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2.
 : 칼바람 이는 파란하늘

 


- 새해맞이 마실까지는 아니지만, 면소재지를 다녀오기로 한다. 우체국에 부칠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으나, 이제 자전거수레 바퀴 하나가 폭삭 주저앉아 함께 가지 못한다. 아이들 태워 자전거를 달리다가 멈추어 바람 넣고 다시 달리고 하기에는 튜브가 힘을 못 쓴다. 시골에서 자전거튜브 20인치 크기를 찾기 어려워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는다. 이 튜브가 집으로 올 때까지는 하는 수 없이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달려야 한다. 26인치 튜브는 집에 있으나 20인치 튜브는 다 떨어지고 없다. 그러게, 20인치 튜브를 다 썼으면 미리 갖춰 놓아야지, 막상 이렇게 수레를 쓸 수 없이 되고서도 한참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한테 참으로 미안하다.

 

- 집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동안 자전거 발판을 안 밟아도 될 만큼 뒷바람이 세다. 겨울바람이니, 뭍에서 바다로 가는 바람이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는 등바람 맞으면 수월하다 할 테지만,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참 고단하겠지. 참말 겨울이니까. 그예 겨울이니까. 바다로 가려는 이 바람을 어쩌겠는가. 달게 맞아야지.

 

- 바람은 무척 드센데 하늘은 아주 새파랗다. 무섭도록 몰아치는 바람 때문일까. 하늘에 구름이 거의 없는데, 구름도 이리저리 흩날리는 듯하다. 겨울들은 덩그러니 조용하면서 누런 빛이요, 하늘은 파란 물이 뚝뚝 듣는다. 우체국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는 바람은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듯이 몰아친다. 아이들 데리고 이 길을 달리면 허벅지가 터질까. 혼잣몸으로 달리는 자전거이니 그럭저럭 달리지만, 샛자전거와 수레를 달았으면, 차라리 두 다리로 걸어서 끌 때에 한결 빠를 수 있으리라. 얼굴이 얼고 이가 시리다. 귀가 떨어지는 듯하면서도 등에는 땀이 흐른다. 큰아이가 아직 세 살이던 때에 충청북도 음성 멧자락을 타고 넘던 한겨울을 떠올려 본다. 그때에는 눈이 몰아치던 때에도 자전거를 달렸고 영 도 밑으로 20도 가까이 떨어졌어도 자전거를 달렸지만, 이렇게 바람이 모질게 불지는 않았다. 겨울자전거는 온도보다 바람이로구나. 온도가 아무리 떨어져도 자전거를 탈 만하지만, 겨울바람 드세게 불면 자전거를 타기 참 어렵구나. 인천과 서울에서는 이런 바람을 쐰 적 없다. 도시에서 가끔 부는 칼바람은 태평양을 앞에 둔 바닷마을에서 부는 바람하고 댈 수 없다. 제주섬에서도 바닷마을은 이런 칼바람이 불 테지. 그러니, 제주섬 바닷마을은 집이 그렇게 낮고 지붕을 밧줄로 친친 감으며, 돌울타리를 높게 쌓을 테지. 고흥에서도 집집마다 돌울타리를 높게 쌓는 까닭이 있다. 바로 이 겨울바람을 막자면 돌울타리를 높게 쌓아야 한다. 겨우내 푸른 잎사귀 매다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가시나무를 집 둘레에 심어야 한다. 동백나무는 어여쁜 꽃을 매달기도 하지만, 푸른 잎사귀를 한가득 품기도 하니, 집집마다 이 나무를 가꾸겠구나.

 

- 이럭저럭 집에 닿는다. 숨을 돌린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살짝 선다. 사진으로만 찍는다면 겨울하늘빛 아주 곱다. 어쩌면, 하늘과 대문과 자전거만 사진으로 담을 적에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못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차디차게 얼어붙은 겨울이로군요.’ 하고 알아보겠지.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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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2.31.
 : 한 해 마무리 자전거


- 한 해를 마무리지으면서 자전거를 탄다.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에서 논다. 얘들아, 양말조차 신기 싫으니?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하나 부치려 한다. 12월 31일에 부친들 1월 1일을 지나 1월 2일이나 3일에 들어갈는지 모르나, 한 해를 넘겨 부치기보다는 한 해 마지막날에 부치고 싶다.

