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5.25.
 : 바다내음 마시기

 


- 오월 이십오일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고, 대문을 연 다음, 마을길에 내다 놓으니,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큰아이는 동생더러 “아직 안 돼. 기다려. 아버지가 밖에다 내놓은 다음 타.” 하고 말한다. 햇볕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일하기에는 후끈후끈 더울 테고, 자전거 타기에는 꼭 알맞춤하게 좋다.

 

- 시골마을에서는 모두 봄일로 바쁘다. 들판마다 할매와 할배가 푸성귀를 뜯거나 마늘을 뽑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풀을 벤다. 다른 시골에서도 고흥처럼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하며 봄날 보내겠지. 어느 시골에서나 젊은이는 없겠지.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수레를 한손으로 붙잡고 바깥을 내다본다. 얼마 앞서까지 수레에 등을 기대고 앉던 작은아이인데, 이제 수레를 한손으로 잡고는 바깥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기를 즐긴다.

 

- 면소재지에 들러 아이들 과자 두 점 장만한다. 빵도 한 봉지 장만한다. 오늘은 발포 바닷가로 가 볼 생각이다. 면소재지 벗어나 당곤마을 옆을 지난다. 오르막 하나를 지난 뒤 천천히 새 오르막을 지나며 화덕마을 앞을 지난다. 오늘은 맞바람 맞으며 이 길 지나가는데 제법 잘 나간다. 이제 고흥에서 세 해째 자전거를 달리면서, 고흥 길자락에 다리가 익숙해지며 새 힘살 붙었을까. 아이들은 나날이 몸무게 늘어나는데다가, 큰아이 타는 샛자전거를 붙이기까지 했는데, 지난해에 이 길 달릴 때보다 한결 가볍게 오르막을 넘는다.

 

- 발포 포구와 바닷가로 가는 길 나뉘는 세거리에 이른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오늘 어디로 가는지 알아챈다. “아, 바다로 가는구나. 아이, 좋아라.” 바다내음이 난다. 짠 기운 머금은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늦추어 천천히 발포 바닷가로 들어선다. 수돗가에 먼저 간다. 물이 나오는지 살핀다. 나온다. 좋다.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자전거를 후박나무와 소나무 그늘 드리운 곳에 세운다. 작은아이 안전끈을 끌른 뒤 담요를 덮는다. 큰아이하고 바닷가 걸상에 앉아서 바다바라기를 한다. 오직 우리 세 사람 있는 바다는 호젓하면서 시원하고 고즈넉하다.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바다 기운을 마신다. 공책을 꺼낸다. 바다가 우리한테 나누어 주는 이야기를 몇 마디 적는다.


 물결은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바람은 손전화를 끄게 하며
 햇살은 사진기를 내려놓게 한다.


- 자동차 끌고 바닷가로 오는 사람들 있다. 우리끼리 즐기는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동차 한 대 섰다 가고, 두 대 섰다 간다. 석 대와 넉 대째 섰다 간다. 모두 살짝 돌아보고는 간다. 이곳에 자전거 타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까.

 

-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작은아이도 함께 과자를 먹는다. 큰아이가 “나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가고 싶으면 스스로 가면 돼. 신 벗고 가.” 큰아이가 신을 벗는다. 천천히 바다로 들어간다. 모래밭에서 뒹굴며 모래를 만진다. 모래로 탑을 쌓고 구멍을 판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모래밭놀이 하고프다는 얼굴이다. 그래, 너도 신 벗고 들어가면 되지.

 

- 한 시간 즈음 논 다음 아이들 손발 씻긴다.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를 몰고 큰식구 바닷가에 놀러온다. 그리고, 자전거 짐받이에 아이 태운 아주머니 한 분 들어온다. 뒤따라 혼자 자전거 달리는 아이 하나 들어온다. 아, 이곳에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만 있지 않구나. 자전거로 바닷가 찾아오는 분이 있네. 아름답다. 우리 식구도 아름답고, 저 아주머니 식구도 아름답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안 분다. 발포 바닷가 올 적에는 맞바람이더니,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구나. 바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나쁘지 않다. 다만, 쳇 쳇 하는 소리를 실쭉샐쭉 뱉는다. 이제 오롯이 태평양바람 뭍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코앞이로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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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4.5.
 : 이웃마을 봄마실

