.8.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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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깨우는 아기


 신문사 지국에서 일하던 때, 작은 소리에도 곧잘 잠이 깨곤 했습니다. 작은 소리에 잠이 깨지 않으면 지국에 도둑이 들었고, 작은 소리에 깨어야 새벽녘 짐차에서 신문 부리는 소리를 알아채고 늦지 않게 신문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아침을 차릴 때에는, 지국 문을 살그머니 열고 신문 한 장 훔쳐가려는 ‘신문도둑’을 잡아내고자 작은 소리를 알아채야 했습니다.

 이러다가 군대라는 곳에 끌려갔고, 잠다운 잠을 재우지 않는 한편 툭하면 깨워서 옷과 장비를 후다닥 채우도록 하는 일에 길들여집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새벽에 깨우거나 작은 소리에도 일어나도록 하는 일은, 신문사 지국에서 살던 저로서는 조금도 안 힘들었습니다. 외려 군대에서는 신문사 지국에서보다 훨씬 길고도 느긋하게 잘 수 있었고, ‘신문도둑 걱정’이 없으니 잠도 푹 잤습니다. 언제나 잠이 모자라서 푸석푸석한 얼굴이었던 다른 사람과 달리, 저는 새벽이건 밤이건 말짱했고 눈이 빛났습니다.

 아기가 밤부터 끙 끄 끅 합니다. 무언가 꿈을 꾸고 있다는 뜻이거나, 쉬를 했거나 똥을 누어서 엉덩이가 축축하다는 뜻입니다. 자다가도 아기 소리에 퍼뜩 잠이 깨어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습니다. 촉촉함이 느껴지면 곧바로 기저귀를 빼냅니다. 바닥에 깐 기저귀도 만져 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오줌 부피가 늘어납니다. 엉덩이에 댄 기저귀가 폭삭 젖습니다. 바닥에 깐 담요까지 젖기도 합니다. 담요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 수는 없기에, 아기 오줌 퍼진 자리는 밑에 수건을 대고 위에서 다림질을 해서 말린 다음 부채질을 하며 식힙니다.

 지난밤, 아기는 23시 12분에 처음으로 깹니다. 23시 42분까지 젖을 먹고 배냇짓을 하다가 겨우 잠듭니다. 저는 젖은 기저귀를 빨고 담가 놓은 뒤, 앞서 담가 놓은 기저귀를 헹구고 털어서 마루에 걸쳐 놓은 빨랫줄에 넙니다. 02시 54분, 끙 끄 끅 하는 소리를 듣고 엉덩이에 손을 넣습니다. 오줌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세 시가 되도록 모기를 잡느라 잠을 안 이루고 있었으니, 굳이 잠을 안 깨고도 아기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그리고 빨래. 아기는 잠이 든다 싶었으나 03시 38분에 다시 뒤척이며 젖을 먹겠다고 꽁알거립니다. 뒤이어 04시 44분에 오줌을 한 번 더 누고, 저도 빨래를 한 번 더 합니다. 이번에는 05시 03분에 일찌감치 잠듭니다. 그리고 05시 46분, 끙 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 보니 엉덩이 밑이 젖었습니다. 이리하여, 지난밤 사이, 꼭 43분을 자고 아기 기저귀를 네 차례 갈고, 기저귀 여덟 장과 배냇저고리 석 장을 빨았습니다.

 빨래라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즐기고 있습니다만, 한두 시간에 한 차례씩 빨래를 하노라니 굳은살로 가득했던 손바닥에 겹으로 굳은살이 박힙니다. 빨래를 하며 손바닥이 아파 끙끙거리면서 물을 짜다가 생각합니다. 여태껏 내 손바닥에 박혀 있던 굳은살은 굳은살이 아니었어.

 등허리가 끊어질 듯해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없고, 더더군다나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엎드려서 책장을 조금 넘기다 보면 아기가 칭얼거리고, 옆지기 몸을 주물러야 하며, 빨랫감이 쌓입니다. 느긋한 틈을 내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자리는 뒷간에 앉아서 똥을 눌 때.

 가끔 등판을 벽에 붙이고 앉아서 옆지기와 아기 모습을 그림으로 스윽슥 그려 보고 있습니다. (4341.8.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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