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이


 두 아이하고 두 달 가까이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돌이킬 겨를이 없다. 그렇지만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무렵 하루를 가만히 곱씹지 않는다면 너무 슬프거나 서럽다. 두 아이를 다 씻기고 옆지기도 씻고, 둘째는 옆지기가 재우고 첫째도 잠자리에 눕히며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도록 한 다음, 비로소 아버지도 빨래 한 점을 하면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면서 생각한다. 이토록 몰아치는 하루하루라면,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에 옆지기 어머님이 찾아와서 열흘 즈음 집일을 거들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나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몸풀이하는 살림과 일을 얼마나 미리 헤아렸을까.

 요즈음 들어 더더욱 생각에 잠긴다. 몸이 너무 고단해 차마 입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고, 머리에서도 살짝 스치다가 잊어버리는 생각이라, 옆지기가 무엇을 물어도 얼른 떠올리지 못하거나 나중이 되어서야 겨우 되새기곤 하는데, 옆지기 어머님을 보면서 ‘첫째 아이가 나중에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았을 때에 옆지기가 손주 돌보기와 딸아이 몸풀이를 거들 수 없을 테니까, 아버지가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앞으로 서른 해는 더 튼튼히 잘 살아야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꿈이 아니라, 딸아이가 나중에 겪을 힘겨운 나날을 생각하자면, 그때까지 어버이로서 어떻게든 잘 살아내어 갓난쟁이와 처음으로 살아가는 괴로운 보람과 힘겨운 즐거움을 잘 맞아들이도록 길동무 구실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어설픈 꿈을 더 꾼다면, 둘째 아이가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은 다음에 며느리 될 사람 일손을 거들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느낀다.

 오늘은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아무쪼록 두 아이가 커서 저희 아이를 낳아 키울 서른 해쯤 뒤를 지나고 나서 옆지기가 흙으로 돌아간다 할 때에, 열 해쯤 혼자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다음에 나도 옆지기를 따라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떻든,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라면, 몸을 더 아끼고 마음을 더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고맙게 맞아들이고 즐거이 떠나보내면서 새날을 다시금 고마우며 즐거이 보듬어야겠구나 싶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 한다고, 참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왼손목과 오른팔꿈치와 왼발목이 몹시 아파 건드리거나 움직이기만 해도 아픈 지 여러 해 되었으나, 용케 오늘까지 집일을 도맡으면서 두 아이도 이 조그마한 집에서 그렁저렁 함께 지낸다. 이듬날은 비가 오지 않는 장날이 될까. 아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장날에 맞추어 마실을 못한 지 보름이 넘은 듯하다. (4344.7.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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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에 머리카락 세 올


 둘째 아이가 아침에 똥을 조금 눈다. 밤새 몸이 끈적끈적하니까 아침부터 일찍 씻기자고 한다. 보일러를 돌린다. 새벽에 빤 기저귀를 방바닥에 펼친다. 아침까지 나온 기저귀를 빨래한다. 어느덧 물이 다 덥혀진다. 아이를 안고 씻는방으로 온다. 배냇저고리를 벗기고 손닦개로 목부터 닦는다. 목이 접힐 수밖에 없는 갓난쟁이는 여름날 목에 땀띠가 나서 몹시 애먹는다. 어쩌겠니. 얼른 자라서 목이 잘 열려야 땀띠가 안 나지. 올여름을 잘 견디어 주렴. 목을 요리조리 돌리고 열면서 물을 묻혀 닦는데 머리카락이 한 올 두 올 세 올이 나온다. 갓난쟁이 자그맣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다. 네 누나도 너만 할 때에 씻기면서 들여다보면 고 자그마한 머리카락에 목에 끼곤 하던데, 너도 마찬가지로구나. 너도 고운 목숨이고 네 머리카락도 머리카락이겠지. 다 씻기고 마른 기저귀 하나로 몸을 싸서 자리에 눕힌 다음 아랫도리를 살짝 말리라고 두면서 방바닥에 넌 기저귀를 차곡차곡 개는데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가 쉬를 눈다. 쉬를 누며 이불을 적신다. 얼른 이불을 걷고 기저귀로 댄다. 요새 장마철이라 이불을 빨면 끔찍하게 안 마르는데 어떡하니. 오줌 젖은 데만 물로 헹구어 짠다. 부디 오늘은 비가 멎는 때가 길기를 빈다. 아무쪼록 이 이불이 잘 말라 냄새가 배지 않기를 바란다. (4344.7.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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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5 09:22   좋아요 0 | URL
아오, 이뻐라.
여름이라 고생하겠네요, 땀띠도 많겠구.. 저런.
하지만 쳐다보는 눈매가 어쩜 저리 똘망하죠. 정말 너무너무 이쁘네요.