 


- 봄바람 따사롭게 부는 한낮에 자전거를 끌고 아이들과 마실을 나온다. 빨래를 마치고, 아이들 밥 배불리 먹인 이즈음, 오늘은 어디 좀 멀리 나갔다 와 볼까 생각한다. 어디로 갈는지 생각은 안 했으나, 아무튼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놓는다. 수레 달린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자마자 작은아이는 수레에 얼른 타려 한다. 그래, 네 누나 머리띠도 하고 수레에 앉으렴. 대문을 연다.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자전거 잡아 준다. 대문을 닫는다. 집 앞으로는 왼쪽이 안 보이는 내리막이라, 아래까지는 자전거를 끌고 내려간다. 마을 앞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거의 없지만 설마 모를 노릇이니, 10미터 즈음 늘 걸어서 움직인 뒤 둘레를 살핀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운다. 자, 이제 달려 볼까.

 

- 이웃 신기마을과 원산마을 앞을 지난다. 동호덕마을과 서호덕마을 옆을 스친다. 도화면 소재지에 닿는다. 가게에 살짝 들렀다가 자전거머리를 돌린다. 오늘은 마복산 언저리로 가 볼까 싶다.

 

- 도화면 보건소 앞에서 청룡마을 쪽으로 들어서는 오르막에 선다.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는다. 이렇게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으면서 훅훅 용을 쓰면,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힘들어요?” “응.” 말할 기운 없단다. 아니, 말할 숨을 고르기 힘들단다. “괜찮아. 벼리가 노래 불러 주면 돼.”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버지 기운 내라며 노래를 부른다. “영차, 영차.” 하는 말도 해 준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잠들었다.

 

- 오르막을 다 넘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오리나무를 바라본다. 오리나무 새잎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똑 따서 씹는다. 처음에는 보드랍고 물기 있더니, 끝맛이 아주 쓰다. 졸던 사람은 잠이 확 깰 만큼 쓰다.

 

- 청룡마을 옆을 지난다. 미후못을 지나고 미후마을 옆을 지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심심하다고 한다. 그래, 자전거를 오래 탔니? 그럼 좀 쉬어 보자. 자전거를 세우고 큰아이더러 내리라 한다. 큰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전거 앞쪽으로 달린다. 달리고 싶었구나. 그러면, 너도 샛자전거에 앉아서 발판을 구르면 돼. 넌 샛자전거에 가만히 서기만 하잖니. 너도 발판을 굴러 보렴. 그러면 아버지도 더 힘을 받아 잘 달릴 수 있어.

 

- 오늘은 더 멀리까지 가지 말아야겠다 싶다. 미후마을에서 장촌마을까지 자전거를 끌며 걷는다. 장촌마을에 집 고치며 지낸다는 분한테 전화를 건다. 빈집에 잔뜩 있던 쓰레기를 싣고 읍내 쓰레기처리장으로 나가셨단다. 돌아오려면 한참 있어야 한단다. 그러면 나중에 뵙기로 해야지. 장촌마을 어귀에서 작은아이가 잠을 깬다. 꽃나무 그득한 장촌마을 어귀에서 작은아이를 수레에서 내린다. 두 아이가 꽃길을 달리면서 논다. 그래, 여기에서 한 시간 즈음 가볍게 뛰고 달리면서 놀자. 그러고서 집으로 돌아가자.

 

- 물을 대는 논 둘레에서 놀고, 논에 물을 보내는 호스 앞에서 물놀이도 한다. 작은아이 신을 더 챙기지 않았는데 신이 다 젖는다. 안 되겠군. 너희 그냥 맨발로 놀아라. 꽃잎을 따서 논다. 꽃잎을 물에 띄우며 논다.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꽃잎을 갖고 싶단다. 누나가 꽃잎을 따서 작은아이한테 건넨다. 보라야, 너희 누나처럼 이렇게 예쁘게 꽃잎 따서 건네는 누나가 또 있을까. 예쁘고 좋은 누나이지?

