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3.8.
 : 샛자전거 붙이기

 


- 샛자전거를 붙이기로 한다. 아무래도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수레에 나란히 태우기에는 너무 좁다. 둘 다 버겁다. 큰아이는 곧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하겠구나 싶어, 큰아이가 혼자 자전거 다니는 삶에 익숙할 수 있게끔 ‘연습’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웃한테서 얻은 외발 샛자전거를 내 자전거 뒤에 붙인다. 처음 이 샛자전거를 받을 적에는 큰아이 키보다 많이 컸지만, 이제는 발끝이 닿는다. 아니,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다닐 만하다. 안장을 낮추고 손잡이도 내리니 이만큼 된다. 큰아이가 앞으로 십 센티미터쯤 더 크면 아버지 뒤에서 함께 발판을 구를 수 있겠지. 큰아이가 샛자전거 발판을 구르며 함께 달려 준다면 한결 수월하게 수레를 끌 수 있을 테고.

 

- 샛자전거이지만, 튼튼해야 하는 만큼 무게가 제법 나간다. 내 자전거와 샛자전거에다가 수레를 붙이니 참말 묵직하다. 그래도 뭐, 잘 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힘은 더 들 테지만, 잘 달리리라 생각한다.

 

- 처음 수레를 붙이고 달리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에는 수레 무게라든지 여러모로 낯설어서 퍽 고되었지만, 얼마 안 지나 익숙하게 달렸다. 이제는 수레 안 붙이는 자전거가 외려 안 익숙하기도 하다. 내 자전거 발구르기는 수레 붙인 흐름에 맞추어 굳었다고 할 만하다. 아주 가끔 수레를 떼고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리고 보면, 자전거질이 너무 가볍다고 할까. 거의 날듯이 자전거질을 한달까.

 

- 도서관에 들러 책을 가져오려 하는 동안 큰아이가 자전거를 붙잡아 준다. 착하고 씩씩하며 대견하다. 작은아이는 곧 잠든다. 작은아이는 느긋하게 잘 잔다. 큰아이는 아아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좋아한다. 쉬지 않고 조잘조잘 쫑알쫑알 떠든다. 수레에 앉을 때하고, 샛자전거에 앉아 달릴 때에는 사뭇 다르지. 쐬는 바람이 다르고, 바라보는 둘레 모습이 다르다.

 

- 우체국까지 샛자전거 끌고 다녀온다. 다른 때보다 땀이 더 난다. 작은아이는 집에 닿으니 잠에서 깬다. 더 자도 될 텐데. 자전거 바람넣개를 들고 논다. 재미있니?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 자전거를 타며 마당에서 논다. 샛자전거와 수레 붙인 자전거를 집 한쪽 벽에 기댄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가니까, 이렇게 샛자전거랑 수레 붙인 채 고이 둘 수 있구나. 좋다. 참 좋다. 몸이 뻑적지근하지만 다 좋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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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3.15.
 : 풀 뜯는 자전거

 


- 봄을 맞이한 시골에서는 풀 뜯는 재미가 한창이다. 집에서도 집 둘레에서도 마을에서도 온갖 풀이 돋으며 비로소 살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봄이란 모든 숨결 푸르고 싱그럽게 깨어나면서 아름답다.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풀을 뜯고, 아이들과 함께 집 언저리에서 풀을 뜯는다. 네 식구 다 먹지 못할 만큼 풀이 많이 자란다. 밭자락에 따로 푸성귀를 심지 않아도 갖가지 풀이 골고루 자란다. 자운영은 우리 집에서는 안 자라기에, 자전거마실 다녀오는 길에 잔뜩 뜯는다. 유채잎도 뜯고 갓잎도 뜯는다. 갓잎은 우리 집에도 많아 예쁘게 생긴 잎만 조금 뜯는다.

