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0.11.
 : 꽃을 든 어린이와 자전거

 


- 아이들 어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간다. 꽃을 보러 가자며 두 아이를 이끌고 천천히 걷는다. 논밭이 따로 없는 우리 식구는 가을에도 느긋하게 마실을 다닌다. 논밭을 일구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가을걷이와 나락 말리기로 바쁘다. 모두들 바쁘게 일손을 놀리면서 논둑이나 밭둑에서 흐드러지는 꽃을 바라보실까. 꽃내음을 함께 맡으며 나락내음을 맡으실까. 이렇게 한가을에 비지땀 쏟으며 온몸이 나락먼지로 뒤덮이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먹는 쌀이 태어난다.

 

- 아이들 어머니는 여느 코스모스보다 훨씬 큰 꽃이 잔뜩 핀 곳에서 멈춘다. 아이들은 꽃을 보랴 논둑길을 달리랴 바쁘다. 큰아이는 꽃이 예쁘다고 만지작거리다가 잎사귀 하나를 그만 똑 끊는다. 꽃아, 미안해, 하면서 떨어진 잎사귀를 꽃잎 위쪽에 얹는다. 한참 놀고 나서 자전거를 태운다. 작은아이는 낮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노는 터라 자전거를 태우면 곧 잠들리라 생각했다. 참말, 자전거에 태우고 1분을 채 달리지 않았는데 작은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면 소재지까지 달렸다가 돌아오려 했는데, 이래서는 작은아이를 데려가면 안 되겠구나 싶다.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간다.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작은아이를 안는다. 천천히 잠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대고는 이불을 덮는다. 잘 놀고 잘 뛰고 잘 보낸 하루이니? 이따 저녁 먹을 무렵 배고파서 일어나겠지? 그때까지 새근새근 잘 잠들어 주렴.

 

- 큰아이하고 면내로 간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텃밭 돗나물이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제 텃밭에서 돗나물 뜯어서 먹는 기쁨은 거의 끝난 듯하다. 그래도 집 둘레로 가을쑥은 씩씩하게 자란다. 가을쑥은 날마다 내키는 대로 뜯어서 여러 푸성귀하고 무쳐서 먹는다. 쑥은 날쑥으로 먹을 때에 가장 향긋하면서 고소하리라 생각한다. 이러저러해서 면내 가게에서 시금치랑 푸성귀 한두 가지를 장만한다. 면내 가게에는 푸성귀가 몇 가지 없다. 이듬날 읍내로 가서 큰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푸성귀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할 적까지 먹을 푸성귀는 모두 이웃 시골마을 비닐집에서 거둔 푸성귀일 테지. 맨땅에서 거두는 푸성귀는 이제 마지막일까. 올가을까지 기쁘게 즐겼으니 이듬해 봄을 다시금 기쁘게 기다리자.

 

- 큰아이는 머리에 꽃을 꽂는다. 꽃을 들다가 꽂다가 꽃순이가 되며 달린다. 꽃순이를 태운 자전거는 꽃자전거가 된다. 꽃자전거는 꽃길을 달린다. 이제 가을걷이에 바쁜 할머니 할아버지는 논둑이나 밭둑 풀을 베지 않는다. 논둑이나 밭둑에서는 가을꽃이 흐드러진다. 내가 이름을 아는 꽃, 내가 이름을 모르는 꽃, 누군가 이름을 붙인 꽃, 누군가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음직한 꽃, 온갖 꽃이 저희 마음껏 자라며 한들거린다. 꽃내음을 듬뿍 마시면서 시골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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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9.22.
 :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마실

 


- 포두면 남성리 이웃마을로 마실을 가기로 한다. 작은아이까지 함께 갈까 싶다가, 작은아이는 낮에 이마가 조금 뜨거웠고, 한참 낮잠을 자느라, 큰아이만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리기로 한다.

 

- 큰아이랑 둘이서 자전거를 달린다. 퍽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앞서까지 이렇게 늘 둘이서 자전거를 달렸다. 큰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는데, 작은아이는 돌 언저리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다. 오늘은 작은아이가 없어 한결 가벼운 자전거는 아니다. 이웃마을에 마실을 가느라 실은 책짐 무게가 제법 되어 여느 때처럼 두 아이를 실은 무게인 자전거이다. 발포 바닷가를 지나는 오르내리막을 달린다. 두 아이를 태우며 이만 한 힘으로 이만 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포를 지나 덕산마을로 넘어서려는데 고갯마루가 퍽 가파르다. 높이는 그리 안 높지만,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너머 옆마을인 만큼, 고갯마루가 두 마을을 가른다. 이곳에 이러한 찻길이 없었을 옛날에는 두 마을이 어떻게 오갔을까. 아마 멧골을 타면서 오갔겠지. 꽤 가파른 멧골을 지게를 짊어지며 오갔겠지.