 

- 아이들 태울 수레는 튜브가 다 닳아서 더 태우지 못한다. 수레바퀴에 넣는 20인치 튜브를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두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가야 한다. 혼자 타는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놓으니, 작은아이가 손을 뻗어 딸랑이를 딸랑딸랑 긁으면서 논다. 재미있지? 네 아버지도 어릴 적에 자전거 딸랑이 긁는 재미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쉬잖고 딸랑이만 긁었지. 자전거를 타면 딸랑이를 일부러 긁어야 한다고 여겼달까. 자전거를 타는 자랑을 하고 싶었달까.

 

- 한겨울이더라도 바람이 잔잔하면 안 춥지만, 바람이 드세면 골이 띵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오늘은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리니 이럭저럭 낫다. 두 아이를 태우고 수레를 끌자면 한겨울에도 땀으로 온몸을 씻는다. 호덕마을 어귀에서 살짝 자전거를 세워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숨을 돌린다. 동짓날 지나면서 해가 길어졌다고 느낀다. 동짓날까지는 참말 해가 일찍 떨어졌다. 네 시 무렵만 되어도 어둑어둑했는데, 동짓날 뒤로는 네 시 언저리 되어도 해가 높다고 느낀다. 아니, 동짓날이 지나니, 마당에 넌 빨래를 네 시까지 두어도 되겠다고 느낀다.

 

- 햇볕 한 조각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해가 있어 낮이 있다. 해가 있어 풀이 자란다. 해가 있어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해가 있어 풀과 나무가 자라니,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은 해한테 무엇일까. 사람은 그저 해한테서 받기만 할까. 해는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는 사랑을 느끼면서 즐겁게 따순 볕을 베풀지는 않을까. 겨울해와 겨울바람을 잔뜩 맞아들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한테 줄 주전부리를 가방에 그득 담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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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2.22.
 : 한겨울 맨발 자전거

 


- 며칠 매섭게 된바람 불다가 문득 바람이 수그러든다 싶어, 우체국 다녀오는 마실을을 맨발 자전거로 달려 본다. 오늘은 장갑도 끼지 않는다. 양말도 따로 안 신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맨발로 놀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말릴 수 없다. 신을 꿸 적보다 맨발로 뛰놀 적에 더 즐겁다 하는데 어쩌겠는가.

 

- 고흥이니까 한겨울에도 가끔 맨발 자전거를 달릴 만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고장이라면 엄두조차 못 내리라 느낀다. 두툼한 양말에 털신을 꿰고도 발가락이 얼지 않겠는가. 두꺼운 장갑을 끼고 목도리에 귀도리까지 하더라도 다른 고장에서는 얼굴과 귀와 손이 꽁꽁 얼어붙을 테지. 겨울은 겨울다운 추위가 있어야 제빛일 텐데, 겨울 추위 살며시 수그러들 적에 포근한 날씨 흐르면서 기지개를 켜는구나 싶다.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겨울바람을 쐬고 겨울하늘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파랑을 누리면서 천천히 달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살짝 에둘러 들 한복판을 지난다. 경관사업으로 유채씨 뿌린 논 옆에 선다. 볕이 아주 잘 드는 논은 벌써 유채잎 제법 돋았다. 맨땅에 비닐을 안 씌워도 유채풀은 이렇게 잘 돋는다. 시금치도 고흥에서는 비닐 안 씌워도 잘 돋는다. 겨울에는 그야말로 농약 칠 일조차 없다. 보리나 밀도 이렇게 잘 자랐겠지. 생각해 보면, 시골마을 경관사업을 하더라도 어디나 똑같이 유채씨만 뿌리지 말고, 자운영씨도 뿌리고, 보리씨와 밀씨도 심어, 저마다 다른 빛과 냄새와 무늬로 어우러지도록 할 수 있다. 꼭 봄에 노란 물결이 일렁여야 고운 빛 되지 않는다. 어느 논자락은 냉이밭 될 수 있고, 어느 논자락은 민들레밭 될 수 있다. 꽃다지와 꽃마리가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 올리며 한들거리는 논자락이어도 무척 곱다.

 

- 한참 유채논에서 서성거리며 겨울 풀내음 맡는데, 군내버스가 저 앞 마을길로 지나간다. 누렇게 조용한 논 사이로 달리는 군내버스이다. 군내버스를 모는 일꾼은 이 겨울에 겨울빛 한껏 누리면서 달리겠지. 자, 나도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저녁을 차리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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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3-12-24 08:15   좋아요 0 | URL
맨발...듣기만 해도 오싹오싹 추운데요~남쪽은 정말 겨울도 따뜻해요,,,전 요즘 너무 추워서 마구 웅크리고 있어요~^^

