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놀기


 아이가 골을 부린다고 아이한테 어버이가 똑같이 골을 부리면, 아이는 더 모질게 골을 부립니다. 아이가 빽 소리를 지른다면, 누군가 어른 한 사람이 빽 소리를 질렀고, 이 모습을 아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앞에서 맞받아 빽 소리를 지르면, 아이는 더 골을 내며 빽 소리를 지르기 마련입니다.

 전쟁은 전쟁을 낳지 평화를 낳지 않습니다. 무기를 만들거나 군대를 두어 평화를 지킨다고 해 보았자, 또다른 전쟁을 낳지 평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평화를 이루고 싶다면, 무기가 아닌 낫과 호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고 싶으면, 군대가 아닌 텃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낫과 호미와 쟁기가 평화를 이루지, 총과 칼과 탱크와 전투기가 평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텃밭이 평화를 지키지, 군대가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돈을 물려준대서 아이가 제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어야 아이는 사랑을 깨달으며 제 어버이한테 나눌 사랑을 배웁니다.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기만 한다면 아이는 돈을 배우고, 돈을 아끼며, 돈을 바랍니다.

 어린이집 같은 데에 아이를 맡기는 일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하며 아름다운 어린이집은 어김없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이 말 그대로 어린이가 모여 신나게 놀면서 서로서로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흙일과 집일을 놀이하듯 받아들이며 배우는 보금자리이자 마당이 되지 않는다면, 어린이집이라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집은 놀이터요 삶터요 일터이지, 배움터가 아닙니다.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터라면 어린이집은 도루묵입니다. 어린이집은 시설이나 지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어린이집은 오직 사랑으로 이루어지며, 이 사랑은 흙과 땀과 웃음과 눈물로 이룹니다.

 요 여러 날, 아이는 집에서 자꾸 드러누우며 뒹굽니다. 몸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집에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몸이 힘들어 뜨개질만 합니다. 아버지는 또 이오덕학교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을 한 시간 맡느라 이 때문에 바쁘고, 다른 집일을 하느니 살림을 꾸리느니, 더욱이 오뉴월에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며 이에 앞서 책 원고 몇 가지를 부랴부랴 마무리지으려고 바빠서 잘 놀아 주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이라 하더라도 참 심심하면서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랴부랴 일손을 붙잡다가도 살짝 일손을 내려놓고 아이를 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춤이라도 조금 춘 다음 일손을 잡습니다. 아이를 무르팍에 눕히고 코를 살살 뚫습니다. 아이가 혼자 놀 때에는 고마우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착하고 착하게 제 어버이하고 살아 줍니다.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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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지를 파는 아빠


 아이 코에 소금물을 먼저 두어 방울씩 넣는다. 아빠가 코를 킁킁거리며 아이도 코를 킁킁거리라고 이른다. 아이 가슴에 천손수건을 올려놓고 솜막대기를 아이 콧구멍에 살살 넣고 돌린다. 소금물로 콧속이 젖으면서 아이 콧속에 붙던 코딱지가 살며시 떨어지고, 솜막대기에 크거나 작은 코딱지가 콧물하고 엉겨붙는다. 때때로 아이한테 콧물 어린 코딱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큼지막한 녀석이 콧속에 들어갔으니 숨쉬기가 힘들지.” 코를 말끔히 판 다음, 모처럼 귀도 파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 허벅지에 풀썩 드러눕는다. 귓구멍에 찰싹 붙어 안 떨어지려 하는 귀지를 살살살 판다. 옆에서 뜨개질을 하던 애 엄마는 ‘무슨 귀지 파는데 그렇게 무거운 얼굴’이느냐며 사진기를 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하고 붙어 지내지만, 정작 애 아빠는 아이하고 나란히 찍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아니, 한두 장 있을까 말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찍어 주어야 애 아빠가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는다만,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란 없다.

 드디어 굵직하거나 길다란 귀지를 파낸다. 아이한테 귀지를 보여준다. “오, 나왔져?” “응, 나왔어. 이제 귀지도 나왔으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 좀 잘 들어 줘.” 아이는 뒷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이 이를 닦이고 손발을 닦아 주며, 낯을 닦는다. 수건으로 손·발·낯을 훔친다. 아이는 폴짝폴짝 뛰면서 “벼리 이 닦았어요. 손 닦았어요. 발 닦았어요.” 하고 제 엄마한테 가서 외친다. 그러나 저녁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니까 아주아주 괴롭다.

 지난날 우리 어머니는 두 아들 코며 귀며 어떻게 다 파 주고, 손톱과 발톱 어떻게 다 깎아 주며, 손발이랑 낯을 어찌 다 씻겨 주었을까. 한 아이 귀지를 파는 데에도 등허리가 쑤시고 눈이 따끔따끔하다. 뒷덜미가 저리고 손가락이 떨린다.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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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하게 누워서 잔다