 

- 덕산마을을 지나며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아도 예쁜 마을이구나 싶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내려서야 비로소 얼마나 예쁜가를 알 만하겠다고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마을이든 이웃한 마을이든, 우리 보금자리가 어떤 모습이요 빛깔이며 내음인가를 헤아리자면, 두 다리로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안아야지 싶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본다.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쬔다. 이러는 동안 천천히 마을과 숲과 삶과 꿈을 읽는다.

 

- 자전거에서 내려 살짝 다리쉼을 한 다음 더 달린다. 익금 나루터 옆을 지난다. 나루터 옆이니 또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옆인데, 이곳에서 남성리로 넘어서는 고갯마루를 새삼스레 올라야 한다. 다섯 살 큰아이가 뒤에서 외친다. “아버지 힘내세요!” 그래, 힘낼게. 기운내서 이 고개를 넘을게.

 

- 땀 펑펑 흘리며 고갯마루를 다 넘는다. 논에 물을 대는 못 옆으로 난 논길을 달린다. 누렇게 익은 논 사이를 지나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거쳐 이웃집에 닿는다. 이곳은 그러께 즈음 고흥에 자리잡은 이웃집이다. 오늘 이곳에서 모임이 있기에 찾아온다. 나를 뺀 모든 분들은 자가용을 몰고 왔다. 아마 다들 생각하리라. 시골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 자가용 있으면 가뿐하겠지. 자가용 있기에 제법 먼 데도 다니겠지. 시골에서는 두어 시간에 한 차례 군내버스 지나가는데, 자가용 있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다닐 만하겠지. 그런데, 다들 자가용을 굴리려 하니까 군내버스도 훨씬 적게 다니지 않을까. 모두들 자가용을 몰려고 하니까 자꾸자꾸 새 찻길이 늘고, 숲이 줄며, 우리 삶터가 메마르고 말지 않을까. 저마다 자가용을 한두 대쯤 굴리니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와 흙땅이 사라지는 셈 아닌가.

 

- 모임은 밤이 깊을수록 더 무르익는다. 나는 큰아이를 재워야 하기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찍 빠져나온다. 천천히 까매지는 하늘을 본다. 달이 뜬다. 반달이다. 고운 반달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덮는다. 뒷등만 켜고 앞등은 안 켠다. 저 멀리 앞에서 마주 달리는 자동차 보일 때에만 앞등을 켠다. 등불 하나 없는 호젓한 숲속 시골길을 불빛 없이 달리고 싶다. 꾸벅꾸벅 조는 큰아이가 이 호젓한 시골 저녁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빈다. 달빛에 기대고 별빛을 바라보며 집에 닿는다. 큰아이는 아주 곯아떨어졌다.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땀투성이 몸을 씻는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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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9.8.
 : 한복 입은 자전거

 


- 큰아이가 갑작스레 한복이 입고 싶다 말한다. 따로 명절에만 입을 옷이 아니기에 꺼내 준다. 예쁜 치마를 입었다며 좋아하는 아이는 홀가분히 뛰어놀기에는 그닥 안 좋은 치마저고리를 입고도 잘 논다. 우체국을 들러야 하기에 자전거를 마당에 꺼낸다. 두 아이 모두 수레에 타려고 수레 앞에 선다. 내가 태우지 않아도 작은아이조차 스스로 수레에 잘 올라탄다. 바람이 쌀쌀하기에 담요 한 장씩 건넨다. 집을 나서니 들판마다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천천히 익는 곡식을 요리조리 콕콕 쪼아서 먹을까. 아직 덜 여물었어도 참새한테는 맛난 밥이 될까. 몇 백인지 모를 만큼 많은 참새들이 한꺼번에 파르르 날아오르니 두 아이 모두 입을 벌리며 바라본다. 면내 가는 길에 마을 어르신들이 길바닥에 깔아 놓고 경운기로 밟으며 털던 콩이 조금 흩어졌다. 몇 알을 주워 아이들 손에 얹는다. 자, 콩이야, 너희가 잘 만지며 콩을 느껴 봐. “이거 집에 가져가서 밥할 때에 넣으면 맛있게 먹어요.” 하고 말한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서 가게에 들른다. 가게에 어떤 외국사람 부부가 들르는데, 큰아이 입은 한복이 예뻐 보이는지 자꾸자꾸 사진을 찍는다. 이 시골 깊디깊은 마을 가게에 어인 외국사람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러시아 기술자 부부’이다. 고흥 나로섬에 있는 우주기지에서 또 우주선을 쏘느니 마느니 한다면서 러시아 기술자들이 잔뜩 왔단다. 러시아 기술자 부부는 읍내 여관이나 면내 여관 같은 데에서 머문다고 한다. 저녁에 일을 마치면 시골마을을 두루 돌아다닌단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면, 외국사람한테도 한국땅에서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요, 한국사람 스스로도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리라.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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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8.31.
 : 자전거 손질하러 읍내마실