숲노래 2013-12-24 09:46   좋아요 0 | URL
웬만해서는 0도 밑으로 내려갈 일이 없거든요 ^^;
겨울에도 맨발과 맨손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참 아늑한 시골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2-24 09:40   좋아요 0 | URL
희한하게 전라도와는 별 인연없이 산 것 같아요 ~
고흥, 고즈넉하니 시골 내음 물씬 나는 곳임이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네요 ~
제가 사는 곳도 시골이지만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
저희는 크리스마스 축제라고 로타리를 중심으로 번쩍번쩍 합니다 ~ 무척 화려하게 꾸며놓았어요 ~(이 화려함 때문에 군수님 욕 좀 드셨지만 ㅋㅋ)
겨울에 타는 자전거, 왠지 청량감이 느껴지는데요 ~ 글에서 나는 청량감 때문인지도 *^^*
함께 살기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숲노래 2013-12-24 09:47   좋아요 0 | URL
읍내에 그런 나무를 군수님께서 박으셨나요?
돈 좀 쓰셨겠네요.
그러다가 다음해 군수 선거에서 떨어지실 텐데요 ㅋㅋㅋㅋㅋ

드림모노로그 님도 겨울에 한두 시간쯤
두 다리로 걸어서 마실을 해 보시거나 자전거를 타 보셔요.
다만, 한낮에~
그러면 아주 시원하고 상큼하답니다 ^^

하늘바람 2013-12-24 11:33   좋아요 0 | URL
보기만해도 마음에 창하나 생긴듯 시원한 느낌이네요

숲노래 2013-12-24 12:3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추워도 자전거를 타고 나와
들에서 하늘과 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가슴이 시원하게 뚫려요.

하늘바람 님도 아이들과
주말에 가끔
시원한 겨울들과 겨울숲 누리는
나들이 즐겨 보셔요~
 

자전거쪽지 2013.12.19.
 : 된바람 실컷

 


- 우체국으로 소포를 부치러 간다. 길을 나서려고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데, 바람이 몹시 드세다.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가 살핀다. 뭍에서 바다로 분다. 된바람이다. 오늘 된바람은 퍽 드세어 나무가 휘청휘청한다. 가는 길은 몰라도 오는 길은 몹시 애먹겠다고 느낀다. 하기는, 겨울바람이잖은가. 겨울에는 면소재지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올 적에 이 된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잖은가.

 

- 작은아이 타는 수레에 짐을 싣는다. 이동안 두 아이는 마당에 막대기와 돌을 길게 깔더니 밟기놀이를 한다. 막대기와 돌을 징검다리 삼는다. 그러니까, 마당을 넓은 냇물로 삼는달까. 물살이 거센 냇물에 막대기와 돌을 놓고 살금살금 건너는 놀이를 한다. 너희는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니.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해내니. 그러나 아이라면 이렇게 놀이넋이 있다고 느낀다. 무엇이든 놀이가 된다. 어떻게 하든 놀이로 즐긴다.

 

- 자전거를 대문 앞으로 뺀다. 큰아이가 저기 앞까지 걸어가자 한다. 대문을 닫고 저기 앞까지 걸어가니, 이제는 마을 어귀로 걸어가자 한다. 마을 어귀에서도 두 아이는 한참 콩콩대며 논다. 살짝 쉴 겨를조차 없구나. 몸에서 샘솟는 기운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 챙긴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 다 채운 그림종이꾸러미를 갖다 놓는다. 집에 그대로 둘까 하다가, 아이들 그림은 꾸준히 쌓이는데, 둘 자리가 모자란다. 서재도서관 한쪽에 아이들 그림꾸러미를 두기로 한다. 이동안 아이들은 건넛마을 도랑에서 지내는 오리를 구경하겠다고 저희끼리 달려갔다가, 오리가 없다며 쭐래쭐래 돌아온다.

 