 

-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인다. 더 뛰면서 놀게 한다.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된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듯하다. 자, 아이들아, 집으로 가 볼까.

 

- 미후마을부터 청룡마을까지는 오르막. 처음에 만나는 오르막은 괜찮다. 처음에는 다리힘이 있으니 괜찮고, 이 다음에는 내리막 되니 홀가분하다. 도화면 보건소에서 도화고등학교 쪽으로 꺾는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공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때인 듯하다. 군내버스 둘레로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렸다. 너희들은 줄 서서 타는 줄도 모르니. 학교나 집에서 줄 서서 타라고 안 배우니. 자전거가 버스 왼쪽으로 크게 돌아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아이들이 자전거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찻길에서 옆도 안 보고 그냥 뛰어든다. 자전거를 재빨리 멈춘다. 끼익 소리가 나니 그제서야 자전거 쪽을 쳐다본다. 참 철이 없구나. 찻길에서건 골목길에서건 사람이 먼저이기는 한데, 너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일은 안 좋단다. 버스 타는 모습이고, 찻길에서 옆도 안 보고 그냥 건너는 모습이고,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까지 되는 동안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리송하다.

 

- 다시 동호덕마을 옆을 스칠 때에, 찻길 말고 논둑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동호덕마을부터 논둑길을 달려 신기마을에 이를 무렵, 아까 그 군내버스 이제서야 우리 옆으로 지나간다. 고등학교 아이들 태우는 데에 그만큼 시간 많이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디까지 군내버스 타고 가려나. 꽤 먼 데에서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니나. 자전거를 타고 집과 학교 사이 오가는 아이는 몇쯤 될까. 아이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면서, 군내버스 타고 집과 학교 사이 오가는 동안 ‘이웃마을 모습’ 얼마나 느끼거나 살피면서 하루를 누릴까. 봄빛 어여쁜 고흥 시골마을인 줄 군내버스에서 창밖 바라보며 헤아리려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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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5.2.
 : 예쁜 하늘

 


- 하늘이 예쁘다. 삼월에는 하늘이 포근하다고 느꼈고, 사월에는 하늘이 맑다고 느꼈는데, 오월에는 하늘이 참 예쁘다. 유월은 하늘이 싱그럽다고 느끼겠지. 칠월에는 하늘이 파랗다고 느끼겠지. 팔월에는 하늘이 시원하다고 느끼고, 구월에는 하늘이 높다고 느끼겠지.

 

- 하늘빛이 달마다 다르듯, 들빛도 달마다 다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빛깔은 들을 멀리 내다보며 느끼는 빛깔하고 같다. 오월은 하늘도 숲도 들도 바다도 모두 예쁘다. 오월은 냇물도 예쁘고, 개구리와 벌레 노랫소리도 예쁘고, 아이들 놀이도 예쁘다. 밭자락마다 맛난 봄풀 예쁘고, 봄꽃은 많이 떨어졌지만, 봄까지꽃이며 민들레꽃이며 꽃마리이며 오래오래 꽃내음 풍긴다. 게다가 오월에는 나무꽃이 하나둘 깨어난다. 나무꽃 일찍 떨어진 자리에는 나무열매 천천히 익는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냇물 사이에 온통 예쁘게 어우러지는 빛깔이다.

 

- 아이들 태우고 우체국으로 간다. 오월에는 바람이 싱싱 불어도 따사롭다. 사월까지는 두꺼운 겉옷 하나 늘 수레에 두면서,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잠들 때에 덮었으나, 오월부터는 작은아이 덮는 두꺼운 겉옷 치운다. 이제는 얇은 담요를 덮어도 된다.