 

- 풀을 뜯다 보면 손에 풀내음 짙게 밴다. 갓 뜯은 풀을 입에 넣어 살살 씹으면,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꽃봉오리도 먹고 몽우리도 먹는다. 꽃을 먹으며 꽃내음과 꽃숨이 내 몸으로 스민다. 꽃을 먹을 적에는 스스로 꽃과 같은 넋과 얼이 되자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꽃을 줄 적에는 아이들 마음마다 새삼스러운 봄꽃 기운 살아나리라 생각한다. 큰아이는 스스로 씹어서 먹고, 작은아이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밥과 함께 씹어서 먹인다.

 

- 풀을 먹고 보면 사람으로서 굳이 다른 어떤 것을 더 먹어야 하지 않으리라 느낀다. 다만, 겨울에는 풀을 먹지 못하니까, 옛날 사람들은 이 좋은 풀들을 잘 건사해서 겨울나기를 했겠지. 겨울나기를 할 만한 뿌리푸성귀를 골고루 심어 흙땅에 묻으며 지냈겠지. 봄부터 가을까지는 냉장고 없어도 그날그날 풀을 뜯어 그날그날 먹으며 몸을 살찌웠겠지. 도시에서 제아무리 유기농 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집과 마을 둘레에서 스스로 돋는 풀을 뜯어서 먹는 만큼 되기는 어렵다고 올봄에도 다시금 느낀다. 참말 누구나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먹을거리 걱정 없을 텐데. 돈버는 근심이 있다 하지만, 돈을 벌어 먹을거리 장만하는 흐름인 줄 깨달으면, 애써 돈벌이에 근심하기보다 즐겁게 삶을 누리며 먹는 밥을 살피고 지키면 한결 즐거우리라 느낀다.

 

- 작은자전거 바구니에 풀을 뜯어 담는다. 이내 바구니가 넘친다. 등에 멘 가방으로 옮긴다. 한 꾸러미 된다. 시간을 보니 풀 뜯는다며 삼십 분 훌쩍 지나갔다. 와, 시간도 잘 가고 즐거운 놀이가 되는 풀뜯기이네. 내 좋은 이웃들 모두 풀 뜯는 기쁨과 웃음 실컷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마을 어르신들 농약하고 조금씩 헤어지면서 논둑 밭둑 어디에서나 풀 마음껏 뜯을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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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3.4.
 : 걸어야 비로소 아는 길

 


- 몇 해 앞서부터 걷기가 널리 퍼진다. 마치 ‘유행’이라 할 만하다. 왜 걷기가 바람 불듯 널리 퍼질까. 걷기란 더없이 마땅한 삶인데, 왜 걷기 바람이 불면서 이 길 저 길 새 이름이 붙을까. 나는 모른다. 사람들이 얼마나 안 걷는지, 참말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남들이야 안 걷든 걷든,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늘 걸으며 살아가니까. 나는 내 삶을 누릴 사람이지, 남들 삶을 기웃거릴 겨를은 없으니까. 이웃에서는 우리 아이들 아주 어릴 적에 업거나 안고 다니지 말라 했다. 아이들 아기수레에 태워 끌라 하면서, 유모차 선물해 주겠다던 사람 꽤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기수레 안 받았다. 왜냐하면, 아기는 업히거나 안기며 다녀야 마땅하다. 아기들은 제 어버이 품에서 따스한 사랑 받으면서 자라고, 이렇게 자라다가 스스로 두 다리를 땅에 디디고 걸을 수 있으니까. 조금 지켜보면 되고, 조금 안으면 된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돌을 지나고부터 천천히 걸었고, 이제 모두 나비처럼 훨훨 날듯 달리기 잘 한다. 그리고, 여섯 살 큰아이 세 살 작은아이 되어도 곧잘 안긴다. 안기기 좋아하고 걷기 좋아하며 달리기 좋아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커야 즐겁고 아름다이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곧, 어른도 누구나 두 다리를 땅에 대고 걸을 때에 삶이 빛난다고 느낀다. 때때로 자전거를 몰 수 있지. 때로는 자동차를 얻어 탈 수 있지. 그러나, 으레 타는 자동차여서는 아니라고 느낀다. 으레 자동차를 몰며 어디를 다닐 때에는 삶이 아니라고 느낀다. 삶은 삶이니까. 자동차를 타 보아라. 겨울이 겨울다운 줄 느끼는가. 자동차에서 봄을 봄인 줄 느끼는가. 자동차를 몰면 여름과 가을이 맛 다르고 냄새 다르며 빛깔 다른 줄 못 느낀다. 자동차에서 내려야,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야 비로소 날씨와 철을 느낀다.