 반듯하게 누워서 잔다. 몸을 옆으로 돌리지 못한다. 그대로 쭉 뻗어서 잔다. 누운 동안 내 몸은 방바닥에 찰싹 달라붙는다. 옆으로 살짝 돌려 모로 눕고도 싶으나, 이렇게 누우면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그저 등바닥과 발과 손 모두 방바닥에 척 대고 누울 뿐이다. 몸이 무거울 뿐더러 찌뿌둥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잠결에 아이가 끄응 소리를 내면 ‘아하, 오줌을 누었나 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부시시 일어난다. 아이 기저귀에 손을 댄다. 폭삭 젖었다. 바지까지 젖었다. 기저귀를 풀고 바지를 벗긴다. 새 기저귀로 잠지 둘레를 톡톡 치며 오줌 기운을 닦는다. 새 기저귀를 댈 때에는 한 번 뒤집어서 댄다. 바지를 입힌다. 이불을 씌운다. 그러고 다시 눕는다. 언제나처럼 새벽 일찍 깬다. 새벽이라기보다 깊은 밤에 깬다. 두어 시나 서너 시를 새벽이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일어날 때에는 또 벌떡 일어난다. 잠자리에 드러누울 때에는 어쩜 이리도 죽은 듯이 자더니, 일어날 때에는 말짱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해가 기울어 깜깜한 시골자락 밤이 다시 찾아들면, 나는 마치 흙으로 돌아갈 사람처럼 꼼짝없이 뻗고야 만다.

 내가 반듯하게 살아가서 반듯하게 누워서 잠들지는 않는다. 하루하루 이 일 저 일에 치이면서 그저 모두를 잊고 잠들 뿐이다. 어쩌면, 아이를 돌보다가, 옆지기를 건사하다가, 나 스스로 나 하고픈 일을 한다고 하다가, 이렇게 어느 날 소리 없이 말끔하게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마지막 꿈은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어, 내 주검을 나한테 밥을 내어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다. 꼭 무덤을 쓴다기보다 집 둘레 오래된 감나무 곁에 묻어 감나무가 더 싱그럽게 기운을 받아 새 감알을 소담스레 낼 수 있도록 거름이 되고 싶다. 내가 우리 시골집 감나무 곁에서 거름이 된다면, 내 아이는 감알을 더 맛나게 즐길 수 있겠지.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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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 깎기


 능금을 잘 못 깎았습니다. 참외이든 감자이든 잘 못 깎았습니다. 그러나 껍질째 먹기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아직 껍질을 못 씹습니다. 아이한테 제 아버지가 하듯이 껍질째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껍질을 살살 벗겨 주어야 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몸이 많이 힘들고 마음이 크게 아픈 사람이니까, 아이가 능금을 먹고 싶어 한다면 아이 아버지가 깎아 주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능금알을 깎아 준 지 서른두 달쯤 됩니다. 갓난쟁이일 때에도 능금을 먹지는 않았으나, 아무튼 아이한테 이것저것 깎아서 먹인 지 서른두 달째입니다. 서른두 달째 접어든 애 아버지 ‘능금 깎기’는 썩 예쁘지는 않으나, 지난날 혼자 살던 무렵처럼 어설프거나 엉터리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서른두 달이 더 지나고, 또 서른두 해가 더 지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 능금 깎기는 어떠한 매무새일까 가만히 곱씹습니다. 이제껏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능금 깎기로 살아온 어머님들과 할머님들 손매무새와 손길과 손결과 손무늬는 어떠한 이야기가 깃든 나날일는지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4344.2.1.불.ㅎㄲㅅㄱ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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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야 미안해


 아이가 저녁 일곱 시에 잠들었다. 아이는 저녁 아홉 시 이십 분쯤 깼다. 아빠가 아이 옆에서 함께 잠들었다면, 아이는 저녁 아홉 시 이십 분 즈음에 이래저래 칭얼대다가 옆에서 함께 잠든 아빠를 보면서 걱정없이 즐거이 잠을 이었겠지. 그러나, 아빠는 아이가 잠들었다면서 ‘그래, 이제부터 아빠도 글 좀 쓰고 책 좀 읽자고!’ 하는 생각으로 큰방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아이는 그만 잘 자다가 깨고 만다. 잘 자다가 깼기 때문에 여느 때하고 견줄 수 없이 짜증이 더한 몸짓으로 아빠를 힘들게 한다.

 아빠는 참 힘들다. 그러나, 아빠가 힘들다고 느끼는 만큼, 또는 아빠가 힘들다고 느끼는 만큼보다 더욱, 아이 네가 힘들겠지. 미안하구나. 네가 새근새근 잠들기는 했으나, 네 곁에 엄마가 함께 잠들었다면 네가 살짝 깼다 하더라도 다시 고이 잠들 수 있었겠지. 네 곁에 엄마랑 아빠 둘 다 없으니, 살짝 깼을 때 이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울면서 칭얼댈밖에 없겠지.

 그깟 글조각이 얼마나 대수롭거나 대단하다고, 아빠가 이 글조각 붙잡는다며 너를 제대로 재우지 않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너 먹이고 아빠랑 엄마 먹자면서 글을 쓰는데, 아빠야말로 얼마나 벌어먹으려고 이렇게 글조각을 붙잡는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이렇게 글조각을 붙잡을지라도 우리 세 식구, 곧 네 식구가 될 우리 살림살이를 보듬기에도 꽤나 빠듯한데.

 그래도, 이렇게 네가 깨 주었으니, 아까 네 코를 솜막대로 살살 파면서 코딱지를 떼어낼 때 잠드는 바람에 네 이를 닦아 주지 못했는데, 이참에 네 이를 닦아 주면 되겠구나.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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