 


- 시골마을에서 자전거를 손질하기는 몹시 힘들다. 좀 깊이 들어간 시골자락이라면 더 힘들다. 스스로 손질하고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내 자전거를 손질하러 읍내 자전거집으로 가 보기로 한다. 갈아야 할 부속이 있고, 두 아이를 태우고 읍내까지 15킬로미터 길을 달려 버릇해야, 고흥 이곳저곳 신나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한여름도 늦여름도 모두 저무는 가을 어귀이기에 날이 좋다.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이런 날은 삼십 킬로미터쯤 달려도 괜찮겠지. 물과 먹을거리를 챙긴다. 수레는 여러 가지 챙길 자리가 넉넉해 좋다. 다만, 아이 둘과 수레와 짐을 기운차게 끌 수 있다면야 좋다.

 

- 첫 고개 비봉산 기슭을 오른다. 아이 둘 태우고 몇 차례 넘어서 그런지 오늘은 가뿐하다. 가뿐하네, 하고 생각하면서, 나이와 자전거는 그리 대단한 일 아니라고 느낀다. 스스로 즐길 줄 아느냐가 대단한 일이 되리라.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추스르면 된다. 마음을 좋게 돌보고 몸을 사랑스레 보살피면 된다.

 

- 봉서마을과 봉동마을, 또 고당마을을 지나며 비로소 내리막이 된다. 뒷거울을 보니 작은아이가 어느새 잠들었다. 집에서 개구지게 놀더니 기운이 다한 듯하다. 너는 아버지가 고갯길을 영차영차 오르는 줄 아느냐 모르느냐.

 

- 포두면을 달린다. 내리막이 좋다. 포두면 소재지를 지나면 바야흐로 오르막이 천천히 펼쳐진다. 여기부터 읍내까지 오륙 킬로미터 비스듬히 오르막이다가는 포두면에서 고흥읍으로 바뀌는 고갯마루 언저리에서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된다. 잠든 작은아이가 안 깨기를 바라며 씩씩하게 장수마을 지나 호형마을 넘어가는 고갯마루를 달리는데 가쁜 숨이 턱에 닿는다. 그냥 더 달리느냐 쉬느냐 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살짝 쉬기로 한다. 나는 안 쉬고 고갯마루를 넘을 수 있지만, 수레에 탄 아이는 햇볕을 고스란히 쬐며 고갯길을 천천히 지나야 한다. 목이 타리라. 마침 작은아이도 잠에서 깬다. 두 아이한테 물을 먹이고 주전부리를 조금 준다. 나는 숨을 고르려고 물을 마시지 않는다.

 

- 고갯마루를 넘으니 살 만하다. 오르막을 지나며 다리가 굳는다면 내리막을 달리며 다리가 풀린다. 고갯길은 고개라서 천천히 달린다. 내리막은 내리막이니 시원스레 싱싱 달린다. 올라가기란 얼마나 오래 걸리며 힘든가. 내려가기란 얼마나 빠르며 수월한가. 멧자락 타는 사람은, 또 무언가 목표를 세우며 달리는 사람은, 왜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 할까. 더 빨리 내려오고 싶어서 그렇게 높이 올라가려고 할까. 얼마를 올라갈 수 있든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하나도 안 반가우리라 느낀다.

 

- ‘박지성공설운동장’ 알림판을 본다. 이제 읍내에 거의 다 왔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고흥사람이라며 공설운동장 이름에 ‘박지성’을 넣는다. 고흥에는 김일체육관도 있고, 천경자미술관도 있다. 다만,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기는 하되 얼마나 문화와 예술과 삶을 곱게 맺거나 잇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와 푸름이와 어린이가 고흥에 뿌리내리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마련하는 정책이나 모습은 거의 안 보인다. 모두들 서울에 있는 대학교나 회사나 공장으로 가려 한다. 시골 고흥에 남아 시골살이를 누리며 시골마을을 알차며 튼튼히 일구려는 젊은 빛은 잘 안 보인다.