 

-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오늘은 제법 멀리 마실 가기로 생각한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자마자 곧 잠든다. 많이 졸렸구나. 새근새근 자는 작은아이 곁에서 큰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힘 내라는 노래로구나. 아버지는 동백마을 지나 봉서마을에서 느티나무 곁을 스쳐 신촌마을 고갯길을 달린다. 고갯길 달리다가 더는 발판을 못 밟겠다 싶어 자전거에서 내린다. 가파른 고갯길을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끈다. 우와, 되게 가파르구나. 혼자 오면 이 고갯길 자전거로 넘을 만할까.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힘들어요? 아버지 왜 힘들어요?” 쳇, 네가 자전거를 몰아 보렴. 쳇, 네가 스스로 이 고갯길을 걸어 보렴. 아버지는 너희랑 자전거를 끌고 이 고갯길을 오르잖니.

 

- 드디어 고갯마루에 오른다. 뒤를 돌아본다. 우리 동백마을 멀리 보인다. 참 예쁘구나. 고갯마루에 오르니 시원스레 부는 바람 맛나구나. 이제 자전거에 오른다. 청룡마을에 닿는다. 청룡마을은 군내버스 들어오는 막바지 자리이다. 군내버스가 이리 들어와서 한 바퀴 돌고는 빙 돌아 나갈 테지. 멧기슭 언저리에 곱다시 앉은 청룡마을은 햇살 포근하게 들어오며 밝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숲과 들과 나무와 풀과 나비와 새와 벌레와 개구리와 멧짐승과 뛰놀며 놀았겠지. 이제 시골마을에는 할매 할배만 남고 아이와 젊은이와 푸름이 모두 도시로 나간다. 이제 시골마을은 어디나 한갓지고 조용하다. 할매와 할배만 남는 시골은 어르신들 힘이 모자라 두레나 울력 하기는 힘들고, 경운기 돌려 농약 뿌려야 이럭저럭 푸성귀 거둘 만하다. 사람들 먹는 모든 풀에 농약 기운 스밀밖에 없다. 사람들 모두 시골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며 돈으로 푸성귀를 사다 먹으니,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에 기대어 푸성귀 내다 팔밖에 없다.

 

- 미후마을 지나고 장촌마을 지난다. 도화면에도 신촌마을 있고, 포두면에도 신촌마을 있다. 그냥 ‘새마을’이란 뜻이겠지. ‘샛골’이었을 수 있고. 샛골이란 사잇골짜기일 수 있고, 새로운 고을일 수 있다.

 

- 마을길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지만, 고흥 큰길에는 자동차 뜸하다. 이렇게 좋은 길은 자동차로 달리기보다 자전거로 달려야 제맛이요, 자전거 또한 내려놓고 두 다리로 걸어야 제맛이다. 참말, 옛날 사람들은 십 리이건 이십 리이건 걸어서 다녔다. 걸어서 다닌 흙길이요, 걸어서 다니기에 마을길이고, 걸어서 다니기에 아름다운 삶길이었으라 생각한다. 걸으며 멧새 노래를 듣는다. 걸으며 상큼한 바람을 마신다. 걸으며 숲자락 푸른 빛깔 바라본다. 걸으며 구름빛 느끼고 햇살 포근한 숨결 들이켠다.