 

- 산들보라는 자전거수레에 드러누워 잔다. 사름벼리는 샛자전거에 앉아 들과 하늘 바라보며 논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달린다. 맞바람이 불건 등바람이 불건 시원한 오월이다.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은 바람이 식힌다. 해바라기하면서 키 쑥쑥 크는 유채꽃 나부끼는 노란 물결 따라 마을 멀리 바라본다. 예쁜 하늘 등에 진 모습 좋다. 예쁜 들판 앞으로 펼쳐진 모습 좋다. 새도 벌레도 사람도 풀도 예쁜 빛 되는 봄을 누린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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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4.12.
 : 남당마을 바닷가

 


-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간다. 바닷가를 지나 멧자락 하나를 넘어가려 했지만, 바닷가 지날 무렵 시간이 퍽 흐르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오래 탄 나머지 힘들어 한다. 바닷가에서 모래그림 그리며 놀고, 바닷가를 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놀이터에서 논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 세 시간 남짓 보낸 마실길 갈무리하자니 몇 줄로 적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세 시간 남짓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끌었다. 도화면 소재지 지나 동백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2.1킬로미터 길은 맞바람 맞으면서 달리더라도 여느 때에는 15분이나 17분 즈음 걸리는데, 오늘은 자그마치 30분 넘게 걸린다. 세 시간 즈음 맞바람에 시달리며 자전거를 몰다 보니, 마지막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차라리 그냥 끌고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맞바람 치는 길에 아이들이 너무 오래 있으면 더 안 좋으리라 느껴, 끝까지 씩씩하게 발판을 밟았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바람 많이 불어 춥다는 노래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 처음 마실길 나설 적에는, 동호덕마을에서 서호덕마을로 들어서는 외길에서 상수도공사 한다며 길을 다 파헤쳐 놓아 황산마을 앞길로 빙 돌아서 가야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빙 돌아서 갔기에, 유채꽃 춤추는 들길 옆으로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진 찍을 수 있어 좋았다. 좋구나, 오늘 무언가 좋은걸 하고 생각했지.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탄 채 길가에 보이는 숫자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건 뭐야?” 하고 끝없이 물었다. 아버지는 흘끔흘끔 쳐다보며 “서른! 쉰! 천이백쉰일곱! 이천백열다섯!” 하고 알려주었다. 작은아이는 면소재지 지나 서오치마을 닿을 즈음 잠든다. 지등마을에서 자전거를 세운 뒤 하얀 담요로 지붕을 씌운다. 이동안 큰아이가 자전거를 잘 붙든다. 바람에 쓰러지지 말라며 기운차게 붙잡아 준다. 그나저나, 가는 길이 내내 맞바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등바람 되려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맞바람이라면 참 고되겠다. 가는 길이 맞바람이면 차라리 나으니, 부디 돌아오는 길은 등바람 되기를 빌며 발판을 밟는다.

 

- 이목동마을 지나 대통마을 옆 지날 무렵, 길섶에 심은 콩포기마다 하얗게 꽃 피어나는 모습 본다. 볕이 참 잘 드는 자리인가 보다. 아주 일찍 콩꽃 피어나네. 그리고, 이곳 대통마을부터 바다가 보인다. 유채꽃 흐드러진 봄길에서 바라보는 바다. 예쁘네. 이 유채꽃은 바람에 씨앗 날려 스스로 자라는 유채꽃이다. 군청에서 경관사업 한다며 뿌리도록 하는 유채씨는 유채풀 돋을 적에 잎사귀 되게 자그맣다. 꽃만 노랗게 빨리 피어나도록 하는 씨앗이지 싶다. 이와 달리 유채풀 스스로 씨앗 퍼뜨려 자라는 들유채는 잎사귀 푸짐하게 내놓는다.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유채풀 흐드러져 푸른 숨결 맛나게 먹을 수 있다. 한참 들유채잎 뜯어먹다 보면 어느새 꽃대 올라와 경관사업 유채꽃보다 먼저 꽃송이 터뜨린다.

 

- 들길을 달리면서 마늘밭 마늘냄새를 맡는다. 유채밭 유채냄새를 맡는다. 시금치밭 곁에서는 시금치냄새 맡고, 갈아엎은 흙당에서는 흙냄새 맡는다. 바닷마을에 이르니, 바야흐로 바다내음 퍼진다. 짭짜름한 맛 풍기는 바다내음이다.