 

- 자전거집에 닿는다. 자전거를 손질한다. 오래된 손잡이를 간다. 하도 오래되어 고무가 다 녹던 옛 손잡이를 뗀다. 여덟 해째 내 손과 하나되어 숱한 길을 달린 손잡이여, 이제 고이 쉬려무나.

 

- 읍내 과일집에 들른다.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슬슬 집으로 돌아간다. 아까 내리막이던 길은 오르막이 된다. 오르막이던 길은 내리막이 된다. 길가에 잠자리와 나비 주검이 매우 많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이여, 잠자리와 나비가 당신 찻머리와 유리창에 부딪혀 얼마나 많이 숨을 거두는 줄 아는가. 당신 차바퀴에 사마귀와 메뚜기와 방아깨비와 개구리와 뱀이 얼마나 많이 밟혀 숨을 거두는 줄 아는가. 작은 짐승과 벌레들 주검을 내 자전거까지 밟지 않으려고 비껴 달리느라 애먹는다.

 

- 포두면 길두리 끝자락에 선 ‘POSCO 패밀리수련원’ 안내팻말을 본다. 아주아주 자그맣게 세운 안내팻말은 뭘까 궁금하다. 안내팻말 구실을 하자면 커다랗게 세워야 하지 않나. 거의 안 보이도록 작게, 또 자잘한 글씨로 세운 안내팻말은 무얼까. 포스코 회사는 포항사람이 반대해서 포항에 지으려 하던 화력발전소를 전남 고흥과 해남에 나누어 지으려는 정책을 꾀하는데, 이 ‘포스코 패밀리수련원’과 화력발전소 정책은 서로 어떻게 이어졌을까.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에 발전소를 세워서 써야지,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해맑은 시골마을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세우고 송전탑을 끝없이 박으려 할까. 포항은 발전소 공해가 없어야 하고, 고흥이랑 해남은 발전소 공해가 있어도 되나. 해맑은 시골마을 한복판에 화력발전소와 송전탑이 서면, 이제 도시사람은 김도 바지락도 꼬막도 조개도 해삼도 멍게도 전어도 복어도 갑오징어도 장어도, 또 유자도 석류도 서숙도 유기농곡식도 더는 먹을 수 없는 줄 모르는가. 시골마을 물과 바람과 흙이 더러워지면, 도시사람 먹을 모든 것이 더러워지는 줄 모르는가.

 

- 작은아이는 다시 잠든다. 큰아이도 아주 졸린 눈치이지만 졸음을 꾹 참는다. 집에 닿는다. 두 아이 태운 자전거는 삼십 킬로미터 길을 두 시간 동안 달렸다. 잘 달렸다. 집부터 발포 바닷가까지는 칠 킬로미터이니까, 아이들 데리고 바다로 마실 다녀오는 길은 한결 수월할 수 있겠지. 아이들아, 다음에는 바다로 데려가 줄게. 오늘처럼 읍내 다녀오는 길은 괜히 자동차하고 많이 부대껴야 해서 썩 재미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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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9.11.
 : 가을바람 가을내음

 


-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간다. 바다 건너 저 멀리 호주로 책을 부치려고 간다. 우표값이 만오천칠백 원인가 나온다. 참 값싸다고 느낀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는데 딱 만오천 얼마밖에 안 나오니까.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려는데, 큰아이가 저기 나비 있다고 말한다.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데 저기라고만 말한다. 가만히 보니, 자전거 옆 길바닥에서 팔랑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 못한다. 틀림없다. 우체국에 들른 어느 자동차한테 받혀 다친 나비이다. 사람들은 나비이든 잠자리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자동차를 달린다. 우체국 앞에 자동차를 멈출 때에도 나비가 받치거나 말거나 살피지 않았겠지. 겉보기로는 성하지만 몸속으로는 망가졌으리라. 슬픈 나비를 살며시 쥔다. 나비가 팔딱거리지도 못한다. 아이들한테 자 나비 보렴 하고 말한 뒤, 부디 기운내어 다시 훨훨 날 수 있기를 빌어, 하고 마음속으로 노래한 뒤 풀숲에 예쁘게 내려놓는다. 나비는 풀숲에서 날개를 쫙 펼치고는 비로소 한숨 돌렸다는 몸짓으로 쉰다.

 

- 우체국 볼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볕과 바람 좋은 가을날, 좋은 내음과 바람을 쐬면서 아이들하고 들길과 멧길을 달리고 싶다. 집에서 미리 길그림을 살피고 나왔는데, 오늘은 이웃 청룡마을과 미후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갈까 싶다.