 

- 외초마을 지나며 저 멀리 해창벌을 본다. 해창벌이 들판 아닌 갯벌이던 모습을 나는 모른다. 나는 해창이 들판이 된 뒤에 고흥으로 들어와서 살아가니까. 저 해창이 갯벌이면서 바닷물 찰랑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그려 본다. 해창 바닷가라면, 해창 갯벌이라면, 이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데였을까. 지구별에 이토록 아름다운 갯벌 있는 나라는 얼마나 있을까. 한국사람은 땅을 아쉽게 여기며 갯벌을 메꾸어 논으로 바꾸었지만, 조금 더 슬기롭게 살폈으면, 갯벌이 있기에 들과 숲이 더 푸르게 숨을 쉬고, 사람들 마음도 더 환하게 트일 수 있는 줄 깨달았으리라. 애써 메꾼 갯벌에 다시 바닷물 들여 갯벌로 돌아가도록 하는 독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 한국 공무원과 정치꾼이 ‘갯벌 망가뜨려 만든 논’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가를 알아차리기를 빈다. 참말 그렇잖은가. 한국에서 쌀이 남아돌지 않으나, 정치꾼은 쌀 남아돈다는 이야기 퍼뜨리면서 논에 나락 심지 말라고 한다. 직불제이니 보전금이니 하면서 논농사 짓지 말란다. 그런데 갯벌은 왜 메꾸었는가. 갯벌이 갯벌 그대로 있으면 바지락이든 꼬막이든 낙지이든 게이든 얼마나 많이 나왔겠는가. 그뿐인가. 이 갯벌을 보러 나라밖에서도 찾아오는데, 시골을 시골답게 그대로 두었으면, 고흥이라는 데는 얼마나 손꼽히는 아름다운 터전이 되었겠는가. 아이들하고 못물 청둥오리떼 바라보면서 한참 생각에 잠긴다.

 

-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이제 봉암마을에 닿는다. 봉암마을에서 살짝 숨을 돌린다. 등판은 온통 땀이다. 웃옷 한 벌 벗고 반소매 차림으로 달렸는데에도 땀투성이가 된다. 사십 분 남짓 쉬는데에도 땀은 마르지 않는다. 자전거수레에 오래 앉았던 아이들은 콩콩 뛰면서 다리를 푼다. 아이들은 걸음걸이마다 날갯짓 같다. 너희는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예쁘게 노니? 그래,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는 너희와 똑같은 어여쁜 하늘사람이었지. 이제 어른 되어 너희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다니지만, 아마 아직 내 가슴에는 하늘사람 자취가 있으리라 생각해. 나도 하늘사람이니 너희 하늘사람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 시골길 달리며 웃을 수 있겠지.

 

- 집에서 나서며 봉암마을까지 오는 동안 맞바람이더니, 봉암마을에서 다시 동백마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다. 드세게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낑낑거리며 쳇쳇 하고 왼다. 바람아, 너 왜 이러니. 오는 길이든 가는 길이든, 한쪽은 등바람 불어 주어야 하지 않니.

 

- 다시 장촌마을에 닿을 무렵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자꾸 “아버지는 걷고, 나는 달리고 싶어.” 하고 말한다. 아이는 이제 자전거수레에 앉아 함께 달리기보다, 아이 스스로 달리고 싶단다. 그래, 너희도 두 다리를 써야지. 쉬자. 시골이라지만, 빈 들판이 없다. 참말 빈 들판 없이 모두 논이고 밭이다. 아무 땅에나 함부로 들어가서 앉거나 뒹굴 수 없다. 이 나라 한국에는 도시에도 나무와 풀이 있는 공원이 거의 없지만, 시골에도 나무와 풀 즐기는 한갓진 공원이 없다. 도시에도 숲이 없고 시골에도 숲이 없달까. 멧자락 높이높이 나무 밀어 계단밭을 만들고야 만다.

 

- 십오 분 남짓 쉬다가 일어선다. 바람이 자꾸 드세게 불어 안 되겠다. 아이들을 수레에 앉히고 자전거를 달린다. 맞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청룡마을 어귀에 닿고, 오르막을 오르다가 자전거에서 내린다. 길가에 스스로 뿌리내리는 유채풀 몇 포기 뜯는다. 맛나게 먹는다. 목마름이 가신다. 좋다. 들풀 먹으며 자전거 달리니 좋다.