- 면소재지로 달린다. 이동안 큰아이가 작은아이한테 말을 가르친다. “보라야, 안 추워? 보라야, 안 추우면 안 춥다고 ‘네’ 해야지.” “네!” “보라!” “보라!” “산들!” “산들!” “사름!” “사름!” “벼리!” “벼리!” “최!” “최!” “종!” “종!” “규!” “규!” “최종규!” “최종규!” “어머니!” “어머니!” “엄마!” “엄마!” “전!” “전!” “은!” “은!” “경!” “경!” “전은경!” “전은경!” “구름!” “구름!” “하늘!” “하늘!” “아버지, 보라 말 잘 해요. 누나가 하는 말 따라하네.” 큰아이가 마음에 담는 말이 입으로 살몃살몃 흐르면서 노래가 된다. 이 노래를 작은아이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받아안아 새로운 노래로 빚는다. 두 아이는 서로 아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가게에 간다. 가게 들머리에 까만 자동차가 스르르 선다. 아무 대책이 없는 자동차다. 어쩜 저렇게 가게 들머리에 바싹 자동차를 세우나. 저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 어떻게 드나들라고.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타고 가게를 찾는 다른 사람은 어쩌라고. 우체국에 갈 적에도 자동차들이 아무렇게나 서곤 한다. 그야말로 저 혼자 볼일 보겠다는 배짱이다. 한쪽으로 자동차를 붙인다든지, 사람이 지나갈 틈을 마련하지 않는다. 시골 우체국이나 가게 둘레에는 빈터가 많은데 왜 이렇게 자동차를 댈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엉터리로 자동차를 대놓고도 외려 저희가 큰소리를 내기 일쑤이다. 이런 이들을 볼 적마다 운전면허를 어떻게 주었는지 궁금하고, 자동차를 장만할 적에 ‘소양 교육’을 안 시키는지 궁금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적어도 해마다 한두 차례쯤 ‘마음가짐 교육’을 받아야 하리라 느낀다.

 

-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맞바람이 드세다. 겨울에 부는 된바람이다. 나는 앞에서 이 바람을 이럭저럭 견딘다 하지만 큰아이는 샛자전거에서 춥겠다. 동호덕마을에 이르러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들 옷깃을 여민다. 큰아이는 길가에 수두룩한 억새 가운데 한 포기를 가리키며 꺾어 달라 한다. 꺾어서 내민다. “아이, 좋아!” 하면서 콩콩 뛰는 큰아이가 사랑스럽다. 너는 한겨울에도 꽃아이답게 놀 줄 아는구나. 된바람이 모질어도 한손에 억새풀을 꼬옥 쥐고는 씩씩하게 선다.

 

-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자전거를 밟는다. 기어를 2*4까지 내리지만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겨울철 된바람이 불기 앞서까지는 이 길을 3*5로 달렸지만, 앞으로 새봄 찾아올 적까지 이렇게 된바람 실컷 먹는 자전거를 달려야 할 테지. 훅훅 숨을 몰아쉬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아주 빠르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며칠만에 본다. 해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는데, 해가 나오면 그럭저럭 따스하다.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 된바람이 더욱 모질다. 누렁조롱이를 본다. 멧비둘기를 본다. 이렇게 바람 세찬 날에 멧새는 어떻게 지낼까.

 

- 신기마을에서 동백마을로 접어드는 언덕마루에 선다. “자, 이제 다 왔구나. 잘 왔어.” “정말? 이제는 안 추워요.” 자전거는 스르르 내리막을 달려 마을로 접어든다. 아랫길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큰아이가 대문을 열어 준다. 마당에 자전거를 들인다.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큰아이는 오른손에 쥔 억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벼리야, 억새는 집 바깥에서 갖고 놀자.” “그래요? 그러면 억새 심어도 돼?” 꽃삽을 찾아 들고 마당 한쪽에 억새를 심는다고 땅을 쫀다. 이동안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누인다. 큰아이는 찬바람 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땅을 쫀다. 땀으로 범벅이 된 웃옷을 벗고 찬물로 씻는다. 씻는 김에 빨래를 한다.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어느새 큰아이는 억새를 다 심었다. 억새풀을 가운데에 박고 흙을 예쁘게 모아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도 더 다독이고, “나, 억새한테 물 주고 싶어.” 한다. 물병을 통째로 건넨다. 억새풀 둘레로 물을 졸졸 붓는다. 억새가 이리 옮겨 와서 네 손길을 받으며 곱게 서는구나. 이 억새가 씨앗을 날려 이듬해에는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억새 물결이 일렁이려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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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2.10.
 : 나도 이제 구를게요

 


- 바람이 살짝살짝 불어도 해가 걸리면 따스한 겨울이다. 남쪽 끝자락 고흥은 영 도 밑으로 거의 안 떨어지니 겨울에도 포근하지만, 다른 고장에서는 눈발이 날리겠구나 싶다. 아이들한테 옷을 두툼하게 입으라고 얘기한다. 자전거를 마당으로 꺼낸다. 안장 조임쇠를 살핀다. 안장 조임쇠 고무가 거의 다 닳았다. 아슬아슬하지만 한두 차례 더 탈 수는 있겠구나 싶다. 읍내 자전거집에 가서 안장 조임쇠를 장만해야겠는데 읍내에 나갈 일이 좀처럼 없다. 따로 일거리를 만들어서 얼른 나들이를 해야지, 이래서야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못 다니겠네.