숲노래 2011-07-15 16:54   좋아요 0 | URL
올 한여름만 잘 넘기면 이제 제법 크면서 뒤집고 엎드리고 기고 서고 하겠지요~
에궁...

울보 2011-07-15 10:39   좋아요 0 | URL
정말 장마철에 요렇게 귀여운 녀석이 고생이겠어요, 무더우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빨래가 잘 안말라서,,
후후 아가 보니 우리 딸 어릴적 모습이 보여요 저 올록볼록이 ㅎㅎ 귀엽다,,

숲노래 2011-07-15 16:55   좋아요 0 | URL
기저귀 빨아서 대느라 아주 죽어납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누구나 다 이렇게 했으니 뭐...
이렇게 기저귀를 빨아서 대며 키우니
'귀한 아이'라 할 만하구나 싶어요...

카스피 2011-07-15 12:13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가 넘 이쁘네요.그나저나 좀 있으면 푹푹찌는 무더위가 올텐데 아이가 더위에 고생좀 하겠네요.

숲노래 2011-07-15 16:55   좋아요 0 | URL
장마철보다는 나으리라 믿어요 ^^;;;;;;
 



 설거지


 밥을 다 먹고 나서 몇 가지 그릇과 접시와 수저에 비누를 묻혀 물에 부시는 일은 설거지가 아니다. 고작 몇 가지 그릇과 접시와 수저에 비누를 발라 헹구고서는 집일을 제법 도왔다고 여길 수 없다. 밥을 다 먹고 나서 하는 그릇씻기는 밥을 하는 동안 하는 설거지하고 댈 수 없을 만큼 얼마 안 된다.

 밥물을 안치고 미역국을 끓이며 반찬을 마련하는 동안 책 한 줄이라도 읽자고 다짐하기를 몇 해이지만, 이제 이러한 다짐은 거의 떠올리지조차 못한다. 밥물을 안치기 앞서 미역을 끊어서 불려야 하고, 쌀을 씻어서 불린 다음 국거리와 반찬거리로 쓸 푸성귀와 여러 먹을거리를 손질한다. 무를 씻고 감자를 씻으며 당근을 씻는다. 감자를 썰고 무를 썰며 당근을 써는 사이사이 칼을 닦고 도마를 씻는다. 양파를 까서 썰 때에도 칼을 닦고 도마를 씻는다. 마늘을 절구로 찧었으면 절구와 절구공이를 씻어서 말린다. 불 셋을 쓰면서 밥과 국과 반찬을 하니까, 반찬을 두 가지 하려면, 반찬 한 가지를 끝내고 얼른 냄비 하나를 씻어서 다시 써야 한다. 다 불린 미역은 세 차례 물로 헹군다. 미역을 다른 그릇에 불렸으면 다른 그릇을 설거지하고, 체로 미역을 받으며 헹군다면 체도 설거지한다. 으레 기름 안 쓰고 물로 스텐냄비에 볶지만, 드물게 기름을 써서 볶았으면 기름기를 닦아내어 새 반찬을 하느라 손이 더 간다. 도마질을 하는 개수대가 정갈하도록 행주로 수없이 개수대 물기를 훔치고 물을 짜면서 다시 빨기를 되풀이한다. 밥이 거의 다 되면 쌀겨가루를 한두 숟가락 넣고 섞는다. 이무렵 국이 펄펄 끓으니 살짝 간을 보면서 소금을 더 넣을까 간장을 마무리로 넣을까 생각한다. 미역국에 조개나 새우살을 넣는다면, 얼린 조개나 새우살을 녹이며 헹구느라 손이 간다.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을 큰 통에 담아 헹구느라 손이 갈 뿐더러 큰 통을 설거지해야 한다. 콩나물과 여러 푸성귀를 씻거나 헹구며 부스러기가 떨어지니, 개수대 찌꺼기받이를 들어내어 비우고 닦는다. 개수대 바닥과 옆을 쇠수세미로 닦는다. 밥에 쌀겨가루를 골고루 섞었으면 뚜껑을 덮고 몇 분쯤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밥상을 닦는다. 반찬그릇을 꺼내고 마무리지은 반찬을 접시에 담는다. 반찬을 하느라 쓴 냄비와 주걱과 숟가락과 접시를 설거지한다. 국이 다 되면 불을 끄고 간장을 살짝 넣거나 말린명태껍데기를 잘라서 넣는다. 말린명태껍데기를 가위로 잘랐으면 가위를 설거지한다. 오이와 오이지를 알맞게 썰어 접시에 담는다. 칼을 다시 닦고 도마를 다시 씻는다. 두부를 데쳤으면 국자로 떠서 접시에 담아 칼로 작게 썬다. 도마에 얹어 자르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도마를 또 씻어야 해서 그냥 접시에 담아 칼로 자른다. 두부 데친 냄비를 얼른 설거지하고 칼을 다시 닦는다. 이제 칼 쓸 일이 더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반찬 담은 접시와 밥그릇과 수저를 밥상으로 나른다. 첫째 아이가 얌전하거나 상냥한 날에는 수저를 알뜰히 제자리에 놓아 주고 반찬뚜껑도 열어 준다. 첫째 아이가 말똥쟁이 노릇을 하는 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내야 한다. 더욱이, 아이가 혼자 손을 뻗어 저 먹고픈 대로 먹으면 골이 아프다. 국을 국그릇에 하나하나 뜬다. 더운 여름날은 국이 쉬기 때문에 끼니마다 새로 끓이려고 애쓴다. 다 비운 국냄비와 국자를 설거지한다. 밥냄비를 밥상으로 옮기면서 아이 몫과 어머니 몫을 푼다. 아이한테 어머니도 먹자고 불러야지 하고 이야기하면서 잘 먹겠습니다 하는 말을 먼저 하면 아이도 따라서 말한다. 자리에 앉을 겨를 없이 다시 부엌으로 가서 흐트러진 부엌을 갈무리한다. 밥을 하며 쓴 연장은 모두 설거지를 하고, 행주로 개수대와 가스렌지를 닦는다. 마무리로 행주를 빨고, 행주를 빨며 개수대에 튄 물을 다시 닦고 행주를 꾹 짜서 펼쳐 넌 다음 손을 씻는다. 어제 먹고 남은 반찬을 유리그릇이나 스텐그릇에 담았다가 밥자리에서 새 접시에 담았으면, 유리그릇이나 스텐그릇을 마저 설거지한다.