 

- 고갯마루에 닿는다. 숨을 고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참말 스스로 잘 안 걷기에 걷기마실이 유행이 되는구나 싶다. 유행이라도 되어 걸어야 할 만큼, 이제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안 걷는다. 모두들 자가용을 몰거나 경운기를 몬다. 기름 먹는 기계를 몰며, 다리를 안 쓴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십 분이나 이십 분쯤 걸어서 다니는 사람 드물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걸어서 다니는 사람 만나기 어렵다. 사람들 스스로 들바람을 느끼지 않으니, 누군가 들바람을 이야기하더라도 못 알아듣는다. 사람들 스스로 꽃내음을 느끼지 않으니, 누군가 꽃내음을 속삭이더라도 못 알아챈다. 사진기 들이밀어 이쁘장하게 꽃 사진 찍을 줄은 알아도, 눈으로 바라보고 코로 맡으며 혀로 느끼는 들꽃과 들풀을 모르고야 만다. 걸어야 아는 길일 텐데, 걷지 않으니 길을 모른다. 걸으며 다리를 살리고 살찌울 텐데, 걷지 않으니 다리를 살리지 못하고 살찌우지 못한다.

 

- 아이들이 자전거수레에서 다시 노래를 부른다. 그래, 너희 노랫소리 참 듣기 좋아. 노래란 참 재미있고 신나는구나. 아버지도 노래를 부를게. 아버지도 자전거 몰며 노래를 부르마. 우리 이 길을 함께 누리면서 노래로 마을과 보금자리를 한껏 북돋우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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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3-06 19:40   좋아요 0 | URL
앗, 제 로망을 이미 실생활로 접하고 계시다닛, 부럽습니다.
(남편도 이렇게 육아일기 쓰면 참 좋겠는데 전혀 관심이 없네요 ㅜㅠ)

숲노래 2013-03-07 14:4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부터 쓰라고 하셔요~~~ ^^
 

자전거쪽지 2013.2.25.
 : 보름달, 구름, 겨울 끝자락

 


- 큰보름 지나간 이듬날 저녁, 자전거를 타고 살짝 마실을 해 볼까 생각한다. 저녁을 먹고 난 아이들은 끝방과 부엌 사이를 콩콩콩 소리를 내며 달리고 논다. 이제 겨울 끝자락이라 대청마루에서 뛰어놀아도 춥지 않다. 두 아이 모두 맨발로 논다. 양말 신고 놀면 발바닥에 땀이 난다며, 아이들은 스스로 양말을 벗어던진다.

 

- 아이들이 제법 뛰어놀았구나 싶을 무렵, 작은아이 옷을 입힌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을 찾아 입는다. 여섯 살 큰아이는 나날이 말이 늘고, 손힘을 기르며, 예쁘게 자란다. 세 살 작은아이도 숟가락질 늘고, 젓가락질 곧 할 테며, 말문을 차츰 조잘조잘 트겠지.

 

-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큰아이는 곧 외발자전거를 붙여 따로 앉혀야지 싶다. 외발자전거를 붙이면 씩씩하게 잘 달릴 텐데, 이렇게 달리다가도 힘들면 수레에 앉아서 쉬려 하겠지.

 

- 보름달 환한 밤길을 달린다. 수레에 앉은 두 아이가 노래를 한다. 큰아이가 달을 보더니, “구름이 달을 감싸 주네.” 하고 외친다. 그래, 보름달 곁으로 밤구름이 흐르는구나.

 

- 바람이 없다. 자전거 발판을 천천히 구른다. 자전거 구르는 소리와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 빼고는 아주 고요하다. 보름달이 밝기에 등불은 켜지 않는다. 달빛으로 길을 잘 살필 수 있다. 천천히 달리며 밤구름을 바라본다. 밤별을 바라본다. 구름 사이사이 별 몇 빛난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자전거를 달리면서 얼굴이 시리지 않는다.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리 힘들지 않다. 바람이 없는 겨울밤 자전거는 이렇게 조용하며 한갓지구나.