 

- 면소재지 보건소 옆 오르막을 탄다. 길가에 석류나무 줄줄이 자란다. 누가 심어 기르는 나무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누가 길가 공유지에 석류나무를 심었을는지 모르지. 이 길가 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 그늘을 드리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르막을 천천히 천천히 오른다.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오르막을 오를 적에 숨이 가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긋나긋 노래를 부를 만하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할까? 뭐, 그래도 좋다. 수레에 탄 두 아이가 아버지 노래를 들으며 멧길을 천천히 오르며 즐겁다는데, 누가 무어라 한들 대수로우랴.

 

- 땀이 송송 돋을 즈음 오르막이 끝나는구나 싶더니 또 오르막이 나온다. 왼편으로 멧기슭에서 풀을 뜯는 까만염소와 소가 보인다. 오, 이곳에서는 짐승을 들에 풀어놓고 기르네. 그러고 보니, 소우리와 염소우리가 꽤 있어도 소똥이나 염소똥 냄새가 거의 안 나는구나. 큰아이가 염소와 소를 보더니 둘레에 있는 커다란 우리를 가리켜, “저기 소집 있네.” 하고 말한다. 맞아, ‘우리’이기 앞서 ‘집’이야.

 

- 이제 슬슬 봉서마을로 빠지는 길이 보여야 하는데 마땅한 길이 안 보인다. 어쩌면 마을을 가로질러서 고개 하나 넘어야 하는지 모른다. 모른다. 그래, 모르니 그냥 달리자. 멀리 돌아가도 다음에 잘 달리면 되지. 다음에 다시 길을 익히면 되잖아. 자전거를 천천히 밟으며 한손을 죽 뻗는다. 바람아, 바람아, 가을바람아, 내 오른팔에 와닿으며 노래를 불러 주렴. 이제 왼팔을 뻗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쥔다. 바람아, 바람아, 들바람 가을바람아, 내 왼팔에 와닿으며 고운 내음을 풍겨 주렴. 큰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아버지를 따라한다. 미후마을과 장촌마을을 지나고 보니 마복산 가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오늘 꽤나 애먹을 고개를 넘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고단하지는 않다. 즐겁게 넘어 주지, 뭐. 자전거를 세운다. 저기 팔영산부터 부는 가을 들바람이 우리한테 와닿는다. 무르익는 벼마다 벼내음이 왈칵 풍긴다. 구수하게 익는 벼내음이란! 바로 가을내음이구나! 바야흐로 좋은 가을노래로구나!

 

- 자전거를 세우고 노래를 부르며 두 팔을 죽 뻗은 채 가을바람 들내음을 맡는데, 뒤에서 군내버스 한 대 휭 하고 지나간다. 군내버스 일꾼이랑 손님들은 우리 세 식구를 어떻게 바라보았으려나. 관광객으로 여겼을까? 따지고 보면 관광객이기도 하다. 마을사람이면서 관광객이다. 우리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가기보다, 이렇게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들길이나 멧길을 거닐거나 달리면서 가을을 한껏 들이마시도록 할 때에 훨씬 좋다. 아이도 좋고 어버이도 좋다. 좋은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좋은 시골바람을 쐰다. 맑은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맑은 시골햇살을 쬔다. 고운 시골에서 살아가는 만큼 고운 시골길을 실컷 누린다.

 

- 세동마을 오르막을 달린다. 처음 이 오르막을 달리던 때에는 허벅지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 둘 태우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오르막을 한갓지게 오른다. 뭐랄까, 오르막을 허둥지둥 빨리 오르려는 생각을 버린 뒤부터, 어느 오르막이든 그리 힘들지 않다. 기울기가 10도가 되는 오르막조차 땀을 줄줄 빼면서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더러 “아버지 힘내셔요, 하고 말해 주렴.” 하고 읊는다.

 

- 작은아이는 가을햇살 받으면서 잔다. 큰아이도 어느새 잠든다.작은아이는 오른쪽으로 머리를 기대로 큰아이는 왼쪽으로 머리를 기댄다. 예쁜 아이들이 예쁜 마을을 예쁜 바람과 햇살 누리면서 달린 끝에 사르르 잠든다. 나도 졸립다. 차근차근 마지막 마복산 오르막을 오른다. 고당마을부터는 내리막이 된다. 봉동마을과 봉서마을을 지나 우리 동백마을로 접어들 때에는 다시금 오르막이 되지만, 다리힘은 수월하다. 집에 닿아 후박나무 그늘에 아이들을 한동안 둔다. 우리 다음에도 또 이웃마을 달리기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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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고흥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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