 

- 여의천마을 지나고 강동마을 지난다. 이제 왼편으로는 드넓은 바다이다. 한국사람은 이 바다를 ‘남해’라고 일컫지만, 남해는 태평양 가장자리이다. 거금섬 뒤로 가없이 보이는 태평양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 바닷바람 드세게 분다.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남당마을에서 자전거 세운다.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두 아이 모두 땅 밟고 뛰게 해야겠다 생각한다. 마을 어귀 넓은 빈터에서 아이들하고 논다. 그러고 나서 바닷가로 내려간다. 돌무지를 밟고 모래밭을 밟는다. 큰아이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려다가 “이익!” 하고 웃는다. “손가락 모래는 털면 되지. 그리고 돌멩이 쥐어서 그리면 손가락에 모래 안 묻혀도 돼.” 아버지가 돌멩이 하나 쥐어 그림을 그려 보인다. “오잉!” 하더니 큰아이는 저한테 맞춤한 돌멩이 찾아 그림을 그린다. 치마 펑퍼짐하게 입은 제 모습 그린다. “아버지 봐요! 아버지 보라구요!” 다 보는걸. 다 봤어. 다음으로는 나비를 그린다. 나비를 그린 뒤에도 “나비다! 나비 그림이에요.” 하고 말한다. 이윽고 꽃을 그린다. 모래밭을 넉넉히 채우는 커다란 꽃 그린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든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든, 너는 참 큼지막하게 시원스레 그리는구나. 작은아이가 누나 곁에 달라붙으며 저도 그림 그리는 시늉 보여준다.

 

- 오늘 별학산 너머 풍양중학교까지 가 볼까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맞바람 맞으며 멧길 넘자면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겠다고 느낀다. 더 달리지 말자, 여기까지 잘 왔구나 여기고 돌아가자. 자전거머리 돌리려는데, 풍남초등학교 앞에서 큰아이가 묻는다. “저기 저거 뭐야?” “뭐?” “저기. 앞으로 가 봐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놀이기구를 보았다. “나 저거 어제 탄 적 있는데. 저거 타고 싶어.” ‘어제’가 아니라 ‘예전’이겠지. 그래, 놀이터에서 놀자.

 

- 두 아이는 이것저것 만지고 타고 뛰고 뒹군다. 무엇보다 미끄럼틀이 가장 재미난 듯싶다.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가고 되풀이한다. 작은아이는 미끄럼틀 꼭대기에 서서 먼산바라기만 한다. 두 아이는 서로 저희 깜냥껏 놀 테지.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저희 놀이를 스스로 잘 찾겠지.

 

- 삼십 분 남짓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맑은 바닷물 바라본다. 강동마을 어귀에 있는 군부대 소초를 본다. 이제 텅 빈 소초가 되었구나. 이 군부대에 있던 젊은이는 무엇을 보거나 누렸을까. 전라남도 끝자락에다가 고흥에서도 또 끝자락인 이곳까지 군부대를 마련해 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화리 이목동마을에 가화정미소가 있다. 이제는 버려진 건물이 된 정미소 같다. 정미소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자전거 달리려는데 택배 짐차가 경적 울리며 나를 부른다. 우리 집에 올 택배 있으니 가져가란다.

 

- 도화면 소재지까지 들어선다. 다리에 힘 풀리는 느낌 짙으나, 여기까지 잘 왔다. 우체국에 들러 편지 한 통 부친다. 다리를 좀 오래 쉬면서 푼다. 면소재지부터 집까지 맞바람 퍽 드셀 텐데 잘 갈 수 있겠지?

 

