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우리 집 깃든 멧기슭이 며칠째 구름에 폭 싸인다. 방앗간에 가려고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올 무렵 비로소 햇볕을 구경한다. 아침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우리 집 둘레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 빨래 말리기는 젬병이다. 참말 우리 살림집은 멧집이구나. 그런데 읍내에 나와 보니 읍내사람조차 우리 멧집을 잘 헤아릴 수 없겠다고 느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시골 멧집을 헤아릴 길이 없을 테지만, 읍내사람 또한 읍내에 구름이 내려앉아 폭 감싸일 일이 없으니까 한낮이 가깝도록 구름을 품으며 지내는 나날을 알 수 없겠지. 우리 딸아이가 며칠 앞서까지만 해도 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가리킨 뒤 “구·름!” 하고 말하면 “기·윰!”이나 “기·륨!” 하고 따라했는데 오늘은 “구·륨!” 하고 말한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품에 안고 흰구름을 가리키며 함께 올려다볼 수 있어 좋다. (4343.10.1.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엄마 손가락을 따라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이내 스스로 책을 읽는다. 

엄마랑 아빠랑 옆에서 함께 안 놀아 주고 

책만 읽으니 

아이도 이냥저냥 엉기고 어리광을 부리다가 

스스로 놀다가 책을 펼친다.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놀아서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버스표 다섯 장


 시골버스를 탈 때에 내는 표를 미리 스무 장 끊어 놓았다. 그런데 막상 스무 장을 끊은 뒤로 보름 동안 이 시골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읍내로 나갈 때에는 음성읍으로 가고, 면내로 갈 때에는 생극면으로 가는데, 생극면으로 갈 때에는 맞돈으로 1200원을 내고 음성읍으로 갈 때에는 표로 1050원짜리를 낸다.

 오늘 보름 만에 읍내로 다녀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표를 끊고 헤아리니 아까 나오는 버스를 탈 때에 그만 표를 석 장을 넣었더라. 낱낱으로 세어 두 장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손님이 간수하는 표’를 살피니 다섯 장이다.

 교통카드로 찍는다면 이런 일은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교통카드로는 이곳 시골에서는 안 찍힌다. 아마 교통카드를 새로 받아야 비로소 시골버스에서도 찍히리라. 아니면 시골버스에서 찍히는 교통카드를 새로 만들든지.

 아이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졌고, 시골길을 걸어 들어오는 동안 잠에서 깨지 않는다. 이제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우고 엄마에 이어 아빠가 씻으면 오늘 하루는 즐겁게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덧 모레면 한가위를 맞이하는구나. 올 한가위에는 지난주에 새로 나온 내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책을 들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겠네. 아버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님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는다. (4343.9.20.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선풍기와 에어컨


 더운 여름날, 무척 덥게 지내야 하는 일산집에 온다. 옆지기 어버이와 식구들은 이곳 찜통 같은 곳에서 더위는 더위대로 고스란히 맞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아직 다 옮기지 못해 남아 있는 인천 배다리 도서관 자리에서 잠을 잘 때에도 참 덥다고 느끼지만 일산집만 하지는 않다. 충주 산골마을 시골집에서 보내는 하루란 얼마나 시원한가. 생각해 보면, 우리 식구는 인천에서 지낼 때에 선풍기를 써 본 일이 없다. 나는 혼자 살던 때에도 선풍기를 쓰지 않았다. 마땅한 소리인데 충주 산골마을 살림집에도 선풍기는 없다. 정 더우면 부채질을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일 때라 할지라도 땀을 쪽 빼고 찬물로 멱을 감으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지내는 가운데 볼일 때문에 새삼스레 도시로 나오며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면 잔뜩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을 쐰다. 가게마다 내내 틀어대는 에어컨 바람을 맞는다. 식구들이 함께 움직이다 보면, 아이와 아이 어머니가 몹시 고단하다. 아이 아버지 또한 고단하지만 아이만큼 고단할 수 없다. 아이 아버지도 코피를 쏟을랑 말랑인데 아이가 으레 코피를 쏟는다. 아이가 먼저 코피를 쏟으면 식구들이 좀더 빨리 쉬고 더욱 오래 쉬곤 한다. 아이는 틀림없이 고단하기 때문에 코피가 터지는데, 아이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시에 나오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든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니까’ 이 때문에 아이한테 좋을 일이 없다고 느낀다. 게다가 도시 바람은 시골 바람하고 견주면 얼마나 안 좋은가.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선풍기나 에어컨을 안 쓸 수 없다. 도시가 되니까. 상큼하거나 맑은 바람이란 없으니까. 시원하거나 깨끗한 물이란 없으니까. 도시에서 흐르는 수도물은 시원하지 않고 땀을 씻어 주지 못하니까. 도시에서 부는 바람은 한동안은 땀을 식히는 듯하지만 가게와 집과 일터마다 틀어놓는 에어컨이 내뿜는 뜨거움 때문에 다시금 흐르는 땀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이런 도시에서만 지내고 있으면 아무래도 물질과 기계와 자동차를 안 쓸 수 없다. 이런 도시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면 참말 돈이랑 주식이랑 투자랑 스포츠에 눈을 안 둘 수 없겠다.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며 고이 나눌 수 있는 길하고 자꾸자꾸 동떨어지고야 마는 도시 살림살이임을 거듭 깨닫는다. 마음을 살찌우거나 넋을 북돋우거나 얼을 일군다는 고운 책 하나 곁에 둘 수 없는 도시 터전임을 또렷하게 되뇐다. 갖가지 즐길거리 누릴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넘치는 도시인데, 이도 저도 다 넘친다지만,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나눌 수 있는 맑고 밝은 숨결과 손길이란 어디에 있을까. (4343.8.1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계집, 살림꾼


 사내들이 식구를 벌어 먹여야 한다며 밖에 나와 돈을 번다고 이야기하는데, 모두 말짱 거짓말입니다. 식구를 먹여살리는 사람은 집에서 살림하는 일꾼입니다. 사내들이 밖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못 벌든 안 벌든, 집살림꾼인 계집들은 늘 식구를 모두 다 먹여살립니다. 돈을 번다는 사내한테까지든, 돈을 못 번다는 사내한테까지든, 집살림을 하는 계집은 누구나 먹여살립니다. 가난하여 배고픈 집에 찾아온 손님마저 먹여살리는 살림꾼 계집입니다. (4343.7.27.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