 이렇게 밥을 차리며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고 나서 해야 할 설거지가 멧더미처럼 쌓인다. 집에서 설거지를 거들겠다는 사내들이라면 밥을 다 먹은 다음 하는 설거지가 아니라, 밥을 차리면서 설거지를 해야 옳다. 밥하는 사람 옆에 붙어서 밥하는 사람이 쓴 부엌 연장을 그때그때 잽싸게 설거지해서 말리거나 물기를 닦아서 건네야 맞다. 내가 쓴 밥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했대서 설거지를 도왔거나 집일을 거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이는 ‘설거지 돕기’나 ‘집일 거들기’가 아니라, 밥을 차리며 설거지를 한 집일꾼한테 지키는 아주 조그마한 ‘인사치레(예의)’일 뿐이다. (4344.7.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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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4 16:13   좋아요 0 | URL
매일 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된장님께서 문장으로 풀어놓으신 것을 보니, 우리는 매일 엄청난 일을 하고 있군요! ^^

인사치례는 커녕
밥 차리면 재까닥 오기라도 하는 예의가 없는 사람도 저희 집에 있습니다. ㅎㅎ

숲노래 2011-07-14 17:14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지요.
밥상에 차릴 때까지 밥상 앞에서 얌전히 앉아서 기다릴 줄 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부디 집일을 잘 거드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날마다 빌어 마지 않아요~~~
 



 기저귀


 두 아이 기저귀를 갈다 보면, 큰 아이가 되든 작은 아이가 되든, 참 작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기저귀를 대는 아이는 모두 작다. 기저귀를 떼는 아이도 아직 작다. 요 작은 몸뚱이로 함께 살아가고, 고 작은 손발로 이 땅에 서며, 이 작은 가슴으로 사랑과 믿음을 물려받는다. 밤새 옆지기랑 갈마들면서 둘째 갓난쟁이 똥오줌기저귀를 열 장쯤 갈았나 싶다.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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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흘리는 자전거


 한창 뛰고도 남을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온다. 수박 큰 통이랑 토마토 한 상자랑 온갖 먹을거리를 수레와 가방에 잔뜩 짊어진다. 오르막을 달리는 아버지는 온몸이 땀범벅. 드디어 숯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막만 남는다. 살짝 숨을 돌리며 발을 내려다본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진 땀방울 가운데 하나가 내 고무신에 살짝 떨어졌다.

 아이는 그저 생글생글 웃는다. 아버지는 아이가 생글생글 웃는 삶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어버이도 나를 키우며 함께 살아가던 지난날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 어버이도 나도 내 아이도 모두 착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온 만큼 시원하게 내리막을 씽하고 달린다. (4344.6.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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