 

- 자전거수레가 조용하다. 슬몃슬몃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수레 한쪽에 기대 잔다. 큰보름 달빛 쐬고 밤내음 맡으면서 자는구나.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 겨울 끝자락 자전거를 헤아린다. 삐걱삐걱 자전거 움직이는 소리를 생각한다.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 무게를 느낀다. 너희 둘 태우고 자전거 달리자면 힘이 꽤 들기는 하지만, 앞으로 너희 스스로 자전거를 타는 날까지 수레에 앉혀 달릴 수 있는 하루란 참 즐겁단다. 너희도 나중에 너희 아이를 낳아 돌볼 때에는, 너희 자전거에도 이렇게 수레를 달고 너희 아이를 태워 보렴. 혼자 달릴 적하고 너희 아이를 태워 달릴 적은 사뭇 다른 즐거움이 새록새록 피어날 테니까.

 

(최종규 . 201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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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26 05:38   좋아요 0 | URL
새벽에 눈을 떴는데 유난히 방이 훤한 것 같아서 제가 스탠드를 켜놓고 잤나 살펴보았답니다.
달 때문이었어요.
달밤 마실이라...그림 같네요.

숲노래 2013-02-26 06:44   좋아요 0 | URL
오늘도 훤한 달밤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새벽부터 빗방울 듣는군요 ㅠ.ㅜ
 

자전거쪽지 2013.2.18.
 : 내가 바라보는 길

 


- 우체국에 가려고 짐을 꾸리니,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같이 가겠다며 부산을 떤다. 자전거수레를 마당에 내리고, 소포꾸러미를 가방에 담는다. 지난 설을 앞두고 몹시 추웠을 적에는 뒷멈추개가 얼었다. 오늘은 그리 춥지 않으니 뒷멈추개도 앞멈추개도 잘 듣는다. 꽁꽁 얼어붙는 날에는 자전거도 몸도 언다고 새삼스레 느꼈는데, 춥거나 덥거나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즐겁게 따라다닌다.

 

- 동백마을을 벗어난 뒤 신기마을로 접어든다. 천등산 어귀까지 갔다가 신호리 돌기둥 옆을 따라 논둑길을 달린다. 비스듬히 내리막길 이어지는 논둑길에서 큰아이가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덜컹거리는 논둑길을 달리면 판판한 찻길을 달릴 때보다 한결 재미나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적에 덜컹덜컹 달리는 길에서 콩콩 튀는 느낌이 재미났다고 여겼다. 들새 노랫소리 고즈넉히 퍼지는 들길은 온통 우리 차지가 된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면서 봄을 앞둔 겨울들 마지막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는다.

 

- 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싯누렇던 들판이 푸릇푸릇 빛난다. 머지않아 온 들판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릴 테지.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다가 노란 물결이 넘실거릴 테고, 다시금 짙누런 물누리가 이루어지다가는 촘촘히 모가 들어서리라. 나도 아이들도 겨울들을 한껏 누리고서 봄들을 맞이한다. 봄들을 맞이하고 나면 여름들을 맞이할 테고, 가을들을 새롭게 맞이하리라. 봄이 가기에 여름이 오고, 겨울이 가니까 봄이 온다. 바람내음이 다르고, 바람맛이 새롭다. 구름결이 다르고, 구름빛이 새롭다.

 

- 우체국에서 소포꾸러미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 둘 모두 조용하다. 둘 모두 졸린가. 큰아이는 꾸벅꾸벅 졸며 수레에 머리를 기댄다. 작은아이도 머리를 수레에 기대며 조용하다. 작은아이는 낮잠 한숨 잤지만 큰아이는 오늘도 낮잠을 거른다. 큰아이가 낮잠 자기를 바라며 천천히 달린다. 그러나 집에 닿으니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조금 쉬었다가 놀지. 낮잠 없이 하루 내내 놀면 힘들지 않니.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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