- 서호덕, 동호덕, 원산, 신기 지나 동백마을까지 달리는데, 맞바람 참 모질어 자꾸자꾸 자전거를 세우며 쉰다. 이러다가 안 되겠구나 싶어 노래 한 가락 뽑는다. 노래를 부르며 ‘힘들다’는 생각을 잊자. 천천히 노래를 부르고,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드디어 집 앞.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들인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밥을 안친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고무신을 빨고 발을 씻는다. 내 자전거와 큰아이 자전거를 두꺼운 천으로 씌운다. 국을 끓인다. 아이들 밥 다 먹이고 나서 아이들 씻기고, 이런 다음 나도 씻고 옷 갈아입고 빨래를 해야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 뼈마디와 털 모두 삐걱거린다고 느낀다. 밥 다 먹고 몸 잘 씻은 아이들 방바닥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면서 논다. 너희들 이래서 되겠니? 우리 다 일찍 자자. 작은아이 먼저 팔베개로 눕힌다. 큰아이가 그림책 들고 와서 “아버지가 그림책 안 읽어 줬잖아?” 하면서 읽어 달란다. 셋이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한 권 천천히 읽는다. “한 권은 이듬날 일어나서 읽자. 이제 우리 불 끄고 자자.”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자장노래 사십 분 즈음 부른다. 아이들 모두 잠든다. 나도 따라 곯아떨어진다. 조용한 밤이 흐른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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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4-14 13:20   좋아요 0 | URL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숲노래 2013-04-15 01:53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애 많이 썼습니다... -_-;;;;
에궁...
 

자전거쪽지 2013.3.24.
 : 배추꽃 구경하는 자전거

 


- 작은아이가 누나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용을 쓴다. 아직 세발자전거 발판 구를 줄 모르는 녀석이 누나처럼 두발자전거에 올라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넌 아직 키가 작아서 못 올라가잖니. 아버지가 번쩍 들어 안장에 앉혀도 그냥 앉기만 할 뿐이잖니.

 

- 바람이 퍽 불지만, 두 아이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해 볼까 생각한다. 논둑에서 흐드러지게 자라는 자운영 뜯고 유채잎 뜯으면서 나물 반찬 삼아야지 생각한다. 큰아이 앉는 샛자전거 붙고 수레 붙인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린다. 어른 하나 아이 둘, 이렇게 세 식구 다니는 자전거는 퍽 길다. 멀리서 보아도 쉬 눈에 뜨인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자전거인 만큼 눈에 잘 띄어야 좋다. 그래야 자동차들이 싱싱 달리다가도 자전거 보일 즈음 빠르기를 늦추며 천천히 달릴 테니까.

 

- 사진책도서관에 들른다. 새로 장만한 책을 책꽂이에 꽂으려 했으나, 아이들은 도서관에 안 들어오고 기다리겠단다. 그래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기만 한다. 큰아이가 수레를 붙잡으며 기다린다. 참 예쁘지. 동생 앉은 수레 뒤에서 붙잡아 주는구나. 바람이 좀 세긴 세지.

 

- 논자락 옆으로 끼는 길을 달린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작은아이는 아직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달리지 못한다. 말이 더디니까. 그래도, 자전거로 싱 하고 좀 빠르게 달리거나 울퉁불퉁한 논둑길을 달릴라치면, 두 아이 모두, 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좋아서 웃는다.

 

- 서호덕마을 끝자락 얕은 멧골 따라 진달래 피어난 빛깔을 본다. 멀리에서 보아도 곱고, 가까이에서 보아도 곱다. 바야흐로 멧골마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아리따운 봄빛을 베풀겠구나. 멧벚꽃까지 피면 더없이 예쁘겠지.

 

- 동호덕마을 지날 무렵, 배추밭에 가득한 배추마다 장다리꽃 피우는 모습 본다. 자전거를 세운다. 배추밭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바라본다. 큰아이도 아버지 따라 배추꽃을 보겠거니 했으나, 아버지를 따라오지 않고 자전거를 붙잡는다. “바람 불어 자전거 넘어지잖아요!” 괜찮아. 자전거 눕혀 놓고 꽃구경 하면 되지. 그래도, 큰아이는 자전거를 붙잡아야겠단다. 그나저나 바람이 퍽 세게 불기에 꽃구경은 살짝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배추꽃이 하루이틀 피었다 지지 않으니, 바람 잔잔한 날 맞추어 다시 배추꽃 보러 오자.

 

- 신기마을 어귀에 선 빗돌 곁에 유채꽃 터지고, 봄까지꽃 물결치며, 자운영꽃 발그레 고개 내민다. 자전거를 한 번 더 세워 꽃구경 하려 했더니,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 바람 많이 불어요. 꽃 그만 보고 집에 가요!” 하고 외친다. 그래, 아버지가 잘못했다. 그냥 집으로 가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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