 

-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히니 곧 잠들 낌새이다. 큰아이는 모자와 장갑을 씌우고 샛자전거에 앉힌다. 오늘은 여느 날보다 더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을 어귀 벗어날 즈음 큰아이가 “나도 이제 구를게요.” 하면서 자전거 발판을 굴러 준다. 고맙구나. 너도 제법 키가 자랐으니 발판을 구르면 참말 고맙지. 그런데 큰아이가 자전거 발판을 구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뒷거울로 살피니,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자꾸 밑으로 내려간다. 뭘 하나? 또 샛자전거에서 이래저래 노는가. 얼마 뒤 큰아이 발이 길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몸을 아래로 내리며 놀다가 그만 팔에 힘이 없어 다시 위로 못 올라오며 대롱대롱 매달린다. 서둘러 자전거를 멈춘다. 조금 큰 소리로 큰아이를 나무란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위험한 짓을 하면 되니.

 

- 꾸지람을 들은 큰아이 얼굴이 꾸물거린다.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달리는 자전거에서 놀더라도 위험하게 놀면 안 돼. 그렇게 위험하게 하다가 떨어지면 크게 다쳐. 그러니 그렇게 놀지 말라고 말하잖아. 아버지가 소리를 쳤으면 미안해.” 큰아이는 그대로 꾸무룩한 얼굴이다. “벼리야, 자전거 타지 말까? 집으로 돌아갈까? 자전거에서 시무룩한 얼굴 하면 아버지도 자전거 달리기 싫어.” 자전거를 세우고 묻지만 아무 말을 않는다. 더 말을 않고 우체국으로 간다. 우체국 앞에 선다. 자전거에 내린 큰아이가 꼼짝을 않는다. 안으려 하면 팔을 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물을 흘린다. 자전거에서 떨어질까 봐 무서웠는데 다독이지 않고 소리만 질러서 아이가 마음을 다쳤나. 한참 있다가 아이를 왼어깨로 안는다. 큰아이를 안은 채 소포꾸러미를 오른손으로 들고 들어간다. 이십 킬로그램 가까운 아이를 왼어깨에 안은 채 소포를 부치려니 두 팔이 다 저리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달걀과 김을 사는데 큰아이가 면소재지 가게에 있는 ‘폴리 장난감’을 보더니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저것 사 달라고 조른다. “벼리야, 우리는 장난감 사러 여기 나오지 않았어. 저 장난감은 안 사.” 큰아이는 큰소리를 내며 사 달라며 떼를 쓴다. 문득 저것 사 주며 달랠까 생각해 보다가, 그것과 이것은 아주 다른 일인 만큼 장난감은 장난감을 사기로 하고 나올 때에 사고, 오늘은 다른 볼일로 나온 날이니 지나치기로 한다. 벼리야, 우리 집에 있는 장난감들은 어쩌고 왜 새 장난감을 바라니.

 

-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 한 점 집으니 큰아이 마음이 조금 풀린 듯하다. 살짝 한숨을 돌린다. 작은아이는 잘 잔다. 찬바람이 불건 말건 옆으로 살짝 기댄 채 새근새근 잔다. 네 누나도 그 수레에서 참 오래 많이 잠을 잤단다.

 

- 동오치마을 지나 동호덕마을로 접어들 무렵, 큰아이가 춥다 말한다. 그러게, 옷을 제대로 챙겨 입으라 했잖니. 겨울에는 해가 올라온 낮에도 자전거를 달리면 춥단다. 내 겉옷을 벗어 큰아이 가슴에 두른다. “아버지는 어떡하고요?” “아버지는 너희 태우고 자전거 달리면 땀이 나니 괜찮아.” 반소매 차림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찬바람을 맞바람으로 받으니 땀이 흐를 겨를이 없다. 손과 팔뚝과 팔이 모두 발갛게 언다. 그래도 겨울에는 이렇게 살짝 어는 느낌이 좋아 자전거를 달린다. 아이들도 이런 찬바람 바알갛게 어는 느낌을 몸으로 받아들일까.

 

- 빈들 사이를 지나 마을에 닿는다. 큰아이더러 대문 열어 달라 말한다. 작은아이는 집에 닿을 무렵 잠에서 깬다. 더 자지 벌써 일어나니. 작은아이 수레에서 내리고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는다. 대문을 닫고 마당을 치운다. 기지개를 켠다. 후박나무한테 인사를 하고 수레에서 짐을 꺼내 방으로 들어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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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4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12-15 00:06   좋아요 0 | URL
에고고, 쑥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